수국
방을 끊자 방에 대한 꿈만 있다그녀가 사라지자그녀의 윤곽만 남는 것처럼발가락을 모으고볕꿈을 꾼다- 이곳은 물의 나라라오내 목소리는 모두 젖어버렸소거품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문 너머그녀가 벗어두고 간 당초무늬 치마가바람에 널려 있다 내…
2008072008년 07월 04일식물성의 사랑
그 아픈 나무에게 마음을 빼앗긴 지겨우 일 년.퇴근할 때 두고 간다고 생각한 것도이제 겨우 며칠.목련꽃이 공중부양하듯 떠 있던 밤까칠한 나뭇가지만 보여주는 산딸나무에게못내 서운했다.봄이 왔잖니, 꽃도 피어나고 있잖니.어두운 표정의 …
2008062008년 06월 09일천체 예언자
북을 두드리며 피리를 불며시청 앞 광장에서 그는 노래했네이곳의 거주민들이여 오랜 여행자들이여나의 깊은 권능 속으로 들어오라보이저 호가 토성을 지날 때 그는 말했다끝없는 붕괴가 곧 시작될 것이라고저 너머의 십자가가 우릴 구원할 것이라…
2008052008년 05월 06일밤 시장
텅 빈 시장을 밝히는 불빛들 속에서한 여자가 물건을 사들고 집으로 간다.집에 불빛이 켜 있지 않다면삶은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밤 시장,얼마나 뜨거운 단어인가!빈 의자들은 불빛을 받으며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밤은 깊어가는데 아무도 오…
2008042008년 04월 03일변산 내소사
봄은 늘 늙은 봄,올해 돋은 달래 냉이도 새것이 아냐.올 매화도 마찬가지,작년 것과 같은 헌 매화야.비도 작년 비바람도 작년 바람낯익은 비 낯익은 바람이야.변산 내소사 일대에큰고니 발자국 몇 개 찍어놓고달래 냉이 앞세우고당도한 봄도…
2008032008년 03월 05일벼룩시장
흐린 날엔 물건들도 몸살을 앓는다양편으로 오른쪽 굽만 닳은 구두는비척비척 길 바깥으로 미끄러지고물먹은 시계는바늘을 안개 속으로 실종시켜버린다물건들이나를 시장으로 내몬다물건들도 늙는다늙은 물건들 앞에서 그들의 젊은 날을 상상하는 것은…
2008022008년 02월 04일Drumbeat / 북소리
As the eastern sky clearedwindows were days of blueWe have set downa single treea single refrain on earthAs yet shoots fewthe tem…
2008012008년 01월 07일들려온다
1들려온다, 어머님의 한숨 소리…“이 벌이(蜂) 같으모 이 꿀을 어떻게 따묵고 사노…”2우리 어머님, 경주 부잣집에 장가 보내주시면서,울먹이시면서, 해주시던 말씀“철아… 부자들은 먹는 거도 다르고, 입는 거도다르데이… 느그 장모한테…
2007122007년 12월 06일민둥산 억새
마디 굵은 손가락 사이로비탈진 삶을 적시며아라리 가락이 흐르는 강원도 정선 땅나무도 풀도 없는 벌거숭이 민둥산에억새들 무리 지어 꺼이꺼이 목놓아 운다.그리움으로 길게 목을 뽑고푸른 피 돌던 젊은 날의 꿈과 사랑한 줌 바람이 되어 허…
2007112007년 11월 05일좌광우도전
21세기 지구촌 동방 어류민국에 광어와 도다리가 있었다. 넙데데한 몸에 흘깃흘깃 실눈을 하고 늘상 배를 깔고 지냈다. 무수기 까치놀 때면 이따금 돌물 너울에 밀려 합수머리로 나왔다. 그들은 본시 한 핏줄이되 튀어나온 두 눈이 각기 …
2007102007년 10월 04일무궁화, 9월
무궁화 세 송이를 들고 달렸다.그대 바람이 빗방울 아래연약한 잎으로 흔들린다.자신 없는 어떤 잎맥무늬도나름의 향기를 지니고빛나고 있다, 황홀하다.꽃을 통째로 떨구면서새로운 샘물냄새를 흘린다.나의 생각을 지배하는,나의 뿌리에 닿아 느…
2007092007년 09월 05일여름 소낙비
어릴 적동네 어귀에서동무들과 함께 불볕을 맞으며쌓아 올린 토성이도시를지나가는 여름 소낙비에한순간 무너져도온몸을 적시며장난을 감추지 못한하나의 풍경이 되고은박지 위의 장난꾸러기처럼물고기와 새가 되어우주를 넘나들고티 없는 기쁨이 되고불…
2007082007년 08월 07일신록에 에워싸인 날에
신록에 에워싸인 정원수가어느 공원 놀이터 거기색깔과 향기 두르고뜬 해가 하 정답게울적한 심회 풀어볼까손을 내미는 날에나는 험하게 말을 잃고 살런가주체 못할 한나절마음만 열었다 닫았다귀멀고 눈멀게멀리 떠난 친구 그림자어쩌자고 여기 남…
2007072007년 07월 04일無名
푸른 풀빛이태양과 함께내 안으로 들어오면변화하는 인간의 생명을 소멸시킨다검은 사라지고나의 눈물도 흩어지고태산은 장중하여 가리키는 곳을 모르고붉은 사막은 서늘하게내 자신을 죽이고 있다기다린다미친듯이어디론가 달려가는 내 모습을무엇인가 …
2007062007년 06월 04일도로 위의 성만찬
바퀴는 무심코 밟았다,앞서 간 바퀴가 깔아뭉갠 고양이 한 마리를.물컹하게 흩어진 살과 피가도로 위에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하고성만찬을 나누듯피와 살을 나누어 갖는 바퀴들.쓰레기봉투 앞을 어슬렁거리던밤의 제왕이 건네는 마지막 포도주를바…
2007052007년 05월 02일그랜드캐니언
억겁의 은둔에서 웃음 짓는 너콜로라도 강 2400km고매한 혼령으로 흘러너와 나를 보고 있는갈가마귀 되었구나기약 없이 흐르는 창공의 운무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행락들의 시름이드냐북 치고 장구 치는인고의 세월 전설처럼 들려오고내가…
2007042007년 04월 11일장례식 위의 바람과 구름
눈을 감은 그의 가슴 위엔흰 국화 몇 송이가죽은 나뭇가지의 그림자날아가던 새가 떨어뜨린 붉은 발자국이졸음처럼 흙이 쏟아진다인부들은 부지런히 삽질을 한다철 이른 민들레 몇 송이가 뿌리째 관 위로 떨어진다검은 한복을 입은 여자는 눈을 …
2007032007년 03월 12일길의 아들에게
넘어질 듯 뒤뚱뒤뚱안 넘어지고 되똥되똥걸음마 배우는 내 아들아발 디딘 곳 다 도착지이며그 다음 걸음은 다 출발점이란다한 번 갔던 길 가고 또 가면그 길에서는 잡풀이 올라오지 않아계속 길일 것이다많이 걷게 될 것이다 아들아걷다보면 성…
2007022007년 02월 07일단풍
무덤에 서 있는한 그루 나무.바람과 서리에속을 다 내주고물들 대로 물들어 있다.추석에 돌보지 못하고다 저문 가을 내려와고향 밭둑,아버지 무덤에 선다.모두들 고향을 떠났지만사시사철무덤을 지키고 선나무 한 그루.저녁 햇살에 빛나며,무덤…
2007012007년 01월 08일12월 달력을 바라보며
한 해를 돌아볼 겨를 없이 11월 달력을 넘겼다.달랑 남은 한 장의 달력무슨 일 어떻게 하며 한 해를 보냈던가?돌아보니 뽀얗게 내리는 눈발에하얗게 덮여버린 들판처럼모두 파묻혀 아무 색도 찾을 길 없다.기쁘고 즐거워 가슴 따뜻했던 붉…
2006122006년 12월 0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