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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같은 뉴스’는 필요 없어요

‘쓰레기 같은 뉴스’는 필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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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에 대한 그림 선물 로비 의혹으로 코너에 몰려있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지난해 말 달려간 곳도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인 포항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이 의원의 지인들과 골프를 쳤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묻지 않아도 알 만한 일이다.

대통령의 형(이상득)과 가까운 대통령의 친구(천신일)는 ‘노무현 패밀리’의 일원(박연차)과 의형제 사이다. 박연차의 돈을 먹고 구속된 추부길(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대통령의 형에게 박연차를 봐달라고 했지만 대통령의 형은 이를 거절했으니 ‘실패한 로비’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친구는 동생 같은 박연차의 딱한 처지를 모른 척할 수는 없었지만 별 역할을 못했으니 ‘잘못 없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로 이 묘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는 어떤 형태로든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권력의 사유화를 근절하지 못한다면 화(禍)의 씨앗은 곳곳에 뿌려질 수 있다. 6선 의원인 ‘영일대군’의 위세를 아무것도 모르는 촌사람이라던 ‘봉하대군(노건평)’에 견줄 것인가.

심각한 문제는 이런 ‘3류 드라마’가 신문지면을 도배하고 TV 주요 뉴스를 점령하면서 정작 우리 사회의 주요 의제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년실업이 대표적 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노트북을 켜고 쓰레기 같은 뉴스를 훑어본다. 그 다음엔 잡 코리아에 들러 구직공고를 살펴본다. 나의 주요일과는 집에서 이력서를 쓰는 것이다. 성장과정을 언급하고, 자신의 성격을 솔직히 서술하고, 특기사항과 장점을 피력한다. 학창생활에 대해 언급하고, 입사동기와 포부를 구체적으로 밝힌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거의 쓸데없는 짓이란 걸 안다. 입사지원을 하기 전에 그 회사 공채합격자의 자기소개서 파일을 찾아 복사한 뒤 거기에 맞춰 제 이력을 짜깁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식은 없다. 나와 내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한 지 2~3년이 지났지만 대부분 직장이 없는 처지다. 온종일 집에서 인터넷을 떠돌며 잠을 청하거나 도서관에서 졸고 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설령 직장을 가졌다고 해도 잠시 땡볕을 피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한재호의 소설 ‘부코스키가 간다’(제2회 창비 장편소설상 수상작)의 주인공 나는 ‘서른 살 소년’인 청년 백수(白手)다. 용인할 수는 없지만 거부할 수도 없는 백수의 삶, 그것이 그의 ‘신종 직업’이다.



‘100만 실업자’ 시대라고 하지만 이는 실업률 통계에 잡힌 숫자일 뿐이다. 취업준비자,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한 사실상 백수는 이미 300만명을 훌쩍 넘었다. 취업을 했다고 해도 둘 중 하나꼴로 비정규직이다. 20대는 열에 여덟아홉이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는 전직 대통령의 ‘생계형 범죄’도, ‘영일대군’의 위세도, 친이-친박의 싸움도 모두 ‘쓰레기 같은 뉴스’일 뿐이다. 노무현에게 구속영장이 떨어지든 말든, 그것이 청년 백수의 삶에 무슨 변화를 준단 말인가? 천신일-박연차의 ‘이상한 주식거래’가 그들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친이-친박 싸움에서 어느 쪽이 이기든, 이긴 쪽에서 번듯한 일자리라도 마련해준다는 말인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는 중산층의 폭이 넓은 마름모꼴에서, 상층부와 하층부가 사회경제적으로 분리되는 8자형으로 급속하게 변화해왔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precarious)이란 형용사와 임금 노동자(proletariat)란 명사를 합성한 신조어다. 신자유주의 경제하에서 불안정한 고용, 노동 상황에 있는 비정규직과 실업자를 총칭한다. 8자형의 아랫부분에는 당연히 이들이 존재하고, 그중에서도 청년 백수가 맨 밑에 놓여있다(아마미야 카린·우석훈 지음 ‘성난 서울’). 나라의 미래를 담당해야 할 수많은 젊은이가 희망을 잃은 채 그저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꼴찌를 위한 갈채’는 없다. 생존경쟁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다 네가 못난 탓’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1년 전 “현 정부가 일부 부자를 위한 정부라고 비판하고, 그런 비판은 5년 내내 있을 것이다. 정부는 약자, 도움이 필요한 계층을 위해 일할 것이며 그게 선진사회로 가는 길이다. 잘되는 사람은 능력에 맞게, 약자에게는 길을 열어줘 보호 지원해야 한다. 많은 정권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오히려 빈부 격차가 더 커졌다. 새 정부는 말을 줄이고 격차도 줄여가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과연 1년이 지나는 동안 대통령은 행동으로 보여주었는가? 정부와 집권 여당은 제 몫을 다했는가? 결과는 부정적이다. 청와대와 정부 간, 정부 부처 간, 정부 여당 간 소통 없는 밀어붙이기 국정으로 혼선이 거듭됐다.

‘쓰레기 같은 뉴스’는  필요 없어요
전진우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한성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경제 살리기는 이명박 정부의 정당성을 담보하는 1차 목표다. 그러나 그 결과 불균형이 확장된다면 ‘부자를 위한 정부’라는 비판은 정권의 정당성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타 센은 “발전이란 사람들이 좋은 교육기회, 사회보장 등 사회적 혜택을 통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실질적 자유의 확장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젊은이들에게 자아실현의 기회를 넓혀주는 것이다. 청년 백수들은 말한다. ‘쓰레기 같은 뉴스’는 필요 없다고.

신동아 200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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