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국수가 100년에 한 명 나올까말까 할 ‘바둑천재’ 또는 ‘전신(戰神)’으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조 국수는 말보다 바둑을 먼저 배웠다.
그가 네 살 때의 일이다. 아버지 조규상씨가 조카사위와 바둑을 두고 있는데 지켜보던 아들이 한마디 훈수를 던졌다.
“아부지, 거기다 두면 안 돼라우.”
처음엔 ‘네 살짜리가 뭘 알고 저런 소리를 하나’ 싶어 피식 웃어넘기고 말았는데, 복기를 하다 보니 바로 그 점이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뒤늦게 아들의 천재성을 간파한 아버지는 아들 손을 잡고 기원으로 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 목포를 떠나 서울로 이사하기에 이른다.

조훈현 국수와 부인 정미화씨가 갈비양념 간을 보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성공한 삶을 위해 그가 버려야 할 것이 적지 않았다. 학력만 해도 서울 삼선초등학교를 다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다카이도 다이용 초등학교를 거쳐 신메이 중학교를 졸업한 것이 전부다. 사실 그마저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머릿속이 온통 바둑에 대한 생각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받은 교육은 바둑스승 세고에 겐사쿠(9단·사망)에게서 받은 가르침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일본 명인 세고에의 문하생은 조 국수, 단 한 명뿐이었다. 지독히 고독한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