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소를 토대로 한 생명체, 컴퓨터에 정보형태로 든 생명체 등 상상 속의 생명체는 다양하다. 영화 ‘매트릭스’의 포스터.
이것은 조절이 가능한 회로의 한 사례다. 또 형광 물질을 분해하는 효소와 유기 화합물을 이용해 인간과 틱택토 같은 간단한 게임을 하는 논리회로를 만든 사례도 있다. 상호 억제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두 유전자를 이용해 스위치를 만든 연구도 있다. 한쪽의 활성을 자극하는 물질이 들어가면 그쪽 유전자의 단백질이 만들어지면서 다른 유전자는 억제되는 식이다.
세포 내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려면 이런 단순한 회로의 연구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통합된 전체 계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현재의 세포 자체는 너무 복잡하다. 게다가 유전체에는 과거에 쓰였다가 용도 폐기된 유전자의 잔해나 그다지 필요 없는 염기서열이 많이 들어 있다. 그런 것들을 다 제거하면 꼭 필요한 것만을 지닌, 기능적으로 통합된 산뜻한 최소한의 유전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생명 현상을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연구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현재의 유전체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씩 없애는 위로부터의 방식과, 유전자 등 필요한 요소를 하나씩 추가해가면서 유전체를 합성하는 아래로부터의 방식이 있다. 현재 대장균 같은 미생물의 유전체를 대상으로 크기를 줄이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최소 유전체는 환원론적 과학이 늘 염두에 두고 있던 의문을 해결해줄지 모른다. 세포를 이루는 성분들을 낱낱이 해체했다가 조립하면 그 세포는 다시 살아서 활동할까. 최소한의 유전체를 지닌 최소한의 세포는 그 의문에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그것은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해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연료 생산하는 인공 미생물
크레이그 벤터가 장담했듯 최소한의 유전체를 지닌 인공 생명체가 조만간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생명 분자의 표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소 유전체에는 DNA 복제, RNA 전사, 단백질 해독에 필요한 요소들, 최소한의 대사 활동에 필요한 요소들, 손상을 수선하고 환경에 적응하고 진화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이 포함될 것이다. 그 요소들은 기계 부품처럼 표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현재 제약회사들이 실험에 쓰이는 다양한 생체분자들을 제조해 판매하듯, 세포 합성에 필요한 것들도 구입해서 원하는 맞춤 세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아예 맞춤 세포를 시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벤터가 말하듯이 자동차에 연료를 싣고 다니는 대신, 연료를 생산하는 미생물이 가득 든 통을 싣고 다닐 날이 올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생물은 특정한 기능을 맡고 있으면서 대체와 변형이 가능한 모듈 구조를 많이 쓰고 있다. DNA도 아미노산도, 뼈도, 몸마디도, 부속지도 그렇다. 유전자들도 기능적으로 연관된 것들이 모여서 한 단위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인간의 정신이 모듈 방식으로 구축되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합성 유전체를 그렇게 모듈 방식으로 구성한다면 표준화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다.
이런 미래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벤터의 말이 나오자마자 치명적인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생물학적 무기를 떠올릴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강력한 전염성을 지니고 있거나 치명적인 독성물질을 생산하는 세포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생명의 존엄성 문제는? 인공 합성 맞춤세포가 늘어날 때 생길 문제들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유전공학의 산물들이 대개 자연계에 본래 있던 생물들보다 자연 환경에서 취약했다는 점을 근거로 안전성 문제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만일 아니라면? 배아줄기세포를 둘러싼 윤리 논란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또 다른 윤리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생물학이 워낙 급속히 발전하는 통에 생명윤리는 대처하기가 버거울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