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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와 태허 유상규

“공동묘지 태허 옆에 묻어달라”… 묵살된 도산의 유언

도산 안창호와 태허 유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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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와 태허 유상규

1936년 5월23일자 ‘조선중앙일보’에 실린 태허 유상규의 의학기사와 1935년 동아일보에 실린 그의 건강 강연회 광고(왼쪽).

“공은 1919년 3·1운동 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중단하고 상해 임시정부 교통국 및 국무총리 도산 안창호 비서 근무. 1920년 흥사단 입단 활동함. 인재가 필요한 민족이니 고국에 돌아가 학업을 마치라는 도산의 권고로 1924년 귀국 (1925년) 복학하고·수양동맹회, 동우회에서 독립운동을 계속함. 1927년 경의전 수료 후 동외과 강사 근무 중 졸. 당 40세임. 1990년 8월15일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990년 고인이 뒤늦게 훈장을 받은 것은 장남 유옹섭씨의 증거자료 제출에 의해 마침내 정부가 그 공적을 인정하게 됐기 때문이다. 옛날 비석은 땅에 묻고 새로운 비석이 세워진 것도 훈장 수여 후의 일이다.

의학을 통한 민족 계몽

도산이 자신의 비서로 있던 유상규에게 급거 귀국을 권고한 것은 그의 독립사상 때문이었다. 유상규는 3·1운동에 참가한 이력 때문에 경성의전에서의 학업을 중단하고 상해로 와 임시정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도산은 “우리가 나라를 잃은 것은 이완용 일개인 탓도 아니오, 일본 탓도 아니라 우리가 힘이 없어서였다. 그러하니 나라의 독립은 국민 개개인이 힘을 가질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 점진적으로 힘을 키워나가는 방향으로 투쟁을 할” 것을 주장했다. 이에 급진파는 “당장 싸울 인력이 필요한데 무슨 말이냐”며 반대했으나, 도산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우선 인재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도산의 제자 격인 춘원 이광수 또한 나이 27세로 상해에 있을 때 “독립국민의 자격자를 키우라”는 도산의 권고에 따라 귀국해 흥사단 활동과 저술을 통한 국민계몽에 나섰다. 춘원은 흥사단의 국내조직으로 수양동우회를 조직했고 도산의 장례를 주관했으며 광복 후에는 기념사업회의 권유로 ‘도산 안창호’를 집필했다. 춘원의 정신적 지주는 도산이었다.



경성의전은 조선총독부 산하 최고의 의학교로 서울대 의대의 전신이다. 유상규는 1916년 3월 경신중학을 11회로 졸업하고 그해 4월에 경성의전에 입학했고, 1919~1924년 휴학 후 1925년 복학해 1927년 3월에 졸업했다. 경성의전 출신 의사로서 백병원 설립자 백인제(1898~?·1921년 졸업, 6·25 때 납북)와 민중병원 설립자 유석창(1900~1972·1928년 졸업) 등이 유명하다.

유상규는 졸업 후 경성의전 부속병원 외과의사 및 학교의 강사로 박사학위를 준비하는 한편, 동아일보사 주최 강연회에 꾸준히 연사로 참석해 조선 민중의 의학적 계몽활동에 열심이었고, 1930년에는 조선의사협회 창설도 주도했다(중외일보, 1930. 2.22). 또한 동우회 잡지 ‘동광(東光)’은 물론, ‘신동아’에 많은 글을 실었다. 그러나 일제의 감시를 피해 본명을 밝히지 않고 ‘태허(太虛)’라는 호로 발표한 글이 많아, 실명으로 실은 의학 관련 기사 외에는 그의 글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이광수는 글로써 민족계몽에 나섰고, 유상규는 의학으로써 민족의 건강을 위한 공중위생 계몽에 나섰다. 폭탄을 던지는 방식의 독립운동도 필요하지만 꾸준하고 점진적인 독립운동도 중요하다고 주장한 도산의 독립사상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이 바로 유상규다. 그는 치료비를 받지 않는 왕진에도 열심이었고, 휴가 때도 친구의 병 간호를 할 만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환자를 치료하던 중 단독(丹毒)에 감염돼 세상을 버렸다. 유상규는 죽을 때까지 도산의 뜻을 헌신적으로 실천에 옮겼다.

그의 장례는 마침 대전에서 출옥해 국내에 체재 중이던 도산이 주관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그의 장례식엔 불법집회로 의심받을 만큼 많은 친지와 동지가 모였으며 그의 은사 오사와 마사루 교수도 ‘슬픔에 떨리는 음성’으로 조사를 낭독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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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수필가, 번역가 japanl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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