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64년 강원도 영월 출생<br>▼ 홍익대 미대 조소학과 졸업<br>▼ 베른미술관, 르 콩소시움, 뉴 뮤지움, 글래스고 현대미술센터, 오하라 미술관, 캐나다 파워플랜트 갤러리, 시드니 현대미술관 등에서 전시회<br>▼ 후쿠오카 아시아 트리엔날레, 아시아 태평양 트리엔날레, 이스탄불 비엔날레, 사라예보 2000 등에 참여
언론은 줄곧 그의 도발적인 작품과 퍼포먼스, 행동에 주목했지만 그는 이에 신경 쓰지 않고 내공을 다졌다. 그 결과 이제 아무도 그의 이름 앞에 ‘세계적인’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데 토를 달지 않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미술을 단지 바라보는 것, 아름다운 것으로만 생각해온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받아들이기가 어색하다. 아니, 동의할 수 없다. 그들이 알고 있는, 그간 보아온 미술과는 거리가 너무도 멀기 때문이다.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시세를 거스를 수도, ‘왜, 무엇 때문에 그런 거창한 말을 붙이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이불과 이불의 작품은 불편한 존재다. 그들은 그의 작품과 이렇듯 불편하지만 불편하다고 말하지도 못하는 어색한 공존을 하고 있다.
이불의 작품이 낯설고 때로는 괴이하게 보이는 것은 미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미술이란 언제나 아름다운 것이고, 그 아름다움이란 마치 꽃과 같아서 늘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실제와 얼마나 똑같이 그렸느냐가 그림의 유일한 평가기준이었다. 사과를 그린 그림을 보고 진짜 사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야만 잘 그렸다고 하는 ‘눈속임 기법(Tromp e d’Oeil)’ 회화가 우리의 그림 평가 척도였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잘 그렸다고 하는 그림, 명작이라고 하는 것들은 거의 모두 이렇게 닮은, 또는 진짜와 똑같이 그려진 작품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면서 사람들이 눈에 의해 속아왔음을 인식하면서 미술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런데 그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가상현실 세계에 머물고 있어 이불의 작품에 대해 “당최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당찬, 그리고 야심만만한
1997년경 이불이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프로젝트 룸에서 개인전을 연다는 소식을 접했다. ‘MoMA’는 전세계 미술인에게 꿈의 무대다. 하지만 국내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필자는 마침 뉴욕 출장을 앞두고 있었다. 출장 목적은 다른 데에 있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그의 전시를 둘러볼 참이었다. 아침 일찍 미술관이 문을 열자마자 프로젝트 룸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갤러리는 텅 비어 있고 입구에 조그만 안내문이 나풀거리고 있었다. ‘미술관 사정상 전시를 진행할 수 없어 작품을 철수했다’는 내용이었다. 아, 그 허무함이란. 그때는 황당하고 아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또한 이불의 의도된 복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