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에 어떤 이상 감정이 있다는 것일까. 문제는, 다른 여자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실은 남자가 미리 준비해둔 상황이라는 데 있다. 정리하면 이렇다. 남자는 너무도 기다려온 그 여자를 얻을 수 있는 순간 다른 여자의 전화를 예약해뒀다. 간절히 원한 바로 그 여자와의 사랑이 이뤄지려는 때 스스로 이 모든 행복을 망치는 남자의 행위, 당신은 이해가 가는가.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남자는 이 행위에 대해 조금은 이해한다고 대답한다. 이 대답은 ‘정말 오랜 기간 따라다닌 여자였는데, 애정에 호응하는 순간 감정이 식더라’ 하는 고백과 유사하다. 욕망의 신비는 그것을 채우고자 하는 집착이 아니라 그것을 채우지 않은 채 두고 싶어하는 아이러니에 있다. 너무나 갖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갖고 싶지 않은 것이 바로 욕망인 셈이다.
그래서 이 욕망의 아이러니를 잘 다루는 사람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연애의 고수’가 된다.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단속하고 감정의 누수를 조절하는 사람. 그들은 곧 주고 싶지만 모든 것을 주는 순간 끝나고 마는 사랑의 게임을 아는 사람이다. 사랑의 고수는 단속하고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안달 나게 하는 그녀
그런 점에서, 루이스 부늬엘 감독의 ‘욕망의 모호한 대상’은 어떻게 해야 평생 한 남자를 자신을 향한 욕망의 노예로 만들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중년 사업가 마티유는 7년 전 아내와 사별했다. 그는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는 절대 섹스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런 그의 눈에 하녀 콘치타가 들어온다.
그는 콘치타를 보자 강렬한 욕구를 느낀다. 콘치타에게 반해버린 마티유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녀의 아파트를 드나들며 돈으로 환심을 사려 한다. 마티유는 자신이 가진 ‘돈’으로 콘치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어린 처녀이기에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이 둘 간의 게임을 장악하고 있는 건 마티유가 아니라 콘치타임을 확인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편지 한 통을 두고 사라진 데서도 알 수 있다. 남자가 콘치타를 정복할 수 있으리라 자신만만해하던 순간 여자는 사라진다. 얼마나 절묘한 타이밍인가.
5개월 후 마티유는 콘치타와 재회하고, 결코 그녀를 놓치지 않으리라 매달린다. 둘은 동거를 시작하는데, 문제는 콘치타가 무시무시한 코르셋을 착용한 채 잠자리에 든다는 것이다. 콘치타는 말한다. 내 모든 것을 가진다면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난 우리 사랑을 지속하고 싶다고. 마티유가 울고 불며 사정해도 콘치타는 계속 거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