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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색의 화가 최동열

뉴욕을 놀라게 했던 무학(無學)의 예술가, 날 선 뜨거움으로 돌아오다

원색의 화가 최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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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삿집 맏손자

원색의 화가 최동열

인상파 화가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강렬한 원색의 작품 사이에 선 최동열 작가.

사실 최동열을 유명하게 만든 키워드는 ‘뉴욕파’ 외에 하나 더 있다. ‘무학(無學)’이다. 그가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은 귀국전 이래로 전시 때마다 따라붙는 수식어다. 최동열 본인도 자신이 어떻게 화가가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파란만장한 삶의 가운데서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최동열은 일제강점기 변호사로 활동한 최진의 맏손자다. 최진은 조선 출신 변호사들이 조직한 우리나라 최초의 법률가 단체 ‘경성제2변호사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인물. 1951년 최동열은 서울 인사동 99칸 한옥에서 첫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전쟁통에 할아버지 최진이 납북되고 집안이 몰락하면서 피란지 부산에서 유년기를 보내게 된다. 경기중학교에 입학할 만큼 공부를 잘했던 소년의 꿈은 ‘가문의 복원’이었다.

“이승만 박사가 롤 모델이었죠. 경기고, 서울대,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뒤 대통령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와 돌아보면 그게 본인의 꿈이었는지, 가족들의 꿈이었는지 헷갈린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의 마음속을 떠나지 않던 삶의 행로였던 건 분명하다. 원대한 꿈은 경기고 입학시험에 떨어지면서 비틀어졌다. 하늘 같은 자존심에 재수도, 다른 학교 진학도 성에 차지 않았다. 검정고시를 치러 15세에 대학생이 됐지만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답답하고 좀이 쑤셨다. 숨구멍으로 택한 것이 전쟁이었다.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불쑥 베트남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의 끝을 보았다. 성마르게 반항이나 하던 명문가 출신 도련님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우리는 하면 잘하니까. 아예 안 하면 모를까, 일단 시작하면 대충 하는 게 없어요. 그때의 잔인성이라는 건 상상을 초월하죠.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시키는 대로 했는데 돌아보니 그게 죄였다’ 이런 건 용서받을 수 있어요. 난 그게 아니라 다 알면서 스스로 결정해서 ‘나는 하겠다. 이왕 하는 거 잘하겠다’ 해서 했거든요.”

그는 해병 첩보부대(HID)에서 꽤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말하듯 ‘잘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난폭하고 잔인해졌을 것이다. 그 상처는 오래갔다. 귀국 후 마음을 잡지 못하다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유도 사범으로 취직해 영주권을 받은 뒤 부모도, 형제도 없는 곳에서 제대로 방황했다. 바텐더, 술집 기도, 막노동.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했다. 싸움, 마약, 섹스에 탐닉했다….

날뛰는 야생마

누구에게나 자신의 체험은 세상에서 유일한 것이다. 고통도, 기쁨도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최동열의 기억 역시 그럴 것이다. 어쨌든 그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영민한 시절을 거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거친 삶의 복판으로 뛰어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터뷰 도중 곧잘 “내가 그래도 경기 출신인데”라고 말했고, “OOO OOO가 다 동기생이에요”라고 명사들을 거명하기도 했다. “나는 뭐든 잘하는 방법을 안다”고도 했다. 그 자존심만이 그 시절 그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안식이었을 게다. 1974년 도미 후 닥치는 대로 살던 최동열은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보고 무작정 찾아간 뉴올리언스에서 또 하나, 기대어 쉴 것을 발견했다. 그림이었다.

“어느 날 아파트 발코니에서 엘디는 그림을 그리고 나는 붓글씨를 연습하고 있었다. 갑자기 반 고흐와 폴 고갱을 동경하던 어린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순간 나는 정육점으로 가서 고기를 싸는 종이를 한 통 샀다. 길이가 자그마치 100m나 되었다. 이 종이를 발코니에 주욱 펴놓고 ‘뛰는 말’을 5, 6회의 붓놀림으로 그리고 또 그렸다. 100m나 되는 종이에 계속 말을 그려 나가다 한 1000마리쯤 채워졌나 싶을 때,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한 획으로 주욱 말 한 마리를 그려냈다. 말 그림을 시작으로 나는 홀연히 미술세계에 입문했다.”

자서전 ‘돌아온 회전목마’의 한 부분이다. 엘디는 그가 뉴올리언스의 한 카페에서 만난 미국인이다. 텍사스주립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녀는 작업을 위해 그 도시에 와 있었다. 첫 만남에서 ‘통한다’는 걸 알게 된 두 사람은 다음 날 바로 동거에 들어갔고, 엘디의 삶은 최동열에게 ‘그림 그리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했다.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한 획으로 주욱 그린 말 한 마리’로 그는 졸지에 화가가 된다. 카페에 그림을 거니 사람들이 작가 대우를 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자존심 하나로 떠돌던 그가 처음으로 움켜쥔 ‘실체’, 그것이 바로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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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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