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한양대 의대 박문일 교수는 “불임에 대한 논의가 과장돼 있다”고 말한다. 이 주장에 관심이 쏠리는 건 그가 습관성 유산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기 때문. 습관성 유산은 불임의 대표적인 양상 가운데 하나다. 유산이 반복돼 출산에 이르지 못하는 증세를 가리킨다. 박 교수는 이 분야 연구로 세계주산(周産)의학회 우수논문상, 세계산부인과학회 최우수논문상 등을 받았다. 의사생활 25년간 숱한 ‘불임’ 환자를 만나고 치료해온 그가 무슨 근거로 “불임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하는 걸까.
“우리가 불임이라고 부르는 것 중 절대 다수는 일시적으로 임신에 곤란을 겪는 ‘난임(難姙)’이기 때문입니다. 조물주는 모든 생명체에게 자손 번식의 능력을 줬어요. 과정상 어려움이 있다 해도 수정 자체가 안 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어려운 출산을 ‘난산’이라고 하듯이 어려운 임신은 ‘난임’이라고 해야 한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불임’이라는 말이 사용되면서 정상적인 부부들까지 검사와 치료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어요.”
박 교수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임신이 잘 안 되는 동물이다. 건강한 부부가 한 번의 월경주기 내에 임신할 가능성은 15~25%. 나머지는 모두 임신에 실패한다. 반면 쥐의 임신율은 100%에 달하고, 침팬지도 70~80%다. 인간은 포유류 가운데 임신 성공률이 가장 낮다.
▼ 만 35세 이하의 건강한 부부가 피임 하지 않고 정상적인 성 생활을 하는데도 1년 이내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경우를 불임이라고 한다고 들었는데요.
“의학적인 기준은 그렇지요. 하지만 임상적으로 볼 때 건강한 부부가 1년 이내에 자연적으로 임신해 만삭 출산에 이르는 확률은 30%가 채 안 돼요.”
쉽지 않은 임신
수정률은 이보다 훨씬 높은 85%에 달한다. 문제는 이중 70%가 출산 전 유산된다는 점. 20%는 본인이나 의사가 아는 유산이지만, 나머지 50%의 유산은 아무도 모르게 진행된다. 수정이 되자마자 여성의 몸에 흡수되기도 하고, 착상이 되기 전 수정란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월경 주기의 변화 없이 다음 생리가 시작되기 때문에 그 사이 혈액 검사를 통해 임신 사실을 확인하지 않는 한 본인도 모른 채 지나갈 수밖에 없다.
▼ 유산율이 왜 이렇게 높은 건가요.
“전문가들은 임신 초기 자연유산의 원인은 대부분 태아의 염색체 이상이라고 말합니다. 염색체에 이상이 있는 태아는 자궁 내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자연적으로 사망한다는 거지요. 달리 말하면, 아주 촘촘한 체를 가진 조물주가 건강하지 못한 아기를 걸러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수정률이 낮은 것도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수정이 안 됐을 때, 혹은 유산이 됐을 때는 좌절할 게 아니라 건강한 아이를 갖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게 옳습니다.”
박 교수가 말하는 ‘준비’는 건강 관리다. 그는 “요즘 사람들은 임신이 좀 어렵다 싶으면 바로 병원을 찾는데, 임신을 위해 할 일은 불임클리닉에 가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임신의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