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 8월 ‘서울신문’이 여배우의 얼굴과 몸매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놓고 문화계 인사들에게 질문을 던지자 시인 김수영이 한 말이다. 여배우를 중심으로 한 영화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작가 손소희는 “여배우의 이미지는 얼굴에 집약된다”며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김지미, 문희를 예로 들었다. “영화에는 클로즈업이 있어 여배우의 얼굴 하나만으로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무용가 임성남과 화가 천경자는 “한국의 여배우들은 얼굴만 매만질 줄 알지 몸매를 위한 노력은 등한시한다”며 이제는 몸매의 밸런스를 유지하지 않으면 볼품이 없게 된다고 혀를 찼다. 극작가 이용찬의 대답은 의미심장했다. 그는 “뒷모습에서 여배우의 진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배우가 자기 역할을 잘 소화해서 표현하면 뒷모습에서조차 아름다움이 느껴진다는 말이었다. 극작가다운 대답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뒷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는 누구였을까. 좀 더 구체적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는 누구였을까.
나는 이 질문에 단 한 명의 여배우를 떠올린다. 그녀는 첫눈에 관객의 눈을 확 잡아당길 만큼 아름다운 얼굴은 아니다. 그저 곱게 생긴 정도다. 그렇다고 몸매가 아름다운가. 그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뒷모습을 노출했을 때, 입이 험한 사람들은 “저런 몸매로 옷을 벗는 것은…”이라며 비웃었다.
배우가 역을 잘 소화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영화 속에서 걷는 모습을 보면 된다. 주인공의 감정을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보여주지 않아도, 그저 뒷모습만으로 그 이상의 감정을 표현하는 배우가 있다. 그녀는 당대의 어떤 여배우도 보여 주지 못한 감정의 깊이를 걸어가는 뒷모습만으로 보여줬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배역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표현한 여배우”라는 극찬이 따라 다니는 사람. 바로 문정숙(1927~2000)이다.
1958년 초여름. 제1한강교를 건너 영등포를 지나 먼지를 날리며 신작로를 달리는 승용차가 있다. 새로 개장한, ‘한국 최초의 현대식 영화촬영소’라고 자랑하던 안양촬영소에서 찍는 영화 ‘생명’(이강천 감독)을 취재하러 가는 기자들이 타고 있었다. 촬영소 세트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소방차 2대와 촬영소 주변 마을 사람들이 엑스트라로 출연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뒷모습만으로 보여준 감정
드디어 촬영 개시. 건물에 불이 활활 타오르자 촬영 현장에서 10여 m 떨어진 안전한 곳에 있는데도 기자들의 얼굴은 확확 달아올랐다. 그때, 불이 활활 타는 건물에서 한 여인이 뛰쳐나온다. 그녀는 불이 몸을 휘감고 치맛자락에 옮겨 붙으려는 찰나까지 버티다가 건물 밖으로 나온다. 그녀의 연기를 본 순간, 기자들은 감탄한다. 컷 사인이 떨어지자 기자들은 그녀를 인터뷰하기 위해 달려간다. 불길 속에서 매캐한 연기를 들이마셔 불 때문에 목이 쉰 여배우는 연신 기침을 하면서도 “촬영장에만 오면 일할 맛이 난다”며 방긋 웃는다. 문정숙은 그런 배우였다.
1959년 김소동 감독의 신작 ‘오 내 고향이여!’는 아시아 영화제 출품작으로 선정됐지만, 문교부의 개입으로 최종 탈락한다. 그 자리를 ‘종각’(양주남 감독, 1958)이 대신한다. 문교부는 ‘종각’이 동양적 사상과 아름다움을 표현한 영화라서 추천한다고 둘러댔다. 사실 ‘종각’은 인간의 고통과 회한을 진지하게 다루려는 제작자와 감독이 의기투합해 만든 꽤 괜찮은 영화였으나 문교부의 횡포 때문에 이미지를 구겼다.
심사위원들과 제작자협회는 문교부의 선정을 못 받아들이겠다면서 ‘종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문교부 측 자문위원이던 문학평론가 백철은 ‘종각’의 장점을 조목조목 제시한 글을 ‘경향신문’에 발표해 문교부를 옹호하고 나섰다. 이 글에 대한 반박도 이어졌다. 갑론을박 끝에 결국 두 작품 모두 아시아 영화제 출품 후보작에서 제외됐다. 문교부와 제작자협회가 벌인 싸움 때문에 괜찮은 영화 두 편이 다 피해를 본 것이다.
영화 ‘종각’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는 주연 여배우 문정숙이 있었다. 문정숙은 이 영화에서 1인 3역을 하며 열연을 펼쳤다. 그런데 이 영화를 아시아 영화제 출품작으로 추천한 쪽도, 낙선을 주장한 쪽도 자기들 주장의 근거로 문정숙의 연기를 내세웠다.
종을 만드는 종쟁이 허장강이 일생 동안 만난 세 여인이 있다. 늙은 허장강과 한 지붕 밑에서 사는 젊은 처녀, 젊은 시절 허장강이 종쟁이가 되겠다고 결심하도록 만든 첫사랑, 허장강이 종쟁이가 되어 전국을 떠돌다가 우연히 만나 같이 살게 된 여인. 문정숙은 이 세 여인을 모두 연기했다.
‘종각’을 비판한 영화인들은 문정숙이 연기한 세 여인의 캐릭터가 비슷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문정숙이 머리를 빗어 넘긴 모양새가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종각’ 옹호파는 영화의 내용상 너무나 닮은 여자 세 명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연출 면에서 꼭 필요한 장면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