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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진실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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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진실

두 도시 이야기<br>찰스 디킨스, 이은정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대양(大洋)의 나들목인 해협을 사이에 둔 두 나라의 역사는 가까운 만큼 서로 치열하고, 치열한 만큼 위협적인 양상을 보여왔다. 이런 긴장 관계는 두 나라의 상이한 민족성과 공간성으로부터 첨예하게 갈라지는데, 19세기 산업혁명의 총아인 런던과 19세기 세계 예술의 수도 파리는 여러모로 비교 대상이 되어왔다.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는 런던과 파리를 소설의 무대로 호명하고, 프랑스 혁명기를 시간적인 배경으로, 거시사의 그물에 잡히지 않는 미시적인 민중의 삶을 촘촘히 복원함으로써 역사의 파수꾼임을 자처한다. 1859년에 출간된 ‘두 도시 이야기’가 그것이다. 우선 런던.

11월의 어느 금요일 밤, 이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첫 번째 인물 앞에 도버대로가 펼쳐져 있었다. (…) 움푹 꺼진 땅마다 증기 같은 안개가 서려 있었다. 안개는 안식할 곳을 찾지 못한 악한 영혼처럼 쓸쓸하게 언덕을 배회했다. 축축하고 몹시 차가운 안개는 바다의 불길한 파도처럼 대기 중에서 잔물결을 지어 서서히 움직이다 다른 증기들과 뒤섞인다. 안개가 워낙 짙어 마차의 불빛이 비추는 거라고는 이런 안개의 움직임과 몇 야드의 앞길뿐이었다.

소설 초반부의 이 짧은 묘사는 북대서양의 섬나라 수도 런던의 지리적인 특성에서 기인하는 안개와 해협 특유의 불안정한 파고(波高), 그리고 산업혁명(1830)의 시발지인 리버풀에서 런던을 잇는 대륙횡단열차가 뿜어내는 기관차의 증기 이미지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 다음은 파리.

떨어져 깨진 커다란 포도주통이 거리에 나뒹굴었다. 수레에서 술통을 내리다 사달이 난 것이었다. 떨어진 포도주통이 떼굴떼굴 구르면서 통을 묶은 고리가 터지고 술집 문 앞 돌멩이에 부딪쳐 호두껍데기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 쏟아진 적포도주는 파리 생탕투안 교외의 좁은 거리를 붉게 물들였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손과 얼굴, 헐벗은 발과 나막신까지도 물들였다. (…) 멀대같이 키가 큰 익살꾼은 포도주가 스며든 진흙을 손가락에 묻혀 벽에 낙서를 했다. 피.

런던과 파리 넘나들기



역시 소설 초반부의 파리에 대한 묘사는 파리와 프랑스적인 특징을 몇 개의 의미심장한 단어(기호)로 잘 드러내고 있다. 우선 포도주를 상음하는 민족답게 파리라는 공간과 프랑스인(마네트 박사와 그 딸, 그 딸의 남편인 다네이 등)이 등장할 때면 반드시 포도주가 함께한다. 그리고 시민의 힘으로 폭정의 전제 군주와 귀족 계급을 타파한 프랑스혁명을 향해 치닫는 공간적 배경으로 생탕투안(Saint-Antoine) 거리가 배치된 점이다. 생탕투안 거리는 당시엔 파리 외곽으로 바스티유 감옥과 지척에 있었다. 현재 바스티유는 신오페라극장으로 탈바꿈했고, 그 앞 광장엔 혁명을 기리는 탑이 세워져 탑신 끝 자유의 여신이 창공을 향해 황금빛 날개를 펼치고 있다.

장작 따위를 재어놓으려고 만든 다락은 어두침침했다. 지붕창은 사실상 지붕에 낸 문이었고, 거리에서 물건을 매달아 끌어올리는 작은 크레인이 달려 있었다. 게다가 프랑스 건축물의 여느 문처럼 유리도 없이 두 쪽으로 나누어져 가운데에서 접히게 되어 있었다. (…) 문에서 등을 돌린 채, 술집 주인이 서서 바라보는 창문 쪽으로 얼굴을 향한 백발노인이 낮은 걸상에 앉아 허리를 구부리고 바쁘게 구두를 짓고 있었다.

이 대목은 생탕투안의 드파르주 술집 옆 골목에 있는 다락방 어둠 속에서 구두를 짓고 있는 백발의 사내를 처음 등장시키는 대목이다. 영화의 카메라 기법처럼 전체에서 부분으로 초점화하는 서술이 전개되고 있다.

소설의 주요 인물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은 이 소설을 작동시키는 몇몇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마네트 박사다. 이 장면에는 마네트 박사와 그를 찾아간 술집 주인 드파르주 외에 두 명이 문간에 서 있다. 런던 텔슨 은행원 자르비스 로리와 갓 낳았을 때 헤어지고 망각된 마네트 박사의 딸 루시가 그들이다. 마네트 박사는 보베 출신의 전직 의사다. 자기도 모르는 아주 사소한 일에 연루되어 18년 동안 생탕투안 옆 감옥에 갇혀 있었다. 로리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런던으로 옮겨왔으나, 정신적인 외상을 깊게 입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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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임 │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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