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파르주 부인의 뜨개질
드파르주는 마네트의 옛 하인으로 생탕투안의 술집 주인이다. 감옥 같은 다락방을 찾아와 말을 거는 유일한 방문자였다. 그는 로리와 딸 루시에게 마네트 박사를 인도하고, 훗날 ‘자크(자크리의 난을 지칭해 익명의 민중을 일컬음)들을 모아 바스티유 감옥 습격의 선봉장이 된다. 루시는 마네트 박사가 감옥에 갇힐 무렵 태어난 딸이다. 마네트 부인은 어린 딸을 남기고 일찍 눈을 감으면서 아버지가 죽은 것으로 유언해서 딸은 아버지가 죽고 없는 것으로 알고 성장했다. 로리와 함께 파리로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런던으로 와 극진하게 간호한다.
독신인 로리는 런던의 텔슨 은행원으로 마네트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무적인 직원의 역할이나, 마네트 부녀의 삶에 깊이 연루되면서 신뢰와 애정으로 그들과 함께한다. 로리는 900여 쪽에 달하는 장대한 서사 흐름에서 이들 부녀 삶의 증인으로서 방향타 구실을 하는가 하면 균형추 구실을 하기도 한다.
박사의 딸은 (…) 보잘것없는 걸로도 그럴듯한 것을 만들어내는 데 천부적인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 점은 프랑스인의 가장 유용하고 훌륭한 특징이었다. (…) 세 번째 방은 박사의 침실이었다. 침실 귀퉁이에는 파리 생탕투안의 선술집 옆 음침한 건물 오층 다락에서 가져온 사용하지 않은 구두공의 걸상과 연장통이 놓여 있었다. (…) 로리 씨가 둘러보다 말고 말했다. “고통스러운 과거가 떠오를 텐데, 이런 물건을 그대로 두다니!”
다네이는 마네트 부녀와 로리가 도버해협을 건너는 배 안에서 처음 만난 청년이다. 프랑스 귀족의 삶에 혐오를 느껴 런던으로 떠나 가명으로 살며 프랑스 정세에 밝은 고급 프랑스어 교사이자 번역자와 통역자로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마네트처럼 자유의지로 조국 프랑스를 떠나 런던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다네이라는 존재는 ‘아버지와 딸의 극적인 상봉과 그 후의 삶’의 전개에서 파국을 견인하는 문제적 인물이다. 마네트 부녀는 처음 도버해협을 건너는 배에서 우연히 만난 이후 결혼에 이르는 과정까지 다네이에게 깃들어 있는 생의 비밀을 모른다. 다네이는 프랑스에서의 샤를 돌네(곧 찰스 다네이), 다름 아닌 마네트 박사의 삶을 송두리째 뽑아버린 악명 높은 에브레몽드 후작의 조카, 후작의 상속자였다. 이런 관계 설정은 서사 후반의 파국을 예비한 것이다.
“찰스, 내 딸을 어서 데려가게! 이젠 자네 사람이야!” 루시는 마차에 올라 손을 흔들며 차창으로 작별인사를 했다. 이윽고 마차가 떠났다. (…) 로리 씨는 박사의 방으로 걸어가다가 무엇인가를 두드리는 낮은 소리가 들려오자 걸음을 멈추었다. “맙소사!” 그는 놀라서 중얼거렸다. (…) 그때 미스 프로스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 이런, 세상에!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었어!” 그녀가 맞잡은 두 손을 비틀어대며 말했다. “아가씨에게 뭐라고 하지? 박사님이 나를 몰라보고 구두를 지으시네.”
‘두 도시 이야기’는 마네트 부녀와 로리, 하녀 미스 프로스, 라이벌 관계인 다네이와 카턴, ‘자크’로 지칭되는 프랑스 민중의 선봉장인 술집주인 드파르주와 그 아내의 이야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찰스 디킨스는 행위 위주로 사건과 인물의 심리를 전달하는 서사 기법을 고안해 구사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장면마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해서 900여 쪽에 달하는 장편이 단숨에 읽힌다.
또한 인물의 성격과 소임을 파악하도록 배치한 사물과 행위가 인상적이다. 마네트 박사의 불행한 과거이자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구두 짓기, 그리고 드파르주 부인의 한결같은 뜨개질이 그것이다. 드파르주 부인은 술집 귀퉁이에서도 거리에서도 광장에서도 뜨개질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뜨개질은 혁명의 물결에 합류하고 휩쓸리는 수많은 익명의 이름들과 행적을 뜨개질 바늘로 촘촘히 짜고 증언하는 수단이다.
오후에 왕과 여왕의 마차를 구경하려고 인파 속에서 기다릴 때에도 뜨게감을 손에서 놓지 않는 부인을 보고 있자니 더욱 마음이 뒤숭숭했다. “무엇을 뜨십니까, 부인?” “여러 가지요.” “예를 들면.” “예를 들면,” 드파르주 부인이 침착하게 말했다. “수의 같은 거요.”
소설적 진실의 깊은 여운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 런던을 무대로 한 대표적인 소설들이라면,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플로베르의 ‘감정교육’,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파리 탐구서라고 할 정도로 소설 속에 세밀하게 살아 있다. 그러나 이 두 공간을 넘나들며 비교를 통해 차이를 명료하게 각인시키는 소설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
소설가는 역사적인 사실을 취사선택해 자신의 작품 의도에 맞게 우선순위와 강약을 조절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깡그리 배제하고 누락된 이면의 속살을 들추어 보인다. 프랑스혁명을 이야기할 때 거론되는 대문자의 고유명들이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서민의 삶을 바닥에서 온몸으로 체현한 소설가 찰스 디킨스만의 특징이다.
역사적 사실과 대비된 소설적 진실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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