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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선녀 스토리 비틀기 남녀 간 역학관계 변화 반영

‘말레피센트’와 ‘겨울왕국’

선남선녀 스토리 비틀기 남녀 간 역학관계 변화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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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왕자 안 통해

말레피센트는 디아발을 인간 사회에 보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게 한다. 스테판이 결국 왕이 됐고 딸 오로라 공주를 얻었음을 알게 된다. 오로라 공주의 탄생 축하 잔치에 초대받지 않은 채로 나타난 말레피센트는 “오로라 공주가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소녀로 자라지만 열여섯 살이 되는 날 물레의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깊은 잠에 빠지게 되고 오직 순수한 사랑의 키스만이 그녀를 깨어나게 하리라”는 저주를 내린다.

죄책감과 공포에 떤 스테판 왕은 왕국 안에 있는 모든 물레를 한데 모아 불태워버린다. 숲의 세 요정에게 오로라 공주를 멀리 데려가 양육할 것을 지시하는 한편 말레피센트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오로라 공주를 외딴 오두막에 데려간 세 요정은 양육과 보호에 도통 소질이 없었다. 디아발을 통해 그 뒤를 밟은 말레피센트가 오히려 오로라 공주를 멀리서 바라보면서 보호해준다. 세월이 흘러 열여섯 살에 가까워진 오로라 공주(엘르 패닝)는 말레피센트와 만나 그녀를 자신의 수호 요정으로 여긴다. 오로라 공주의 성장을 먼발치서 지켜보아온 말레피센트도 어느덧 그녀에게 모성애를 느낀다.

오로라 공주의 열여섯 살 생일이 눈앞에 다가오자 말레피센트는 자기가 내린 저주를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모든 노력이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된다. 오로라 공주는 스테판 왕에게 돌아가는데 스테판 왕은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유폐시킨다. 결국 오로라 공주는 왕궁의 지하 창고에서 타다 남은 물레의 바늘에 찔려 깊은 잠에 빠진다.



원작에선 왕자가 앞을 막는 용을 격퇴하고 오로라 공주에게 키스하자 공주는 잠에서 깨어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선 왕자의 키스가 효력이 없다. 오히려 말레피센트의 키스로 인해 오로라 공주는 깨어난다. 말레피센트는 공주를 데리고 왕궁에서 빠져나가려 한다. 스테판 왕은 이들을 막는다.

영화는 이야기의 원형을 그대로 따라가지만 등장인물들의 선악 구도를 바꿔놓았다. 이런 각색상의 변화는 수동적으로 구원을 기다리는 공주, 저주를 퍼붓는 마녀 같은 부정적인 여성 이미지를 지워버린다. 아울러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보여준 남녀 간 사랑을 문제시한다.

‘겨울왕국’의 경우, 엘사 여왕의 대관식에 참석한 이웃나라 왕자 한스는 전통적인 이야기 방식대로라면 엘사를 구하고 동생인 안나와 결혼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스는 엘사와 안나를 제거하고 왕위를 찬탈하려는 악당으로 그려진다.

여성과 여성의 유대

‘말레피센트’의 스테판 왕도 어린 시절엔 말레피센트와 순수한 사랑을 나누는 남성으로 그려지지만 어른이 된 후엔 권력에 눈이 먼 탐욕스러운 인물로 변질된다. 오로라 공주에게 첫 키스를 하는 왕자도 말레피센트, 디아발, 세 요정에게 끌려 다니는 어리석은 인물로 그려진다.

‘겨울왕국’과‘말레피센트’는 남녀 간 사랑에 의구심을 드러내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동성 간 유대관계를 제시한다. 남성이 아닌 여성이 상황을 주도하고 이런 여성을 남성이 보조한다는 점도 두 영화의 공통점이다. ‘겨울왕국’에서 얼음장수 크리스토프는 안나를 도와 엘사가 머무는 눈 덮인 산으로 간다. ‘말레피센트’에서 충성스러운 하인 디아발은 크리스토프와 비슷한 역할을 맡는다. 이렇게 두 영화에선 성 역할과 남녀 간의 역학관계가 바뀐다. 이 변화는 우연적으로 찾아온 것이 아닐 것이다.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봐야 한다.

유럽 동화들은 19세기 이전 신분제 사회에 삶을 산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때문에 동화 속 여주인공인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백설공주, 오로라 공주는 남성에 의해서만 구원받는 수동적 인물로 그려졌다. 혹은 인어공주처럼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려다 좌절하는 인물로 형상화된다.

그런데 이런 여성상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21세기 현대사회의 여성상과 맞지 않게 됐다. 1930~1980년대 디즈니가 만든 애니메이션은 그나마 유럽 동화의 성 역할 설정을 충실하게 따랐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여성은 더 이상 남성에 의해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다. 남성과의 사랑만을 절대적으로 추구하지도 않는다. 상당수 여성은 웬만한 남성보다 오히려 우월하고, 다른 여성과의 연대에서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한다.

선남선녀 스토리 비틀기 남녀 간 역학관계 변화 반영
노광우

1969년 서울 출생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박사(영화학)

고려대 정보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 ‘Dark side of mod-ernization’ 외


현대사회의 관객은 이런 여성상이 영화에도 투영되기를 원한다. 심지어 애니메이션 영화에도 말이다. 미국인들이 ‘겨울왕국’과 ‘말레피센트’에 열광하는 이유다. 이들 영화가 미국을 넘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끄는 현상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남녀관계도 미국처럼 돼간다는 증거인지 모른다.

신동아 201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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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광우 │영화 칼럼니스트 nkw88@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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