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호

세계유산도시를 걷다

화산이 만들어낸 ‘백색 도시’

페루 아레키파

  • 글·사진 조인숙 | 건축사사무소 다리건축 대표 choinsouk@naver.com

    입력2016-01-22 10:26:4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페루 남부의 고원 도시 아레키파를 세운 것은 스페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페루의 그 어떤 곳보다도 토착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고,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할 만큼 문화의 힘이 강하다. 화산 용암이 흐른 흔적이 남은 백색의 유문암으로 거의 모든 건축물을 지었기에 햇살 아래 아레키파는 언제나 하얗게 반짝인다.
    지난해 11월 세계유산도시기구(Organization of World Heritage Cities) 제13차 세계대회 참석차 페루 아레키파(Arequipa)를 찾아가는 것은 정말 긴 여정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한국에 많이 알려진 도시라서 놀랐다. 아레키파는 이번 총회 개최를 계기로 제14차 세계대회를 유치한 경주와 자매결연을 했다.   
    남부 고원지대에 있는 아레키파 주(Province of Arequipa)의 주도인 아레키파는 1540년 스페인 사람들이 건설했다. 페루에서 수도 리마(Lima)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인구는 87만 명 정도로 경기 용인시(86만 명)와 비슷하다.
    아레키파는 해발고도 2300m가 넘는 고산에 위치했는데, 3개의 화산-미스티(Misti·5822m), 픽추픽추(Pikchu Pikchu·5669m), 차차니(Chachani·6075m)-이 만들어내는 도시 풍경이 압권이다. 문화적으로는 메스티소(mestizo, 토착과 스페인의 혼혈 문화)로 대변되는 여타 페루 도시들과 달리 토착적 성격이 강해 ‘토착이라는 바다에 떠 있는 스페인 섬’이란 별칭으로 불린다. “문학은 불꽃이다”라고 한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1936~ )가 이곳 출신이고, 지난 12월에는 세계적인 문학축제인 헤이 페스티벌(Hay Festival)이 이 도시에서 열렸다. 아레키파는 정부의 중앙집권화에 맞서 지역주의 선봉에 나서 ‘무장도시’라고도 불린다.
    ‘아레키파’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그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이렇다. 4대 통치자 메이타 카팍(Mayta Cápac·재위 1290~1320년)이 신하들과 함께 칠리(Chili)강 계곡에 도달했을 때 신하들이 자연 풍광이 아름답고 기후가 온화한 이곳에 머물게 해달라고 청원하자 ‘그러시오, 머무르시오(Yes, Stay)’라는 의미의 케추아어(Quechua) “아리 퀴페이(Ari qhipay)”라고 한 말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신하들이 첫눈에 매료된 지역은 지금의 산 라자로(San Lazaro) 주거 지역이라고 한다.


    ‘토착’이라는 바다에 뜬 스페인 섬

    아레키파 역사지구(Historical Centre of the City of Arequipa)는 뛰어난 보편적 가치 판단 평가기준 중 (i)과 (iv)를 충족시킨 것으로 인정받아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장식이 풍부한 아레키파 역사지구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전 지역의 문화적 표현으로서 무척 중요한 유럽건축과 토착건축의 창조적 융합의 걸출함을 나타낸다”고 판단돼 기준 (i) ‘인간의 창조적 천재성이 만들어낸 걸작을 대표해야 한다’를 충족했고, “자연조건과 토착민의 영향, 정복과 기독교화의 과정뿐만 아니라 웅대한 자연까지 극복한 식민지 정주(定住)의 뛰어난 예”라고 판단돼 기준 (iv) ‘인류 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예증하는 건조물의 유형, 건축적 또는 기술적 총체, 경관의 탁월한 사례여야 한다’를 만족시켰다. 등재면적은 약 167ha다.
    이 역사지구는 마치 뉴욕 맨해튼처럼 격자형의 도로망으로 돼 있다. 5800여 채의 건축물 중 건축유산으로 인정된 500채 건물이 산재한다. 이 중 250채 이상이 보호 대상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이곳은 나무가 귀하기 때문에 건축물은 석재를 방형으로 다듬은 두꺼운 석재 조적벽과 궁륭 천장으로 구성된다. 초기 식민지 시대의 건축물은 대부분 1868년 대지진으로 폐허가 됐고, 19세기에 재건한 건축물들이 현존한다. 건축물 대부분이 실리아(Shilla)라고 하는 화산암인 유문암(流紋岩)으로 만들어졌기에 도시가 온통 하얗게 보여 ‘백색 도시’란 별칭도 있고, 돌 건축물이 하도 많아 ‘아메리카의 로마’라고도 불린다.
    역사도시의 중심은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 한 블록 전체가 녹지이며, 아치 회랑, 시청, 대성당이 이 광장을 에워싼다. 역사지구 내 종교 건축유산으로는 14개의 성당 및 사원, 4개의 예배당, 5개의 수녀원, 3개의 수도원이 있다. 그 중에 건축적 백미로는 단연 바실리카 성당(대성당)과 예수회 콤파냐 성당, 산타 카탈리나 수녀원을 꼽을 수 있다.

    바실리카 성당
    Basílica Catedral de Arequipa



    아르마스 광장 북쪽에 위치하며 시청을 마주 본다. 우뚝 솟은 쌍둥이 종탑과 신고전주의 파사드는 이 성당이 페루에서 가장 중요한 유럽식 신고전주의 건축물임을 보여주기에 손색없다. 현 건물은 1844년 대화재 이후 재건축된 것이다. 이 성당은 지진 피해를 여러 번 입었는데, 특히 1868년과 2001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어 지속적으로 복구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그럼으로써 현 건축물이 더욱 빛나게 됐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파란만장한 역사를 살펴보자면 이렇다. 1540년 도시가 시작됐을 때 교회터가 십자가로 표시된 후 1544년 성당 건축이 시작됐고, 16세기 말 지진으로 파괴된 것을 복구했으나 17세기 초 화산 용암 분출과 지진으로 완전히 파괴된다. 17, 18세기 여러 번의 지진으로 거듭 망가지다가 1844년에 대화재가 발생한다. 19세기 중엽 건축가 루카스 포블레테의 설계로 재건축되며 1854년 영국 시계와 벨지움 오르간, 목조로 된 열두 제자상이 설치된다. 19세기 말에는 프랑스 출신 조각가 뷔지느-리고의 작품 ‘날개 달린 악마(winged Devil)’가 받치고 있는 목재 설교단이 아레키파 출신 부자의 부인이 기증해 설치됐다. 이 설교단은 성령의 말씀으로 악마를 누른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1868년 지진으로 상당 부분 파괴됐는데, 당시 대주교 고예네체 가문의 도움으로 복구가 진행된다. 198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해 교황청 깃발이 걸린 세계 100대 성당 중 하나가 됐다. 2001년 지진으로 좌측 종탑이 무너지고 우측 종탑도 손상됐다. 2002년 보수를 종료했지만, 현재도 부분적으로 복구 중이다. 2011년에는 대성당 박물관을 개관했다.
    이런 과정을 겪다보니 하나의 건축물 안에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경험주의, 그리고 모던주의까지 혼재돼 있다. 성당 꼭대기에서는 도시를 둘러볼 수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