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호

나이지리아 부부가 아기 이름 ‘세종’으로 지은 이유

[마마&파파 만드는 이경호의 버스토리(birth+story)] 국가브랜드 홍보보다 확실한 국위선양

  • 이경호 마마파파&베이비산부인과의원 원장

    입력2026-03-13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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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호 마마파파&베이비산부인과의원 원장은 “외국인 난임 부부의 아이를 갖고 싶은 간절함은 내국인과 다르지 않기에 시술 비용에도 차등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Gettyimage

    이경호 마마파파&베이비산부인과의원 원장은 “외국인 난임 부부의 아이를 갖고 싶은 간절함은 내국인과 다르지 않기에 시술 비용에도 차등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Gettyimage

    “원장님, 아기 이름을 ‘세종’이라고 지었어요.”

    “세종이요? 세종대왕의 세종이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10여 년 전, 필자에게 시험관아기시술(이하 IVF)을 받고 아들을 낳은 나이지리아 부부의 이야기다. 한국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아기의 이름으로,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임금의 묘호를 쓴 것이 놀라움을 넘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자아냈다. 

    당시 나이지리아 부부는 현대중공업의 선박 건조 프로젝트에 투입돼 파견 근무지인 울산에 머물렀다. 대형 선박은 설계부터 건조, 시운전에 이르기까지 수년이 걸린다. 배 한 척을 완성하려면 적어도 2~3년은 울산에서 생활해야 했다. 장기 체류가 예정된 상황에서 그들은 한국에서 아이를 갖기로 마음을 정했다. IVF 시술은 예상보다 순조로웠고, 한두 차례 만에 임신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필자는 이들 부부가 보낸 돌잔치 초대장을 받았다. 어찌나 간곡하게 참석을 종용하던지, 거절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출산은 마을 전체의 경사 

    처음으로 내 시술로 태어난 아기의 돌잔치를 보러 갔다. 돌잔치니까 현대중공업 사택 단지 내 어느 공간에서 조용히 열릴 것이라 짐작했지만, 문을 여는 순간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연회장처럼 꾸민 공간에 쉰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사람이 이미 가득 모여 있었다. 까만 피부의 아기는 눈빛이 유난히 초롱초롱했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 아기의 이름을 듣는 순간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한국 이름을 지은 것도 놀라웠지만, ‘세종’이라는 위대한 임금의 이름이 그 이상의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은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을 사사로운 일이 아닌 마을 전체의 경사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새 생명의 탄생 자체를 한 가정의 기쁨을 넘어, 부족과 공동체의 미래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는 이름을 지을 때 아기가 태어난 날의 날씨, 그날 마을에 있었던 사건, 공동체의 역사와 메시지, 아이에게 기대하는 역할까지 이름에 함께 담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부부가 아기의 이름을 ‘세종’이라고 지은 것은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잔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더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 마을 잔치에서 울려 퍼질 법한 음악이 흐르자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 어깨를 잡고 줄을 지어 원을 만들더니,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아기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축복이라는 듯, 사람들이 돌아가며 원 한가운데로 나와 춤을 췄다. 지금까지 수많은 출산과 돌잔치를 봐왔지만, 그날만큼 환영받은 탄생은 없었다. 난임 의사로서 그토록 열광에 마지않는 새 생명의 잉태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깊은 뿌듯함으로 남았다.

    이 장면을 떠올리다 보니, 필자의 기억 속에 또 다른 한 쌍의 외국인 부부가 스쳐갔다. 스리랑카에서 온 부부였다. 본국에서 남편은 기자였고, 아내는 학교 교사였지만 인생의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생계를 위해 한국으로 건너왔다. 당시는 최저임금·최저시급제가 시행되기 전이었고,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이 100만 원 남짓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렇게 석 달을 꼬박 일해 모은 300만 원을 들고 병원 문을 두드렸다. 그들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의 눈빛엔 복잡한 사정과 가정 형편을 모두 접어둔 채 오직 아이를 갖고 싶은 간절함만 담겨 있었다.

    외국인에게 차등 없는 원칙 적용하는 이유 

    IVF를 하기 위해 검사해 보니 스리랑카 여성에게는 자궁근종이 있었다. 난소기능 저하가 심해 과배란 유도로도 난자가 두 개밖에 자라지 않는 상황이었다. 여러모로 좋지 않은 조건이었음에도 IVF 한 번 만에 임신에 성공했고, 부부는 본국으로 돌아갔다. 2년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필자에게 국제우편 하나가 도착했다. 스리랑카 부부가 보낸 감사 편지였다. 

    손 글씨로 또박또박 쓴 편지와 함께 돌잔치 사진도 있었다.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은 스리랑카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고, 이상하게도 모두 맨발이었다. 처음에는 ‘가난한 나라라서 신발을 신지 못하는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스리랑카에서는 맨발이 경건함의 상징이었다. 스리랑카에서는 사원에 들어갈 때 반드시 맨발이어야 한다. 돌잔치도 아이의 무병장수와 조상의 보살핌을 기리는 자리이기에 몸을 최대한 자연 상태로 둔다는 의미에서 맨발로 참석하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필자는 매일 난자 채취와 배아 이식을 하지만, 이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생명 잉태에 대한 본질을 잠시 잊고 지낼 때가 있다. 이런 와중에 만나는 외국인 환자들, 그들이 보내온 돌잔치 사진은 생명의 소중함과 가치, 난임의사로서 본분을 새삼 일깨운다. 

    이쯤에서 필자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한국의 난임병원 상당수는 외국인 환자에게 국내 환자보다 적게는 두 배, 많게는 그 이상의 비용을 받는다. 외국인에게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을뿐더러 비용 책정은 병원 재량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명분 아래 외국인에게 청구되는 IVF 비용은 사실상 상한선 없이 결정된다. 그래서 병원마다 제시하는 시술비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전 세계에서 IVF 비용이 가장 높은 나라로 미국이 첫손에 꼽힌다. 1회 사이클 기준으로 1200만~1800만 원, 약제비까지 포함하면 2000만~3000만 원에 달한다. 여기에 미세수정이나 배아 동결, 유전자 검사까지 더하면 3000만~4000만 원을 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부분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IVF가 무료’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역시 절반만 맞는 얘기다. 영국, 프랑스, 독일, 북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공공의료 체계 안에서 비용을 지원하지만 연령, 시도 횟수, 관계 요건, 건강 상태 같은 엄격한 조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하나라도 어긋나면 즉시 IVF 비용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며 그 액수가 만만치 않다.

    그래서 필자는 외국인 대상 IVF에 분명한 원칙을 정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비용을 달리 받지 않는 것이다. 비보험 항목이므로 본인 부담이 100%이지만, 수가는 한국인 환자와 동일하게 적용한다. 돈보다 중요한 것을 위해서다.

    임신이 간절한 부부가 한국에서 생명을 부여받으면, 그들에게 한국은 끝끝내 잊지 못할 고마운 나라가 될 터다. 거창한 홍보 영상이나 국가브랜드 캠페인보다 대한민국을 자신의 집안에 대를 잇게 해준 나라, 한 생명의 출발점으로 기억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하고 현실적인 국위선양이 아닐까. 

    이경호
    ● 1966년 울산 출생
    ● 1990년 고려대 의대 졸업
    ● 1994~1998년 고려대 의대 구로병원 전공의
    ● 1999~2000년 제일병원 복강경수술 전문 펠로(fellow) 
    ● 2000~2003년 미즈메디병원 난임 전문의 
    ● 2003년~ 마마파파&베이비산부인과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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