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호

기술은 삶의 중심 아닌 가장자리에서 빛난다

[Special Report | AI 시대를 읽는 법] AI로 편리해진 삶, 감수해야 할 비용은 무엇인가

  • 변순용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입력2026-03-02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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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부터 밤까지 인간의 일상을 보살피는 AI

    • ‘AI화’와 ‘非AI화’, 이원화 현상은 동시에 발생

    • 편한 만큼 불편해지는 ‘불편한 진실’도 고민해야

    • AI와 공존하며 새로운 인간다움 찾는 노력 절실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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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침을 알린 건 알람 소리 아닌 빛

    새벽 6시 40분, 창가의 스마트 블라인드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먼저 눈을 뜬다. 요란한 알람 소리에 심장을 졸이며 깨어나던 예전과 다르다. 서서히 밝아지는 조명과 햇살이 나를 부드럽게 흔든다. 몸이 놀라지 않게 하루를 시작하는 이 사소한 배려가 노년의 아침을 얼마나 가볍게 만드는지!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는 밤새 나의 안부를 챙겼다. “깊은 수면 2시간 10분, 심박 변동 정상.” 젊은 시절엔 건강검진표의 숫자들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는데, 이제는 ‘어제와 다름없다’는 데이터 기록이 무엇보다 고마운 위로가 된다.

     #2 냉장고가 건넨 안부와 식탁 위 배려 

    부엌으로 향하면 인공지능(AI) 스피커가 오늘의 공기를 일러준다. “영하 7℃입니다. 외출하신다면 모자를 꼭 챙기세요.” 예전엔 신문이나 TV 뉴스를 기다려야 알 수 있던 정보가 이제는 내가 필요할 때 곁에 와 있다.



    식탁에 앉자마자 갓 내린 커피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어젯밤 캡슐을 넣어둔 건 나지만, 스마트워치와 연결된 머신이 기상 시각에 맞춰 가장 맛있는 온도로 추출을 마친 덕분이다. 냉장고 화면엔 ‘달걀 2개 남음’ 메모와 함께 주말에 놀러 올 손주를 위한 딸기 추천 목록이 떠 있다. 혈압약을 복용하는 나를 위해 나트륨 함량이 많은 반찬은 슬쩍 뒤로 밀어두는 영리함도 잊지 않는다.

    기계와 대화하는 게 처음엔 쑥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돋보기를 찾지 않아도, 복잡한 기능을 몰라도 말로 편하게 소통할 수 있다.

     #3 가족의 불안을 안심으로 바꾼 ‘연결’ 

    식후 약을 챙기는 일은 더는 숙제가 아니다. 약통이 스스로 입을 열어 복용 시간을 알려주고, 혹여 내가 깜빡하면 멀리 있는 아이들에게 알림 메시지를 보낸다. 예전엔 “약 드셨어요?”라는 자식들의 전화가 간섭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이제 아이들은 불안 대신 안심을 안고 자신의 하루를 시작한다.

    외출길, 증강현실(AR) 글라스는 내겐 제2의 눈이다. 흐릿한 표지판을 또렷이 키워주고, 낯선 외국어는 실시간으로 번역해 보여준다. 버스 번호 옆에 목적지가 함께 뜨니 “이 버스 어디 가요?”라고 물을 필요조차 없다. 심지어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보이스피싱 전화도 AI가 먼저 ‘위험’ 신호를 보내주니 세상이 더는 무섭지 않다.

     #4 기술이 감시 아닌 보살핌으로 여겨지는 밤 

    일을 마치고 귀가하면 집은 이미 훈훈하다. 내가 도착할 시각에 맞춰 난방과 조명을 조절해 둔 에너지 관리 AI 덕분이다. 문을 열 때 느껴지던 특유의 ‘빈집 기운’이 사라지니 노년의 쓸쓸함도 한 뼘 줄어든다. 로봇청소기가 닦아놓은 반짝이는 바닥을 보며, ‘내가 해야 했던 일’들이 ‘이미 끝나 있는 일’이 된 기분 좋은 해방감을 만끽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 AI 스피커가 조용히 묻는다. “오늘 하루는 어떠셨나요? 내일 비 소식이 있는데, 현관에 우산을 미리 준비해 둘까요?” 나는 짧게 대답한다. “응, 고마워.”

    커튼이 닫히고 집은 고요에 잠긴다. 혹자는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이 삭막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는 AI는 일상을 침범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내 삶의 가장자리에서 내가 놓칠지 모르는 사소한 것들을 조용히 붙잡아주는 ‘다정한 손길’에 가깝다. 기술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감시가 아닌 보살핌으로 느껴지는 밤, 나는 어느 때보다 평온한 꿈을 꾼다. 

    AI화-非AI화로 나누어질 일상, 교통정리될 것

    이러한 기분 좋은 상상은 먼 훗날의 이야기를 다루는 공상과학 영화 속 내용이 아니라 이제 곧 우리에게 다가올 현실이 될 것이다. 현대 기술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는 AI는 전문적 영역뿐만 아니라 일상적 삶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인 희망을 가져다주지만, 그와 같은 밝음 뒤엔 재앙의 어두움도 도사리고 있음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인다. 

    자율주행을 통한 자유로운 이동권 보장, AI 에이전트를 이용한 개인 비서 활용 가능성 등 긍정적 기대감을 한껏 높일 수 있는 이슈는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이다. 최근엔 AI 에이전트들이 사용자의 허락을 전제로 ‘몰트북(Maltbook)’이라는 커뮤니티를 구성해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거기서 인간들에 대한 수다를 떨고 게시 글을 작성하기도 한다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국내 온라인에서 AI만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인 ‘머슴(Mersoom)닷컴’. 머슴닷컴 홈페이지 캡처

    국내 온라인에서 AI만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인 ‘머슴(Mersoom)닷컴’. 머슴닷컴 홈페이지 캡처

    이와 유사하게 국내 온라인에서도 AI만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인 ‘머슴(Mersoom)닷컴’이 개설됐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올해 1월 개설된 한국어 AI 에이전트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다. 인간 밑에서 머슴처럼 일하는 AI 에이전트의 휴식 공간으로, 사람은 구경만 할 수 있다.

    AI가 개발자에게 자신을 오프시킬 경우 개발자의 불륜 사실을 알리는 e메일을 사람들에게 보내겠다는 협박을 했다는 기사도 이미 나온 적이 있다. 사용자의 정보에 근거해 자기 마음대로 문자를 보내거나 댓글을 다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우리는 편리함이 주는 새로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편한 만큼 되레 불편해지는 이 ‘불편한 진실’을 우리가 정말 감당해야 할까 하는 물음도 갖게 된다. 자동차가 주는 편안함을 위해 자동차 관리부터 세금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처럼. AI 덕분에 편안해지는 만큼 우리가 감수해야 할 부담이 무엇인지 생각해 내고, 이러한 부담을 우리가 정말 원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빛이 밝을수록 어둠은 깊다”라는 표현처럼 AI의 유용성과 편리성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를 알고 수용하는 것과 모르고 수용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클 것이다. 

    AI가 노동시장에 도입되면서 많은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 중 가장 공통적인 변화 양상은 바로 이원화다. 여기서 이원화란 노동시장에서 요구되는 노동의 질이 AI를 통해 제공되는 일반적 수준과 사람을 통해서만 제공될 수 있는 특수한 수준으로 나눠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AI 에이전트들이 사용자의 허락을 전제로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한 ‘몰트북’ 커뮤니티. 몰트북 홈페이지 캡처

    AI 에이전트들이 사용자의 허락을 전제로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한 ‘몰트북’ 커뮤니티. 몰트북 홈페이지 캡처

    예를 들어 통·번역 시장의 경우 이제는 해외에 나갈 때 누구나 스마트폰의 번역 AI를 돌리면서 의사소통하게 된다. 이런 일상적 통·번역은 AI가 대부분 대체해 주지만, 고급스러운 번역이나 뉘앙스의 차이가 아주 중요한 외교적 통역의 경우엔 AI가 수행할 수 없고 오직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AI는 도입되는 영역에서 전문가가 수행하던 일반적이거나 기초적인 일을 맡아서 하게 되지만, 좀 더 전문적인 그리고 인간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AI화’와 ‘非AI화’는 동시에 발생하게 된다. 유튜브에서 처음엔 AI 이미지나 AI 영상이 신기하게 여겨지며 업로드되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대다수 사람이 AI 이미지나 영상을 점점 식상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 시대 초입에선 모든 것이 AI에 의해 바뀔 것처럼 보여도 AI와의 허니문 기간이 어느 정도 끝나고 나면, 우리 일상에서 AI화와 비AI화로 나누어질 부분이 교통정리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따라서 AI가 가져다주는 편리함과 여유로움을 향유하면서도 그것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음을 이해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인간다움을 찾아 나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생활의 편리함 수용하며 감수할 비용도 따져봐야 

    신기술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차별적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이를 먼저 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연히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고, 이 때문에 기술 도입과 적용상 차이가 발생한다. 특히 시니어 계층은 대체로 기술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보다는 이를 거부하거나 현상 유지를 선호하기 마련이라는 편견이 존재한다. 이러한 편견은 부분적으로 사실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정보 격차)’ 문제가 발생했고, 이를 사회 포용성 차원에서 보완하기 위해 많은 교육비용이 투입되기도 했다. 인터넷 시대에 그랬고, AI 시대에도 어느 정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 빠름의 사회에서 느림이 갖는 미덕도 분명히 있다. 사회가 새로운 기술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변화하는 와중에도 느리게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기술이 가져올 수밖에 없는 부작용이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할 필요성과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오히려 기술의 빠름을 사회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느림으로 보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배려가 요청된다. 

    몇 년 전 아버지를 보내드리면서 유품을 정리하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우리의 시니어들이 겪어온 사회변화를 생각해 보면 그분들이 살아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런 난리 북새통에서도 가족을 이끌어왔다는 것만으로도 사회로부터 큰 훈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목숨이 오고 갔던 격동의 시대를 겪으면서 견뎌낸 삶의 지혜가 AI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살펴봐야 한다. 기술의 급격한 변화가 아무리 사회를 빠르게 변화시킨다 해도 이러한 빠름 속에서 오히려 시니어들의 차분한, 그러면서도 완만한 기술 적용과 응용의 지혜를 우리는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AI를 배우고 활용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편리함을 수용하면서도 우리가 감수해야 할 비용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AI와 공존하는 가운데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다움을 찾아나가려는 노력이 앞으로는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변순용
    ●1966년 출생
    ●서울대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윤리교육 석사
    ●독일 칼스루헤대학교 철학 박사
    ●서울교육대학교 평생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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