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호

글로벌 사우스, 韓 안보·국익 함께 잡을 전략 파트너

[송승종의 글로벌아이] 국제 무대 중심 떠오른 개발도상국들

  • 송승종 대전대 특임교수·국제분쟁 전문가

    입력2026-03-07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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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방 머물던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

    • 글로벌 사우스, 세계 인구 70%, 글로벌 경제 40% 담당

    • 핵심 광물과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전략적 중요성 급부상

    • 지금은 글로벌 노스와 사우스 연결하는 ‘창의적 외교’ 필요

    2025년 11월 22일(현지 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엑스포 센터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제1세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G20 조직위원회

    2025년 11월 22일(현지 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엑스포 센터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제1세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G20 조직위원회

    냉전 종식 이후 국제정치 무대의 변방에 머물렀던 개발도상국들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있는 신흥국·개발도상국)’란 이름으로 다시금 무대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때 ‘제3세계’로 불리며 선진국 그룹에 가려져 있던 이들 국가는 2020년대 들어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핵심 행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2022년 유엔 표결에서 중국·인도·남아공 등 35개국이 기권하고, 서방 제재에도 동참하지 않은 사건은 글로벌 사우스의 존재감을 일깨운 계기가 됐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세계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고, 글로벌 경제의 40%를 담당할 정도로 성장했다. 선진국 그룹인 G7의 글로벌 경제 비중이 70%에서 40%대로 떨어지는 동안 그 공백을 이들이 메워온 셈이다. 자원 무기화 시대에도 글로벌 사우스는 핵심 광물과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전략적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인구, 경제력, 자원을 바탕으로 주변부였던 글로벌 사우스가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의 주역으로 재조명되는 추세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중 전략 경쟁 심화로 공급망 재편되자 급부상

    21세기 들어 글로벌 사우스의 전략적 가치는 정치·경제·안보 전 영역에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란 개념 자체는 새롭지 않다. 과거 제3세계·남반구로 불리던 국가들의 공통 경험, 즉 식민 지배의 유산과 국제경제 질서의 구조적 불평등 등이 진화한 일종의 ‘메타 범주’이다. 이들은 미소 냉전기부터 비동맹운동 등을 통해 독자적 목소리를 키워왔으나, 오랫동안 국제정치의 주변부로 취급되었다. 

    그 지형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와 세계화의 균열 때문이다. 공급망 재편과 경제 안보가 국가 생존의 문제로 부상하면서, 핵심 광물·에너지·생산기지를 보유한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강대국들의 필수적 파트너로 격상되었다. 이에 따라 ‘글로벌 노스’와 ‘글로벌 이스트’ 모두가 앞다퉈 이들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구애 경쟁에 돌입했다. 

    일례로 중국은 과거 경계하던 ‘글로벌 사우스’라는 용어를 2023년부터 공식 수용하며 일대일로(一帶一路)와 글로벌 발전·안보·문명 구상을 통해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유럽연합(EU)은 ‘글로벌 게이트웨이’ 프로젝트로 2027년까지 3000억 유로 투자를 발표하며 절반을 아프리카에 할당했고, G7 정상들은 6000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지원 구상을 논의했다. 일본은 오랜 공적개발원조(ODA) 경험을 토대로 2023년 추가경정예산 약 8조 원을 편성해 인도 등 글로벌 사우스 지원을 확대하는 등 맞춤형 파트너십 구축에 나섰다. 과거 주변부로 치부되던 이들 국가군이 국제질서 재편의 전략적 핵심으로 부상한 것이다.



    글로벌 사우스는 단일 블록이 아니라 구조적 다양성의 스펙트럼으로 이해해야 한다.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등 100여 개국 이상을 느슨히 포괄하는 이 범주는 정치체제, 경제발전 단계, 문화권이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질성은 약점이 아니라, 식민 지배와 국제경제 질서의 불평등이라는 공통의 역사적 경험 위에 느슨히 연대하는 역동적 구조를 만들어낸다. 

    단일 정치 연합체 아닌 이해관계 네트워크

    중국·러시아처럼 반(反)서방 결속을 추구하는 세력이 있는가 하면, 인도와 브라질은 ‘반(反)서방’이 아닌 ‘비(非)서방’을 자처하며 실용적 다자외교에 주력한다. 사우디와 UAE는 안보에서 미국과 긴밀하면서도 경제에서는 BRICS+를 통해 중국과 손을 잡는 양면 전략을 구사한다. 따라서 글로벌 사우스는 단일한 정치 연합체라기보다, 국제 이슈별로 유동적으로 형성되는 이해관계 네트워크에 가깝다. 

    기후변화, 유엔 개혁, 개발 재원 확대 등 이해관계의 교집합이 큰 주제에서는 공동전선을 형성하지만, 안보나 무역처럼 입장이 갈리는 사안에서는 각자의 노선을 걷는다. 이 이질성은 통일된 블록으로 성장하는 데는 한계로 작용하지만,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분화와 연대를 반복할 수 있는 역동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비동맹운동이 양 진영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을 선언했다면, 오늘날 글로벌 사우스는 필요에 따라 협력하고 때로는 거리를 두는 전략적 헤징을 구사한다. 결국 글로벌 사우스는 여러 겹의 층위를 가진 네트워크로서, 특정 이슈에 따라 결집과 분산을 반복하며 국제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다.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은 국제규범 측면에서도 획일성 대신 다양성의 포용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견인하고 있다. 냉전 질서가 이념으로 세계를 양분하고 탈냉전 질서가 서구 보편주의를 전제로 했다면, 글로벌 사우스는 서구식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만이 유일한 정답이 아님을 실천으로 보여준다. 

    일례로 베트남은 ‘대나무 외교’로 강대국 사이에서 실리와 자존을 동시에 추구한다. 파키스탄은 전통적 우방인 중국과 전략적 밀착을 유지하면서도 걸프 산유국과의 경제협력, 미국과의 대테러 안보 공조를 병행하는 다방향 균형외교를 펼치고 있다. 미얀마는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 서방의 제재 속에서 중국·러시아에 대한 의존이 심화돼, 글로벌 사우스 내에서도 강대국 경쟁의 틈바구니에 갇힌 취약 국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처럼 각국이 자국만의 전략적 경로를 개척하는 가운데, 타자의 정치·경제 시스템을 인정하고 공존하려는 현실주의적 규범이 형성되고 있다.

    한국 외교는 그간 미·중·일·러 4강 중심의 틀에 갇혀 글로벌 사우스를 부차적 영역으로 취급했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관련 유엔 표결에서 서방과 보조를 맞추다 중동·남반구 국가들의 비판에 직면했고,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에서 글로벌 사우스 경시의 대가를 절감했다. 가치 외교 일변도의 접근은 거래적 실용주의로 국익을 극대화하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 협력 접점을 좁히는 딜레마를 낳았다. 

    이러한 반성 위에서 이재명 정부는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기치로 외교 지평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2025년 11월 G20 정상회의를 겸한 중동·아프리카 4개국 순방은 외교 지평을 글로벌 사우스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며, 이집트 카이로대학 연설에서는 문화 기반의 중동 정책인 ‘샤인(SHINE) 이니셔티브’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제 한국은 식민지 경험과 경제성장·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독특한 궤적을 활용해 선진국과 개도국을 잇는 교량 국가로서 정체성을 본격화해야 한다. 인도·태평양전략에서도 전통 파트너 외에 아세안·남아시아·아프리카와의 협력을 명시적으로 강화하고, 기후변화·개발재원·무역질서 등 글로벌 사우스 핵심 의제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베트남, 미얀마, 파키스탄의 사례

    한국은 외교·경제·문화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이어주고, 협력을 제도화하며, 새로운 국제규범을 선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유엔 등 다자 무대에서 글로벌 사우스의 지지기반을 다진다면, 한국은 G7 국가와 차별화된 질서 조정자로 부상할 수 있다. 가치-이익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글로벌 노스와 사우스를 연결하는 창의적 외교가 한국이 지향할 방향이다.

    베트남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협력에서 한국이 거둔 대표적 성공 사례다. 한때 한국 기업들의 해외 생산기지로만 여겨졌던 베트남은 이제 포괄적 전략 동반자관계를 구축한 혁신 동반자로 부상했다. 1992년 수교 이후 양국 교역은 폭발적으로 증가해 상호 3대 교역국 관계에 이르렀고, 양국은 ‘2030년까지 교역액 1500억 달러’라는 야심만만한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2030년까지 총 40억 달러 규모의 유상원조 지원 계획, 방산 협력 강화, 그리고 LNG 발전·수소 생산·스마트시티·기후변화 대응 분야의 신규 협력 발굴은 베트남 사례가 단순한 교역 파트너를 넘어 경제안보·첨단기술·에너지 전환을 아우르는 복합 파트너십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미얀마는 글로벌 사우스 협력에서 ‘가치 외교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사례다. 2021년 군부 쿠데타 당시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이례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취해 쿠데타를 규탄하고 군사물자 수출을 금지했으며, 국내 체류 미얀마인에 대한 비자 연장 등의 조치를 시행했다. 그러나 쿠데타 5년이 지난 2026년 초 현재, 미얀마의 위기는 해소되기는커녕 심화 일로에 있다. 내전은 전국으로 확대돼 520만 명 이상이 국내외로 실향했고, GDP는 쿠데타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채 경제 손실이 1000억 달러에 달하며, 인구의 약 4분의 1이 심각한 식량 불안에 직면하고 있다. 군부는 2025년 12월~2026년 1월 3차에 걸친 총선을 강행했으나, 330개 타운십 중 263개에서만 투표가 실시됐고, 최대 야당 NLD는 참여를 금지당한 채 폭력과 탄압 속에 치러져 유엔은 이를 “기본적 인권을 존중하지 않은” 선거로 규탄했다. 

    한국 정부는 2025년 3월 미얀마 대지진 발생 시 200만 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신속히 제공하고, 미얀마를 만성적 위기 지역으로 분류해 인도적 지원을 지속하고 있다. 미얀마 사례는 한국이 글로벌 사우스에서 민주주의·인권 원칙과 지역 현실 정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구현할지 보여주는 가장 첨예한 시험대이며, 인도적 지원 통로 확보와 다자 프레임워크를 통한 장기적 관여가 한국이 택할 수 있는 현실적 경로라 할 수 있다. 

    일례로 미얀마 전역을 일괄 여행위험국으로 지정해 사실상 모든 교류를 차단하는 현재의 조치는 과도하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실제 위험은 무력 충돌이 집중된 일부 국경·분쟁 지역에 국한돼 있으며,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역까지 동일 기준으로 묶는 것은 관광·교육·민간 교류를 불필요하게 위축시키고, 한국의 장기적 관여 수단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는다. 따라서 안전 정보에 기반한 지역별 차등 관리를 도입하고, 관광 재개와 인적 교류 확대를 단계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인도적 지원과 병행하는 한결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對)미얀마 관여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개발 협력과 리스크관리 체계 동시 구축해야

    파키스탄은 한국이 글로벌 사우스와 맺어온 개발 협력의 진화상과 동시에 그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다. 6·25전쟁 당시 37만8000달러의 원조금과 1만 t의 밀을 지원한 파키스탄과의 인연은 1983년 수교 이후 꾸준히 확대돼, 한국 수출입은행은 2022~2026년간 10억 달러 규모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프레임워크를 체결하고 에너지·교통·IT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KOICA는 15년간 8700만 달러 규모의 무상원조를 제공하며 식수·보건·에너지·지역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왔고, 2025년 12월에는 KOICA 총재가 파키스탄을 방문해 태양광 모듈 인증시험소 개소식에 참석하며 양국의 과학기술·청정에너지 협력을 한 단계 격상시켰다. 

    그러나 현실의 벽도 분명하다. 1억5840만 달러 규모의 카라치 IT 파크 건설 사업은 한국 기업이 단 한 곳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유찰됐으며, 이는 파키스탄의 경제 불안정, 테러 우려, 직항편 부재 등이 민간 부문의 진출을 가로막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민간 차원에서는 파키스탄비즈니스협회(PBA)가 한국 각 지역 상공회의소와 MOU를 체결하고, 화학·섬유·농업 분야의 산업 협력을 모색하는 등 정부 간 협력을 보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파키스탄은 인구 2억4000만 명, 풍부한 광물자원과 젊은 노동력을 갖춘 잠재력의 땅이며, 한국도 파키스탄을 핵심 ODA 중점협력국으로 지정해 간호 교육·직업훈련·디지털·AI 기술 등으로 협력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파키스탄 사례는 호혜적 개발 협력을 통해 신뢰를 쌓고 이를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발전시키는 윈윈 모델의 가능성과 함께, 민간 투자 유인과 리스크관리 체계를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는 실용적 교훈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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