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비에토성에서 내려다본 주변 풍광.
예로부터 아날로그의 미학을 대표하는 마을로 소문이 나 있는 이 마을의 비밀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거나 두꺼운 쇠줄이 끌어올리는 미니열차를 타야 한다.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오르비에토는 시청을 중심으로 반경 2㎞ 정도가 전부인 작은 도시지만 전체주민이 2만여 명에 이른다. 중세시대 교통과 군사요충지로 번성을 누려 마을 전체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고 지금도 당시의 정취가 물씬 묻어난다. 거리를 걷다 보면 가장 먼저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상쾌한 공기다. 바위산 위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지형적 특징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깥세상에서는 흔하디 흔한 자동차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위산 위에 형성된 오르비에토 마을 아래로 드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로르티 소샬리’의 교훈
‘아날로그형 토산품’이 가득한 상점.
이를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것이 마을 외곽에 있는 ‘로르티 소샬리’라는 이름의 텃밭이다. 시청 광장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 밑에 있는 이 커다란 텃밭은 주인이 따로 없다. 오르비에토에 거주하는 주민은 물론 마을을 찾아오는 방문객에게도 항상 개방되어 있다. 이곳에서 재배되는 채소와 과일은 모두 마을 초등학교와 중학교 급식재료로 제공되기 때문에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오직 퇴비만을 사용한다고 한다.
오르비에토 거리 곳곳에 웅장한 대성당과 여러 석조건축물이 있지만 새로 지어진 건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주민이 거주하는 마을에는 바람이 불어 공기가 흐를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신규 건축을 되도록 제한하기 때문이다. 마을 곳곳에서 크고 작은 공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모두 과거에 지은 집을 보수하는 수준일 뿐, 새로운 건축공사 현장은 발견할 수 없다.
오르비에토 마을이 있는 바위산.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천연 요새임을 말해준다.
아날로그의 역설
피렌체와 로마 사이에 자리잡은 고도(古都) 오르비에토는 많은 것을 시사하는 마을이다. 로마와 베네치아처럼 유명한 유적지가 즐비한 것도 아니고, 밀라노처럼 화려한 쇼핑몰이 밀집해 있는 것도 아닌 평범한 시골 마을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을 찾는이들이 늘어나는 것은, 깨끗한 자연을 보존하고 옛 생활방법을 지키며 여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진정한 아날로그 마을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