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이승만을 옹호하는 시각에선 구한말에서 광복 이전까지의 이승만을, 민중을 계몽하는 언론인으로서뿐만 아니라 항일 민족지도자요 독립운동가로서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이 시기 정치가 이승만은 근대 사상을 수용한 개혁가로 한국 민주주의 운동사에 빛나는 “만민공동회의 선두에 선 피 끓는 청년”이었으며, 19세기 말 민주주의를 외치고 보수세력에 대항했으며 평생을 독립된 조국을 위해 투쟁한 항일 민족지도자로 다가선다.
반면 광복 후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 그리고 1960년 4·19혁명으로 하야하기까지 대통령 이승만은 친미주의자요, 친일파 비호자이며 반공 극우독재자로 낙인찍혀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역사 바로세우기’와 과거사 재평가를 시대정신으로 인식하는 진보적 관점에서 대통령 이승만에게 ‘친일파를 비호해 권력을 쟁취한 희대의 기회주의자요, 남북분단을 영속화한 분열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반공 이데올로기로 장기집권과 독재체제를 구축한 극우 보수주의의 원조’라는 멍에를 씌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파행과 굴절로 얼룩진 광복 전후 시기는 아직도 한국 근현대사에 ‘문제적 시공간’으로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상황을 직시한다면 19세기 말 격동의 시기에 태어나 대변환기적 시대에 한 생애를 치열하게 살다간 정치가 이승만의 사상과 행적에 대해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 없이 총체적으로 폄훼하고 배척하는 것은 특정 관점이나 이데올로기적 성향에 함몰된 편견이나 독단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원로 정치학자 이정식 교수의 ‘이승만의 구한말 개혁운동 : 급진주의에서 기독교 입국론으로’는 주로 청년기 이승만의 성장과정과 행적을 배재학당 입학, 한성감옥 수감과 기독교 개종, 감옥에서의 석방과 정치·언론활동, 미국에서의 생활과 독립운동 등을 시간의 추이에 따라 객관적인 관찰자 시각에서 천착하고 있다. 이 책은 개화 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우남(雩南) 이승만의 청년시절을 조명한 ‘Syngman Rhee : The Prison Years of a Young Radical’의 번역본, ‘초대대통령 이승만의 청년시절’을 증보하여 배재대 출판부에서 출간한 것이다.
‘선동가 이승만’
이 책은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성장기에서 저자는 이승만이 자라난 시대의 배경과 유년시절 경험을 살펴봄으로써 정치적 ‘선동가 이승만’의 출현과정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이승만 스스로 자신을 “평생 선동가(agitator)”라고 평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이승만의 선동가로서의 성격형성과 행동발달은 19세기 말 격동의 시대에 유년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환경의 산물이라고 규정한다.
제2부에서 저자는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의 입학부터 청년기의 수학(修學)과 독립협회 시절 활약상을 기술하고 있다. 배재학당 입학과 기독교 귀의, 서재필을 통한 자유·평등·민주주의라는 신사상 심취와 개혁적 사고 습득, 청년 이승만의 정치적 이력에 전기를 가져다준 만민공동회 사건, 그리고 언론인으로서의 능력과 정치투사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해준 ‘독립협회’ 등 이승만이 정치가로 나서는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서술했다.
제3부는 옥중 개혁가로서의 동정, 특히 이승만의 기독교 귀의과정을 살펴보고, 옥중 활동상을 기술했다. 5년7개월의 수감생활 동안 기독교로의 개종은 혁명적 반항아이자 개혁가 이승만이 ‘기독교 입국론’에 의한 점진적 사회개혁가로 변신하는 전기가 된다. 저자는 “그가 (옥중에서) 당해야 했던 고통과 그가 터득한 지식은 그로 하여금… 기독교 교육을 통한 사회개혁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택하게 한 것이다”라고 기술하면서 이승만의 ‘기독교 입국론’의 핵심은 기독교 교육을 통한 인간개조만이 진정한 국가 건립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에 있으며 이 대목에서 이승만의 사상적 변화를 읽을 수 있다고 봤다.
제4부에서 저자는 한성감옥 석방 이후 이승만이 미국으로 건너간 동기와 목적, 이후 미국에서의 학업과 미국 조야(朝野)를 대상으로 한 일련의 독립활동 등을 서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5부에서는 이승만의 자서전을 비롯한 그의 주의주장과 논점을 글로 표현한 다수의 평론을 담고 있어 이승만의 성장과정, 그리고 다양한 사건에 대한 그의 식견, 사상적 편린을 엿볼 수 있다.
원로 정치학자인 이정식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한때 급진적 개혁가로서 구시대 전제주의 반대운동에 앞장선 개혁주의자이던 정치가 이승만이 후일 장기집권의 독재자로 변신해 비난과 배척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반면교사로 성찰할 것을 주문한다. 시류에 편승해 자의적으로 역사를 재단하려는 이에게 역사의 준엄함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역사 앞에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정치가 이승만의 행적에 대한 평가에 관하여 “과거 역사에 과오를 저질렀다 해도 그의 공적과 과오 중 과오는 결국 이차적인 것에 불과하며 그가 이룩한 일은 말살될 수 없고 마땅히 국가 건설자로 기념해야 할 것이다”라는 덩샤오핑의 마오쩌둥 평가어록에서 그 의미를 새로이 찾아보도록 권면하고 있지는 않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