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호

“60이 인생 내리막길? 중년의 ‘끈기’로 도전하세요”

환갑에 누드사진집 , 4개 외국어시험 합격 김원곤 서울의대 교수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2-11-21 17: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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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래에게 신선한 자극 주고 싶어 시작
    • 외국어 단어 20개 외우며 바벨 들어
    • 말하면 지키는 강박관념 적극 활용해보라
    • ‘프리 토킹’ 도전, 손녀와 아름다운 여행 계획
    “60이 인생 내리막길? 중년의 ‘끈기’로 도전하세요”
    김원곤 서울대 의대 흉부외과학과 교수(58)는 지난해 2월 중순 ‘신동아’ 원고 청탁을 받고는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2011년 4월호 별책부록으로 ‘명사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를 만드는데,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써달라는 원고 청탁을 받은 것. 차분히 자신에게 물었다. ‘김 교수, 당신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게 뭐요?’라고. 그는 자신의 버킷 리스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4개 외국어 고급 어학능력 자격시험에 도전해 모두 합격한다. 그야말로 붙어도 그만, 떨어져도 그만인 객관적 상황에서 사서 하는 고생의 약속을 버킷 리스트 공표를 통해 구속받고 싶다. 둘째, 나의 누드사진집을 만든다. 2년 전에 우연한 일이 동기가 되어 웃통을 벗고 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이 어떻게 하다 한 일간지에 소개되면서 일약 ‘몸짱 교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몸을 더 열심히 가꾸어보고 가능하다면 (사진집을 만들어)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고도 싶다.”

    28년 만의 시험 도전

    그의 버킷 리스트에는 술집에서 일주일간 근무하는 것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녀와 여행하는 것도 포함됐다.

    김 교수는 약속대로 11월 초 자신의 누드사진집 ‘몸과 魂’을 냈다. 우락부락한 조폭용 근육이 아니다. 182cm의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슬림’하고 오밀조밀한 근육이다. 요즘 말로 ‘아이돌 몸짱’이다. 1954년생이니, 한 달 지나면 환갑의 나이에 만든 근육이다. 4개 외국어 시험에도 모두 합격했다. 지난해 3월 중국어 HSK 6급에 응시한 것을 시작으로 JLPT N1(일본어), DELF B1(프랑스어), DELE B2(스페인어)에 잇따라 도전해 합격증을 모두 손에 쥔 것. 4개 외국어 자격증은 현지에서 거주한 사람들도 따기 어려운, 외국인으로서는 최고 수준의 고급 자격증이다.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은 물론 많은 이에게 신선한 자극을 줬다.



    “나와의 약속 2개는 지켰습니다. 28년 만에 당락을 좌우하는 시험에 도전했는데 결국 모두 이뤄냈습니다. 도전의 의미와 성취의 기쁨을 다시 느끼게 됐어요.”

    김 교수의 외국어 도전은 흔히 ‘이 나이에 무슨’이라고 말하는 나이 50에 시작됐다. 그의 삶에 작은 변화가 생긴 때가 그 즈음이었다. 2003년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토·일요일 이틀간의 황금 시간이 주어졌고, ‘시니어 스태프’가 되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무엇을 할까’하고 생각하다가 더 늦기 전에 외국어 공부를 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중국어는 4성조(聲調) 때문에 어려울 거 같아 일본어를 시작했죠. 학원 주말반에 등록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다녔죠. 내친김에 2005년 중국어, 2006년 프랑스어, 이듬해엔 스페인어를 시작했죠. 그저, 해외 세미나 갈 때 길이라도 물어보려고 시작했는데 이렇게 오래할지는 나도 몰랐어요.”

    어김없이 주말 오전 10시~오후 1시에는 학원 수업을 듣고 복습을 했다. 지금도 수술이 있는 토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학원에 다닌다. 매주 월·수·금요일 오후 8시~9시45분에는 프랑스어 학원에, 화·목요일 7시 반~9시 반에는 스페인어 학원에, 일요일 오전 10시 반~오후 1시 반에는 중국어 학원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정말 힘들었죠. 모든 자투리 시간을 긁어모았어요. 외국어 시험은 일단 암기부터 해야 하잖아요? 몸만들기 운동을 하기 전에 20단어를 급히 외운 뒤 단어를 생각하며 바벨을 들고 달리기를 했어요. 출퇴근할 때 지하철 환승을 하다가도 단어가 기억나지 않으면 급히 서서 사전을 꺼내 보고 단어를 외웠어요. 모르는 사람들은 저를 이상하게 봤을 거예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학원 강사들은 김 교수가 강의실에 들어설 때 “무슨 일로 여기 오셨어요?”하고 물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학원을 다녔더니 강남 학원계에서는 ‘정체불명의 외국어 고수’에 대한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스페인어 시험장에선 한 초등생이 계속 쳐다보기에 “나를 아니?”하고 말을 걸었더니 “할아버지도 시험 치세요?”라고 물었다.

    “할아버지도 시험 치세요?”

    “60이 인생 내리막길? 중년의 ‘끈기’로 도전하세요”

    김원곤 교수가 딴 4개 외국어 고급 자격증.

    “사실, 처음부터 외국어 시험에 응시하려고 학원에 다닌 건 아니었어요. 수강생들과 얘기를 하다가 HSK(한어수평고사)가 있다는 것을 들었죠. 공부한 것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 듣고 이상하게 시험에 대한 미련이 생기더라고요. 2011년 3월 시험을 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신동아 원고 청탁이 들어왔기에, 4개 외국어 자격증을 모두 따겠다고 선언해버렸어요.”

    일반인의 눈에는 이런 그의 도전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성격과 강박관념을 잘 활용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나는 약속에 대해 일종의 강박관념이 있어요. 약속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데 이미 4개 외국어 고급 자격증을 따겠다고 약속했으니 지켜야 했어요. 그러니 악착같이 할 수밖에요. 하다가 보니까 끈질기게 하는 게 뭔지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요.”

    그가 골프를 시작하지 않은 것도 ‘약속 강박관념’과 관련돼 있다. 일이 많던 젊은 시절, 일은 소홀히 하면서 골프를 즐기는 선배 의사들을 비판하며 ‘나는 나이 들면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수십 년 전 그 약속을 지금까지 혼자 지키고 있다.

    운동도 마찬가지. 2008년 병원 송년회 때 흉부외과 직원들 앞에서 옷을 벗은 사진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해버렸다. 그날 그 약속을 기억하는 직원들도 없지만 그는 혼자 조용히 바벨을 들었다. 결국 2009년 5월 사진이 취미인 레지던트가 그의 사진을 찍었다. 이후 신동아 버킷 리스트에 누드집을 찍겠다고 ‘선언’하고 다시 틈틈이 바벨을 들었다. 그의 취미생활은 술병 미니어처 수집이다. 술도 즐겨 마신다. 신동아에 ‘세계 지도자와 술’ 코너를 매월 연재하고, 서울대병원 웹진에도 글을 쓴다. 술과 관련한 강연 요청도 쇄도한다. 그가 모은 술병 미니어처는 2000여 개에 달한다.

    외국어에, 누드사진집에, 술까지 나오니 모르는 사람들은 ‘날라리 의사’ ‘기인 의사’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는 국내 심혈관 분야 권위자로 흉부외과와 심장병, 심장수술에 관한 책을 10여 권이나 낸 학구파다. 집필 저서를 이렇게 많이 낸 의사도 찾아보기 어렵다. 운동은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고 한다.

    “본과 2학년 때인 1975년 서울대 의·치대 역도부를 창설하고 초대 부장을 맡을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어요. 외과 중에서 가장 힘들다는 흉부외과에서 지난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체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이죠. 심장을 멈춰놓고 제한된 시간에 빨리 끝내는 흉부외과 수술은 다른 과 수술과는 긴장의 강도가 달라요.”

    일과 후 매일 학원과 피트니스센터를 찾는 그를 대하는 가족의 반응은 어떨까. 기자의 예상과 달리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가족이 무척 좋아해요. 주변에선 나이 50 넘으니 인생이 외롭고 허무하다면서 바람을 피우기도 하고 막 흔들려요. 생각해보세요. 이런 건전한 취미생활이 어디 있나요? 아내 입장에서도 ‘안전’하잖아요(웃음).”

    ▼ 안전하다?

    “아내는요, 남편이 자신의 예상 범위를 벗어날 때 불안해하잖아요? 그런데 저의 하루 동선은 항상 예측할 수 있거든요. 열심히 한다는 건 합격증을 보면 알 수 있으니까요.”

    ▼ 가족들은 외국어 공부와 몸 만드는 일, 둘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나요?

    “아내는 당연히 몸 만드는 일이고(웃음).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피트니스센터 다니는데 동네 아줌마들도 저를 다 알아봐요. 나이가 있다보니 운동할 때면 다들 쳐다보는데, 이런 시선을 견디며 혼자 운동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 참, 훌륭하십니다.

    “아내는 출근할 때 현관에서 구두를 닦아줘요. 요즘 젊은 사람은 이해 못하죠. 그러니 나도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아내가 더 영리한 거 같기도 하고….”

    ▼ 언제까지 하실 건가요?

    “더 이상 후퇴하기 싫으니까 공부를 하는 건데, 하는 데까지는 계속 해야죠. 글쎄요. 유창하게 말할 정도까지 할까 싶기도 해요.”

    ▼ 시간 관리를 잘해야겠군요.

    “이 나이 되니 모두들 그럽디다. 나빠질 일만 남았다고요. 그런데 나이 든 분들은 꾸준함이 있잖아요? 정년퇴직 앞둔 나이면 시간은 충분히 낼 수 있어요. 그때 한 가지 일에 도전하면 됩니다. 뭐든 꾸준히 하면 해낼 수 있어요. 도전하는 계기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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