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호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난소라는 이름의 ‘보물 곳간’

“자궁내막증 시술 시 난포는 반드시 지켜야”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19-09-10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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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대 중반쯤 된 부부가 진료실을 찾았다. 자연임신이 될 수 있는 상태인데도 IVF(시험관아기 시술)을 받겠다는 거였다. 아내는 “다른 병원에서 나팔관 조영술을 받았는데 막상 시술을 해보니 좌우 나팔관 중 어디 한 군데도 막힌 곳이 없었고, 남편의 정자 수나 활동성 모두 좋지만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자연임신 시도를 포기했다는 얘기였다. 이유인즉 통증이 너무 심해 정상적인 성교가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이 부부는 아내가 심한 성교통을 호소하는 경우였다. 성교통은 보통 성 경험이 없는 여성이 성생활 초기에 느낄 수 있는 흔한 성기능 장애다. 심하면 성교 시 질에 음경이 마찰될 때 골반 전체가 경련이 일어나는 듯 뻐근하고 통증이 있어 힘들다. 이 여성은 남편의 정성스러운 전희(foreplay)로도 성교통이 해결이 안 돼 결국 더 늦기 전에 IVF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녀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성교통이 그토록 심했을까? 초음파 검사 후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난소에 난소낭종(난소에 발생하는 낭성 종양·자궁내막증)이 제법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낭종은 난소뿐 아니라 골반과 자궁 뒤, 직장 근처에까지 퍼져 있었다. 이것 때문에 성교통이 심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자궁내막증은 골반통, 월경통, 성교통, 심지어 배변통까지 다양한 통증을 유발한다. 가임기 여성 중 15% 정도가 이 질병을 경험한다. 후진국보다는 선진국 여성에게서 더 많이 발병하는데, 이는 육식과 관련이 깊다.

    난포 살리는 ‘알코올경화술’

    자궁내막증은 자궁 내벽에 있어야 할 조직이 자궁 안이 아니라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의학적으로 ‘이소성(異所性) 자궁내막’인 셈이다. 주로 골반 안쪽 혹은 골반강 내 장기들에 붙어 있거나 둥지를 틀어 조그만 혹처럼 보인다. 자궁 근육 속으로 파고든 자궁선근종도 자궁내막증에 속한다. 

    자궁내막증이 가장 빈번하게 생기는 곳은 난소다. 난소 안에서 낭종이 파열되기도 하고 크기가 커지면 심한 통증을 유발한다. 난소는 생명 잉태의 핵심인 아기씨(난자)가 담겨 있는 중요한 곳인데, 이런 곳에 자궁내막증이 생기면 난자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난포가 자라는 것을 억제하고, 더 나아가 자궁에 착상하는 것을 방해해 유산율을 높일 수 있다. 



    요즘 들어서 부쩍 자궁내막증으로 난임을 겪는 여성을 많이 만난다. 늦은 결혼 혹은 비혼 등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아 난소가 쉬지 않고 배란을 하고 호르몬도 계속 분비하는 게 큰 이유다. 다행히 난소에 생긴 자궁내막증은 암(자궁내막암, 투명세포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월경, 배란, 임신 등 생식 기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임신을 방해한다. 

    자궁내막증 치료에서 핵심은 난소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산부인과 의사들은 낭종 크기가 6cm 이상이면 낭종을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또 낭종을 섬세하고 깨끗하게 제거하기 위해 복강경 외에 로봇수술을 권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낭종을 속 시원하게 제거하는 데에만 집중할 경우 자칫 난소 기능을 잃어 난포(난세포(난자)와 그것을 둘러싼 난포상피세포의 복합체)를 상당부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난소낭종을 일일이 제거하려다 소중한 원시난포(primordial follicle)까지 소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술이 능사는 아니란 얘기다. 또한 자궁내막증을 치료하고자 여러 가지 약을 쓰게 되면 임신은 안 되고 자궁내막증만 더욱 심해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임신을 기다리는 여성에게 난소는 매우 중요하다. 난임의 여러 이유 중에서 난소 기능 저하만큼 힘들고 안타까운 상황이 또 있을까. 자궁내막증 치료를 위해 난소를 일부 제거한다면, 이는 득보다 실이 더 클 수도 있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서 필자는 자궁내막증 치료를 위해 알코올경화술이라는 색다른 방법을 선택해왔다. 긴 바늘을 이용해서 난소낭종 안에 있는 초콜릿색 액체를 뽑아내고 생리식염수로 세척한 뒤 알코올을 발라 낭종 안에 있는 자궁내막낭종 세포를 딱딱하게 경화시키는 방법이다. 생체조직을 탈수시켜 경화시키는 알코올의 작용을 최대한 이용한 셈이다. 

    지난 7년간 수많은 난임여성이 알코올경화술을 통해 임신에 성공할 수 있었다. 자궁내막증의 크기를 줄이고 난소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확신한다. 빈대를 잡기 위해 꼭 집을 태울 필요는 없다. 집에 있는 가재도구를 햇볕에 잘 말리고 또 방 안의 빈틈을 창호지로 깨끗하게 발라 빈대가 더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그게 바로 알코올경화술인 셈이다. 낭종은 낭종대로 줄이고, 임신 또한 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윈윈 작전’이다. 

    의대생 시절, 아직도 그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 뉴스에서는 영국에서 산부인과 의사인 고(故) 패트릭 스텝토 박사가 생식생리학자 에드워드 박사와 함께 세계 최초로 시험관아기시술을 통해 루이스 브라운이라는 여자아이를 탄생시킨 역사적인 순간을 소개했다. 그때 느낀 신기함과 경이로움은 여전히 내 머리와 가슴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단언컨대 난임 시술은 모험의 의학이다.

    난임 시술은 모험의 의학

    최근까지 전 세계에서 시험관아기 시술은 무려 1000만 건에 달한다. 연간 35만 명 이상의 시험관아기가 태어나고 있는데, 아직까지 착상의 비밀은 절반도 채 풀리지 않았다. 그만큼 아직 갈 길이 멀단 얘기다. 그렇기에 난임의 원인을 추적하고 치료하는 의술은 끊임없이 연구돼야 하는 분야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현실(보험제도)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현재 난임 해결을 위한 치료술의 대부분은 ‘임의비급여(자비로 치료비를 부담해도 불법)’의 틀에 묶여 있다. 

    난소와 난자는 생명 잉태의 출발이자 핵심이다. 임신 계획이 없더라도 평소에 골반통이나 성교통이 지속되고 월경통이 심하면 임신과 무관하게 산부인과를 방문해 진단을 받아보는 게 좋다. 문제는 자궁내막증이 초음파상으로 100% 확진이 힘들다는 점이다. 특히 기형종, 황체낭, 섬유종 등과 구분이 안 돼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 섣불리 낭종의 제거를 결정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도 있다. 난소는 아기씨를 품고 있는 ‘보물 곳간’이며 여성호르몬의 분비샘이란 걸 잊지 말자.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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