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시대에 우리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수출 주도 산업을 육성했기 때문인데 정보화시대에도 역시 살 길은 수출 아닙니까.
“지식기반 제조업은 그 자체가 수출 주도 산업입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의료장비, 공작기계 등이 모두 수출 산업입니다. 벤처기업수가 1년에 두 배로 증가합니다. 벤처기업 총매출액은 3배가 증가하고 기업가치는 5배 증가합니다. 그리고 수출이 그 정도로 증가합니다. 앞으로 한국경제는 벤처기업이 이끌어가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다행히 벤처산업이 우리에게 적합합니다.”
―벤처산업의 발전은 일시적인 거품이라는 비판론도 있습니다.
“비관할 것은 없어요. 다만 벤처산업 발전에 대한 경계론도 있습니다. 부의 격차가 심해진다는 겁니다. 코스닥에 상장하기 전에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국민의 0.1%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앞으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국가의 부를 대부분 가져갑니다. 무서운 일이지요. 그래서 부의 분배가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21세기의 새로운 공산주의가 출현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공산주의는 산업혁명의 결과로 나온 것인데 산업사회는 그래도 10등 안에 들면 어느 정도 부를 누렸지만 정보화시대에는 3등 안에는 들어야 하기 때문에 빈부의 격차가 더욱 심해집니다. 20 대 80의 사회가 아니라 10 대 90의 사회가 되지요.”
―빈부격차 문제를 해소할 방안은 있습니까.
“나눔의 철학이 필요합니다. 벤처기업이 부의 분배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나눔의 문화는 본질적인 부의 재분배는 아닙니다. 약간 완충역할을 한다는 거지요.”
이 회장은 본질적인 해결책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국민벤처펀드가 나와야 합니다. 국민엔젤펀드라고도 하지요. 모든 국민들이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은 국민들이 직접 벤처투자를 할 수 있는 길이 없어요. 정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펀드를 통해 간접투자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국민벤처펀드를 통해 많은 국민들이 간접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벤처기업 성장의 결과도 분배할 수 있지요.”
―현재 투자조합은 49인 이하로 제한돼 있어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기가 법적으로 힘들 터인데… .
“현재는 막혀 있어요. 정부가 보기에 벤처투자는 위험하다는 거지요. 아무나 투자할 수 있도록 해줬다가 나중에 쪽박을 차면 정부에 항의할 것이기 때문에 막아버린 겁니다. 이것을 풀어줘야 합니다. 개개인의 인간이 죽는다고 인류가 멸망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벤처기업 한 개가 망한다고 벤처산업이 망하지는 않아요. 벤처산업이 망한다는 것은 한국의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벤처산업의 경쟁력이 있습니다.”
주식거래차익 과세해야
―다른 나라에 모델이 있습니까.
“벤처혁명이 막 시작됐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국민벤처펀드를 모으는 예는 찾아볼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가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미 메디슨, 새롬기술, 한글과컴퓨터, 미래산업, 다우기술, 다음커뮤티케이션, 네띠앙 등 국내 선두 벤처기업들과 미래에셋 등 자산운용사가 모여 코리아인터넷홀딩스란 투자지주회사를 설립, 3월부터 국민엔젤펀드 모금에 들어간다. 그동안 벤처투자가 등 극소수만 하던 벤처기업 투자를 소액투자가들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이민화 회장은 부의 재분배를 위한 두 번째 제도로 주식거래 차익에 대한 과세를 주장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주식총액이 440조니까 GNP를 넘어섰어요. 앞으로 몇 년안에는 주식총액이 GNP의 몇배를 뛰어넘습니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어요. 가령 주식 총거래액이 GNP의 몇 퍼센트 수준일 때는 별 문제가 없지만 주식 거래를 통해서 GNP의 50%에 해당하는 부가 이동한다면 문제는 심각합니다. 전국민이 열심히 일해서 만든 부의 크기와 주식거래를 통해 그냥 생긴 부의 크기가 같다는 겁니다.”
―주식거래차익에 대해 과세하겠다면 증권 시장에 찬바람이 불 터인데… .
“종합과세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산층이 버는 정도는 봐줄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도 10만~20만 달러 정도의 소득은 내버려둡니다. 그 이상 되는 것은 과세하지요. 그러나 그 이상도 투자를 지속적으로 하면 과세를 유예해줘야 합니다. 즉 산업자금으로 사용할 때는 과세를 보류하고 개인자금으로 쓸 때는 과세한다는 거지요. 비과세론자들의 주장은 과세를 하면 산업자금이 조성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소득이 있는 곳에는 과세가 있다는 조세의 형평에도 맞지 않습니다.”
이민화 회장이 주장하는 것 중에는 ‘벤처연방체’라는 것이 있다. 벤처산업의 발전을 위한 ‘제휴 전략’의 일종이다.
―벤처기업들의 제휴 형태인 벤처연방체를 제안했는데 재벌기업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낯선 표현입니다만… .
“벤처연방이란 개별적인 벤처기업들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대기업은 효율성은 있지만 의사결정은 느립니다. 어떤 조직이 커지기 시작하면 거대한 몸집을 관리하기 위해 관료제가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의사결정 구조가 굳어집니다. 이에 비해 개별 중소기업은 혁신지향적이지만 시너지 효과가 없어요. 그래서 대기업의 효율성과 중소기업의 혁신성을 합쳐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이것이 바로 벤처연방입니다. 앞으로 벤처연방이 지식경제의 일반적인 형태가 될 겁니다.”
기업가정신 있어야 벤처기업가
―대기업이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것과 벤처연방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첫째 벤처연방은 관련분야의 다각화를 추구하는데 재벌기업은 비관련분야를 다각화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동안 대기업은 관련이 없는 분야, 즉 유통업을 하던 회사가 건설업에도 뛰어들었습니다. 이것은 국가 자원의 손실입니다. 그러나 관련다각화를 추구하는 벤처연방은 하는 일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어요. 가령 채팅서비스로 알려진 ‘하늘사랑’은 한글과컴퓨터와 연관된 일을 하다보니 효율성이 증대합니다.”
이 회장은 대기업그룹과 벤처연방의 두번째 차이점으로 기업가 정신을 들었다.
“벤처연방은 각각의 기업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창업자입니다. 이들에게는 기업가 정신이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 자회사에서는 진정한 기업가가 없어요. 왕회장이 바꾸라면 자회사 사장이 바뀌는 거지요. 벤처연방의 기업가들은 한 명 한 명이 독립적으로 살아 있는 겁니다. 종속돼 있지 않아요. 그래서 연방이란 표현을 쓴 겁니다.”
세번째로는 대기업그룹과는 달리 통제기구가 없다는 것이 벤처연방의 특징이라고 한다.
“대기업은 그룹 차원의 기획조정실 등 중앙의 통제기구가 있지만 벤처연방에서는 중앙의 통제기구가 없습니다. 그래서 벤처연방은 가장 효율적입니다.”
―조금전에는 대기업의 효율성을 이야기했는데… .
“규모가 크니까 대량생산해서 싸게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러나 기동성은 떨어질 수 있어요.”
―대기업은 조직이 관료화돼 있어 효율성이 더 떨어지는 것 아닙니까.
“대기업은 효과성이 떨어지지요. 효과성이란 쉽게 말하면 시장이나 주변 여건의 변화에 재빠르게 적응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동력은 지녔지만 소규모이기 때문에 효율은 떨어지는 벤처기업들이 연방형태로 뭉치면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는 겁니다. 가령 대기업에서는 한 조직안에 반도체 공장과 가전제품 공장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상품생산 효율성이 높아요. 그러나 벤처기업의 경우 연방체가 없으면 서로 밀접하게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민화 회장은 의료분야 벤처기업들의 연방을 형성하고 있는 메디슨사 외에도 한글과컴퓨터사가 국내 벤처기업중 벤처연방의 예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수백만명의 채팅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하늘사랑, 포털검색사이트인 네띠앙 등이 한글과컴퓨터사에 속해 있지만 각자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연방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벤처연방이 모여 벤처생태계를 이룬다. 벤처연방을 스위스 연방에 비유하면 벤처생태계는 유럽연합(EU)에 해당한다는 것.
“기본적으로 벤처산업이란 제휴의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안되니까 연방을 만들고 생태계를 만드는 겁니다. 벤처연방의 기업들은 각각 특정산업 분야가 있습니다. 가령 메디슨 하면 의료산업 분야, 다우기술 하면 소프트웨어 분야인데 이것 가지고는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동안은 영토를 가진 국가끼리 경쟁을 했는데 앞으로는 국가 차원을 넘어 기업들이 모여 만든 생태계끼리 경쟁을 하는 겁니다. 크게 보면 손정의 생태계, 빌 게이츠 생태계끼리 경쟁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잘한다 하더라고 벤처기업 혼자서 경쟁해서 이기기는 불가능합니다.”
―손정의 생태계와 경쟁하기는 더더구나 힘들 터인데….
“인터넷사업의 부는 증권에서 만들어집니다. 인터넷기업의 주식을 증권에서 팔아 수익을 낸다는 것이 손정의 모델입니다. 손정의 사장이 인터넷 쪽에 거대한 투자를 했는데 지금까지 성공을 했어요. 앞으로 얼마나 잘 할 수 있느냐 이게 숙제인데…. 문제는 대항세력이 없기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어요. 증권쪽은 더 위험해요. 지금 손정의 사장이 나스닥재팬을 만들기로 했어요. 만약 나스닥재팬을 관리하게 되면 세계 두번째 부국이 손정의 인터넷 제국 아래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손정의 사장은 나스닥유럽을 만들고 코스닥에도 투자하려고 하는데 각국의 지도자들이 이것을 받아들이면 큰일난다고 봅니다.”
―손정의 사장의 인터넷 제국이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까.
“일종의 가상 세계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인데 선과 악의 문제는 아닙니다. 누구든지 커질려고 하는 거지요. 로마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 역사상 하나의 국가가 지나치게 커지면 반드시 재앙이 생깁니다. 벤처 생태계는 경쟁과 협력의 관계가 공존합니다. 경쟁이 없으면 위험합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한국에 투자하겠다고 하니까 위기감을 느껴 국민벤처펀드를 만드는 데 주도적이었다는 지적도 있는데… .
“제 자신이 위기감을 느낄 거야 없죠. 개인적으로 손정의 사장과 부딪칠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늘 소비자 입장에서 봅니다만, 인터넷 벤처기업들은 손정의 사장이 온다니까 어떻게 해서든 투자를 받아보려고 줄을 서는 겁니다. 선택의 기회가 없는 겁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의 기회가 없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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