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 동향에 밝은 어느 경제연구소 대표는 이렇게 내다봤다. ‘친(親)기업 정부’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는 원년이어서 새로운 변화가 ‘어지러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다 국제금융시장 불안, 고유가 등 대외 요인도 풍향에 적잖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청한 그는 “대기업 총수들이 대통령 당선자 앞에서는 밝은 표정을 지으며 투자를 늘리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그들의 심경은 매우 복잡할 것”이라면서 “투자가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데다 올해부터 기업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기업인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이라는 것.
한국 재계는 기업의 성쇠를 좌우할 화두(話頭)들을 안고 2008년을 맞았다. 화두마다 막강한 에너지를 품고 있어 경우에 따라 재계 판도가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화두는 ▲대규모 인수·합병(M·A) 물결 ▲금융 빅뱅 ▲규제완화 ▲고유가 4개로 압축된다.
외환위기 직후 대우그룹을 비롯한 대기업들의 연쇄 도산을 경험한 재계는 2007년 말로 ‘포스트 외환위기 시대’가 마감됐다고 본다. 공교롭게도 그 시대엔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등 좌파정권이 10년간 집권했다. 이 시대에 기업인들은 외환위기를 불러일으킨 주범으로 인식되면서 정부로부터 강도 높은 규제를 받았다.
정부의 논리는 “기업을 방치하면 방만한 경영으로 부실해지고 그 뒷감당을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므로 적절히 규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규제가 지나치면 기업의 자율성, 창의성이 훼손되게 마련이다. 공장을 새로 짓거나 증설할 때 관청 도장 수백개를 받아야 하는 현실에서 어느 기업인이 신나게 일할 수 있으랴. 이런 인허가 업무로 관청을 들락거리는 데 염증을 느낀 기업인들이 줄줄이 중국, 베트남 등 외국 투자처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는가.
외국 기업들이 한국에 투자할 때는 규제가 덜한 편이다. 그래서 한국 기업인들은 종종 “외국 기업과 비교해서도 역차별을 받느니 사업을 접거나 외국으로 나가겠다”고 볼멘소리를 토했다.
기업에도 ‘잃어버린 10년’
기업인의 시각에서 좌파정권 시기는 ‘잃어버린 10년’이었다. 투자의욕을 상실한 것은 물론 자존심도 무척 상했다. 이제 기업을 이해하는 정부가 출범하니 기업 활동과 관련한 심리는 무척 고무된 상태다.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재계 사정을 잘 이해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아무리 친기업 정부라 해도 개별 기업 또는 특정 산업에 특혜를 줄 수는 없다. 당선자 측에서도 “친기업 정부라기보다는 기업 친화적 정부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투자의 성패는 결국 기업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정경유착으로 이득을 얻는 시대가 지났을 뿐 아니라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단기에 그칠 뿐이다. 좋든 싫든 글로벌 스탠더드를 좇아야 하는 쪽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올해 이후 ‘게임의 룰’을 부쩍 강조하는 분위기가 재계에서도 형성될 것이다.
이런 변화의 바람을 내 편으로 잘 활용하는 기업은 새로운 질서를 환영할 것이다. 도약의 계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재계 4대 화두를 분야별로 점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