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 오목천동 (주)유선종합건설 대표실에서 만난 김관교(55) 대표는 순박한 농부 같은 인상이다. 투박하지만 공손한 말투, 두터운 손, 하얀 페인트가 좁쌀처럼 튀어 묻은 회사 점퍼 차림에서 소탈함이 묻어났다. 십수 년은 족히 묵었음 직한 대표실의 기름 난로가 스산한 겨울날씨를 보듬었다. 사무실 입구에 걸린 ‘회사 5S 운동’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Smile Look(부드러운 미소), Smile Talk(칭찬하는 대화), Smile Call(명랑한 언어), Smile Work(성실한 직무), Smile Mind(감사하는 마음).
▼ 건설회사는 대개 ‘무재해’ ‘안전 생활화’ 같은 운동을 펼치는 줄 알았는데, 독특하네요.
“건설 현장은 늘 긴장의 연속이지만 사무실에 오면 ‘노가다꾼’도 좀 부드러워져야죠. 웃으면 좋잖아요. 스마일~.”
겸손한 처신에선 알아채기 어렵지만, 김 대표는 경기 남부지역 건설업계에서 상당한 유명인이다. 30여 년 건설인으로 살아오면서 타고난 부지런함과 현금거래만 하며 쌓은 신뢰, 파이를 나누는 성과 공유로 그의 회사는 하도급사들이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 ‘넘버원’이 됐다. 이 회사가 연 매출 400억 원의 작지만 강한 회사가 된 비결이기도 하다.
▼ 줄곧 건설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네요.
“경기대 건축공학과 80학번입니다. 1983년 12월 건설회사에 입사했으니 30년이 넘었네요. 논 다섯 마지기(661㎡, 약 1000평) 농사짓는 부모님 밑에서, 그것도 6남매 중 장남이었으니 얼른 돈을 벌어야 했어요. 우리 때는 다들 그랬어요. 전기대 낙방하고 고민했는데, 경기대에서 장학금 줄 테니 입학해서 공부하라고 하더군요. 학창 시절에 공부는 좀 했거든요(웃음). 고향이 경기 화성이라 대학 다니면서 집안 농사 거들고 소 키울 수 있겠더라고요. 논 다섯 마지기로 여덟 식구가 살아가려니 얼마나 팍팍했겠어요. 그땐 건설경기가 좋아서인지, 어른들이 ‘빨리 돈 벌려면 건축공학과 가라’고 했어요.”
전국 공사판 전전…38번 이사
▼ 그래서 돈을 빨리 벌었습니까.“그건 좀…. 누나 결혼식에도 못 가고 대기업 건설사 면접시험을 보러 갔는데 떨어졌어요. 건축기사 1급 자격증이 있어 중견 건설회사에 입사했는데, 아 그게 참 고행이더군요. 전국의 공사 현장은 다 돌아다녔습니다. 광주 운암주공아파트, 대전 엑스포, 화성군청사 신축 공사…어휴, 안 가본 공사판이 없어요.”
김 대표는 7년간 건설 현장에서 일했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늘 ‘대기업 레테르’를 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1990년 유명 대기업 건설사에 경력직으로 입사했다. 그곳에서 국내 최초의 초고층(30층) 아파트를 시공했고, 그때의 경험을 살려 건설기술교육원이 주최한 사례 발표대회에서 ‘초고층 공사 시 가설계획’을 발표해 우수상을 받았다.
이후 건축기술사 1급 자격증을 따고 중견 건설회사 차장으로 스카우트되면서 “부지런한 소처럼”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가 화성시청 신축공사를 하던 중 외환위기 여파로 부도를 맞는다. 그러나 고향인 화성에 ‘고향 신청사’를 짓는다는 자부심 때문에 빈손으로 철수할 수는 없었다. 김 대표는 자신이 책임자로 나서 모든 공사를 ‘돌관작업’으로 직영 처리하며 성공적으로 시청을 개관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척의 제안으로 회사를 차린다.
“설날에 가족들이 모였는데, 건설업을 하던 동서가 자신이 아는 회사를 인수하라는 거예요. (공사) 실적이 거의 없는 일종의 페이퍼 컴퍼니였는데, 그 때가 취직 후 이사만 38번을 한 터라 좀 지쳐 있을 무렵이었어요. 홀로 되신 노모께서 ‘아비야, 꼭 그렇게 지방을 돌아다녀야 하냐, 먹고살 게 없냐’고 하시기에 ‘그래, 나도 사장이 돼 고향에 자리를 잡자’고 마음먹었죠.”
화성시청 공사를 어렵사리 마치고 회사를 차렸지만, 인수한 회사는 공사 실적이 없다보니 입찰에 참여하는 데 애를 먹었다.
“2003년부터 5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어요. 발주처 관계자가 ‘건물 지어봤어?’ 하기에 ‘내가 화성시청을 지은 사람이다. 공사비만 제때 달라’고 했죠. 그런데 낙찰을 받아도 철골이며 레미콘 같은 건축자재를 대주겠다는 곳이 없었어요. 보통 자재를 받고 한 달 뒤에 기성금을 받아 물건값을 주는데, 신생 회사에 뭘 믿고 수억 원어치의 자재를 주겠냐는 거죠. 그래서 얼마 되지도 않지만 제 명의로 된 아파트를 담보로 내놓을 테니 레미콘과 철근을 달라고 했습니다.”
어음거래 안 하는 회사
“건설하는 사람들은 부도 위험을 끼고 살기 때문에 대개 재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해놓거든요. 그런데 현장소장 경험이 많은 사람이 ‘자재 값 못 주면 내 아파트 가져가라’니까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들어줍디다. 벌어서 빚 갚느라 애를 먹었죠. 5년이 지나니 서로 자기 물건을 받아달라더군요. 신뢰가 쌓인 거죠.”
김 대표는 건설 현장에서 오래 일하면서 신용의 중요성을 체득했다고 한다. 원도급사가 하도급사에 결제를 미뤄 부도가 나거나, 자재 값을 떼어 먹고 야반도주하는 사람도 봤다. 그래서 자신의 회사는 절대 어음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일확천금보다 고정적 일감
▼ 원도급사가 어음거래를 하지 않는다? 쉽지 않은 결심이었을 텐데요.“매출 100억 원이 넘는 회사가 공사비를 2, 3개월 늦게 지급하면 그 이자로 직원 급여를 줄 수 있어요. 그러니 반대하는 직원도 있었죠. 그런데요, 당장 조금 손해 보더라도 신용을 쌓으면 서로 믿고 일하게 됩니다. 하도급사도 재무 부담이 줄게 돼 결국 품질도 좋아져요.”
▼ 하도급사에 현금을 제때 주려면 공사비 잘 주는 건축주를 만나야겠네요.
“그렇죠. 제때 공사비 잘 주는 발주처의 공사를 따야 해요. 그래서 학교나 공장, 물류창고등에 주목했어요. 관급공사는 제때 현금을 주니까요. 공장을 지을 때도 보통은 은행에서 직접 공사비를 주니 수금이 쉬웠어요. 제때 받아 제때 하도급사에 공사비를 지불하니 입소문이 났고, 유선종합건설과 일하고 싶다는 업체가 늘어났어요. 그래서 ‘완벽 시공’을 하는 협력사와 드림팀을 구성해 함께 품질교육을 하면서 공사하고 있습니다. 공사가 끝나면 제가 협력사 대표들을 소집해 함께 품질검사를 합니다. 딱 보면 다 보여요.”
▼ 발주처의 반응은 어땠나요.
“당연히 대만족이죠. 품질이 떨어지면 신뢰도 함께 떨어져요. 우리 협력사들은 우리가 짓는 건물에서 한곳이라도 하자가 발생하면 다음에는 함께 일을 못 한다는 걸 잘 알아요. 그러니 내 집 짓듯 노력하는 겁니다. 우리가 공장을 잘 짓는다는 소문이 나니까 삼성, 현대·기아차 같은 대기업 협력업체가 공장을 지어달라고 했어요. 일주일에 3, 4개 공사 문의가 올 때도 있었어요. 그런 일 다 했으면 수천억 벌었죠. 그래도 인근 수원고색산업단지 190개 공장 중에 우리가 14개를 지었고, 다른 경기 남부 산업단지에도 우리가 지은 공장이 꽤 됩니다(웃음).”
▼ 이윤을 남겨야 할 기업이 그런 큰 비즈니스를 마다하다니….
“물론 그렇죠. 그런데 일확천금보다는 고정적인 일감을 확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경험상 저는 우리 직원 23명을 데리고, 하도급사와 함께 1년에 8곳의 공사를 하는 게 딱 맞아요. 무리하게 했다가는 분명 품질에 하자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는 매년 1월 첫째 주말에 하도급사 대표들과 1박2일 워크숍을 한다. 매년 5월 1일 노동절에는 회사 직원들과 1박2일 워크숍을 한다. 또한 매년 4차례 협력업체들을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한다. 모두 ‘함께 잘살자’는 생각에서다. 신년 워크숍에는 협력사 100곳 중 비교적 규모가 큰 회사 대표 40여 명이 참가한다. 지난해 부족한 부분과 새해 업무전략을 공유해 함께 1년 계획을 세우고, 건의사항을 들어보는 ‘소통 워크숍’이다.
공멸 부르는 저가 입찰
김 대표는 “하도급사도 매년 안정적으로 일감을 얻어서 우리와 함께 살아야죠. 하도급사 100곳에 딸린 직원, 가족이 수천 명인데 이들의 생계가 달린 일이니까요.”그의 말마따나 김 대표는 자기 회사와 협력업체가 먹고살 ‘일감’을 구하는 데 집중적으로 에너지를 쏟는다. 관공서 입찰은 물론이고, 신문에서 산업단지를 개발한다는 뉴스를 접하면 누구보다 먼저 실태조사에 나선다. 입주하려는 기업 관계자를 찾아 요구사항을 듣고 회사의 시공 능력을 설명하거나 부동산업체 관계자들로부터 신축공사 정보를 얻는다. 한양대 부동산개발전문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한 것도 실력을 키우고 인적 네트워크를 넓혀 ‘안정적인 일감 확보’의 한 방편이 되고 있다는 게 그의 부연이다.
▼ 건설회사 마진이 얼마나 됩니까. 100억 원짜리 공사를 하면 10억 원은 벌지 않나요.
“거 참(웃음)…. 100억 공사하면 5억 남기도 하고, 2억 남기도 하고 그때그때 달라요. 누구는 400억 공사하면 40억 남는다고 하는데, 잘 모르고 하는 소리죠. 회사 수익률을 계산해보니 평균 3.82%였습니다. 100억 원짜리 공사하면 3억8200만 원 남는다는 얘기죠. 요즘 공장 공사는 마진이 아주 박해요.
건설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입찰을 하면 모든 건설사가 벌떼처럼 달려들어요. 80억 정도 되는 공사 입찰에 느닷없이 60억을 써내는 업체도 있고요. 곧 돌아올 어음을 막으려고 손해를 보더라도 공사 낙찰을 받아 ‘돌려막기’를 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그런 회사는 낙찰받아서 공사를 한다고 해도 하도급사에 제때 공사비를 못 줘요. 그러다 보면 경쟁업체까지 고사(枯死)하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 그럴 땐 어떻게 합니까.
“이해할 때도 있지만, 심할 때는 우리가 나서기도 합니다.”
“벽돌 한 장 80원, 쌓는 데 90원(인건비), 레미콘 한 차(車)당 36만 원, 인건비는 한 차당 8000원 같은 원가 계산이 바로 됩니다. 철골, 미장, 설비, 토목, 조경, 철근, 석고보드, 모래 등등…. 그런 걸 협력사 대표들과 논의 합니다. ‘이번 공사는 마진이 없더라도 입찰하자’고 의견이 모이면 우리가 공사를 따죠. 그러고는 건축주에게 ‘다음부터는 이런 발주하지 말라’고 해요. 대개 무슨 뜻인지 알아들어요. 무리한 저가 입찰은 공멸(共滅)을 부르는 나쁜 행태죠.”
‘성과를 공유해야 한다’는 그의 소신은 봉사활동에도 묻어난다. 김 대표는 국제로타리 3600지구 수지로타리 회장을 지내며 매년 불우 가정 쌀 보내기 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장학금을 지급하고 노인정의 살림을 살핀다. 건설관련법 개정에도 적극 나서 국토교통부 장관 표창, 국회 안전행정위원장 표창, 창조경영인 대상을 받는 등 공사 실적만큼이나 수상 실적도 화려하다. 그는 “바쁘게 일하다 보니 상을 주더라”며 겸손해했다.
‘업자’ 아닌 ‘전문건설인’
▼ 앞으로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나요.“아들이 저를 닮아서인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는데, 중견 건설회사에 취직했어요. 그곳에서 열심히 배워보라고 했죠. 저는 자식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수 있는 정직한 회사, 100년은 지속되는 회사, ‘노가다꾼’이 아니라 국가정책과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전문건설인이 운영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돈만 벌려고 달려드는 ‘업자’가 아니라 내실을 쌓고 함께 성과를 공유하는 우직한 건설인이 돼야죠. 좋은 하도급사가 많이 생겨야 좋은 일자리도 늘고, 그래야 아들 같은 미래 세대가 일할 맛이 나지 않겠습니까.”
▼이경만 공정거래연구소장의 기업 생태계 분석▼
“상생 바탕으로 장기 성장전략 수립해야”
김관교 유선종합건설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2014년 말이다. 그와 종종 사업 얘기를 하다보면, 불공정거래가 만연한 건설업계에서 협력사와 건강한 거래관계를 구축해나가는 게 이채로웠다. 특히 요즘 같은 건설경기 불황일 때는 ‘거래 분쟁’이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하지만 김 대표의 말대로 그의 회사는 불공정하게 보일 만한 거래가 눈에 띄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 사건검색시스템에선 위법 여부가 조회되지 않는다. 이는 공정위가 매년 실시하는 하도급거래 서면실태조사나 직권조사 대상이 될 여지가 없었고, 불공정거래 신고도 없었다는 의미다. 건강한 기업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목할 만한 건 김 대표의 독특한 협력관계관(觀)이다. 특정 공사에서 마진이 적더라도 협력사와 파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게 흥미롭다. 공사를 수주할 경우 미리 수익률이 얼마인지 제시하고 거래관계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비록 수익이 낮더라도 거래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협력사에도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협력사의 물량이 없어지면 협력사의 재무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되도록 물량을 제공하려 노력한다. 장기적인 상생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공사를 수주할 경우 협력사에 돌아갈 이윤과 유선종합건설이 가져가는 이윤을 사전에 공개한다는 점에서 최고의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동안 시대의 화두가 된 ‘이익공유제’를 앞서 실시해온 것이다. 마진이 거의 없어도 꼭 수주해야 할 상황이 발생하면 협력사와 수익률 공개를 통해 참여 여부를 타진하고 최저 마진으로 수주하는 것은 철저한 신뢰관계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거래 문서화, 법률전쟁 대비
이 회사가 더욱 건강한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다음 3가지를 유념하면 좋겠다.
첫째, 협력사와 거래할 때 문서를 철저하게 사용하라는 것이다. 기업은 문서관리 능력만큼 성장하는 법이다. 거래관계에 대한 계약서, 발주서, 현장설명서, 추가공사 확인서 등 모든 거래상의 진행 상황을 기재한 문서를 주고받음으로써 향후 빚어질지 모를 분쟁을 방지할 수 있다. 오해에 의한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문서가 있어 오해를 쉽게 풀 수 있다. 문서는 이해당사자의 기대를 정리한다.
둘째, 지속적인 성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기업이 성장할 때에는 문제가 불거지지 않는다. 분쟁은 건설 물량이 없어질 때 쉽게 발생한다. 따라서 건강한 기업생태계를 구축하려면 결국 기업이 성장해야 한다. 향후 3년 이상을 염두에 둔 기업 성장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셋째, 기업이 성장하고 물량이 많아질 것에 대비해 법률적인 능력을 가진 직원을 보충하라는 것이다. 요즘은 기술전쟁 위에 법률전쟁이 있다. 매출액이 500억 원을 넘어서는 동시에 법률전문가를 통해 업무나 거래 내용을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이런 법률적인 위험에 대비한다면 건강한 기업생태계를 지속적으로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경만 소장은 공정거래위 하도급개선과장·가맹유통과장·소비자안전정보과장,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실 행정관, OECD 대한민국정책센터 경쟁정책본부장, 국민권익위 신고심사심의관을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