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RSU는 오너 일가 승계용 아닌 책임경영 수단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4-04-2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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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직원 성과 N년 후 미래 주식으로 보상

    • 우수 인재 확보, 책임경영 동기부여 강화

    • 기업 지배구조 문제가 RSU 정착 장애물

    국내 상장사 가운데 RSU를 도입한 기업은 지난해 6월 기준 포스코, 두산, 네이버, CJ, 쿠팡, 토스, 위메프, 크래프톤 등 12곳에 이른다. [Gettyimage, 각 사]

    국내 상장사 가운데 RSU를 도입한 기업은 지난해 6월 기준 포스코, 두산, 네이버, CJ, 쿠팡, 토스, 위메프, 크래프톤 등 12곳에 이른다. [Gettyimage, 각 사]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성과보상제도 하나가 최근 산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RSU(Restricted Stock Unit) 제도가 그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양도제한조건부주식이다. 이렇게 풀어놓고 봐도 선뜻 짐작이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RSU는 단기 성과에 따른 현금 보상이 아니라 중장기 성과를 꾸준히 평가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식(자사주)을 성과급으로 임직원에게 부여하는 제도다. 국내 상장사 가운데 몇몇 굵직한 대기업이 RSU를 도입했다가 되레 비판의 대상이 됐다. “현금이 아닌 주식으로 보상한다는 점에서 대기업 오너 일가의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전용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치권에서는 RSU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사회의 의결 사안이 사업보고서 등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되는 만큼 대주주가 RSU를 남용할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는 과도한 해석”이라는 전문가의 지적은 묻혔다. 논란이 커지자 지난해 전격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한 LS그룹은 1년 만에 폐지했다.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변호사)는 이런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기업이 책임경영 아래 적절한 임원 보상 체계를 갖추려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도 편법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되는 순간 규제 허들이 높아진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스톡옵션 지급 대상에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을 제외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스톡옵션보다 강력하고 확실한 보상 체계

    한국상사법학회 회장을 지낸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대기업이라면 무조건 규제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법률은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최근의 논란은 RSU 제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최 교수는 설명한다. 그는 “RSU는 회사 가치를 키울수록 더 보상해 준다는 주주가치 제고 방식을 가장 명징하게 구현한 제도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인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보다 강력하고 확실한 보상 체계”라고 강조했다.



    통상 RSU의 의무 보유 기간은 3~10년으로, 연말연초 당장 현금으로 주는 기존 성과급 제도와 달리 최대 10년간 보유해야 주식을 지급하는 장기 성과보상 제도다. 한 마디로 현금성 보상 대신 회사의 미래 가치를 담보로 주식을 주겠다는 것이다.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스톡옵션과 흡사해 보이지만 RSU는 회사 주식을 직접 지급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스톡옵션은 주식 매수 권리를 부여하는 파생상품 성격이 강한 데 반해 RSU는 보상 이연과 장기성, 연동이 핵심이라는 점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에서는 2003년 마이크로소프트(MS)를 시작으로 애플, 구글, 메타, 아마존 등이 잇따라 RSU를 활용하고 있다. 2022년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기업 중 70%가 이 제도를 보상 체계로 채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RSU는 회사 주식의 장래 가치에 따라 보상 규모가 달라지기에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폐해를 막고 임직원이 회사의 장기 발전을 위해 노력하도록 유도한다. 만약 임직원이 퇴사하더라도 약정 기간을 채워야 주식을 받을 수 있다. 기업 처지에서는 일정 기간 직원들의 근속을 보장받을 수 있다. 장기 성과보상으로 핵심 인재 이탈을 막기 위해 RSU를 도입하려는 기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 가운데 RSU를 도입한 기업은 지난해 6월 기준으로 포스코, 두산, 네이버, CJ 등 굵직한 기업은 물론 쿠팡, 토스, 위메프, 크래프톤 등 정보기술(IT) 기업까지 12곳에 이른다.

    국내 상장사 가운데 최초로 RSU를 도입한 곳은 ㈜한화다. 2020년 ㈜한화와 한화솔루션을 시작으로 현재 한화그룹 상장사 및 비상장사 12곳이 주요 임직원을 대상으로 RSU를 운영하고 있다. RSU를 부여받으면 대표이사급 핵심 임원 이상은 10년, 전무급은 7년, 기타 주요 임직원은 5년간 의무 보유 기간을 거쳐야 한다. 현금 대신 미래 주식으로 받는 만큼 주가가 올라야 5~10년 후 받을 수 있는 보상 규모도 커진다. 임직원은 회사 가치를 제고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한화는 내년부턴 RSU를 전 계열사 팀장급 직원까지 현금 보상 또는 RSU를 택하는 ‘RSU 선택형 제도’를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RSU 도입을 한창 논의하던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한화그룹]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한화그룹]

    회사·주주·임직원 모두에게 긍정적 효과

    “건설 부문에선 중동 지역에서의 플랜트 공사 수주액이 수조 원에 달하곤 했다. 그 공을 치하하고자 회사가 임직원에게 천문학적 성과급을 지급했다. 그런데 시공하면서 수주액보다 공사비가 더 커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금융 부문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파생금융상품 하나가 흥행해 최대 순이익을 달성했고 해당 팀에도 성과급을 지급했다. 이후 시장 상황이 급변하더니 해당 상품이 한순간에 휴지 조각이 됐다. 이러한 사례를 모아 문제 해결 방안을 강구하던 중에 단기 성과에 따라 성과급을 현금으로 지급하기보다 중장기 성과를 꾸준히 검토해 자사주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RSU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대두됐다. 임직원이 주식을 보유하는 동안에는 신의성실의 원칙(권리 행사나 의무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는 민법 원칙)에 따라 업무에 최선을 다하게 되니 기업가치와 주가가 상승해 회사와 주주, 임직원 모두에게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경영자가 내린 의사결정이 기업 경영 성과로 나타나기까지는 긴 시간이 소요되므로 성과 보상을 장기간 이연해 주식으로 지급함으로써 경영자의 성과와 기업의 미래가치, 주주가치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RSU 도입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RSU는 연초 보직 부임 시 지급을 약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올 초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지난해 ㈜한화와 한화솔루션로부터 각각 26만5750주, 19만8149주를 RSU로 지급받은 내역이 공시를 통해 드러나며 김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편법 수단 활용 가능성을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한화는 “2020년부터 20년이 흐른 2040년까지 김 부회장이 실제 취득하는 ㈜한화 주식은 1%대에 불과해 경영권 승계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하다”며 “책임경영 강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RSU가 편법 경영권 확보 수단 아닌 까닭

    그럼에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RSU 본래 취지가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상법 등에 구체적 내용을 규정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RSU 제도의 법적 요건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상장사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에게는 지급하지 못하도록 하고 스톡옵션처럼 주주총회 결의를 거치도록 절차를 명확히 규정하라는 게 골자다. 전문가들은 “지금 우리 사회가 주목할 것은 바로 이 부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RSU 부여 대상과 조건 등에 대해 규제 허들을 첩첩이 쌓는 것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최승재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주식 기반의 성과급은 경영진이 미래 리스크를 짊어진다는 차원에서 현금 성과급보다 높게 책정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자사주 지급이 과도하게 이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행법상 자사주 취득은 배당 가능 이익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최준선 교수는 ‘신주(新株) 제3자 발행 금지 원칙’을 근거로 RSU가 편법 상속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현행 상법 제418조는 “신주 발행 시 원칙적으로 기존 주주에게 배정하고 예외적으로 정관에서 정한 경우에만 제3자에게 신주 배정을 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너가의 경영진은 자기주식만 활용할 수 있는 셈이다.

    “자기주식은 배당 가능 이익 내에서만 취득할 수 있다. 그 취득과 처분은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 공시 사항에 해당하므로 추적과 감시를 받게 된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RSU를 이용한 재벌 편법 상속 우려는 한국의 자본시장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해 하는 소리다. 이런 식의 문제 제기는 반(反)재벌·반대기업 정서를 부추기고 나아가 기업과 국가경쟁력만 저하시킬 뿐이다. 오너가의 경영인에게만 현금으로 보상해야 한다면 되레 그것이 특혜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RSU를 도입하면 회사가 자사주 비율을 높게 유지할 수 있다. RSU는 자사주 취득은 경영권 방어나 주가 부양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 최준선 교수는 “경영진이 꾸준히 자기주식을 취득해야 하니 주주가치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LS그룹 용산 본사. LS그룹은 지난해 도입한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제도를 1년 만에 폐지하기로 했다. [LS그룹]

    LS그룹 용산 본사. LS그룹은 지난해 도입한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제도를 1년 만에 폐지하기로 했다. [LS그룹]

    공시 통해 투명하게 투자자와 소통해야

    물론 현금이 아닌 주식으로 보상한다는 점에서 RSU가 대주주에게 유리한 측면도 일부 있다. 그러나 편법 승계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항변한다. 한화는 “김 부회장은 다른 최고경영자들과 동일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RSU를 받았다. 실제 김 부회장이 지난 4년간 ㈜한화로부터 부여받은 RSU 규모는 지분으로 따지면 0.35%에 그친다. 만약 김 부회장이 경영권 강화를 목적으로 했다면 RSU보다 바로 현금을 성과급으로 받아 지주사 주식을 매입하는 것이 더 유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최승재 교수는 “근거가 약한 부작용을 우려해 RSU가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원천 봉쇄하는 식으로 기업을 규제하면 득보다 실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에서 RSU 정착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애물로 기업의 지배구조를 지목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이 지배구조 문제를 혁신하고 노력하지 못한 걸 문제로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기업 지배구조를 재벌의 경영권과 동일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경영권 방어기제가 없다 보니 재벌은 일정 수준의 지분을 지키는 식으로 경영권 확보에 열을 올린다. 금융당국은 재벌의 지배력 확장 억제에 골몰한 채로 관련 제도를 다루니 유능한 신흥 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 그럴수록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지난해 말 금융감독원은 공시 서식을 개정해 주식 기준 보상 관련 정보가 투자자에게 충분히 공시될 수 있도록 의무화했다. 최승재 교수는 이에 대해 “바람직한 조치”라며 “부패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햇살을 비추는 것이란 말처럼 기업은 공시를 통해 지급 요건을 구체화하는 등 기준에 맞춰 투명하게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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