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에서는 사시사철 즐길 수 있는 크고 작은 문화 행사가 열린다. 5, 6월에 페스트보헨이라는 공연예술 축제가 열리는데 세계 각국의 고전오페라, 연극, 발레, 연주회 등을 즐길 수 있다. 1993년부터 에이즈 퇴치 기금을 모으기 위해 열리는 무도회인 ‘라이프 볼(life-ball)’도 봄철에 열리는데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행사의 개막식 때는 티리 머글러, 장 폴 고티에, 파코 라반, 비비엔 웨스트우드 등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들이 참여하는 패션쇼가 열리고 행사중에는 기괴한 복장을 한 사람과 우아한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이 등장해 관람객들의 시선을 끈다.
여름철에는 대극장들이 공식적으로 문을 닫는다. 그러나 빈 필름 페스티벌 외에도 옛 명화를 야외의 대형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팝 필름 페스티벌, 전세계 재즈 애호가들의 축제인 빈 재즈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다. 지난해에는 루이 암스트롱이 태어난 지 100주년을 기념해서 지미 스캇, 조지 벤손 등 유명한 재즈 연주가들이 참석했다.
가을에는 오페라하우스 같은 유명한 극장들이 긴 여름 휴가를 마치고 문을 열면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의 연주회가 열린다. 9월부터는 빈 소년 합창단이 매주 일요일마다 공연을 한다. 10월 중하순경에는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비엔날레 영화제가 열린다. 모던댄스페스티벌도 볼 만하다. 겨울철에는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아 빈 필하모니 등의 각종 연주회가 펼쳐진다.
빈에서는 이런 큰 행사 외에도 다양한 문화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벤트가 벌어진다. 지난 8월24일 저녁 빈 중심에 있는 슈테판 대성당에서 가까운 자그마한 교회에서는 빈대 출신인 파이프오르간 연주자와 트럼펫 연주자가 바흐와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음악을 연주했다. 대부분의 감상자들은 40대 이상의 중년이었지만 20대도 섞여 있었다.
오락적인 연주회도 열린다. 17, 18세기 귀족풍 헤어스타일과 옷차림을 한 판촉사원들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연주회 표를 파는 것은 관광객이 붐비는 곳마다 발견할 수 있다. 곳에 따라서는 저녁식사를 즐기고 우아하게 왈츠를 출 수 있는 곳도 있다.
슈테판 대성당 주변에서 연주하는 ‘거리의 음악사’들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을 붙잡는다. 도보 관광에 지친 관광객이나 이곳에서 약속한 빈 시민들은 도로 곳곳에 있는 벤치와 야외 식당 의자에 앉거나 주변에 서서 이들이 연주를 즐긴다. 연주가 끝나면 박수를 치고 몇 푼의 ‘성금’을 연주자들에게 기부한다. 이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자세히 지켜보면 흥미롭다. 약간 서툴긴 해도 자신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앰프에서 나오는 반주에 맞춰 바이올린이나 플루트 등을 연주하는 사람, 아예 앰프에서 나오는 연주에 맞춰 흉내만 내는 사람이 있는데 마지막 유형의 연주 모습이 가장 그럴듯하다. 상당한 연습을 한 것으로 보인다.
빈의 매력은 도시 중심부 전체가 ‘예술작품’이라는 데 있다. 앞에서 말한 도나우인젤 한가운데 서서 좌우를 둘러보면 흥미로운 풍경를 발견할 수 있다. 왼쪽을 둘러보면 강 건너로 유엔 기구 건물 등 현대적인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고층건물은 전혀 보이지 않고 고풍스런 건물의 돔만 눈에 띈다.
이 지역이 바로 빈의 중심부다. 이 지역 안에 있는 궁전, 교회, 관청, 주택 등 건물들은 바로크 양식, 고딕 양식, 유겐트슈틸 양식 등 17, 18세기의 다양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지역 전체가 거대한 역사박물관인 셈이다. 빈 시청은 이런 전통적인 모습이 훼손되지 않게 하기 위해 건축 규제를 가하고 있다. 빈시의 중심에서부터 일정한 동심원을 그리며 건축물의 고도를 제한하는 것이다.
빈 시청 관계자의 말이다.
“만약 새로운 건물을 짓게 되면 시민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납니다. 한쪽에서는 빈시의 옛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축 허가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시의 발전을 위해서 건축 허가를 내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대로 유지하자는 쪽이 이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빈 시민들이 옛것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옛것과 새것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 결실 중 하나가 바로 뮤지움스콰르티어(Museums Quartier). 이곳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미술사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의 가운데 광장을 지나 내려가면 마주치는데 예전에 왕실 사람들이 승마를 즐기고 마부들이 기거하는 곳이었다. 주위의 웅장한 건축물에 비하면 외양은 보잘것없지만 이제는 빈 문화예술의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되고 있다. 지난 5월에 1차 오프닝 행사를 끝내고 9월 중순에 2차 오프닝 행사를 열기 위해 옛 건물을 보수하고 새로운 현대식 건물을 짓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이곳에는 미술 작품 전시공간, 어린이 문화센터, 작가의 창작실, 레스토랑, 매점 등이 들어서 있거나 들어설 예정이다.
뮤지움스콰르티어 관계자는 “예전에는 이 건물이 학생들의 놀이터로 방치되었으나 이제는 빈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종합적인 문화 복합센터로 변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1998년에 시작돼 2002년 여름에 완성되는 이 프로젝트는 오스트리아 연방정부가 16억실링을 내놓고 빈 시청이 4억실링을 투자했다.
이외에도 빈시는 예술가들의 창작열을 북돋우기 위해 매년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빈시의 문화행사 지원 담당자인 실비아(31) 씨는 “우리는 매년 15만~20만달러를 지원한다. 개인이든 단체든 문화행사를 하겠다고 하면 심의위원회에서 공정한 심사를 거쳐 지원한다”고 말했다.
빈이 살기 좋은 셋째 이유로는 ‘편하고 안전한 도시’라는 점을 꼽는 사람들이 많았다. 살기에 편하다는 것은 우선 시민들의 휴식공간과 시간이 충분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빈 시민들은 ‘그린(green) 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인공섬인 도나우인젤을 비롯해서 빈시 북서쪽에 있는 그린 벨트 지대인 빈발트(빈숲), 그리고 빈시 동남쪽에 있는 국립공원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이외에도 빈 곳곳에는 공원과 정원이 널려 있다.
원활한 교통, 깨끗한 수돗물, 맑은 공기, 안전한 치안 상태, 저렴한 교육비 등도 빈의 매력을 더하게 한다. 지하철, 전차, 버스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30분 이내에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수돗물에 석회질이 많아 생수를 사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는 산악지대의 호수에서 깨끗한 물이 파이프라인을 통해 가정에 전달되기 때문에 그대로 마실 수 있다. 호텔 화장실에서 직접 수돗물을 마셔본 결과 석회 냄새나 화학약품 냄새는 나지 않았다.
빈의 공기가 맑은 것은 매연을 뿜어내는 공장이나 차량이 다른 나라의 대도시에 비해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염된 공기를 몰아내는 바람과 대기를 맑게 하는 빈 주변에 펼쳐진 숲 덕분이다.
하루종일 시내를 돌아다녀도 와이셔츠 깃은 그다지 더러워지지 않았다. 빈은 밤늦게 인적이 드문 공원이나 시내 거리를 돌아다녀도 불안하지 않다. 경찰이 눈에 띄지는 않지만 문제가 발생하는 즉시 출동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빈에는 빈 대학교를 비롯한 종합대학교와 단과대학들이 있다. 교육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국가가 부담했다. 그러나 대학생들에 대한 혜택이 많아 학생 신분을 계속 유지하며 특혜를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올해부터 한 학기당 5000~1만 실링을 받는 곳이 있다고 한다.
초중등교육은 공립학교와 사립학교가 있는데 사립학교 교육비는 우리나라 사립 초등학교 수준과 맞먹지만 공립학교는 모든 것이 무료다.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다. 김종민씨의 부인 정형미씨의 말이다.
“큰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담임교사가 학부모를 초청하기에 갔더니 깜짝 놀랐어요. 부모가 모두 참석했어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학부모들이 각자 50실링(4000원)씩 모아 선생님께 선물을 해요. 부담도 되지 않고 좋았어요.”
유럽대륙 한가운데 있는 빈에서는 여름철이 되면 시민들이 지중해가 있는 그리스 해안 도시로 가서 피서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도나우강에서 수영이나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겨울철에는 전국민이 스키와 스케이트를 즐기는데 계절과 무관하게 축구와 승마도 즐긴다. 빈의 많은 댄스학교들이 카니발 기간 동안 무도회를 개최한다. 그러면 남녀 노소가 화려한 의상을 입고 참석하는데 오페라무도회가 가장 큰 행사다. 댄스학교에서는 왈츠 등의 고전 댄스뿐 아니라 다양한 현대 댄스도 배울 수 있다.
빈은 우아한 품위를 유지하며 문화생활을 즐기려는 중년들이나 가족들에게 좋은 공간을 제공해준다. 청소년 중심의 대중문화 외에는 향유할 것이 없는 한국에 비해 빈은 40대 이상의 중년들이 옛 낭만과 추억을 간직할 수 있도록 도시 전체가 항상 준비돼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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