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 라덴은 살아 있다
미국의 엄청난 물량 공세에도 빈 라덴의 대미 항쟁조직 알 카에다(우리말로는 ‘기지’ 또는 ‘근거지’)는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지난 5월12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미국인 8명 포함, 35명 피살), 나흘 뒤인 5월16일 모로코 휴양도시 카사블랑카에서 잇따라 터진 폭탄테러(41명 피살)는 빈 라덴과 알 카에다의 존재를 다시 한번 세상에 드러냈다.
그 무렵 빈 라덴의 측근이자 알 카에다의 2인자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이집트 의사 출신)는 아랍 TV에 공개된 녹음 테이프를 통해 “여러분의 형제들인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은 적들을 뒤쫓고 있으며, 그들을 습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 앞으로 며칠 안에 여러분의 다친 마음을 치유해줄 좋은 소식이 전해질 것”이라고 말했고 곧 사실로 드러났다.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는 지구촌 사람들의 반전 논리 가운데 하나는 “이라크전쟁이 중동지역의 안정보다는 반미 정서를 자극함으로써 지역 불안을 높이고, 알 카에다를 비롯한 과격 이슬람 집단의 대미 지하드에 불을 지필 것”이란 우울한 전망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현실은 그런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이 현상금 2700만달러를 내걸고 잡으려 안달하는 빈 라덴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현재 미 정보당국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벌이는 공작의 초점은 빈 라덴과 알 카에다의 핵심 간부 검거에 모아진다. 이들이 숨어 있으리라 추정되는 곳은 아프간-파키스탄 접경지대 마을들이다. 특히 발루치스탄 지역 산간마을 일대는 지난날 탈레반 정권의 지지기반이었던 아프간 파슈툰족이 많이 살고 있어, 알 카에다가 숨기엔 비교적 안전한 곳이다.
현재 미군 특수부대 요원들은 이 일대의 의심스런 ‘안전가옥’들을 뒤지고 빈 라덴이 움직일 만한 길목에서 잠복근무를 하고 있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하다. 빈 라덴 일당 검거에 나선 것은 미 CIA 현지공작팀만이 아니다. 파키스탄 정보부(ISI)와 현상금을 노린 현지인 ‘사냥꾼’들도 눈에 불을 켜고 있다. 그러나 알 카에다 하급 간부와 추종세력으로 여겨지는 몇몇 혐의자들만 붙잡았을 뿐이다.
만일 미 CIA 현지공작팀이 빈 라덴이 숨은 가옥을 찾아내 포위할 경우 그를 생포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 확률이 매우 낮다고 판단한다. 무엇보다 미국이 빈 라덴의 생포를 바라지 않는다. 그가 미국으로 압송돼 감옥에 갇히거나 법정에 설 경우, 부시 행정부로선 여러 가지로 달갑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빈 라덴에 대한 관심의 눈길이 쏠릴 뿐더러, 이슬람 테러 행위를 더욱 자극할 것이다. 더욱이 빈 라덴이 법정에 선다면, 그는 ‘내가 왜 대미 지하드를 벌여야 했는가’를 주제로 통렬한 비판 발언을 토해낼 것이다.
아울러 1980년대 미 CIA가 자신에게 무기와 돈을 대주면서 아프간 내전에서 옛 소련군에 맞서도록 했다가, 1980년대 말 옛소련군이 물러나면서 지정학적 이용가치가 떨어진 아프간을 버리고 떠났던 비화들을 공개할 것이다. 이는 미국으로선 가리고 싶은 부분이다. 따라서 미국은 빈 라덴의 생포보다는 사살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를 생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