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퍼스턴 호수 주변에 위치한 고급주택들. 밀턴 케인스에는 이처럼 그림 같은 풍경이 즐비하다.
차에서 내려 동네를 한바퀴 둘러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을과 도로 사이가 울창한 숲이어서 도로변에서는 집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세계적인 ‘생태도시’ 밀턴 케인스(Milton Keynes)는 바로 그런 곳이다.
밀턴 케인스는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80여km 떨어진 곳에 있는 인구 약 20만명의 계획도시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천안쯤에 해당하는 곳으로, 영국 제2의 도시 버밍엄과 런던을 잇는 M1고속도로에 인접해 있어 접근성이 뛰어난 도시다.
한적한 농촌이었던 이곳에 개발의 삽질이 시작된 것은 지난 1967년.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은 대도시 과밀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신도시를 개발키로 하고 1946년 신도시법을 제정했다. 그후 영국 정부는 신도시 예정지구를 고시하며 본격적인 개발에 나섰다. 밀턴 케인스는 그렇게 개발된 32개 신도시 중의 하나인데 영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성공한 신도시로 꼽힌다.
밀턴 케인스의 총면적은 약 9000ha. 서울 여의도의 30배, 축구장 2만2000개 정도의 넓이다. 이 넓은 땅을 살기 좋은 생태도시로 만들기까지 30여 년이 걸렸다. 우리네 신도시가 개발 고시에서 건축까지 불과 4, 5년밖에 걸리지 않은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느린 속도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개발했기에 그처럼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그 이유는 단 하나, ‘인간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Clean Green Safe’
밀턴 케인스에서 며칠만 지내보면 모든 것이 시민 위주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쾌적하기 이를 데 없는 주거환경에서부터 도로, 쇼핑시설, 행정기관 등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환경친화적이라는 점이다.
원래 밀턴 케인스는 낮은 구릉지대였다. 울창한 숲, 맑은 호수가 곳곳에 자리한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던 것. 밀턴 케인스개발공사(MKDC)는 이 같은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리면서 도시를 건설키로 했다. 풍광 좋은 야산을 까뭉개 평평하게 대지를 조성한 뒤 성냥갑 같은 아파트를 짓는 우리네 신도시와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MKDC는 수백 년 된 나무와 숲, 늪지 등을 가급적 원형대로 보존키로 했다. 숲을 피해 주택과 건물을 짓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투리 땅이 많이 생기는 등 토지의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간적인 도시’ 건설이라는 대명제 앞에서는 어떤 예외도 인정될 수 없었다. 1970년대 초부터 밀턴 케인스 개발에 참여했던 몬포트대학의 머빈 도비아 교수는 밀턴 케인스 개발의 3대 목표는 ‘Clean Green Safe’였다고 말한다. 이 세 가지는 모든 신도시 개발의 원칙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밀턴 케인스는 도시의 22%가 공원 또는 잔디밭이다. 여기에 주택가 근처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숲을 더하면 녹지 면적은 배 이상 치솟는다. 가히 생태도시다운 주거환경이다. 이들 녹지는 파크 트러스트(Park Trust)라는 기구에서 관리하며 비용은 이 회사가 보유한 부동산 임대 수입으로 충당한다. 녹지 관리에 시민의 세금은 한푼도 쓰지 않는다니 밀턴 케인스 시민들은 공짜로 푸르름을 향유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이나 공장을 도시 전체에 골고루 분산시킴으로써 집중화에 따른 환경 훼손을 막은 것도 돋보이는 점이다. 또 공해 유발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유치하지 않음으로써 깨끗한 자연환경을 보존했다. 현재 밀턴 케인스에는 500여 개의 외국계 기업이 들어와 있는데 거의 대부분이 이른바 ‘클린 인더스트리’다. 회사 건물도 주변 환경과 잘 조화되도록 지어졌다. 대부분이 2, 3층이고 곳곳에 아름드리 나무와 정원이 있어 회사 건물인지 주택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