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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학교는 이렇게 다르다

시험·교과서 없어요, 실용·통섭은 넘쳐요

영국 학교는 이렇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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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에 산딸기 씻어 먹는 하굣길

영국 학교는 이렇게 다르다

아이들이 등하교 때 오가는 학교와 집 사이의 산딸기 숲. 가끔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여우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학교 문이 늘 잠겨 있다는 사실이 좀 이상하게 여겨졌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보안 문제를 생각해보면 영국 학교 시스템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험한 세상에 낯선 이가 아이들만 있는 학교에 불쑥 들어가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요약하자면, 영국에는 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에 있든 집에 있든 반드시 어른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하교 때도 마찬가지다. 4학년,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 열 살이 될 때까지는 학부모가 하교하는 아이를 반드시 데리러 와야 한다. 처음에는 매일 오후 3시에 희찬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는 게 큰일이었는데, 요즘 머리가 좀 커진 희찬이는 친구들과 함께 집까지 걸어오면 된다며 엄마를 학교에 못 오게 한다.

희찬이가 굳이 엄마를 나오지 못하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코너 숍’이라고 하는 구멍가게가 하나 있어서 거기서 친구들과 10펜스, 20펜스쯤 하는 불량식품 사먹는 재미에 맛을 들인 것이다. 아이들 주먹보다 조금 작은 캐러멜이나 이른바 ‘쫀득이’라고 불리는 젤리 등 한국의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들과 종목도 비슷하다. 희찬이는 매일 오후 3시 반쯤이면 이런 젤리를 하나 입에 물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들어선다. 단짝 친구인 스튜어트를 데리고 올 때도 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 사이에는 숲으로 난 지름길이 있다. 이 숲에는 가끔 여우도 출몰하고 여름이면 산딸기가 지천으로 열린다. 희찬이 말로는 아이들과 함께 가끔 산딸기를 따먹는데 그 맛이 그렇게나 기막히단다.



“아니, 산딸기를 그냥 먹어? 씻지도 않고?”

내가 놀라 물어보니 희찬이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냐. 산딸기를 어떻게 그냥 먹어. 빗물에 씻어 먹으니까 걱정하지 마.”

“뭐? 빗물? 빗물에 어떻게 씻어 먹는다는 말이니?”

“응. 애들 다 그렇게 먹던데? 스튜어트는 목 마르다면서 빗물도 그냥 꿀떡꿀떡 마셨어.” 아아. 과연 괜찮을까….

이렇게 오빠가 학교 다니는 모습을 옆에서 본 희원이는 나름 학교에 대한 기대가 컸다. 희원이는 뭐든 오빠에게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오빠처럼 학교 가서 친구들 사귀고, 산딸기도 따먹고, 교복도 새로 사야겠다 하고 다짐을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학교에 들어가면 그토록 바라던 발레 클래스도 데려가주고 피아노 레슨도 시켜주기로 약속했으니 이래저래 학교를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아무튼 희원이는 ‘에이그. 저 콩알만한 것을 어떻게 학교에 보내나’ 하는 내 걱정을 보기 좋게 배반하고 너무도 씩씩하고 의젓한 모습으로 학교엘 갔다. 사실 나는 등교 첫날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희원이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까지 찔끔거렸는데 말이다. 그리고 입학한 첫 주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착한 어린이’에게 주는 사과 스티커를 못 받았다고 엄청 속상해하더니 두 번째 주 금요일에 보란 듯이 사과 스티커를 받아와서는 제 방문에 척 하니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값싼 종일반 유치원을 찾아라

사실 희원이가 학교에 가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지난해 가을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 그러니까 2009년 봄부터 나는 아이들의 영국 학교 진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가는 희찬이는 바로 초등학교 4학년에 진학해야 했다. 영국의 초등학교는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3시에 끝난다. 그러면 희원이는? 만 4세인 희원이는 아직 취학 연령이 안 돼 학교에 갈 수 없고 너서리(Nursery)라고 하는 유치원에 가야 했다.

문제는 이 유치원들의 학비가 대부분 너무나 비싸다는 데 있었다. 한국식 ‘종일반’은 한 달에 100만원쯤이나 했다. 세상에! 강남의 영어유치원도 아닌데 유치원비가 100만원이 뭐야? 영국은 복지정책이 워낙 잘돼 있는 나라니까 유치원비 정도는 걱정할 게 없겠지 하고 생각했던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희원이도 영국 초등학교에 바로 진학할 수 있을 줄로만 알고 있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영국 초등학교에는 ‘리셉션’이라는 입학 전 준비 과정이 있고, 리셉션에는 취학 1년 전인 네 살짜리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다. 리셉션 과정의 학비는 무료이고 초등학교와 똑같이 오후 3시에 끝난다. 그러면 희찬·희원이가 학교에 있는 오후 3시까지는 내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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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경│작가 winni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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