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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학교는 이렇게 다르다

시험·교과서 없어요, 실용·통섭은 넘쳐요

영국 학교는 이렇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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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발전 사이

영국 학교는 이렇게 다르다

킬러먼트 초등학교 놀이시설에서 놀고 있는 희찬이. 뒤로 보이는 잔디밭이 학교 운동장이다.

그리고 시험도 없기 때문에 더더욱 부모가 아이의 성적을 파악하기는 힘들다(잉글랜드 초등학교는 6학년 때 일제고사를 치르지만 스코틀랜드는 일제고사가 없다. 더구나 잉글랜드 교원노조가 일제고사를 맹렬히 반대하기 때문에 잉글랜드의 일제고사도 폐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성적표가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희찬이는 외국인 학급을 다니다 킬러먼트 초등학교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까지 성적표를 받아온 적이 없다.

‘교과서가 없다’는 점은 영국 초등학교 교육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교과서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업은 교사의 재량껏 이뤄진다. 생각해보면 한국 학교에서는 교과서 진도를 나가고, 그 진도에 맞춰 시험을 치르는 것이 학교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영국 학교는 이런 부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그때그때 독창적인 수업이 이뤄진다.

예를 들면 지난 봄에 아이슬란드 화산이 폭발해서 유럽 전역의 항공 교통이 마비됐을 때 희찬이의 초등학교에서는 2주일에 걸쳐 ‘화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즉 화산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원리로 폭발하게 되는지를 실험해보며 과학 수업을 하고, 화산이 폭발한 나라인 아이슬란드의 역사와 아이슬란드를 탐험한 바이킹의 이야기를 배우며 자연스레 지리와 역사 공부를 하고, 신문지와 물감으로 화산 모형을 만들며 미술 수업도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니 아이들 처지에서는 학교 다니기가 참 재미있을 것 같다. 희찬이가 학교 다니는 모습을 가만 보면 어떤 때는 이 녀석이 학교에 공부하러 가나, 놀러 가나 헛갈릴 정도다. 아침마다 빈 가방에 물병과 점심값이 든 지갑, 그리고 필통과 노트 한 권만 넣고 달랑달랑 흔들며 학교에 가니 말이다.



가을이 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요즘, 희찬이는 학교에서 한 주일짜리 숙제를 세 가지 받아왔다. 첫 번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해가 지는 시간과 동네 가로등이 켜지는 시간을 기록하는 것. 두 번째는 맑은 날 밤, 자기 방 창문에서 보이는 밤하늘과 동네 모습을 스케치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1주일 동안 매일 변하는 달의 모습을 관찰해 그리는 것이다. 어찌 보면 대단히 목가적인 숙제이고, 또 어찌 보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지구과학에 대한 흥미를 유도하는 숙제이기도 하다. 희찬이는 저녁 7시부터 한 시간 이상 가로등 켜지는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며 창문에 달라붙어 있었다. 저녁 8시5분쯤 해가 졌고, 정확히 5분 후인 8시10분에 가로등이 켜졌다.

이런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가 하면 수학 같은 과목은 우열반이 편성되어 같은 학년도 각기 다른 클래스에서 수업을 듣는다. 한국 어린이들은 영국 학교에서 단연 ‘수학 천재’로 두각을 나타내는데, 희찬이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수학은 5학년 중 가장 수준 높은 반에서 수업을 듣는다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자기는 두 자릿수 곱셉과 나눗셈을 다 하는 건 물론이고 약분과 통분도 척척 하는데, 같은 반 아이들은 이제 겨우 분수와 소수의 원리를 배우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엄마, 그래서 애들이 나 수학이랑 미술 다 잘한다고 부러워해. 애들이 나더러 아티스트라고 칭찬해줘.”

영국 학교는 이렇게 다르다
전원경

1970년 출생

연세대, 런던 시티대 대학원(석사) 졸업

월간 ‘객석’, ‘주간동아’ 기자

저서 :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짧은 영광, 그래서 더 슬픈 영혼’ ‘역사가 된 남자’ 등

現 영국 글래스고대 문화정책 전공 박사과정 재학 중


아마도 이건 한국 어린이들과 영국 어린이들의, 아니 한국인과 영국인의 주요한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는 무언가를 잘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과 질투를 동시에 느끼면서 ‘나도 열심히 해서 저만큼 잘해 봐야지’ 하고 노력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반면 영국에서는 무언가를 특출나게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순수하게 칭찬해준다. ‘나도 열심히 해서 저만큼 잘할 거야’ 같은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 듯하다. 뛰어난 사람에게는 뛰어난 사람의 삶이 있고, 내게는 나의 삶이 있다는 식의 개인주의적 태도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그만큼 행복해질 수 있지만 또 반대로 그만큼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작다는 점, 이 점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나타나는 영국 사회와 한국 사회의 큰 차이점이 아닌가 싶다.

신동아 201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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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경│작가 winnieje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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