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호

전폭기 900대 48시간 맹폭 바그다드에 숨을 곳 없다

이라크전쟁 공습전략 A to Z

  • 글: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입력2003-02-25 15:1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미국은 이라크전쟁 발발시 초반에 대규모 공습으로 일찌감치 승패를
    • 가를 태세다. 미군의 공습전략 개념은 ‘충격과 두려움’이다.
    • 아프간전쟁에 이어 이라크에서도 많은 민간인 희생자들이 생겨날 전망이다. 현대전에서 공습이 지닌 몰인간적 의미를 가늠해본다.
    전폭기 900대 48시간 맹폭 바그다드에 숨을 곳 없다
    ‘충격과 두려움(shock and awe).’

    이는 미 펜타곤(국방부) 지도부가 세워놓은 이라크전쟁의 기본 작전개념이다. ‘신동아’ 2003년 2월호 ‘이라크전쟁 시나리오’ 기사에서 살펴본 펜타곤 내부의 여러 가지 이라크 침공계획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대규모 공습으로 전쟁의 포문을 연다는 것이다. 수백 대의 전폭기와 페르시아만 정박 군함들로부터 한꺼번에 발사된 미사일들이 이라크 통신시설과 방공망 등 주요 군사시설들을 강타하면서 사담 후세인의 지휘체계를 마비시킨다는 게 단기적 목표다. 그럴 경우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인 이라크 지휘부는 “이번 전쟁에서 우리가 질 것”이란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될 것으로 미 군부는 예측한다.

    펜타곤과 미 중부군사령부는 개전 48시간 안에 800발의 크루즈 미사일을 포함, 3000여 발의 정밀유도 폭탄을 우박처럼 퍼부을 계획이다. ‘충격과 두려움’ 전략에 따라 후세인의 방어의지를 전쟁 초반에 아예 꺾고, 이라크군의 사기를 결정적으로 떨어뜨려 후세인 체제로부터의 이탈을 가속화시킨다는 의도다. 주요 과녁을 이라크 방공망과 통신체계, 즉 후세인의 지휘체계 마비에 둔다는 전술이다. 대규모 공습은 미 지상군이 바그다드에 쾌속 진입하기 위한 ‘고속도로 닦기’의 성격을 지닌 것이기도 하다.

    작전명 ‘충격과 두려움’

    이라크전쟁은 공습만으로 승리를 거둔 코소보전쟁과는 성격이 다르다. 지상군 투입 없이 후세인 체제를 붕괴시키긴 어렵다. 그러나 ‘충격과 두려움’ 작전에 바탕한, 초반 대규모 공습으로 지휘체계가 마비돼 일단 이라크군의 전투의지가 꺾인다면, 상당수 병력이 투항할 것이고 이는 후세인 체제의 조기 붕괴로 이어지리라는 판단을 미 군부는 내리고 있다.



    이라크전쟁 초기 공습을 맡을 미 항공기들은 쿠웨이트와 카타르를 비롯한 걸프지역 미 군사기지에서 발진할 전폭기 500여 대(터키정부가 양해할 경우, 터키 서부 이라크 국경지대 기지에서 발진하는 전폭기 포함)와 페르시아만 지역에 배치된 5척의 항공모함에서 발진할 해군기 400여 대다(항공모함은 통상 80대의 항공기를 탑재한다).

    펜타곤이 세워둔 이라크전쟁 공습전략을 풀이하면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이라크를 초전(初戰)에 제압한다”는 것이다. 펜타곤의 한 관리는 미 방송 CBS와의 인터뷰에서 “바그다드에 안전한 곳이란 없을 것”이라 말했다. 한마디로 이번 공습은 “전에 들어본 적도 없고 생각도 못해본” 엄청난 규모로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다. 후세인은 1991년 걸프전 때나 1998년 유엔무기사찰단이 철수한 뒤 개시된 ‘사막의 여우(Desert Fox)’ 공습작전에서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번 이라크전쟁 공습은 그 강도가 다를 것이다. 후세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그건 바로 이 공습에 따른 사망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런 정보를 흘리는 것이 단지 후세인을 겁먹게 만들어 미국이 목적한 바를 손쉽게 이루려는 의도 아니냐는 분석도 가능하다. 19세기 프러시아의 군사전략가였던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명저 ‘전쟁론’에서, 전쟁이란 “우리의 의지를 적(敵)에게 관철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에 따르면 전쟁은 곧 정치행위다.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유효한 군사적 수단이 전쟁이라는 것. 전쟁을 벌이지 않고 적에게 정치적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바람직한 일이다. 미국이 전쟁을 벌이려는 명분은 후세인 체제 전복과 대량학살무기의 제거다. 만일 후세인이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난다면, 미국은 굳이 전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라크 당국은 “이라크 침공을 앞둔 미국의 심리전”이란 반응을 보이며 후세인 망명설을 일축한다. 그러면서 결전의지를 다진다. 1월말 후세인은 이라크 전군 고급지휘관들을 바그다드 대통령궁으로 불러모아 결사항전을 다짐했었다.

    걸프전에서 39일간, 코소보전쟁에서 78일간 공습이 있었던 데 비해, 미 군부는 이라크전쟁의 공습기간을 일주일쯤으로 전망한다. 걸프전에서는 사막의 악천후, 코소보전쟁에서는 악천후와 함께 유고(세르비아)군의 정교한 대공망이 미 전폭기 조종사들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작전 기일도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늘어났다. 그러나 이라크전쟁에서 한층 개량된 무기와 첨단장비로 ‘충격과 두려움’ 작전개념에 따라 초반 맹폭에 나선다면, 이라크군의 대공망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을 것으로 펜타곤은 내다본다.

    ‘충격과 두려움’ 전술개념은 1990년대 초부터 펜타곤 장성들의 지지를 얻어왔다. 이 작전개념을 다듬는 국방부의 한 태스크포스팀에 참여했던 할란 울만(워싱턴 전략국제문제센터 연구원)에 따르면, 이 개념의 뼈대는 되도록 미 지상군 투입을 줄이면서 대규모 공습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것이다. 이 전술개념은 1999년 코소보전쟁 당시 도널드 럼스펠드를 포함한 4명의 전 미 국방장관들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도 나타난 바 있다(럼스펠드는 제럴드 포드 행정부 시절인 1975∼77년 최연소 국방장관을 지냈다). 이 편지에서 럼스펠드는 코소보전쟁에서 공습을 한다면, ‘충격과 두려움’ 작전개념에 바탕해 단기간에 대규모로 압도적 화력을 퍼부어야지, 베트남전쟁 때처럼 조금씩 마지못해 화력을 늘려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코소보전쟁(1999년)은 미국이 지상군 투입 없이 이긴 최초의 전쟁으로 기록된다. 그 전까지만 해도 대다수 군사전문가들은 “공습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지상군을 투입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공습이 적군의 전투력을 약화시키고 사기를 떨어뜨리기는 하지만 적군을 점령지로부터 몰아내려면 궁극적으로는 지상군이 투입돼야 한다는 논리가 대세를 이뤘다.

    이를테면, 공중전 전문가 로버트 페이프(미 다트마우스대 교수)도 그의 책 ‘승리를 위한 폭격(Bombing to Win, 1996년판)’에서 공습만으로 전쟁을 이길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코소보전쟁에서 승리한 뒤 페이프는 자신의 이론을 수정했다. “미국 병사들의 인명 손실 없이 우리는 크루즈 미사일로 적군을 제거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미 공군의 세상이 될 것이다.” 그는 또한 미군이 코소보전쟁에서는 공습에 100%, 걸프전에서는 공습 50% 지상군 50%에 의존했지만 이라크전쟁의 경우 공습 80% 지상군 20%로 치러질 것으로 내다본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신념

    ‘충격과 두려움’ 개념의 공습 위주 전략이 미 군부에서 설득력을 얻은 것은 1990년대 초 걸프전 이후부터다. 지상군의 피해를 가능한 한 줄이고 아울러 적을 모두 섬멸해야 하는 소모전(attrition warfare)에서 이른바 전격전(blitzkrieg)으로 승패를 빨리 결정하려면, 공습이 유효하다는 인식이 높아졌다. 이 논의를 받쳐주는 논리적 바탕은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의 원폭 투하다. 일본인들은 전폭기 500대가 야간공습한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온 원폭 투하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은 항복했고, 일본 본토 상륙작전이 치러질 경우 필연적인 미군 병력의 희생을 덜었다. 핵무기가 아닌 재래식 무기로 그같은 충격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할란 울만 같은 미 군사전문가들이나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거둘 수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럼스펠드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이라크를 손봐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1998년 1월 그는 리처드 아미티지(현 국무부 부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