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호

교회냐 골프냐, 일요일 새벽의 고민

이인호 LG애드 대표이사 사장

  • 글: 이인호 LG애드 대표이사 사장

    입력2003-02-25 16: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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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냐 골프냐, 일요일 새벽의 고민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 다시 고민이 시작된다. 교회에 나갈 것이냐 필드에 설 것이냐. 육신의 기쁨을 쫓아 필드에 서자니 내 손을 꼭 부여잡던 목사님의 표정-‘주여 이 어린양을 인도하소서!’-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영혼의 안식을 위해 예배에 참석하자니 맑게 갠 하늘 아래 싱그럽게 펼쳐져 있을 그린 풍경이 떠올라 발바닥이 근질거린다. 아침 일찍 첫 예배나 저녁 예배에 나가는 ‘꼼수’도 하루이틀이지, 이러다가는 정말 은혜가 바닥나 ‘길 잃은 양’이 될 판이다.

    한번은 목사님께서 나를 붙들고 “요즘 주초가 어떠십니까?” 하고 물었다. ‘이런 이런, 내가 얼마나 예배를 많이 빠졌으면 목사님이 내가 주중에 얼마나 바쁜지 챙겨 물으실까.’ 죄송스런 맘 금할 수 없지만 골프 치러 예배 빠진다는 사실을 실토할 수는 없는 노릇. “주초에는 오히려 여유가 있는데, 주말이 바빠서 큰 일입니다”라며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목사님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지 않은가.

    “그게 아니고, 술(酒)과 담배(草)를 요즘 얼마나 하고 있느냐는 뜻이었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제대로 예배참석 못한 것이 늘 켕기던 내가 전혀 엉뚱하게 넘겨짚은 셈이었다. 주말이면 골프가방 둘러메고 필드에 나가려는 생각이 ‘강박관념’ 수준이 됐던 모양이다. 이러면 안 되지 싶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주일을 지키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육신의 기쁨보다는 영혼의 위로가 더 절실해지던 차였다.

    그러나 세상만사 뜻대로만 되는 일이 어디 있으랴. 애초부터 즐길 목적보다는 실용적인 이유로 시작한 골프였으니, 필드에 서는 일 또한 단순히 스포츠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는 노릇이다. 빠지고 싶어도 빠질 수 있는 라운딩이 하나 둘이 아니니 이 역시 저항하기 어려운 핑계거리. 그러니 별수없이 이번 일요일 아침에도 고민은 계속되고 목사님의 음성 또한 귓전을 맴돌 것이 분명하니 이를 어쩌면 좋은가.



    골프를 처음 시작한 것이 1981년, 희성산업 홍보부장을 맡고 있던 시절이니 어언 20년을 가볍게 넘겼다. 테니스엘보 때문에 젊은 시절부터 함께했던 라켓을 놓으며 드나들기 시작한 게 골프연습장이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골프는 일개 부장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팽팽한 40대 초반, 솔직히 마음 한편으로는 ‘나라고 언제까지 부장만 하겠느냐’는 야심도 숨어 있었다. ‘새파란 놈이 겉멋부터 들었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골프연습장에는 문도 열기 전 꼭두새벽에만 나갔다.

    그렇게 어렵사리 배운 골프는 참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다들 스코어에만 정신이 팔려 매너는 영 뒷전이던 분위기도 이제는 많이 달라져서, 필드는 어느새 사람과 사람이 허물없이 만날 수 있는 중요한 자리가 되었다. 사실 같은 돈을 들여 술집에서 폭탄주 마시고 노래 불러제끼는 것보다야 건강에도 좋고 대화도 더 많이 나눌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그렇지만 주말마다 양심의 가책을 무릅쓰고 골프장을 찾은 이를 분노하게 만드는 구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미리 예약해 놓은 사람들을 약 올리듯 중간에 끼어드는 팀들이 간간이 눈에 띄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무슨 재주를 어떻게 피웠는지 예약이 꽉 차 있던 라운딩 스케줄 사이로 불쑥 다른 팀이 새치기를 하면 뒷사람의 기분이 상쾌할 리 없다. 또 그렇게 예정에 없이 나타난 팀을 가만히 살펴보면 꼭 알 만한 얼굴, 힘깨나 쓴다는 이름이 섞여 있으니 혀끝이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더욱 묘한 것은 그렇게 ‘힘으로 만들어낸 부킹’이 흡사 자랑거리가 되는 분위기다. “내가 말이지, 지난 주말에 모모한 분과 급히 골프 스케줄을 만들었는데…”로 시작되는 어이없는 무용담은 자신이 얼마나 목에 힘을 주고 다닐 만한 인물인지를 과시하는 내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솔직히 급한 김에 잘 알고 지내는 CC 관계자에게 도움을 청한 일이 나라고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러고 나면 항상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 라운딩 내내 편치 않았고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걸 자랑삼아 떠드는 데에는 분명 문제가 있지 않을까.

    지난 연말 세계 최대의 광고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회사인 WPP가 새로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버릴 것과 남길 것, 남길 것 중에서도 고쳐야 할 것을 하나하나 점검하는 작업이 요즘 내 업무의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 동안 우리가 유지해온 시스템과 문화는 국제적 기준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억지로 만들어내는 부킹 문화 또한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와 필드를 두고 고민에 빠지는 이 ‘길 잃은 양’이 염치불고하고 감히 다음과 같이 목소리를 높이고자 한다. 바야흐로 개혁의 시대, 톤이 좀 강하다 해도 아무도 흉보는 이 없으리라.

    “회개하시오, 힘으로 부킹하는 이들이여! 반성하시오, 새치기 부킹을 권세로 착각하는 이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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