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

美 정부-바이낸스 합의로 암호화폐 새판,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에 청신호

[잇츠미쿡]

  • 황장석 ‘실리콘밸리 스토리’ 작가·前 동아일보 기자

    surono@naver.com

    입력2023-12-2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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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낸스, 43억 달러 벌금 납부 합의

    • 美 정부, 바이낸스 이어 디파이 단속 나설지도

    • 미국 고객에 서비스하려면 미국법 준수하라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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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1월 21일 세계 최대 암호화폐(코인) 거래소 바이낸스가 미국 연방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며 미국 정부에 43억 달러(약 5조5000억 원) 벌금을 내기로 합의했다. 창업자 자오창펑 최고경영자(CEO)도 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면서 5000만 달러 벌금을 내기로 했고 CEO에서 사임했다. 이 같은 소식은 메릭 갈런드 법무부 장관,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 로스틴 베넘 상품선물거래위원장이 참석한 이날 합동 기자회견에서 공식 발표됐다.

    미국 정부가 바이낸스 문을 닫겠다는 수준으로 강하게 압박하자 바이낸스 측이 상당 수준의 요구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생존을 보장받은 것으로 해석됐다. 미국 정부 역시 바이낸스의 급격한 붕괴가 가져올 시장 충격을 피하기 위해 절충에 나선 것으로 풀이됐다. 그런데 바이낸스와 미국 정부 간의 합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번 사건은 세계 최대 코인 공룡에 철퇴를 내린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코인 산업의 판을 바꿀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바이낸스의 연방법 위반 혐의

    세계 최대 암호화폐(코인) 거래소 바이낸스. [동아DB]

    세계 최대 암호화폐(코인) 거래소 바이낸스. [동아DB]

    미국이 바이낸스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건 2018년부터였다. 2017년 7월 바이낸스가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자 수사 대상에 올린 것이다. 지난해 미 법무부가 공개한 검찰 공소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피고(바이낸스)는 적게 잡아도 (수사 대상 시기인) 2017년 8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미국 시장에 서비스하기 위해선) 금융서비스사업자(MSB)로 등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등록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미국 시장에서 수익을 내는 과정에서 돈세탁 방지 의무를 지키지 않아 은행비밀법(BSA)을 위반했고,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따라 특정 국가 단체 등과의 거래를 금지한 미국의 경제제재 조치를 위반했다.”

    이 내용은 미 법무부와 재무부가 바이낸스를 제재한 핵심 논거다. 바이낸스 같은 코인거래소가 미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재무부의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에서 면허를 받아야 하는데, 무면허로 불법 영업을 했다는 것. 나아가 고객의 신원을 확인해서 누가 누구와 돈과 코인을 주고받는지(KYC· Know Your Customer) 확인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 돈세탁 방지 의무(AML·Anti-Money Laundering)를 규정한 은행비밀법도 위반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거래를 제한하는 이란, 시리아, 북한, 러시아가 지배하는 우크라이나 영토, 쿠바, 테러 관련 제재 대상자 등과의 거래를 막지 못해 국제비상경제권한법도 위반했다는 혐의로 이어진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도 ‘바이낸스가 코인 선물옵션 같은 금융 파생상품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CFTC의 면허를 받지 않았다’는 혐의로 2023년 3월 소송을 제기했다.

    바이낸스는 은행비밀법, 국제비상경제권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모두 인정하면서 미국 정부에 43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벌금을 내고 동시에 미국 정부의 규제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에는 바이낸스가 증권에 해당하는 여러 알트코인을 불법으로 미국 고객에게 제공해 증권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2023년 6월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제기한 소송은 포함되지 않았다. 앞으로 바이낸스와 자오창펑 창업자에 대한 재판은 계속 진행되겠지만 이번 합의에 따라 형량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합의에서 중요한 것은 거액의 벌금이 아니라 바이낸스가 미국 정부의 감시를 받겠다고 수용한 점이다. 바이낸스는 이번 합의로 향후 3년 동안 법무부의 준법 검열을 받게 됐고, 재무부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와 해외자산통제국(OFAC)에는 향후 5년 동안 관련 법규를 준수하는지 감시를 받아야 한다.

    재무부와의 합의문에 따르면, 바이낸스는 한 달 이내에 바이낸스와 독립된 일종의 검열팀(Monitor) 후보를 선정해서 FinCEN 동의를 받아 위촉해야 한다. 바이낸스 회사에 상주하며 내부 정보 접속 권한을 제공받는 검열팀은 철저하게 독립된 조직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바이낸스가 비용을 지원하지만 이 조직에는 바이낸스 전·현직 직원이나 이해관계자는 참여할 수 없다. 또한 감시 계약 종료 후 2년 동안 감시 조직에 참여한 사람을 고용하거나 업무 계약을 할 수 없다.

    검열팀이 출범하면 바이낸스는 3개월 이내에 바이낸스 고객 중 미국 관련 고객 명단과 바이낸스 거래 규모 상위 35위 고객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들 고객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이용을 중단하거나 제한해야 할 대상자를 확인한 다음 계정 폐쇄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후 3주 내에 계정 폐쇄를 포함, 이용을 제한했거나 곧 이용을 제한할 미국 관련 고객 보고서를 검열팀과 FinCEN에 제출하고, 검열팀과 FinCEN에서 추가 자료를 요구하면 제공해야 한다.

    바이낸스는 검열팀과 더불어 돈세탁 방지 내역을 조사할 별도의 독립된 컨설턴트도 둬야 한다. 컨설턴트는 2018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모든 거래를 확인해 바이낸스가 이 기간에 미국 정부에 보고해야 하는 수상한 거래를 제대로 보고했는지 정리한 보고서를 검열팀에 제출해야 한다. 이를 FinCEN이 보고받고 추가 조사를 지시할 수 있다.

    월스트리트 위한 판짜기?

    법무부와 합의한 내용도 감시 기한이 3년이라는 점을 제외하곤 대체로 유사하다. 메릭 갈런드 미 법무부 장관은 2023년 11월 21일 기자회견에서 바이낸스와 자오창펑을 기소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바이낸스 측과 합의한 내용을 발표하며 ‘바이낸스가 독립된 준법 검열팀(independent compliance monitor)을 두기로 했다’는 점을 밝혔다. 그동안 바이낸스에서 이뤄진 거래 중에서 돈세탁 방지 및 금융제재 위반 사항을 모두 확인하고 문제점을 바로잡겠다는 것. 즉 미국 정부가 바이낸스의 모든 거래 자료를 다 들여다보고 확인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같은 내용이 공개되자 SEC 인터넷단속국장을 지낸 존 리드 스타크(John Reed Stark) 변호사는 자신의 트위터(현 X)에 “바이낸스 고객들이 자신의 개인 금융 기록과 거래 정보 같은 자료가 24시간, 1년 내내 미국 정부에 제공되는 것을 원할지 모르겠는데, 그게 바로 이번 합의 사항”이라고 썼다. 그는 미국 정부가 이번에 확보한 세계 최대의 코인거래소 바이낸스의 거래 정보를 기반으로 그동안 수사해 온 다른 코인업체나 세력을 단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바이낸스 소송 합의가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한 미국 정부의 포석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즉 코인 시장에 새로운 상승장을 불러올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것. 코인텔레그래프는 2023년 11월 22일 기사에서 “그동안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허용하지 않는 이유로 시장 조작을 지목해 왔는데, 그래서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신청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기 전에 바이낸스의 시장지배력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코인투자사 임원 트래비스 클링(Travis Kling)의 말을 전했다. CNBC는 ‘바이낸스 합의가 크립토 투자자에게 의미하는 것. 왜 이번 합의가 비트코인 현물 ETF 길을 닦아줄 수 있다는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같은 맥락으로 분석했다.

    이는 미국이 코인 시장을 망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블랙록을 포함해 비트코인 현물 ETF를 신청한 미국 금융 세력을 중심으로 코인시장 판을 짜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과 연결된다. 미국이 바이낸스와 자오창펑을 기소하고, 바이낸스를 철저한 감시 규제하에 두는 합의를 함에 따라 바이낸스의 시장 영향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고, 시장 조작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는 것이다.

    즉 바이낸스의 시장점유율은 낮아지고, 나스닥 상장기업 코인베이스 같은 미국업체의 점유율이 높아지게 되면 미국 시장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될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바이낸스는 중앙화된 코인거래소를 모두 통틀어 현물 거래, 선물옵션 파생상품 거래 모두에서 글로벌 거래의 50% 이상을 점유할 정도로 최대 거래소였고, 거대 세력이 신원을 드러내지 않고 거래해온 대표적 거래소였다.

    바이낸스는 시작에 불과

    미국 의회에서 코인 산업에 우호적 법안을 추진해 온 신시아 러미스 공화당 상원의원. [뉴시스]

    미국 의회에서 코인 산업에 우호적 법안을 추진해 온 신시아 러미스 공화당 상원의원. [뉴시스]

    우연인지 아니면 손발을 맞춘 것인지, 바이낸스 기소 합의 발표 한 달 전, 미국 의회에서 코인 산업에 우호적인 법안을 추진해 온 대표적 의원인 공화당의 신시아 러미스 상원의원(와이오밍주)이 ‘바이낸스 기소’를 촉구하는 서한을 법무부 장관에게 보냈다. 러미스 의원은 서한에서 “바이낸스는 규제를 받지 않는 거래소이자 역사적으로 불법행위와 연계돼 왔고, 법무부의 수사 대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바이낸스가 테러단체 거래에 이용됐다는 보도를 언급하며 서둘러 바이낸스 기소를 결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크립토 자산과 분산장부기술은 미국 금융시장 혁신의 동력이 될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든 크립토 자산 업체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봐서는 안 된다”며 미국의 코인산업 발전을 위한 걸림돌을 치워야 한다는 맥락에서 바이낸스 기소를 촉구했다. 미 법무부의 바이낸스 공소장, 재무부 FinCEN/OFAC 합의문, 신시아 러미스 의원의 서한 등의 자료는 법무부와 재무부 웹사이트, 러미스 의원의 웹사이트에 모두 공개돼 있다.

    앞으로 미국 정부가 코인업계 단속 대상을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로 확대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새판을 짜기 전에 코인업계 단속을 확실하게 마무리하려 할 수 있다는 것. 디파이는 회사와 직원이 관리하는 바이낸스 같은 중앙화된 거래소와 달리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짜놓은 조건에 맞춰 코인을 맡기고 이자를 받고, 특정 코인을 담보로 다른 코인을 빌려 투자하는 등의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만든 금융서비스다. 하지만 디파이 플랫폼 대부분이 서비스를 만든 업체와 창업자·관리자·투자자가 존재하고, 그들이 다수의 거버넌스 토큰(서비스 운영 의사결정 투표권을 지닌 코인)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름만 탈중앙화(DINO·Decentralized In Name Only)’라는 비판이 있다.

    2023년 11월 21일 미국 법무장관 메릭 갈랜드(왼쪽)와 리사 모나코 차관이 바이낸스 기소에 따른 합의 내용을 기자회견에서 밝히고 있다. [뉴시스]

    2023년 11월 21일 미국 법무장관 메릭 갈랜드(왼쪽)와 리사 모나코 차관이 바이낸스 기소에 따른 합의 내용을 기자회견에서 밝히고 있다. [뉴시스]

    11월 21일 바이낸스 기소 합의 기자회견에서 리사 모나코 법무부 차관은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이번 (바이낸스와 자오창펑 CEO) 기소, 그리고 혐의 인정에 따른 합의는 (법을 위반한) 기업의 책임을 묻겠다는 법무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크립토와 디파이 업체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 고객에게 서비스를 한다면 반드시 미국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낸스 같은 중앙화된 업체뿐 아니라 디파이라고 주장하는 서비스 업체 역시 미국에서 활동하려면 미국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 즉 디파이를 만든 업체, 창업자, 관리자, 투자자 등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코인시장의 새판을 짜려는 미국 정부의 큰 그림이 있다면, 바이낸스 기소는 시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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