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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스승은 칭찬과 다양한 체험이었다

최고의 스승은 칭찬과 다양한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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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거나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은 잊어버리자. 떡잎부터 알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행동과학이 고도로 발달했지만 10세 이전의 아동이 장차 어떤 사람이 될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변화하는 존재이며, 끝없이 배우고 자극받으며 창조하는 존재다.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30명을 면접한 후 내린 결론도 바로 그것이다.》
이 세상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행복하게 되기를 원한다. 한국의 부모들은 ‘행복한 삶’은 성공을 통해서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성공시대’와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지도 모르겠다.

자식의 성공에 대한 기대와 염원이 남다른 한국 부모들이지만 대부분 아무런 준비없이 부모가 되고 그럭저럭 자녀를 기른다. 아이들이 다 성장한 후에야 좋은 부모가 되려면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타까워한다. 한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기르는 과정은 인간행동에 대한 정교하고 세밀한 과학적 지식과 풍부한 경험적 진실의 통합을 요구한다. 즉 좋은 부모가 되려면 꾸준한 연구와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0여년 간 청소년상담을 하면서 자녀에 대한 부모의 왜곡된 신념, 과도한 기대, 그리고 잘못된 지도로 비뚤어지거나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의욕이 꺾인 청소년들을 많이 보았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직도 아이들의 행복이 성적순이라는 신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말로는 적성과 개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부모는 드물다. 그냥 현재의 체제와 가치를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고 믿고, 생산적인 변화를 꾀하지 않는다. 그래서 21세기를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 창의성이라고 하면서도 태연스럽게 이에 역행하는 단순지식의 습득을 강요한다.

이것은 그동안 사회적 성공의 잣대였던 우수성(학문적으로는 수월성이라고 함)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거나 잘못됐기 때문이다. 실버만이라는 학자는 “가사와 양육에서 수월성을 발휘하는 여성과 같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자신에게 의미있는 공간에서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는 개인의 능력도 수월성 논의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의견들을 종합해 보면 ‘특정 분야에서 뛰어남’을 의미하는 수월성은 반드시 지적인 면이나 특정 영역에 한정되지 않으며 어떤 개인이라도 이룰 수 있다. 특히 과거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인간이 보여주는 여러 측면의 능력이 오히려 미래사회의 생산성을 높일 것이라 기대한다. 또한 수월성이란 발견되고 길러지는 것이므로 그만큼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다행히 우리사회에는 인간의 고유성이 무시된 교육제도 속에서도 소멸되지 않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굴하여 괄목할 만한 업적과 창의적 성취를 한 사람이 많다. 이들이 각자의 잠재력을 어떻게 키우고 극대화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30명을 선정해 직접 인터뷰하고 그들만의 성취요인이 무엇인지 분석했다. 여기서 성공이 아닌 성취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남들이 보기에 성공이라 할 수 없는 것도 그가 꿈 꾸던 것을 이루었다면 성취요 성공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정기준은 세계 속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학자, 문학성을 인정받은 작가,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한 예술가, 벤처기업가, 대중예술가, 그리고 기타 분야에서 독특한 부가가치를 생산해 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소위 우리가 지금까지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고 비중있게 다뤘던 가치들, 예컨대 출신학교나 학력 직업 혹은 직장을 고려하지 않고 성취여부에만 초점을 맞췄다.

면접대상은 여성 9명, 남성 21명으로 문학(신경숙 오인숙 김용택 곽재구 나해철 안도현), 학문(임지순 이혜원 나종일 김순권 강만길), 예술(황영성 한희원 김용우 전유성 임원식 박광수), 언론(정길화 김어준 장해랑), 사업(김성주 이봉재 박병무), 교육(이혜성 장상 이경숙), 기타(한비야 김지룡 백종열 서진규) 등이다.

[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키워야 하는 이유 ]

환경적인 변인 중에서 자신이 어느 지역에서 출생하고, 성장하고 활동했는지가 사람의 능력을 발굴하고 개발하는 텃밭이 된다. 국악을 대중음악과 접목시켜 우리로 하여금 민족의 잠재된 정서를 새롭게 움트게 하고 문화의 숨결을 호흡하게 도와준 소리꾼 김용우는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중학교까지 다녔다. 충북 영동은 세종대왕시절 아악을 정리한 박연의 고향이다. 그 지방에는 박연을 기념하는 음악제 등이 많이 개최돼 김용우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국악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또한 그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도 지역 특성상 국악교육을 많이 했다고 한다(그의 모친 역시 김용우를 잉태했을 때 장구가락 등을 익히고 배운 경험이 있다).

작가 신경숙씨의 첫 문학적 스승은 자연이었다. 소설 ‘풍금이 있던 자리’를 읽으면 매우 사실적이고 유려하게 묘사된 자연을 접할 수 있다. 전라북도 정읍에서 10년 동안 학교를 다니며 그는 줄곧 걸어다녔다. 자연스럽게 사계절의 변화를 직접 눈으로 보고 늘 밟고 다녔다. 그때 체험했던 계절의 변화무쌍함이 글 속에 그대로 살아 숨쉰다.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를 세계의 문화 속에 통합시켜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한 화가 황영성씨. 그의 그림들은 무릇 모든 예술이 자연을 모방하는 데서 비롯한다는 평범한 명제를 확인해준다.

그는 대한민국 미술전람회(국전)에서 한 번 특선을 하고 우쭐했다가 이후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의기소침해 있던 중 친구 부친의 회갑잔치에 초대받았다. 서향의 초가 마당에 멍석을 깔고 음식상이 나오는 전형적인 시골 잔치.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지고 있었다. 그때 본 석양과 초가가 신비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초가지붕과 토담, 그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여인들. 그 광경이 그에게 깊은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 초가, 마당 등을 통해 우리민족의 조형성을 알게 됐고 거기에 그의 생각들을 집어넣어 우리마을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출품하여 여섯 번 특선을 하면서 화가로서 탄탄한 입지를 마련했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씨는 “가장 위대한 스승은 자연이고 모든 것은 다 자연에서 온다”고 말한다. 그는 섬진강변 마을에서 출생하고 성장했고 일을 하며 살아간다. 똑같은 산을 30년, 40년 바라보고 살아도 아무런 부러움이 없단다. 그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움직여야 하는 도시의 유동적인 삶 속에서는 깊이 있는 생각들을 끌어내기 어렵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바라본 산이건만 그에게 산은 매순간 다른 얼굴을 한다. 그 속에 살고 있는 동물, 풀잎, 꽃, 나무, 바위를 생각하면 너무나 좋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마을 전체를 사랑한다. 꽃과 산과 강물과 아침저녁 새울음이 다 공부일 거라고 판단하고 그 마을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거나, 대학을 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자신을 키운 것은 8할이 고향마을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러기에 그의 시(詩)는 ‘지었다’가 아닌 ‘썼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의 관념과 생각으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 살면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그냥 썼기 때문이다.

[ 부모가 믿어주는 만큼 자라나는 아이들 ]

아무리 훌륭한 교사 100명도, 아무리 유능한 100명의 카운슬러도 한 명의 부모를 따라 갈 수 없다. 자녀의 성장과 교육에 부모는 최선의 교사이면 최상의 카운슬러다. ‘광수생각’으로 유명한 만화가 박광수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저는 학교에서 정학을 당할 정도로 말썽을 많이 피웠어요. 저랑 같이 말썽 피웠던 친구들의 부모는 다 포기하시더라고요. 저 애는 원래 저래.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제 부모님은 특이하게도 늘 박수를 쳐주셨어요. 지금 한때의 실수고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똑같은 출발점에서 달리기 시작하지만 일단 탈락을 하면 트랙 밖에서 박수를 치는 일밖에는 할 수가 없죠. 그러나 저는 부모님 덕분에 다섯 번 여섯 번 다시 뛸 수 있었어요. 그렇게 다시 뛸 수 있는 용기를 주신 부모님께 늘 감사해요.”

번뜩이는 기지로 유명한 개그맨 전유성씨. 그의 부모도 세상의 여느 부모처럼 자식교육 잘 시켜보려고 노력했지만 기대처럼 공부를 잘 하지 못 하는 자식을 꾸짖거나 실망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래서 전유성씨는 요즘 아주머니들이 사인을 부탁하면서 “거기에다가 공부 좀 잘하라고 써주세요”라는 주문하면 “여기까지 그런 거 쓰면 애 돌아요, 그러지 말아요. 애들한테 할 얘기가 그것밖에 없으세요?”라고 응답한다고 한다.

‘딴지일보’ 발행인 김어준씨는 특이하게도 부모의 완전 방임 속에 자랐다. 자라면서 “공부해라”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게 어린 마음에 섭섭하기까지 했단다.

“공부를 잘 해도 잘 했다는 말을 안 하고, 못 해도 ‘공부 해’라는 말을 안 하고,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내게 관심이 없구나라고 생각했죠. 돈이 필요하면 네가 벌어 쓰라고 하고, 학비도 잘 안 주고, 용돈도 물론 안 주고, 도시락도 잘 안 싸주시고. 그런데 그게 몸에 배니까 무엇을 해도 눈치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하고 대신 결과도 자기가 책임을 진다는 것을 배운 거죠. ‘딴지일보’ 보시면 아무렇게나 막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근거 없는 말은 하지 않아요. 패러디를 해도 있는 사실을 가지고 패러디를 하지, 더 재미있게 만들 수도 있지만, 없는 일을 가지고 패러디를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그것은 무책임한 일이니까요.”

서울대 물리학과 임지순 교수도 어머니에 대해 비슷한 추억을 갖고 있다.

“어머니는 관심이 있으면서도 간섭은 안하셨어요. 아마 참으신 것 같아요. 제가 부모가 돼보니까 그게 무척 힘들어요.”

반면에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 ‘너희 자녀를 노엽게 말라’ 등 교육서로 많은 학부모들을 각성시킨 우촌초등학교 교사 오인숙씨는 아이들은 ‘사랑’으로 자란다고 믿는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등교 전에 옛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몸이 약한 저를 무릎에 앉히고 이야기를 해주셨지요. 글재주가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생각하는 바를 글로 써보라고 하셨고 글짓기 대회에 출품해서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아버지는 마당에 조그만 연못을 만들어 자연과 가까이 접할 수 있도록 해주셨고, 딸에게 필요하다 싶은 기사를 스크랩해주셨지요. 부모님은 다툴 일이 있으면 자식들이 듣지 못하도록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싸우셨어요.”

아이들은 부모가 믿는 만큼 자란다. 아울러 부모와 자식 간은 서로 믿음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부모와 자식의 끈끈한 관계는 특히 자녀들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좌절의 상황을 벗어날 때 큰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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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애 한국청소년상담원 상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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