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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화가로 ‘인생 2막’ 연 명사들

“몰입과 성취의 쾌감… 그림은 행복한 마약입니다”

늦깎이 화가로 ‘인생 2막’ 연 명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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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이 좋아도 미술을 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혹은 “환쟁이 되면 굶어죽는다”는 부모의 반대로 화가의 꿈 여럿이 꺾여나갔다. 그러나 타고난 열정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선에서 은퇴한 뒤 늦깎이 화가의 꿈에 도전한 이들이 있다. 거저도 아니고 대충도 아니다. 혹독한 수련을 거쳐 ‘진짜 화가’가 된 명사들의, 1막보다 행복한 인생 2막.
늦깎이 화가로 ‘인생 2막’ 연 명사들
70세를 맞은 필립 나이트 나이키 회장의 늦깎이 대학생활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됐다. 지난 3년간 모교인 스탠퍼드대에서 청강생으로 소설 창작을 공부해온 그의 원래 꿈은 소설가였다고 한다. 나이트 회장과 동갑인 영국 출신의 명배우 앤서니 홉킨스는 최근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곡을 들고 세계 투어 콘서트에 나설 계획을 발표했다.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그는 “연기 이외의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 몰두하고 싶다”고 했다. 수십년을 기업경영과 배우의 삶에 매진해온 두 사람이 고령에도 산고(産苦)에 비유되는 예술 창작에 뛰어든 것은 못다 이룬 꿈과 새로운 도전을 향한 열정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뒤늦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이 국내에도 적지 않다. 은퇴 후 대학에 편입해 회화를 전공한 이서형 전 금호건설 사장,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명예교수로 재직 중인 강현두 교수, 기자 출신의 김종식 전 경향닷컴 사장, 은행감독원 부원장보를 역임한 편원득 전 금융결제원 감사 등이 그들. 또한 명사미술회 회장으로 매년 회원 전시회를 주관하는 강석진 전 GE코리아 사장(현 CEO컨설팅그룹 회장), 한국능률협회 신영철 회장도 꼽을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여러 차례 전시회와 개인전을 열고‘화가’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라는 것.

1950~6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은 일찌감치 화가의 미래를 동경했다. 하지만 그 시절 대한민국 부모 대부분은 자식이 화가가 되는 것에 반대했다. “평생 밥 빌어먹을 짓”이라는 게 이유였다. 고교시절 미술반에서 활동하며 미술선생에게 칭찬을 받곤 했다는 편원득 전 감사는 “만약 그때 나 같은 아버지를 만났다면 틀림없이 미대에 진학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미대생 된 전직 CEO

환갑을 앞두고 용인대 미대 3학년에 편입해 2008년 봄 대학원을 졸업하는 이서형(李瑞炯·64) 전 사장은 서울대 건축학과를 나왔다. 대기업 건설사 CEO 자리까지 올랐던 그가 인생에서 가장 알차고 보람 있는 시기로 꼽는 것은 대학에서 미술공부에 몰두하던 지난 4년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 성적이 꼴찌에서 1, 2등을 다퉜지만 그림에는 소질이 있었다. 아버지도 잘 그린다며 칭찬하셨다. 그런데 여덟 살 때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틀림없이 그 길로 매진했을 것”이라고 했다. 꿈이 꺾인 뒤 일반 대학을 가기 위해 할 수 없이 죽어라 공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서형 전 사장은 최근 금호아트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며 화가로 데뷔했다. 넘쳐나는 손님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전시회 오프닝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게 된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은 “이 사장이 미술공부 하러 대학 간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 나이의 열정이 부러웠는데 정말 이 사장다운 발상”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박 회장은 “과 수석 하고 장학금도 받았다는데, 이 사장 같은 사람에게까지 장학금을 주면 용인대 재정이 상당히 악화될 것 같다. 오히려 돈을 받아야지. 다음 학기엔 장학금 주는 것 다시 생각해보라”고 해 폭소를 자아냈다.

이론부터 체계적으로 배워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이 전 사장은 40년간의 사회생활을 뒤로하고 은둔하다시피 대학 캠퍼스로 돌아갔지만 첫 학기 6개월은 순조롭지 못했다. 학교 분위기나 학생들이 과거 대학시절과 많이 달랐고, 대기업 CEO에서 학생으로 갑작스레 바뀐 처지에 적응하는 데 진통을 겪은 것. 그는 학생 본분에 충실하려 노력했다. 기사 딸린 차 대신 손수 운전을 했고, 교내식당에서 학생들과 어울려 1600원짜리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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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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