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애는 송강호, 오달수, 곽도원, 임시완 등 남자배우가 대부분인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이나 다름없는 국밥집 주인 순애로 등장한다. 순애는 시장에서 돼지국밥을 팔아 홀로 대학생 아들 진우(임시완 분)를 뒷바라지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대학에 다니며 야학 교사로 봉사하던 아들이 용공조작사건에 연루돼 소리 소문 없이 끌려간 뒤 순애가 보이는 애끓는 모성애는 객석을 여러 번 눈물바다로 만든다.
특히 그가 아들을 면회하러 갔다가 모진 고문으로 온몸에 피멍이 든 아들을 보고 실신하는 장면과, 단골손님이던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를 찾아가 “내 아들은 빨갱이 아니다. 변호를 맡아달라”며 무릎 꿇고 애원하는 장면은 ‘최루 강도 1급의 명장면’으로 뽑혔다. 송우석이 인권변호사로 변모하는 중요한 계기였던 이런 장면에서 김영애의 호연이 돋보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처음 보는 송강호 잡고 울고불고”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난 캐릭터를 설정하지 않아요. 그냥 대본을 자꾸 읽어보면서 그 인물을 생각해요. 6개월짜리 TV드라마 같은 경우는 한 달 정도 그러면 인물에 완전히 동화되죠. 대신 처음엔 많이 헤매요. ‘변호인’에서 처음 찍은 신이 송우석 변호사를 찾아가 애원하는 장면이었고, 두 번째가 면회 신이었죠.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두 장면을 난생처음 보는 배우들과 찍으려니까 내가 잘못해서 영화를 망칠까봐 걱정이 많았어요. 임시완도 ‘해품달’을 찍을 때 붙는 장면이 없어서 못 보고, 송강호 씨도 그때 처음 봤어요. 그런 사람을 붙잡고 울고불고 한다는 게 난감하더라고. 속이 많이 탔죠.”
▼ 완성된 영화는 만족스러웠나요.
“2차 편집본을 봤을 땐 걱정을 좀 했는데 언론시사회 때 보고 놀라웠어요. 너무 고마워서 감독을 안아줬을 정도로요.”
‘변호인’ 촬영은 그가 드라마 ‘메디컬 탑팀’에 출연하기 전인 지난해 5~7월 진행됐다. 중간에 ‘현기증’이라는 영화도 찍었다. ‘현기증’은 2억 원을 들여 만든 저예산 영화다. 그는 “이런 독특한 시나리오의 영화 주인공을 또 언제 할까 싶어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며 “체력을 생각지 않고 스케줄을 무리하게 잡아 지난 1년간은 집과 촬영장만 오갔다”고 했다.
▼ 작품 선택 기준이 캐릭터인가요.
“작품 전체를 봐요. 작품이 좋으면 비중 같은 건 안 따지고 해요. ‘모래시계’도 처음에 2회 나오는데 했어요. 이번 영화도 울림이 커서 좋았고.”
▼ ‘변호인’을 본 소감은?
“30~40대 지인들은 영화 보고 미안했대요. 나도 미안했지. 부끄러웠고. 열심히는 살았지만 내 가족과 자신만 생각하며 살았으니까. 진실이나 정의를 생각해본 적이 있나 싶어요. 난 상고(부산여상)를 나와서 바로 사회생활을 했기 때문에 데모할 기회도 없었고. 1970~80년대는 먹고 살기 힘든 때잖아. 거기다 집안 형편도 좀 어려워서 내가 가장이었거든. 3남1녀 중 장녀인데 장남 노릇을 지금까지 해왔지. 지금은 다 자리 잡았지만 몇 십 년 동안 그랬지.”
▼ 1000만 관객 돌파, 예상했나요.
“난 시나리오를 보는 눈이 없나봐. 노 대통령 이야기가 70~80%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런 다큐 같은 영화를 누가 보나 싶었어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했죠. 그래도 시나리오는 감동이 있었어요. 처음에 훅 읽었어. 눈물이 났지. 근데 처음엔 출연을 좀 망설였어요. 한댔다가 안 한댔다가 하면서.”
▼ 왜요?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나는 시끄러운 데 들어가는 게 두려웠어요.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어.”
▼ 그럼에도 출연 결정을 한 이유는?
“세상이 참 공평한 게, 사업한다며 밖에서 딴 짓 할 동안 배우로서의 입지가 많이 좁아져 있더라고요. ‘변호인’의 국밥집 아줌마 순애는 사실 예전에 많이 했던 캐릭터인데도 그걸 다 잊어버리고 최근작인 ‘황진이’ ‘로열패밀리’ ‘해품달’에서 드센 역을 하면서 그 이미지로 굳어져 있었어요. TV드라마에서는 그런 캐릭터만 들어와서 내 나름대로 변화를 주고 싶은 욕구가 강했는데 순애가 딱 좋겠더라고요. 송강호 씨가 출연한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더 기울었고. 송강호 씨 영화는 관계자들이 많이 보니까 이미지 변신에 좋은 계기가 되겠다,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