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미국의 힘을 이용해 일본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독일이 반성, 사죄 쪽으로 움직인 데는 유대인의 힘이 컸습니다. 우경화하는 일본과 독일을 비교하지 말고 유대인과 한국인을 비교하면 좋겠습니다. 유대인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부터 홀로코스트와 관련해 독일을 엄청나게 쪼아댔습니다. 일본이 동서 냉전을 틈타 전범 국가에서 서방의 우방으로 안착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뭘 했습니까. AIPAC은 전쟁을 말하지만, 우리는 인권, 공존, 평화만 얘기해도 얻을 게 많습니다. 보편적 가치, 역사적 진실을 무기로 삼으면 미국의 힘을 이용해 일본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는 한국 정치인이 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해 미국에서 허튼 일을 할 때가 많다고 꼬집었다.
“미국의 일본계 커뮤니티가 약합니다. 진주만 공격 후 일본계가 미국에서 핍박당했습니다. 일본이 미국의 적국이었던 터라 일본계는 조직을 만들어 대응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습니다만, 일본계가 조직적으로 움직이면 시민과 시민의 대결이 돼버립니다. 표 대(對) 표로 가면 우리가 불리합니다. 한국과 일본의 다툼이 아니라 역사 진실, 보편적 인권의 틀로 문제를 다뤄야 경쟁력이 있습니다. 한국의 정치인이 미국에 와서 기림비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하는 짓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안 오는 게 도와주는 거예요. 한국의 한 광역자치단체장이 미국의 한 지역에서 위안부 기림비를 세울 때 자치단체 돈을 댔습니다. 비석에 그 단체장 이름이 새겨졌습니다. 그렇게 하면 시민이 자발적으로 세운 기림비까지 타격을 받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대결이 되면 미국은 어느 쪽 편을 들어줄 수가 없습니다. 서울의 정치인들이 개입하면 보편적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대결이 돼버려요. 연전연패하는 길입니다. 위안부나 동해 병기가 한일 간의 분쟁 이슈로 가면 안 됩니다. 앞서 말했듯 역사 진실,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접근해야 해요. 국가 대 국가의 싸움이 되면 일본계가 뭉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움직임이 나타나고요.”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시민의 서명을 받아 시가 운영하는 도서관 옆에 기림비를 세웠습니다. 공공의 재산으로 기림비를 세운 겁니다. 일본 외교관이 컴퓨터 등 도서관 시설을 확충해줄 테니 기림비를 철거해달라고 로비하다 들켜 우리 쪽이 대박이 났습니다. 미국이 괜찮은 나라입니다. 인권 같은 보편적 이슈를 가지고 제안하면 우리가 반드시 이깁니다. 미국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 중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지역 현안에 앞서는 당론은 없다는 겁니다. 지역 주민이 원하면 뭐든지 합니다. 풀뿌리 유권자 운동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국 국민이, 미국에 사는 한인이 한국을 위해 일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과거와 다르게 한국과 미국의 국익이 충돌할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미국 시민입니다. 국익 충돌 상황에서는 미국 편을 들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미국에 사는 한인이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것은 결과적으로 한국에 도움이 됩니다. 한국인이 미국에 사는 한국계를 존중하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외교관이나 주재원이 재미 한인을 무시하곤 하죠. 굉장히 화가 나고 섭섭할 때가 많습니다. 미국 국민인 한인이 200만 명이 넘습니다. 한인의 실력이 높아졌어요. 위안부 결의안, 기림비 같은 것을 보면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힘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겁니다. 재미동포를 업신여겨서 한국이 얻는 게 뭐가 있을까요.”
美 의원 18명 한국 데려와

김동석 씨는 한국인의 전문직 미국 비자 쿼터를 늘리는 일에도 앞장선다.
그는 미국 대선 때 오바마 캠프에 참여했다. 한인 밀집 지역 출신 의원들의 펀드레이징 행사 때도 빼놓지 않고 참석한다. 미국 의원을 한국으로 초청해 지한파로 만드는 일도 하고 있다. 미국 연방 상·하원 의원 20여 명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미국 의회에 명실상부한 ‘코리아 코커스(Korea Caucus)’를 꾸리는 게 목표다. 현재는 의원 60여 명을 확보했는데, 그 수를 ‘이스라엘 코커스’처럼 키워보고자 한다.
“뉴욕 일원 한인 밀집 지역에서 3만 표를 모았습니다. ‘한인에게 도움이 되는 후보가 A이니 위에서 두 번째에 투표하십시오’ 하면 몰표가 되는 거죠. 한인 유권자가 뭉치면 캐스팅 보트 구실을 할 수 있어요. 특정인을 당선하게는 못하더라도 해코지는 가능합니다.”
그는 미국 의원의 한국 방문도 적극적으로 주선한다.
“매년 연방 상·하원 의원 70명가량이 이스라엘 민간 펀드로 텔아비브, 예루살렘을 방문합니다. 의원이 타국의 정부 펀드로는 외유를 가기 어려워요. AIPAC의 방식을 벤치마킹해 미 의원을 한국으로 보냅니다. 일례로 일레나 로스-레티넨 전 하원 외교위원장이 한국의 한 대학에서 명예학위를 받았습니다. 중간에서 다리를 놓은 게 우리입니다. 외국에서 명예학위를 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오면 의회 윤리위원회에서 문제가 없는지 살펴본 후 외유를 갈 수 있습니다. 가족도 함께 초청하는 형식이어서 의원이 좋아하죠. 인사동, 남대문시장 데려가면 얼굴이 환하게 변합니다. 지금까지 의원 18명을 한국에 데려왔습니다.”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데는 한인 사회가 의원들에게 제공한 정치자금도 한몫했다.
“정치자금법이 바뀌는 바람에 덕도 봅니다. 미국 의원들이 2003년 이전엔 돈 많은 기업, 돈 많은 사람으로부터 무제한 정치자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존 매케인 의원 주도로 소프트머니 금지법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원의 경우 한 사람이 2년에 2600달러 넘게 기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풀뿌리 유권자를 확보한 사람의 영향력이 더 확대된 겁니다.”
그는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 의원과 미국 의원을 연결해주는 구실도 한다.
“여성 의원 A씨가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려고 워싱턴에 온 적이 있습니다. A 의원이 대사관에 취임식 초청장을 구해달라고 요청했나봐요. 대사관이 저한테 티켓을 확보해달라고 부탁해와 3장을 구해줬습니다. A 의원은 영어를 곧잘 하더군요. 애니 팔레오마베가 의원과 면담을 주선했는데, 팔레오마베가 의원이 면담 중 A 의원에게 화를 내더군요. A 의원이 전략적 측면을 고려할 때 인권 문제보다 한일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자 발끈한 겁니다. 팔레오마베가 의원은 한국에 올 때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 꼭 들르는 사람입니다. ‘인권보다 더 중요한 전략이 세상에 어떻게 있을 수 있느냐’고 A 의원을 몰아세우더군요. 미국 의원과의 10분 면담 동안 할 말을 못 찾아 힘들어하는 의원도 여럿 있었습니다. 10분이 너무나 긴 거죠. 면담을 끝내고 미국 의원이 ‘미스터 김, 저 사람 왜 나를 만나자고 한 거예요?’라고 물어서 난처한 적도 있었습니다. 사진 찍으러 온 거죠, 뭐. 미국에 오는 한국 정치인의 역량이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아직도 의원 외교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