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선진국을 ‘생각을 선도하는 나라’라고 정의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생각’하는 힘이 있느냐, 없느냐를 기준으로 선진국 여부가 갈라집니다. 새로운 생각이 선도력(先導力)이 돼 선진하게 되는 거죠. 한국은 패스트팔로어(fast follower)로서 남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은 잘해왔지만, 더는 이런 식으로 해선 안 되죠. 굳어버린 신념과 이념, 가치관을 따르는 ‘일반명사’로 살지 말고, ‘고유명사’로 살아야 자신만의 독립적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건명원은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있다. 올해 3월 4일 문을 열었다. 원장인 그와 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개천 국민대 교수(건축학) 등이 교육과정을 짰다. 19~29세로 지원 자격을 제한했는데도 10개월(3~12월) 과정 1기 모집에 900명 넘게 원서를 냈다. 에세이, 압박면접 등을 통해 30명을 선발했다. 수업료, 교재비는 없다. 오정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이 사재를 내놓았다.
建明苑을 풀어 읽으면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이다. 명(明)은 해(日)를 해로만 보거나 달(月)을 달로만 보는 분리의 시각이 아니라 해와 달을 하나의 사건으로 동시에 장악하는 능력이다. 구획된 공간을 뜻하는 ‘園’ 대신 열린 공간을 가리키는 ‘苑’을 썼다.
▼ 계획대로 잘 이뤄집니까.
“잘됩니다. 당장 효과가 날 일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우리가 가진 답답함이나 혼란은 남의 생각을 좇는 일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방증입니다. 창조력은 인간이 그리는 무늬, 다시 말해 인문(人文)을 파악하는 능력으로부터 발휘됩니다.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삶의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세계를 들여다보는 방식이 어떻게 이동했는지를 궁금해하는 데서 창의력, 상상력이 발휘됩니다. 건명원이 배출한 ‘창의 전사’가 대한민국을 견인할 날을 꿈꿔봅니다. 시대의 반역자를 키워내는 게 가능하냐고요? 가능성은 대개 기존의 틀을 근거로 따지게 됩니다. 우리는 새로운 꿈을 꿉니다. 우리의 꿈은 기존의 틀을 벗어난 미래에 있습니다. 가능한지, 아닌지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에요”
배움에 빠지지 말라
▼ 건명원이라는 명칭에서 노자의 향기가 납니다. 노자는 ‘내 밖’을 아는 것을 지(智), ‘나’를 아는 것을 명(明)이라고 했습니다. 지(智)는 덜어내거나 버릴 것으로 비판했고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대립면의 상호 관계와 변화로 이뤄졌습니다. 지(智)는 일단을 도려내 그것만 아는 겁니다. 해를 해(日)로 알고, 달을 달(月)로 아는 게 ‘지’예요. 해와 달을 하나의 사건으로 동시에 장악하는 능력이 명(明)입니다. 사랑을 사랑으로만 이별을 이별로 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이별을 하나의 사건으로 동시에 장악해야 진실에 더 깊이 있게 다가가고 성숙한 태도를 취합니다.”
▼ 노자는 “배움을 끊으면 걱정이 없다(絶學无憂)”고 했습니다. “성(聖)을 절(絶)하고 지(智)를 버리면 민리(民利)가 백배(百倍)하리라”고도 했고요.
“무식해지라는 게 아니라 배움에 빠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맹자도 서경을 완전히 믿는 것은 차라리 서경이 없는 것만 못하다고 말합니다. 세계를 단편적으로 포착해 진리화한 지적 체계, 남이 만들어놓은 신념·이념·가치관에 갇히면 그것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정지해 멈춰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헤겔이 말한 대로 철학은 그 시대를 관념으로 포착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구체적 세계와 움직이는 삶을 관념으로 포착할 자질을 갖춰야 창의력, 상상력이 발휘됩니다. 이데올로기화한 체계를 고정적으로 신봉해선 안 된다는 게 배움을 끊으라(絶學)는 말에 담긴 뜻이라 하겠습니다.”
노자는 절학무우(絶學无憂)가 담긴 장에서 이렇게 썼다.
나 혼자 조용하구나,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혼돈스러운 모습이구나. 마치 웃음도 아직 배우지 못한 갓난아기 같다. 축 처져 있구나, 돌아갈 곳이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다 넉넉한데, 나만 홀로 부족한 듯하다. 나는 어수룩한 마음을 가졌구나! 우매하고도 우매하다! 세상 사람들은 분명한데, 나만 홀로 어둑하구나. 세상 사람들은 자세히도 살피는데, 나만 홀로 어눌하구나. 고요하도고 깊구나, 마치 바다와 같다. 바람결 같구나, 어디에도 매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