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호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군사제재로는 북핵 해결 못한다…美 中이 ‘김정일 교체’ 대타협 해야”

  • 손광주 데일리NK 편집인 sohnkj21@hanmail.net

    입력2006-10-02 18: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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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북한 행태는 2차대전 항복 직전 일본과 비슷
    • 1994년 당 군수공업부, 김정일에 “핵실험 준비완료” 보고
    • 중국의 안보리 결의안 찬성은 ‘미사일 반대’지 ‘북한 반대’ 아니다
    • 중국은 대북 군사제재 동참 않을 것…안보리 경제제재도 효과 미약
    • 北이 핵실험해도 ‘무시 전략’ 펴야, 정권 바뀌면 핵 문제도 해결
    • 미국은 중국에 ‘北 정권교체’ 요구하고 ‘北 점령 않는다’ 약속해야
    • ‘동북공정’ ‘동북4성론’은 공연한 고민, 중국이 북한 떠안을 리 없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미묘하다. 최근의 동북아시아 정세변화와 관련한 최대 관심사는 역시 북중관계다. 7월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2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결의안 통과, 28일 ARF(아세안안보포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북중관계에 이상 신호가 체크됐다.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안 채택에서 중국은 예상과 달리 ‘불참’이나 ‘기권’을 택하지 않고 ‘찬성’ 쪽에 손을 들었다. 1948년 북한 정권이 수립된 이래 유엔에서 중국이 북한을 제재하는 데 찬성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9월 들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하 ‘김정일’로 표기)의 방중(訪中) 계획설이 계속 나오면서 북중관계가 다시 한번 주목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대북 금융조치 이후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북 간의 정세가 과거에 비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미중 간 이해관계의 공통분모도 많아지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는 지난 8월 상원 청문회에서 “북한에 변화가 와도 미국이 한반도에서 상황변화를 주도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이는 한반도 문제를 중국과 동격의 지위에서 논의하겠으며, 북한에 변화가 있을 때 북한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인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는 발언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따라서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북한 문제이며, 그 가운데서도 북중관계가 과연 어떻게 변화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황장엽(黃長燁·83) 북한민주화동맹 위원장은 북한에서 당 중앙위원회 국제비서를 지냈다. 중앙당 국제비서는 북한 외교의 전반적인 노선을 지도하는 직책이다. 북한의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에 집중된다. 1991년 이후 한러, 한중 수교로 남한에서도 중국, 러시아 전문가가 과거에 비해 많아졌고 유능한 전문가도 늘었다. 그러나 ‘북중관계’를 깊이 아는 사람은 아직 드문 편이다. 무엇보다 중국공산당과 조선노동당 사이의 협력과 갈등의 역사를 이론과 실천 양측면에서 깊이 있게 알아야 하는데, 남한에서는 근 50여 년 동안 이 길이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황장엽 위원장은 북중, 북러 관계를 깊이 있게 알고 있는 남한 내 거의 유일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북한에서 일하는 동안 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비롯한 많은 중국 고위층 인사와 교분을 쌓았다. 1997년 망명 때 그를 도와준 중국측 인사도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북중관계를 비롯한 북한 문제 전반에 관한 그의 이야기에는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와 최근의 북한 미사일 발사, 유엔 안보리 결의로 촉발된 북중관계의 이상신호를 그는 과연 어떻게 보고 있을까.

    지난 8월28일 그는 탈북자 방송인 ‘자유북한방송’에 출연해서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황 위원장은 이날 방송에서 “요즘 북한을 보면 김정일 정권이 망해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 정권이 어느 시점에 제거되겠는가 하는 문제는 예측하기 곤란하다”면서도 “김정일 정권이 망한다는 것은 탈북자들이 자꾸 나오는 것만 봐도 명백하다”고 언급했다.

    이날 그의 언급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그동안 황 위원장은 북한 정권 붕괴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취해왔다. 그러나 이날 “나는 지금까지 김정일이 빨리 망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왔다”면서 그러나 “요즘 북한 정권의 행동을 보면 어느 때 어떻게 될지 예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정일 정권이 예상보다 빨리 붕괴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다.

    다음은 최근 8월~9월초 사이 틈틈이 이뤄진 황장엽 위원장과의 인터뷰 내용 중 핵심요지를 정리한 것이다.

    “‘안 망한다’는 말은 ‘곧 망한다’는 뜻”

    ▼ 최근 “요즘 북한의 행동을 보면 김정일 정권이 언제 어떻게 될지 예견하기 힘들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북한 정권이 망해가고 있다는 것은 북한을 탈출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나온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탈북자는 김정일 정권이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는 가장 유력한 증거입니다. 사람이 그곳에 살 수 없어 밖으로 나오는 것만큼 더 뚜렷한 증거가 어디 있겠습니까.

    요즘 북한의 행동을 보면 ‘아무리 우리를 압살하려 해도 우리는 안 망한다’고 계속해서 떠들고 있습니다. 망할 일이 없으면 애써 ‘우리는 안 망한다’고 주장할 일도 없겠지요. ‘안 망한다’는 소리는 ‘곧 망한다’는 소리나 다름없는 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도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다가 패망했습니다. 그때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김정일 정권이 언제 망할지 구체적인 시기를 예견할 수는 없지만, 망해가고 있는 것은 명백합니다.”

    ▼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유엔 안보리 결의로 북중관계에 이상징후가 발생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북중관계를 감안하면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분석인데, 궁금한 대목은 그 ‘이상징후’가 과연 어느 수준인가 하는 점입니다.

    “미사일 시험발사로 의견 차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에 찬성한 것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나 ‘미사일 실험을 반대한다’는 뜻이지, ‘북한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만약 중국이 미사일 발사 이전에 ‘미사일을 발사하면 동맹관계를 끊겠다’고 북한에 통고했다면 북한이 말을 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번 같은 경우 ‘동맹을 끊겠다’는 중국의 메시지는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북중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는 아니라고 보아야 합니다. 즉 중국은 지금도 자신의 이익에 맞게 행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핵무기보다는 인권 문제에 집중해야”

    ▼ 북한이 실제로 핵실험을 감행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1994년경에 북한의 군수공업부가 그것에 관한 제의서를 김정일에게 올린 적이 있습니다. ‘지하 핵실험에 대한 기술적인 준비는 끝났다. 핵실험을 해도 좋으냐’는 내용이었지요. 그때 김정일은 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당시에는 미국과의 협상이 잘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이미 핵실험에 필요한 기술적인 검토는 끝난 상태였습니다. 또 북한은 파키스탄에서 이미 지하 핵실험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야 합니다(북한과 파키스탄은 1990년대 핵무기 개발과정에서 긴밀히 협조해왔다. 1998년 파키스탄이 실시한 지하 핵실험에 북한이 관련돼 있다는 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제기된 바 있다▼ 편집자).”

    ▼ 기술적인 테스트가 목적이 아니라 해도 정치 군사적인 목적으로 감행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이번에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그 첫째 목적은 남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과시하는 것일 겁니다. 둘째는 일본을 겨냥하는 것이겠지요.”

    ▼ 핵실험을 한다면 중국은 어떻게 나올 것으로 보십니까.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북한의 핵실험을 끝까지 반대하겠지만, 북한이 실험을 강행한다 해도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적 제재에는 동참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또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군사적 제재는 사실상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 군사적 제재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면, 김정일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국제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은 전략일까요.

    “군사제재와 같은 물리적인 압박을 가하기보다는, 김정일이 핵실험을 해도 아예 무시해버리는 것이 최선의 전략입니다. 김정일이 갖고 있는 핵무기 자체를 문제 삼으면 핵 문제를 해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핵무기를 문제 삼기보다는 오히려 탈북자를 비롯한 인권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옳은 방법입니다. 김정일 정권을 교체하고 북한에 개혁·개방 정부가 들어서면 핵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지난 1월 방중 당시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함께 베이징 중관춘 중국농업과학원 작물과학연구원을 참관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오른쪽).

    ▼ 그렇다면 지난 7월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한 내용이 실제로 이행돼도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막기는 어렵다고 보십니까.

    “안보리 결의가 북한의 핵무기 제조와 개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겁니다. 지금과 같은 경제제재 정도로는 북한을 변화시키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1990년대 중반 대기근 당시) 300만명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도 김정일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어요. 금융제재로 김정일이 타격을 입긴 하겠지만, 그것이 김정일의 운명을 결정할 만한 것은 아닙니다. 김정일의 운명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힘만으론 김정일 제거 못해”

    ▼ 최근 중국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으로서는 여전히 북한의 안정이 최우선 과제로 보입니다. 그러한 조건에서 중국이 북한 정권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동맹관계를 끊고 행동에 나서기는 사실상 어렵지 않겠습니까?

    “앞서도 말했지만 김정일 정권은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망하는 것은 명백해 보입니다. 또한 김정일이 있는 한 북한의 개혁·개방은 사실상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북한정권의 운명을 바꾸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중국은 북한 정권이 일시에 붕괴되어 한국과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압록강까지 밀고 들어오는 것을 매우 경계하고 있습니다.

    지금 김정일의 명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중국입니다. 따라서 중국이 허용하지 않는 한 미국의 힘만으로 김정일 정권을 제거하기란 어렵습니다. 주목할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미국 중국 간에 대타협의 여지가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간단히 말해 중국에 북한과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더 큰 이익을 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과 중국이 힘을 합쳐 김정일 정권을 교체하고 북한을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유도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이 중국식으로 개혁·개방하는 데 중국이 반대할 이유가 없고, 남한에도 여러모로 큰 부담이 없기 때문에 합리적인 전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황 위원장은 김정일 수령 절대주의 독재정권을 제거하고 북한을 개혁·개방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열쇠는 오로지 중국만이 가지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또한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는 일은 “중국이 국제사회 앞에 지니는 의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김정일 정권을 개혁·개방 정부로 교체하도록 강력히 요구하는 한편, 그 대신 미군이 북한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대담한 약속을 중국에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상황에서 중국의 큰 목적은 경제적 고도성장이기 때문에 미국과 평화와 협조 관계가 잘 유지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9월7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류샤오밍 간쑤성 성장조리를 신임 북한대사로 임명했다. 류 신임대사는 이전의 북한대사들과는 출신이 완전히 다른 ‘미국통’이다. 미국 터프스대 플레처 법률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이후 중국 외교부 북미대양주미국 담당을 지냈고 주미 중국대사관에서 근무했다.

    중국이 미국통을 북한 주재 대사로 임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의 북중관계를 놓고 보면 파격적인 인사가 아닐 수 없다. 이를 두고 북한 문제를 둘러싼 중국의 대미외교 현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인 만큼, 이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풀어 나가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는 관측이 대두됐다.

    “동북4성? 2300만을 뭐 하러 떠안겠나”

    아울러 지난 8월 중국은 백두산 인근에서 미사일 훈련을 한 사실을 인민해방군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중국 선양 관구의 15만 병력이 북중 국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는 정보는 계속해서 들려온다. 또한 최근에는 중국의 ‘역사 동북공정’이 다시 논란을 빚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이른바 중국의 ‘동북 제4성론’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7월1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문제를 논의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전체회의에서 존 볼턴 유엔 주재 미국 대사(왼쪽)와 왕광야 유엔 주재 중국대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나가면 북한이 중국에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중국이 북한을 흡수하는 것은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큰 부담이 될 뿐입니다. 지금 중국의 최대 이해관계는 미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경제성장을 지속하면서 국내의 안정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13억 인구조차 감당하지 못하는데 중국이 무엇하러 북한을 흡수하겠습니까. 공연히 한국과 분란을 일으켜봐야 이익이 될 것이 없습니다. 2300만이라는 인구를 새로 떠맡아 먹여 살리려고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한 뒤부터 중국의 주요 간부들은 우리(조선노동당 고위관리)들에게 ‘김정일을 중국으로 보내달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김정일이 개혁·개방으로 나가겠다고 결심만 한다면 모든 것을 도와줄 용의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김정일은 중국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동북지역의 안정이고, 이를 위해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따라오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북한을 중국의 동북 제4성으로 만든다는 주장은 괜한 걱정이라고 봅니다. 그런 데 신경 쓰는 것보다는 김정일 정권을 평화적으로 교체하는 데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

    그는 설령 중국 당국자들 가운데 일부가 ‘역사 동북공정’ 등을 통해 북한을 흡수하겠다는 생각을 할지라도, 실제로 그런 일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전에 저우언라이 총리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조선 땅은 5000년 동안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또 중국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북한을 흡수하겠다는 사람이 (중국 내에) 있다면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여기(남한) 사람들도 간도 땅이니, 고구려 땅이니 하는 말을 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 당장 북한 땅에서 신음하는 2300만 동포도 구원하지 못하는 처지에 무슨 고구려 땅을 말합니까. 한마디로 공상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북한을 해방하자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업은 김정일 독재체제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황 위원장은 한국 언론이 중국의 역사인식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는 현상을 답답해 했다.

    “중국은 과거 동북지역의 역사를 중국의 변경(邊境)역사로 포괄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사뿐 아니라 몽골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중국의 역사인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고구려사를 우리의 역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인식이 어떻든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중국의 역사인식에 시비를 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와서 고구려땅 이야기를 해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 것보다 지금은 온 땅이 감옥이나 다를 바 없는 북녘 땅을 해방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입니다. 언론이 중요한 문제와 덜 중요한 문제를 구분하지 않는 것 같아서 답답합니다.”

    “남북통일 과정은 15년 정도가 적당”

    ▼ 중국의 처지에서 보면 북한은 탈북자 인권 문제, 대량살상무기 등 계속해서 분란만 일으키는 골치 덩어리입니다. 그럼에도 중국이 김정일 정권을 계속 지원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중국은 북한에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한다는 사실입니다. 중국이 굴레 벗은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하려는 김정일을 계속 붙들고 앉아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무엇보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압록강까지 다가오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 쓸모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지금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초강국으로 발전했습니다. 또 이면(裏面)에서는 미국의 위협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식 자유민주주의가 중국에까지 들어오면 13억 다민족 국가의 정치적 통일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중국은 생각합니다.

    또한 북한 김정일의 수령유일독재체제는 중국 인민들로 하여금 과거 낡은 중국의 고통과 불행을 연상시키는 실례(實例)가 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처참한 현실이) 오히려 중국의 현 체제가 가진 우월성을 국민으로 하여금 인식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거지요. 지금 중국과 북한은 체제상 큰 차이가 있지만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반대하는 점에서는 이해관계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두 나라를 계속해서 접근시키는 기본요인입니다.”

    황 위원장은 김정일 독재체제가 제거되고 북한에 시장경제가 도입되면, 남북한의 동질화 문제뿐 아니라 최종적인 통일 문제도 순조롭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수령절대주의 체제의 제거가 선결 조건이라는 것.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에 나서는 것이 남한 처지에서도 훨씬 충격이 덜한 북한사회의 확실한 진보이고, 그 다음 단계에서부터는 비교적 순조롭게 평화통일로 이행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필요한 시간이 대략 15년 정도라고 말했다. 우선 북한이 개혁·개방되고 시장경제가 도입되면 한국 주도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경제협력을 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15년쯤 지속되면 남북간 경제격차가 줄어들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남과 북이 서로 오고가고 동질성을 회복하면서 점차 평화통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남과 북이 갑자기 통합되면 여기(남)도 어렵고 또 북한 인민들에게도 반드시 좋은 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북한 사람들도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열심히 노력해서 살아가는 법을 체득해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남북의 분계선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남과 북이 서로 오가고 북한에 사람과 자본과 기술이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대략 15년 정도 지나면 남북한 경제력 차이도 많이 줄어들고 또 남북 동질화의 성과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지금 북한을 중국식 개혁개방 체제로 바꾸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북한 해군은 반드시 복수할 것”

    황 위원장은 결코 허투루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필자는 1999년 4월부터 2004년까지 통일정책연구소에서 매주 이틀씩 북한 문제에 관한 그의 강의를 들었다. 이후에도 매주 한 번씩은 강의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고, 지금도 매월 정기적으로 분석과 전망을 듣고 있다. 햇수로 치면 7년이 넘는다.

    필자는 이 기간에 그로부터 피상적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의 분석은 거의 예외 없이 적중했다. 1999년 6월 서해북방한계선(NLL)에서 연평해전이 발발하고 우리 해군의 승리로 끝나자 그는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북한 해군이 똑같은 방식으로 반드시 복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3년 뒤 2002년 6월 월드컵 기간 중 북한 해군이 또다시 서해교전을 일으킴으로써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2000년 6월14일 남북정상회담으로 전국이 들떠 있을 때 그는 “남북 당국간 대화와 협상은 중요하다”면서도 “앞으로 남북 정권간의 유착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북정상회담 현장이 TV에서 생방송되는 바로 그 시각에 그는 그렇게 말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의 불법 대북 송금이 밝혀졌고, 북한 정권이 남한 정부의 인사 문제에까지 끼어들어도 남한이 이를 받아주는 등 남북 정권간의 유착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결국 햇볕정책이 진행되는 동안 남한 정부는 스스로 ‘북한 정권과의 유착’에 깊이 빠져버렸고, 북한 정권 눈치보기는 거의 체질화했다. 오늘날의 탈미친북과 동북아에서의 남북한 동시 고립 현상은 황 위원장이 예고한 것처럼 이미 남북정상회담 때부터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황 위원장은 지금 눈앞에 전개되는 구체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잘 언급하지 않는 편이다. 대체로 광범위한 선에서 분석과 전망을 내놓는다. 현상보다 본질을 언급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여러 현상이 상호작용하면서 나타나는 결과를 핵심적인 선에서 구획하고 전망한다. 이 때문에 북한 문제를 둘러싼 여러 현상을 잘게 썰어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기자들에게는 그의 답변이 매우 밋밋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좁은 범위에서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들의 이야기보다 황 위원장의 포괄적이면서 핵심적인 답변을 듣는 것이 현실을 이해하는 데 훨씬 유익할 때가 많다. 결국 ‘경륜의 힘’인 셈이다.

    북한이 이라크 되지 않으려면

    최근 그의 발언 중 필자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대목이 하나 있다. 김정일 정권이 종말을 향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예를 적시하며 설명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제 탈북자들이 일정한 사명감을 갖고 준비할 때가 왔으며 김정일 몰락 이후를 본격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설명하면서 그는 이라크의 예를 들었다. 김정일 정권 몰락 이후 주민들의 사상적인 개조가 신속하게 준비되지 않을 경우 수많은 희생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수령절대주의 사고를 빠른 시일 안에 효과적으로 해체하려면 탈북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손광주

    1957년 대구 출생

    고려대 불문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이념연구센터장

    現 북한전문 인터넷 뉴스 The DailyNK 편집인

    저서 : ‘김정일 리포트’ ‘다큐멘터리 김정일’ ‘주체사상과 인간중심철학’(공저) 등


    필자는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실패의 화근은 경륜 있고 실력 있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물과 현상은 자신이 아는 만큼 보이게 돼 있다. 아는 만큼 보고, 보는 수준만큼 생각하고 행동하게 돼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또는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다는 게 노무현 정부의 특징이라는 점이다. 자신이 어느 수준에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경륜 있고 실력 있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마저 하지 않으면 정책의 실패는 정권의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임기 5년의 실패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실패와 한반도 미래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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