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호

이명박 전 서울시장 10개월 동행 취재기

현장주의·전문가 존중이 리더십 원천, 거친 화법과 ‘반타작 용병술’은 넘어야 할 산

  • 이재기 CBS 사회부 기자 dlworl@cbs.co.kr

    입력2006-10-02 18: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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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효리와 옥주현 중 괜찮은 사람 있지만…밝힐 순 없지”
    • 서울광장, 세종로 네거리 횡단보도 결정하는 데 8개월 고민
    •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 같지만 부끄러움 잘 타고 정 많아”
    • “한번 기용한 사람은 ‘돈 먹지 않는 한’ 안 자른다”
    • 연초, 치솟는 지지율 부담스러워 예정된 언론 인터뷰 연기
    이명박 전 서울시장 10개월 동행 취재기
    2005년 9월, 서울시청을 출입하면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첫 인연을 맺었다. 이 시장이 성공한 CEO로 워낙 유명세를 탄 터라 그를 아주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아는 것이라고 해봤자 현대건설 사장 출신이라는, 누구나 다 아는 정도에 불과했다. 시쳇말로 ‘맹탕’이었다. 그래서 서울시청을 출입하며 이 시장과 함께했던 10개월은 ‘이명박 그리기’의 과정이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이 전 시장과의 첫 대면은 지난해 9월5일, CBS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인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팀이 대학생 기자단을 패널로 해서 이 시장과 인터뷰를 진행할 때였다. 필자는 CBS 서울시 출입기자로 인터뷰 자리에 배석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으로 정국이 시끄러울 때였다. 이 시장은 연정 제안에 대해 “뭔가 전략이 있을 것”이라며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는 대통령 중임제 개헌 문제와 송파신도시 등 다소 무거운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대뜸 “‘쥬얼리’를 아느냐?”고 묻자 이 전 시장이 “그건 모르는 사람 없으니까 알죠”라고 받아 넘겼다. 이어 “동방신기, 신화, HOT 중 멤버가 가장 많은 그룹이 어느 것이죠?”하는 질문에는 “네 사람 아닌가요?”라고 답해 배석자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진행자는 짓궂게도 비슷한 질문을 계속했다. 이번엔 “옥주현과 이효리 중 누가 더 섹시합니까?”라고 물었다. 그의 대답이 압권이었다. “서양식으로 생각하면 양쪽 다 섹시하고, (둘 중에) 내 개인적으로 ‘아, 괜찮다’ 이런 사람은 있죠. 밝힐 수는 없지만 눈여겨보고 있죠.” 대본에 없는 질문공세에 어리둥절해하는 그의 모습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 전 시장에 대한 취재는 그렇게 시작됐다.

    “노숙자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청계천 복원과 버스중앙차로제 같은 큼직한 사업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전 시장이 임기 중 가장 비중 있게 다루고, 남다른 애착을 보였던 사업이 ‘노숙자 일자리 갖기’다. 시장 처지에서 도시미관을 고려할 때 늘어만 가는 노숙자는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일 터. 그러나 그에게 노숙자는 단순히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난 2월초 용산구에서 노숙자를 상대로 특강을 할 때 그는 “여러분 나이에 바로 이 용산에서 4년 동안 환경미화원을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오갈 데 없는 나를 평화시장에서 고용해줘 4년 동안 매일같이 새벽 4시면 일어나 쓰레기를 치웠다. 지금의 반포대교 언저리까지 하루에 적게는 4번, 많을 때는 8번까지 쓰레기를 싣고 오갔는데 길이 경사가 져서 일을 끝내고 나면 허리가 휘청했다.”

    현대건설 사장에 재선 국회의원, 그리고 서울시장이 된 그의 입에서 암울했던 과거의 편린이 쏟아져 나오자 ‘노숙자 일자리 갖기’ 사업에 냉소적이던 노숙자들의 태도가 금세 달라지는 게 눈에 띄었다. 그의 회고는 계속됐다.

    “청계천 8가에 인력시장이 있었어요. 새벽 5시에 나오면 건설회사고 어디고 와서 필요한 잡역부를 데리고 가죠. 반쯤 데리고 가면 나머지 반은 그날 공치는 거예요. 아침 일찍 나왔다가 공치면, 사람들은 화를 내요. 하지만 화낼 일이 뭐 있어요? 홧김에 달동네 구멍가게에서 외상으로 대낮부터 소주를 마셔요. 일 나간 사람은 열심히 돈 버는데 그 사람은 돈도 못 벌고 외상으로 소주 먹는단 말이에요. 몸 상하지, 돈 못 벌지…. 그때 나는 어떻게 했냐 하면, (인력시장에서) 계속 기다렸어요. 쭈그리고 앉아 있으면 대낮에 건설회사에서 보조 일꾼을 구하러 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게 일을 나가면 물론 일은 3분의 2를 해주고, 임금은 절반도 못 받지만. 그때 내 소원이 뭐냐, 대단한 희망이 있었던 게 아니에요. 아무리 적어도 좋으니 출퇴근하고 월급 받는 일자리를 가지면 좋겠다는 거였죠. 그런 심정은 겪지 않고는 몰라요. 나는 여러분의 처지에서 내가 겪었던 처절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10개월 동행 취재기

    지난해 12월24일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한 이명박 전 시장.

    이 전 시장은 이 날 “작은 기회지만 여러분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말로 특강을 맺었다. 당시 강연에 동행했던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시장이 노숙자들에게 다가가려고 일부러 쑥스럽고 구차한 자신의 과거를 들춰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부모 잃은 아이에게 남몰래 선물

    지난해 2월9일,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사는 서른세 살 설동월씨 부부가 설날 귀성길에 사고를 당한 차량의 운전자를 구한 뒤, 빙판길에 미끄러진 차에 치어 숨졌다. 당시 이 부부의 사연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왔다. 서울시는 정부에 설씨 부부를 의사자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했고, 결국 의사자 지정을 받았다. 그런데 숨진 설씨 부부에게 20개월 된 승환이란 이름의 아들이 있어 주위의 안타까움이 컸다.

    이 전 시장은 인터넷에 올라온 설씨 부부 기사 밑에 ‘sibac’이란 아이디로 “설동월 이진숙씨 부부의 안타까운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서울시는 홀로 남은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댓글을 남겼다. 그 뒤 이들 부부는 세인의 기억에서 잊혔다. 그러나 지난해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초, 이 시장은 여비서에게 “승환군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고 싶다”며 “겨울점퍼를 구입해달라”고 부탁했다.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이명박’ 하면 1960, 70년대 고(故) 정주영 회장과 열사의 중동에서부터 구 소련의 동토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누비며 한국 근대화에 일익을 담당했던 이력을 배경으로 ‘선이 굵은 저돌적 인간상’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서울시 공무원들 또한 치밀하고 과감한 업무 추진력에 빗대 그를 ‘컴퓨터 달린 불도저’라고 불렀다.

    로마의 영웅 시저가 “사람은 자신이 눈으로 보는 사실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평가한다”는 경구를 남겼듯 이 전 시장에 대한 평가도 상당부분은 표피에 드러난 모습과 결과에 근거한다. 이 전 시장의 이른바 ‘불도저’ 이미지는 저돌적인 추진력보다는 일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전 계획 수립 및 결정 단계에서의 주도면밀함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서울광장을 조성할 때의 일이다. 장석효 전 서울시 행정 2부시장은 “서울광장을 조성하고 세종로에 횡단보도를 그어, 서울도심의 통행체계를 보행자 중심으로 바꾸자는 논의가 2003년 7월부터 시작됐지만, 그로부터 무려 8개월이 지난 뒤에야 공사가 시작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시장이 공사를 강행할지 말지를 반복해서 물을 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불도저? 답답할 정도로 신중”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수만대의 차량이 오가는 시청광장에 큰 공사를 벌일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세종로에 횡단보도를 긋는 계획에 대해서도 경찰의 반대가 완강했고, 시의원들도 하나같이 반대했다. 장 전 부시장은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교통소통에는 별 문제가 없고, 착공 후 설사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내가 풀어가겠노라고 얘기하면서 어서 결정만 내려달라고 했을 만큼 이 시장의 의사결정 과정은 답답하기까지 했다”고 회고했다. 서울시 간부들은 ‘불도저’로 알려진 이 시장의 이 같은 면모에 적잖게 놀랐다고 한다.

    이렇듯 신중에 신중을 기해 한번 결정한 사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 또한 이 전 시장의 스타일이다. 그래서 결국 ‘불도저’가 되는 것이다.

    이 전 시장은 재임 당시 사석에서 “대학시절 내성적인 성격이 싫어서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는 등 성격개조를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고 이후 성격이 외향적으로 변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타고난 본성은 어쩔 수 없는가보다. 강승규 전 서울시 홍보기획관은 “이명박 전 시장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 같아 보이지만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정이 많다”고 말한다. 시장 임기를 사흘 남겨둔 6월27일에는 실·국장들이 부부동반으로 참석한 이임환송연에서 이 전 시장이 구속된 양윤재 전 부시장과 검찰 수사 중 자살한 박석안 전 주택국장 이야기를 하며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전 시장은 1992년 새해 첫날 정든 현대그룹을 떠나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표로부터 전국구 국회의원 영입제의를 받고 정계에 입문한다. 14대 전국구와 15대 지역구(종로)로 국회의원 2선(選)을 하고, 민선 3대 서울시장을 역임한 그의 주변에서 현대 시절 함께했던 인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 정계에서 쌓은 인맥이다. 그의 한 측근은 “이 전 시장은 사람에 대한 장악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끌릴 수밖에 없는 흡인력을 지녔다”고 말한다. “한번 쓰기 시작한 사람은 ‘돈을 먹지 않는 한’ 자르는 법이 거의 없다”고도 했다. 이 전 시장이 자신의 용병술과 관련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10개월 동행 취재기

    지난해 9월 언론사 사장단과 함께 청계천 일부 구간을 둘러보고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2002년 서울시장에 취임했을 무렵, 누군가 상대 후보 진영에서 선거 운동했던 사람의 명단을 적은 살생부를 들고 찾아왔지만 나는 그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중용하면 오히려 그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할 텐데 굳이 불이익을 줄 이유가 없다.”

    그가 짧은 정치경력으로도 적지 않은 인맥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의 용병술이 매번 성공한 건 아니다. 1996년 국회의원 선거, 2002년 서울시장 선거 후에 각각 선거캠프에 몸담았던 이의 부적절한 ‘보상’ 요구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대권후보로서 이명박 전 시장에게 큰 기대를 거는 분야는 경제다. 그가 임기 중에 청계천 복원과 서울숲 조성, 여러 광장 조성 등 많은 일을 하고도 5조원이던 서울시 부채규모를 2조1000억원 수준으로 줄여놓은 것은 국가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기업의 사회공헌 적극 활용

    이 전 시장은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썼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기업으로부터의 ‘현물 협찬(?)’이다. 청계광장을 지나 하류 쪽으로 청계천 물길을 따라 걷다보면 광교와 장통교 사이에 도자기 타일 4960장을 붙여 만든 길이 186m의 도자벽화 ‘정조대왕 능행반차도’가 나타난다.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1795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수원 화성을 다녀오는 행차도인데, 조흥은행이 만들어 서울시에 기증했다.

    서울시는 이밖에도 청계천 복원공사를 추진하면서 청계천 양안 벽면이나 다리조성계획을 확정하고, 천변에 위치한 기업들에 사회공헌을 명분으로 기부를 제안, 기업이 이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몇 가지 사업에 대한 예산 부담을 덜었다. 물론 아이디어는 이 전 시장에게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청계천 상류의 첫 번째 다리인 모전교는 신한은행이 기증했으며, 삼일교는 우리은행, 동대문시장 부근 청계천 벽화는 GS그룹에서 비용을 댔다. 장석효 전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은 “기업에 강요한 적은 없다, 이명박 시장이 야당 출신이 아니라면 훨씬 많은 기증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광장 한켠에 설치된 분수대도 한화그룹에서 조성해 서울시에 기증한 것이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2004년 3월 광장 조성공사 때 서울시로부터 요청을 받았다”며 “그룹 자회사인 프라자호텔이 광장 조성으로 직간접적 혜택을 입게 된다는 점을 감안해 사회공헌 차원에서 12억원을 들여 분수대를 조성해 기증했다”고 밝혔다.

    한편 매년 겨울 서울광장에 스케이트장을 설치할 때 드는 비용은 우리은행이 대고 있다. 서울시 예산 절감은 ‘재원의 효율적인 배분과 우선순위에 따른 투자’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기업으로부터 적절히 도움을 받은 요인도 큰 것으로 보인다.

    “부자의 비위를 맞춰라”

    언젠가 이 전 시장은 필자도 참석한 만찬자리에서 미국 대통령선거 당시 공화당이 내건 슬로건을 화두로 끄집어냈다. ‘부자들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이 전 시장은 “실제로 부자의 비위를 맞추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부자가 돈을 쓰는 분위기를 만들려는 선거 전략으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선 돈이 좀 많으면 ‘저 놈은 나쁜 방법으로 돈을 벌었을 거야’ 하는 의혹부터 품는데 이런 풍토가 불확실성을 키운다”고 덧붙였다. ‘돈 많은 사람을 적대시하기보다 그들이 지갑을 열어 돈을 쓰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소비가 늘고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 결국 그 이익이 주위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2004년 7월1일, 서울시 대중교통시스템이 개편된 후 버스와 지하철 이용이 한결 편리해졌다. 지난 6월 시정개발연구원 조사 결과, 개편 전보다 버스 승객 수가 26.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간선도로에 버스전용차로제가 시행되면서 운행속도도 시속 20km를 넘어섰다. 이 사업은 이 전 시장이 취임 초인 2002년 7월20일, 교통전문가 음성직씨를 대중교통정책보좌관으로 영입하면서 본격화했다. 음 전 보좌관은 이 전 시장의 지시로 11쪽 분량의 서울시 교통개혁 관련 종합계획을 작성하던 중에 모친상을 당했는데, 상중(喪中)에도 보고를 강행할 정도로 열의가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의 뼈대는 지하철과 버스를 불편 없이, 그리고 추가 부담 없이 환승할 수 있는 이른바 ‘지하철-버스 ONE SYSTEM’ 구축이다. 이럴 경우 2000억원가량의 추가예산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에 서울시 안팎에서 ‘무료 환승’에 대한 반대가 심했다.

    2004년 7월 어느 날 서울시장 집무실에서 열린 교통대책회의 석상에서 음성직 보좌관이 “환승요금을 무료로 해야 교통체계 개편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할 때 나머지 간부들은 “환승요금은 첫 요금의 2분의 1 수준에서 정해져야 한다”고 맞섰다. 이때 이 전 시장이 음 전 보좌관의 견해를 수용하면서 공방은 일단락됐다.

    도시철도공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음성직씨는 최근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 전 시장은 의견이 갈린 사안을 놓고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상식적 판단이나 (비전문가인) 시민들의 반응보다 전문가가 장기적 관점에서 하는 판단을 존중했다”고 말했다. 전문가 존중은 현장주의와 함께 이 전 시장 리더십의 원천으로 평가된다.

    끊이지 않은 설화(舌禍)

    이 전 시장은 장점만큼 단점도 많은 사람이다. 서울시장 재임 중에는 거침없는 화법으로 인해 설화(舌禍)가 적잖게 빚어졌다. 2004년 기독교 행사에 참석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시민은 하느님의 백성임을 선포한다. 서울의 회복과 부흥을 꿈꾸고 기도하는 서울 기독청년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수도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어 2005년 10월에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노무현, 이회창을 놓고 인간적으로 누가 더 마음에 드냐 하면 노무현 대통령이다. 이쪽은(이회창) 너무 안주하고 주위에서 둘러싸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 전 시장측은 당시 그런 발언을 하게 된 상황과 문맥의 전후가 거두절미돼 본의가 왜곡됐다고 불만을 표시했지만 시장으로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리지 못한 잘못은 이 전 시장에게 있다.

    시장 임기를 석 달 남짓 남겨둔 3월초에도 말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미국 워싱턴 DC와 서울시가 자매결연 협정을 맺기 위해 미국 워싱턴과 뉴욕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워싱턴 주재 한국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하는 시대는 지났다. 어떤 사람은 재산을 마이너스로 신고했는데 나보다 돈을 더 펑펑 쓰더라. 어디서 돈이 생겼겠냐?”고 말해 여당은 물론 한나라당 내에서도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이 전 시장의 계속된 돌출발언 때문에 그를 동행 취재한 기자들이 ‘혹시 현지 언론에 물먹는 일이 생기는 것 아닌가’ 하고 염려했을 정도다.

    두 번째 방문지인 뉴욕에서는 이 시장이 뉴욕장로교회 신도들의 초청을 받아 강연할 예정이었는데, ‘또 무슨 말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필자를 포함한 3명의 기자가 맨해튼 호텔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뉴욕장로교회까지 가서 은밀히 지켜보기도 했다. 그날은 문제될 만한 발언이 없었다.

    이 전 시장은 방미 기간 중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과 조찬회담을 갖고, 에릭 에델만 국방차관과 로더만 차관보, 롤리스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 피네건 한반도 과장 등 국방성 내 대(對)한반도정책 결정자, 로버트 졸릭 국무부 부장관, 롭 포트만 무역대표부 대표 등과 회동했으며, 브루킹스와 헤리티지재단 등 미국 내 싱크탱크 4곳에서 연설하는 등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황제 테니스’ 의혹이 일파만파로 확대되는 바람에 일정을 채 마무리하지 못하고 조기 귀국했다.

    이 전 시장은 2006년 6월26일 임기를 불과 나흘 남겨두고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아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그는 “개성공단 사업의 성공 여부는 기업의 여건을 개선하고자 하는 북한 정권의 의지에 달려 있다”면서 “현장을 둘러보니 아직은 시작에 불과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현장 시찰 후 기업인들이 개성시내 ‘공동관식당’에 마련한 오찬엔 주동찬 중앙특구개발 지도총국장 등 북쪽 관계자 다수가 참석했다. ‘명정술’로 이름붙여진 ‘해구신주(海狗腎酒)’가 반주로 나왔는데 잔을 가득 채운 뒤 이 전 시장이 건배 제의를 했다. 식사를 하며 북측 인사들과 대화를 나눌 땐 “기업 입장에서는 기업을 잘 아는 사람이 국가권력을 갖는 것이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전 시장은 이른바 ‘서울 봉헌’ 발언으로 홍역을 치른 뒤 불교계 인사들과의 접촉 빈도가 부쩍 늘었다. 2005년 9월15일 조계사에서 열린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의 영결식에 참석해 조사(弔辭)를 할 때엔 “41년 동갑내기로 종교를 떠나 깊은 우정을 나눴다”는 내용의 글을 읽어 내려가는 와중에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장내가 어수선해지자 ‘내가 또 무슨 잘못된 발언을 했나’ 하고 불안했다고 한다.

    이 전 시장의 한 측근은 “이명박 시장의 조사가 시작되자 하늘에 해무리가 나타나더니 조사가 끝나자 해무리가 사라져 영결식장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놀라 웅성거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전 시장이 2월17일 대구 동화사를 방문했을 때도 이 얘기가 화제가 됐다. 아침 일찍 절을 방문해 주지인 지성스님과 조실 진재스님과 함께 조찬을 했지만 서로 잘 알지 못하는데다 종교적 편파발언의 여파도 남았던 터라 분위기가 어색했다. 그때 배석한 한 스님이 법장스님 영결식 때 출현한 해무리 얘기를 꺼낸 것. 이날 스님들은 이 시장에게, “큰 지도자가 되면 (기독교 불교 가리지 말고) 두루 잘해달라”는 말을 건넸다.

    치솟는 지지율로 고민

    인터넷 공간을 떠도는, 이 전 시장과 관련한 갖가지 루머가 쉽게 잦아들지 않고 있다. 대개 그의 재산과 사생활에 관한 것인데, 법적 대응도 불사했지만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 조차 ‘이 전 시장에게 숨겨놓은 자식이 있고, 재산도 어마어마한 규모일 것’이란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

    이춘식 전 서울시 부시장은 “이 시장에게 숨겨놓은 아이가 있다는 얘기는 종로 국회의원 선거 때부터 나왔다. 당시 상대후보 진영에서 소문을 퍼뜨린 것으로 안다. 그러나 증거는 나오지 않았고, 2002년 서울시장선거 때도 같은 내용의 소문이 돌았다. 200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또 나오는 것이다. 증거가 있다면 이런 식으로 진행될 수 있겠나. 사단이 나도 벌써 났지” 하며 소문이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2006년 초, 임기 마지막 해를 맞은 이 전 시장에게 국내 거의 모든 언론사로부터 신년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필자가 소속한 CBS도 올해 1월 중순, 이 전 시장에게 인터뷰를 정식으로 요청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1월 둘째와 셋째주에 예정됐던 2개 언론사와의 인터뷰가 연기되고, CBS의 인터뷰 요청에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내막을 알아보니 지지율 상승세 조정을 위해 언론 인터뷰 일정을 순연시키고 있었다. 서울시장 취임 초만 해도 대선후보로서 지지율이 4∼5% 수준을 맴돌았는데, 임기 말에 이른바 청계천 특수로 솟아오르는 지지율을 주체하지 못해 인위적 조정까지 시도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박영준 전 서울시 정무국장은 “이 시장은 청계천 준공 3개월 전부터 (지지율이) 뜨기 시작해 한 번도 꺾이지 않고 18%에서 27%까지 올라갔지만 ‘좋다’는 생각보다 급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걱정이 앞섰다”고 전했다. 지지율이 높을수록 국민의 기대도 비례해서 커지는데 임기 말에 지지율을 받쳐줄 마땅한 소재가 없다는 것이다.

    박 전 국장은 “임기 말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가운데 빠르게 올라가는 지지율은 급격히 떨어질 수도 있고 해서 한번씩 다져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페이스 조절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은 이후 이른바 ‘황제 테니스’ 논란에 부닥쳐 지지율이 바닥을 치기도 했다.

    공직을 떠나 본격적인 대권 질주에 나선 지금, 이 전 시장은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 준비에 여념이 없다. 10개월 동안 이명박 전 시장을 바라보면서 필자는 그가 준비에 능한 사람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알게 됐다. 오늘의 그는 철저한 준비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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