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기 드라마 ‘이산’에 ‘송연’으로 열연 중인 한지민(25). 그간 드라마 ‘무적의 낙하산요원’ ‘경성스캔들’, 영화 ‘해부학교실’ 등에서 폭넓은 연기를 보여준 그는 ‘이산’을 통해 연기력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사냥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작품마다 새로운 매력을 뿜어내는 한지민의 내면세계.
송연으로 열연 중인 한지민(25)은 2003년 화제의 드라마 ‘올인’에서 송혜교의 아역으로 데뷔한 후 차근차근 연기력을 다지더니, 어느 샌가 주인공을 꿰차며 정상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그가 주인공을 맡은 ‘늑대’ ‘무적의 낙하산요원’ ‘경성스캔들’과 영화 ‘해부학교실’은 평론가들의 호평과 함께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그의 색깔 있는 연기 덕분이다.
한지민에게 드라마 ‘이산’은 각별할 듯하다. 연기력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높은 시청률이란 덤까지 얻으며 화제를 모으고 있으니 말이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줘 ‘그 배우’가 ‘이 배우’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넓은 연기를 하는 비결이 뭘까.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자그마한 체구와 동안(童顔), 깨끗한 미소가 매력인 그를 만나기 위해 ‘이산’ 촬영장인 경기도 용인 MBC 드라마세트장을 찾았다.
분장실 인터뷰는 처음이었다. 맨얼굴에다 화장하고 머리 만지는 광경을 지켜보노라니 어째 그의 속살을 엿보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바짝 붙어 앉아 얘기를 나눠 그의 콧김이 느껴질 정도였다.
“밤샘촬영도 즐거워요”
송혜교 아역으로 데뷔한 한지민은 ‘늑대’ ‘무적의 낙하산 요원’ ‘경성 스캔들’ 등에서 주인공을 꿰차며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밤샘촬영을 했는데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피곤하긴 하지만, 매일 밤을 새우는 건 아니어서 괜찮다”며 “나보다는 촬영팀이 더 고생이다. 매일 밤을 새우고도 연기자들보다 일찍 나와 촬영준비를 한다”며 스태프들을 챙긴다.
“배우는 자기 촬영이 아닐 때 짬짬이 쉴 수라도 있지만 스태프는 쉬지도 못하고 계속 촬영을 하잖아요. 그것도 매일. 그걸 생각하면 현장에서 졸립거나 피곤하다고 티를 내면 안 되겠더라고요.”
분장을 마치고 촬영장으로 가는 동안 한지민은 동료 배우며 만나는 스태프마다 스스럼없이 장난을 걸었다. 그만큼 촬영장 분위기는 밝고 끈끈한 정이 느껴졌다.
“드라마 할 때 제일 중요한 게 촬영장 분위기예요. 촬영장 분위기가 살아 있어야 살아 있는 연기가 나오거든요. 우리 식구들은 대부분 ‘대장금’부터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팀워크가 좋아요. 재미있게 일하니까 밤을 새워도 짜증이 안 나요. 더욱이 시청자의 호응과 언론의 관심도 커서 더 힘이 나는 것 같아요.”
‘이산’을 연출하는 이는 ‘대장금’을 연출했던 이병훈 PD. 한지민도 ‘대장금’에서 장금이(이영애 분)의 친구인 의녀 신비로 출연했다. 그 인연으로 ‘이산’도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이병훈 감독을 많이 ‘신뢰’하는 것 같다”고 하자 “제가 감독님에게 많이 ‘실례’를 하죠”라며 웃는다.
“감독님은 코믹하고 엉뚱한 게 정말 재미있어요. 대본 연습 확실하게 시키고, 연기가 제대로 나올 때까지 OK 사인을 안 내는 등 치열하게 일하지만, 촬영장에서 가장 많은 웃음을 제공하며 분위기를 살리는 것도 감독님이에요.”
▼ 사극은 현대극과는 말투부터 달라 젊은 연기자들이 힘들어하던데요.
“대사가 길고 요즘 쓰지 않는 단어가 많아 어려운 점이 있어요. 말을 할 때도 배에 확실히 힘을 줘서 해야 하고. 그래도 지적받은 적은 없어요. ‘대장금’을 하면서 감독님으로부터 ‘배로 말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게 알게 모르게 몸에 밴 것 같아요.”
▼ 촬영하면서 뭐가 제일 힘들어요?
“연기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죠. 왕세손(이산)을 사모하는 역할이잖아요. 옛날엔 신분제도가 엄격해 세손을 오래 쳐다볼 수도 없을 텐데, 혼자 마음속으로 세손에 대한 연정을 품는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 감정을 어떻게 연기로 표현할지 늘 고민하고 있어요.”
▼ 촬영장 분위기가 좋아 재미있는 일도 많았겠네요.
“너무 많아서 어떤 것부터 얘기해야 할지…. 이서진 선배(정조 역)가 절 많이 괴롭히고 놀려요. 앞으로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는데, 그때 어떻게 연기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어제만 해도 한약을 건네주면서 제 손을 잡는 장면을 찍는데, 카메라가 멀리서 잡고 찍으니까 그 틈을 타 제 손을 꼬집는 거예요. 카메라가 돌고 있으니 아프다고 소리 지를 수도 없고…. 늘 그런 식이에요. 그렇게 장난을 치다가도 자기가 연기할 때는 놀라울 정도로 집중해요. 정말 얄밉죠.”
“내 삶의 1순위는 가족”
그는 드라마 ‘이산’ 외에도 매주 토요일에 방송되는 연예정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 일주일 내내 스케줄이 빡빡하다.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준비된 답변’을 말하자면 ‘긍정적인 사고’?”라며 깔깔댄다.
“보약을 먹고 있답니다. 옛날엔 비타민 챙겨주는 것도 귀찮아서 안 먹었는데, 지금은 스스로 챙겨 먹어요.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추울 땐 한 신만 찍어도 배가 고파져요. 전엔 살이 찔 것 같아 먹으면서도 고민했는데, 지금은 정말 많이 먹어요.”
▼ 메니에르라는 난치병을 앓고 있다던데, 괜찮은가요?
“귀에 이상이 있어서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지러운 증세가 나타나는 병인데,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래요. 의사는 늘 마음 편하게 규칙적인 생활을 하라고 하지만 연기자 활동을 하는 한 불가능한 일이라 그냥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심할 땐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어지럽지만 쉬면 괜찮아져요. 죽는 병도 아니고, 그렇다고 치료가 가능한 병도 아니에요. 평생 조심하며 살아야죠.”
▼ 그런데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걸 보면 체력이 좋은 모양이에요.
“김정남 전 축구국가대표 감독이 제 삼촌이세요. 아빠도 운동을 좋아하시고요. 그래서 기억도 안 날 만큼 어릴 때부터 아빠랑 축구하고, 스케이트 타고 그랬대요. 체력장에서 항상 만점을 받을 정도로 체력은 자신 있어요.”
▼ 어릴 때 말괄량이였겠네요.
“아니에요. 유치원 때 선생님이 엄마에게 ‘지민이는 말도 안 하고 친구들이랑 어울리지 못한다’고 걱정할 정도로 진짜 얌전했어요. 그런데 집에선 활발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제 재롱을 보며 즐거워하셨거든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밖에서도 활발해졌는데, 그때부터 제가 점점 남성화하지 않았나 싶어요. 사람들이 저를 처음 보면 조용하고 얌전할 것 같대요. 그런데 제 목소리를 들은 후에는 그런 말이 싹 들어가요(웃음).”
▼ 실제 성격은 어떤가요.
“연기를 하면서 많이 변했어요. 전에는 보수적인 편이었어요. 언니가 데이트를 하다 늦게 들어오면 제가 혼을 낼 정도였죠. 지금은 나름대로 사회에 적응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할까, 조금은 개방적으로 변했어요.”
▼ 집안 어른들이 완고한 편인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모두 제게 ‘안 된다’는 말을 하신 적이 없어요. 제 삶의 1순위는 가족이에요. 드라마 ‘올인’도 처음엔 오디션이 가족행사와 겹쳐 포기했다니까요. 인연이 닿았는지 뒤에 다시 오디션을 봤지만.”
여러 어른과 함께 살아서일까, 그는 예의범절이 바르다는 소릴 자주 듣는다. 어린 스태프나 연예인이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따끔하게 충고도 한다는 게 동료 연예인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별명이 ‘윤리선생’이라고 한다.
“촬영 일이 너무 힘드니까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요. 개중엔 책임감 없이 뒷정리도 안 한 채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두겠다는 친구들도 있죠. 그러면 제가 앉혀놓고 ‘갈 때 가더라도 마무리는 잘하고 가라’고 타이르곤 하죠.”
그가 팬 카페에 이런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나는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만 치장을 해 앞모습에만 신경을 쓰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모습이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헤어짐의 모습도 중요시한다. 그것이 일에 있어서든, 사랑에 있어서든, 모든 관계에 있어서든.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뒷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따뜻하고 행복해 보이길 늘 바란다.’
“사랑보다는 배려를”
한지민은 서울여대 사회사업학과를 나왔다. 고교시절부터 연예 활동을 했는데, 연기와 무관한 학과에 진학했다는 게 뜻밖이다.
“대학 진학할 때 연극영화과 특차전형에 지원할 자격은 있었지만 고려하지 않았어요. 연기를 직업으로 한다는 건 생각도 안 했거든요. 전 어떤 일이든 준비가 확실히 되어 있지 않으면 겁을 내고 안 하는 편이라서….”
▼ 사회사업학을 선택한 이유라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서인지 노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고등학교 때 봉사활동을 가면 어린아이들도 좋아하지만 양로원이 더 편했어요. 대학 2학년 때 전공설명회를 듣는데, 사회사업학과는 아동 노인 장애인 여성 등 관심대상이 다양하더라고요. 어떤 직업을 갖든 꼭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 사회사업가를 꿈꾸고 있나요.
“사회사업이란 게 꼭 돈 많은 사람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나누는 마음이 중요한 거죠. 과 친구들이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로 많이 일하고 있는데, 자기를 희생하지 않곤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그런데 보수도 너무 적고 일하는 환경도 열악해요. 그런 친구들에게 힘이 되는 일을 하고 싶고, 소외된 분들을 위한 일도 하고 싶어요. 머릿속으로 거창하게 세운 계획도 있는데, 말 안 할래요.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선배들도 있는데 당장 실행할 것도 아니면서 구상만 떠벌리는 건 보기 안 좋잖아요.”
최근 연예인 부부의 파경이 잇달아 화제가 됐다. 이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간통, 잠자리, 돈 문제 등이 적나라하게 공개돼 사생활의 과잉보도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TV 연예보도 프로그램도 예외가 아니다.
▼ 연예보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연예인의 사생활 과잉보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연예가중계’ 대본 연습을 할 때 우리들끼리 그런 고민을 토로해요. 친분이 없는 연예인이라도 안 좋은 내용이 나갈 땐 마음이 아프죠. 그런데 연예인이란 직업의 특성상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스캔들에 너무 초점을 맞춘다며 불평하는 연예인도 있지만 그만큼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니까 보도하는 거잖아요.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부분만 보도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죠. 원하는 것을 얻는 만큼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 공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청소년들에겐 대통령의 말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말이 더 영향력이 크다고 하잖아요. 요즘은 정말 그런 걸 느끼겠더라고요. 저를 어디서 봤는데 어떻다더라 하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온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많은 사람이 저를 주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좀더 절제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한지민씨 스캔들 기사를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아요.
“저도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요(웃음). 저는 작업할 때 모든 배우, 스태프들을 가족으로 여기고 편하게 지내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남자들과도 어느새 ‘형’ ‘동생’이 돼 있어요. 그래서 스캔들이 나지 않는 걸까요?”
▼ 남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나요.
“어머, 제 나이가 몇인데요. 두 명 사귀어봤어요. 여고 때는, 남자친구는 대학 가서 사귄다고 미뤘는데 여대에 들어가니까 남자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만나고 싶었지 일부러 인연을 만들려고 미팅 같은 걸 하고 싶진 않았어요.”
▼ 사랑이란 게 어떤 걸까요.
“정말 모를 게 사랑인 것 같아요. 저는 사랑보다 중요한 게 배려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랑도 한결같을 수는 없다고 봐요. 익숙해지고 서로를 알아가면서 처음의 불같은 사랑은 식어가요. 대신 그 자리를 노력과 배려로 채워야 하고, 그게 진정한 사랑이 되는 것 같아요.”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 중학교 3학년 때. 담임교사의 소개로 지금의 매니저를 만났다고 한다. 연예인과 소속사가 계약파기를 놓고 법정소송까지 불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그는 10년 넘게 같은 매니저와 일한다.
“매니저가 중3 담임선생님의 처형이에요.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한가족 같았어요. 고등학교 때 엄마 아빠가 지방에 계셨는데, 매니저가 공부도 가르치면서 부모님처럼 보살펴줬어요. 다른 데로 옮긴다는 건 생각도 안 해봤어요.”
‘안 튀는 연기’ 희망
▼ 드라마 ‘올인’으로 데뷔해 곧바로 주인공을 꿰찼는데, 다음 작품인 ‘대장금’에선 조연으로 떨어졌더군요.
“연기가 뭔지, 연기의 재미와 보람이 뭔지도 모른 채 ‘올인’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덜컥 드라마 주인공이 주어졌죠. 욕심을 내서 시작하긴 했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했기에 재미도 없고 그저 어렵기만 했어요. ‘이 길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만큼 힘들었죠. 그때 ‘대장금’의 작은 역할이 들어왔어요. 그런 작은 역할을 통해 차근차근 배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어요.”
▼ 한번 주인공을 해보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짜릿한 경험 때문에 조연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하던데요.
“짜릿하기는커녕 무섭기만 했어요. 연기가 하도 힘들어 ‘쟤 예쁘다’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대장금’을 하면서 비로소 웃을 수 있었어요. 그 다음에 단막극 드라마시티를 찍었는데, 그땐 정말 즐거웠어요. 우는 연기를 하는데, 정말 제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아, 이게 연기구나 싶었죠.”
▼ 그때 연기에 눈을 뜬 모양이네요.
“아니에요. 눈을 뜨려면 아직 멀었어요. 단막극을 통해 연기의 즐거움을 알았다면, 영화 ‘청연’을 하면서는 연기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극중인물에 동화된다는 게 뭔지 느끼겠더라고요.”
▼ 이후에 주인공을 맡은 ‘늑대’ ‘위대한 유산’ ‘낙하산요원’ ‘경성스캔들’은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지만 흥행에선 저조했는데, 섭섭하지 않았나요.
“호평이 아니라 혹평을 받았죠(웃음). 전혀 섭섭하지 않았어요. 이런 좋은 작품을 더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작품을 열심히 만드는 것, 거기까지가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시청률은 시청자의 몫이지 연기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요.”
“작은 키, 콤플렉스 아니라 매력”
▼ 톱스타가 되려면 카리스마와 순간적인 흡인력이 더 강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더군요.
“톱스타가 되기 위해 뭘 하겠다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그저 다른 사람들이 연기를 잘하고 있는데 나 때문에 망치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생각해요. 튀지 않고 다른 캐릭터들과 어울려 갔으면 하는 마음뿐이에요.”
▼ 요즘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다면.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닌데, 얼마 전에 읽은 오프라 윈프리 자서전이 인상에 남아요. 지금은 유명인사고 큰 부자이지만 옛날엔 가난한 이혼녀였더군요.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걸, 따라서 주어진 상황에서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 배우들은 다양한 캐릭터를 체험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던데요.
“저는 책을 읽으면 책 속 캐릭터를 쫓아가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그 말투를 따라가요. 그래서 그렇게 안 하려고 해요. ‘경성스캔들’도 ‘경성애사’라는 원작이 있는데, 일부러 안 읽었어요. 저만의 ‘여경’이란 인물을 만들려고요. 드라마를 끝낸 후에 그 책을 읽어 봤는데, 뜻밖에 상당히 야한 이야기던데요(웃음).”
▼ 야한 이야기가 나와서 묻는 건데, 요즘 ‘색.계.’라는 영화가 화제잖아요. 그런 수위 높은 베드신이 있는 작품도 할 나이가 되지 않았나요.
“벌써 제가 그런 나이가 됐나요(웃음)? 노출 신을 연기로만 봐주시는 분들도 있지만 아직까지 연기보다는 노출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분이 더 많아서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에요. 아직까진 ‘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는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 작품이 들어오면 그때 생각해보죠 뭐. 과거에 그런 작품이 들어온 적이 있는데, 그땐 준비가 안 돼 있었어요. 왜 거기에 그런 장면이 들어가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제가 이해가 안 되는 상태에서 연기를 하면 당연히 관객도 이해를 못할 거잖아요.”
▼ 콤플렉스가 있나요.
“콤플렉스 없는 사람은 없죠. 저는 한번도 키가 작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 일을 하면서 ‘작아서 안 된다’ ‘어려 보여서 안 된다’는 말을 들으니까 정말 속상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저보다 더 작은 사람을 보게 됐어요. 나보다 작은 사람은 지금의 나를 부러워할 거란 생각이 들면서 생각을 바꿨어요. 이젠 작다고 놀려도 그게 내 매력이라고 말해요.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 매사에 그렇게 긍정적인가요.
“지나간 것에 후회도 많이 하지만 미련을 갖지는 않아요.”
▼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이산’의 화완옹주나 정순왕후 역할이요. 온화한 모습과 독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잖아요. 감독님이 ‘앞으로 드라마가 진행되면 네가 강하면서 냉철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잘해줬으면 한다’고 하셨어요. 잘할 자신 있어요.”
인터뷰 때문에 촬영이 조금 늦어진 모양이었다. 조감독이 빨리 오라고 한지민을 재촉했다. 한지민은 “멀리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다”며 “돌아가는 길에 단풍구경이라도 하고 가라”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돌아오는 길 내내 그의 볼처럼 붉은 단풍이 산을 곱게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