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호

‘거짓말쟁이’ 신정아의 진실

“복수하기엔 시간이 너무 흘렀다, 내일 죽더라도 아쉽지 않다”

  • 조성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11-04-19 11: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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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책이 관음증 자극한다는 건 독자에 대한 모욕
    • 정운찬 전 총리와의 통화기록, 내가 안 받은 것까지 치면 100통쯤 될 것
    • 성추행 조선일보 C기자, 사과한 후에도 치근댔다
    • 노 대통령과 한 번만 만난 게 아니다
    • 과거로 돌아간다면 학교에서 진짜 열심히 공부하겠다
    • “예일대 잘못 인정되면 신정아씨 명예회복에 도움 될 것”(동국대 관계자)
    • 문화일보 누드사진은 대한민국 남자들에 대한 모독
    • 더러운 불륜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사랑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거짓말쟁이’ 신정아의 진실
    신정아(39)씨의 얼굴은 작고 야위어 보였다. 눈 위쪽엔 연한 쌍꺼풀이, 아래쪽엔 엷은 다크서클이 자리 잡고 있다. 이목구비는 오밀조밀하고 손가락은 가늘고 긴 편이다. 옷차림은 수수하면서도 세련돼 보인다. 검은색과 회색, 남색, 붉은색이 뒤섞인 재킷에 고동색 블라우스를 받쳐 입었다. 외모와 달리 목소리는 중성적이어서 강한 느낌을 풍겼다. 더는 잃을 것도, 두려울 것도 없다는 듯 대담하게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나는 정면으로 응시했다.

    2007년 이른바 ‘신정아 사건’이 터졌을 때 그녀의 학력위조 못지않게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그녀의 누드사진을 실은 한 일간지의 그로테스크한 보도행태였다. 이 보도는 한 큐레이터의 학력위조 사건을 꽃뱀사건 혹은 권력형 성 스캔들로 둔갑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사진의 진위와 별개로 해당 기사는 ‘사실’이 아닌 ‘추정’이었다. 기본 요건을 갖추지 않은 수준 미달의 기사였다. 이 신문은 법원 판결에 따라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했다.

    그 신정아씨가 책을 내 또다시 세상이 시끄럽다. 출소한 지 2년 만이다. 정신과전문의 건국대 하지현 교수는 그녀의 자전에세이 ‘4001’이 많이 팔리는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는 실명이 드러난 공인의 사생활을 은밀하게 엿보는 관음증, 둘째는 (그녀의 책을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공정하지 않은 작동원리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겠다. 첫째, 죄(논문대필)를 짓긴 했지만 거짓말(학력위조)은 하지 않았다. 둘째,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는 진짜 사랑한 사이였다. 셋째, 문화일보에 실린 누드사진은 가짜, 즉 합성사진이다.

    희대의 스캔들인 신정아 사건은 하 교수의 진단대로 우리 사회 이면의 작동원리인 ‘그들만의 리그’를 여실히 보여준다. 학계(교수사회), 문화계, 언론계, 종교계, 법조계, 정치권 인사들이 어떻게 얽히고설켜 ‘그들만의 권력’과 ‘그들만의 탐욕’을 누리는지 보여준다.



    자, 지금부터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우리가 그녀에게 그토록 화를 내거나 미워하는 진짜 이유가 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생각해보자. 소문이나 추측, 감정에 따른 선입관은 버리고 말이다. 그래야 그녀를 제대로 비판할 수 있을 테니.

    인터뷰 기사는 세 부분으로 나눴다. 1부 ‘자유인 신정아’에서는 책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2부 ‘법과 진실’에서는 그녀의 죄에 대한 법적 심판의 이면을 들춰봤다. 마지막 3부의 제목은 ‘남자, 그리고 사랑’이다.

    자유인 신정아

    3월 하순 출간된 신정아씨의 자전에세이 ‘4001’이 베스트셀러가 된 데는 언론의 요란스러운 반응도 한몫했다. 언론은 책 내용 중 흥미로운 부분을 크게 소개하면서도 그 신빙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요지는 학력위조범의 또 다른 거짓말 행진이라는 것이다. 언론에 등장한 ‘전문가’들은 그녀의 집필의도와 정신상태까지 문제 삼았다. ‘노이즈 마케팅’이니 ‘보복의 굿풀이’니 ‘복수혈전’이니 ‘가정파괴’니 ‘사이코패스’니 하는 부정적인 평가 일색이었다.

    신씨는 애초 인터뷰 요청을 완강히 거절했다. 책으로 이야기를 다 했으니 더 할 말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 배경엔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다. 오랜 설득 끝에 인터뷰가 아니라는 걸 전제로 만나 두 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이후 인터뷰 날짜가 잡혔으나 당일 아침 갑작스레 취소되는 소동이 벌어졌고, 다시 이틀 동안의 줄다리기 끝에 가까스로 그녀를 내 앞에 앉힐 수 있었다.

    독자들의 격려 메일

    그녀는 요즘 일주일에 두세 번 디스크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수감생활을 하며 허리디스크와 목디스크를 얻었다는 것이다.

    “책을 낸 후 밖으로 나다니기가 더 조심스러워졌다. 사실 마음은 편하다. 지난 시간을 정리했기 때문에. 다만 전보다 알아보는 분이 많아져 나 스스로 조금 위축된다.”

    ▼ 지인들도 자주 못 보겠다?

    “가끔 만나는데, 나의 힘든 사정을 들어주니 편하기도 하지만 힘들기도 하다. 내가 우울하면 다 나한테 맞춰야 하지 않나. 그래서 의도적으로 자꾸 웃고 밝게 얘기하는데 그게 좀 힘들 때가 있다. 언론에서 자꾸 이상한 보도를 하니까 그분들이 더 조심한다. 예전에 알던 분들은 거의 못 찾아뵙고 있다. 죄송해서.”

    ‘거짓말쟁이’ 신정아의 진실

    (왼쪽) 다섯 살 때 부친이 운영하던 택시회사 앞에서. (오른쪽) 동덕여중 재학 시절. 왼쪽이 신정아씨.

    ▼ (책에 대해) 친구들 반응은 어떤가.

    “새삼 ‘내 미운 사랑’ 부분에 대해 놀라는 친구들이 있다.”

    ‘내 미운 사랑’은 책의 제3장 제목으로 변양균씨와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 엄마의 ‘빤스끈’을 아직도 믿고 있는 애들이 있다.(웃음) 이거, 정말이냐고. 어떤 미술계 지인은 ‘겨우 이 정도 하고는 그렇게 욕을 먹었냐’고 하더라.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됐던 미술계 분들은 괜한 피해를 당할까봐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책을 읽은 독자들은 금방 알아듣겠지만, ‘빤스끈’은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늘 하던 ‘성교육’을 뜻하는 말이다. “변호사고 뭐고 여자는 무조건 첫 빤스를 잘 벗어야 한다. 누가 뭐라카든 빤스끈만 꽉 잡고 있어라”고. 작고한 그녀의 부친은 딸이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 주변에서 이해를 많이 해주는가보다.

    “속이 시원하다고 한다. 역시 신정아답다고. 그 창피한 부분까지도 잘했다고. 막연히 어떤 수치스러운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보다는 깨끗이 털고 정리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면서….”

    그녀는 스마트폰을 꺼내 e메일 몇 개를 보여줬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독자들의 격려 메일이라고 했다. 그녀와 같은 나이인 ‘72년생 아줌마’가 보낸 메일에는 이런 글이 눈에 띈다. “님의 글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신정아씨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낸다.” ‘40대 여성’이라는 독자는 ‘언론의 마녀사냥’을 비판했다. 메일을 보여주면서 신씨는 흡족한 표정으로 “여자의 적은 꼭 여자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6년차 직장인’이라는 남성의 지지 메일도 있었다. 수감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영등포구치소 동창생들한테 오는 메일들 중에는 되게 웃긴 게 많다.” 그녀가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집안이 어려워 변호사도 못 사는 사람이 많더라. 내가 몰래 그 사람들 탄원서를 써주곤 했다. 법은 잘 몰라도 재판을 하도 오래 하다보니까 변호사님들이 쓴 글도 많이 읽고 해서 어느 정도 정리할 줄은 안다. 그래서 8개월씩 감형 받은 사람도 있다. 막상 나는 1년6개월 꼬박 살았지만. 나보다 먼저 나가서, 내가 출소하는 날 차 보내겠다는 편지를 보낸 사람도 있었다. 조직의 두목도 있었고.(웃음)”

    ‘공화국의 창녀’

    ▼ 평론가 김용희(평택대 교수)씨가 ‘주간동아’에 기고한 글을 보니,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리는 건 신정아씨를 창녀 캐릭터로 보는 사람들의 집단적 유희 때문이라는 거다. 남성의 시각 틀에서 여성은 크게 위대한 어머니와 창녀 두 부류라면서.

    “조선일보에도 그런 글이 실렸잖은가. ‘공화국의 창녀’라고.”

    ▼ 김 교수는 또 ‘사람들은 그런 추문을 통해 사실 그 자체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보려 한다. 추문 위에 자신의 욕망을 배설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이중적 심리를 지적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얘기를 듣고 언뜻 생각나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녀간에) 어떤 일이 생기면 늘 여자가 가해자이고 남자는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남녀문제는 두 사람만이 아는 거지 다른 누가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을 한 게 사실이지만 그 과정을 돌이켜 보면 남들이 뭐라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왜 사건의 본질은 오간 데 없냐는 거다. 애초 예일대에서 거짓말만 안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커질 일이 아니었다. 물론 정당하게 학위를 안 받은 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지만 사건의 시작은 예일대의 잘못이다. 그런데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는) 성 로비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나는 꽃뱀일 수밖에 없는 거다. 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책 내용이 관음증을 자극한다고 말하는데 그건 책을 읽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인 것 같다. 나의 착각이나 희망일 수 있지만 ‘신정아가 뭐라고 써놓았을까’ 하고 진짜 궁금해서 본 분들도 있지 않을까. 책을 읽은 분과 안 읽은 분들의 차이가 크다. 읽은 분들은 비판을 하더라도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한다. 성적인 것 때문에 내 책을 사 읽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럴 거면 삼류소설이나 에로영화나 포르노 보면 되지. 내 책에 뭐 대단한 장면이 있는 것도 아니잖은가. 나처럼,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든 일을 겪고도 누구한테도 말 못하고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내 책이 위안이 됐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 변양균씨와는 출소 이후 한 번도 안 봤나. 그쪽에서 연락도 없나.

    “안 봤다. 그런데 왜 연락했을 거라 생각하나. 아, 세상이 억지로 갈라놔서?(웃음)”

    ▼ 연락을 할 법하지 않나.

    “아니, 그렇게 망신을 당하고도?”

    ▼ 책에 대한 변씨의 반응이 궁금하다. 김재호 변호사 통해 연락해오지 않나.

    “모르겠다. 별 반응이 없는 것 같다.”

    ▼ 한때 사랑했던 여자가 쓴 책인데….

    “남의 마음을 내가 어찌 알겠나.”

    ▼ 항간엔 지금도 둘이 만난다는 얘기가 있다.

    “고맙다고 전해달라.”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지는 그녀의 말이 또 걸작이다.

    “나는 이제 남자 보기를 돌같이 한다.”

    ‘팬티끈 성교육’의 영향

    다시 진지한 태도로 바뀌었다.

    “참 어리석게도 돈을 주고 대리출석과 논문대필로 학위를 받았다. 도덕심 이전에 그야말로 철딱서니 없는 행동이었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불륜이라는 걸 생각지 못했다. 이래서 ‘어른들이 가지 말라는 길은 안 가는 게 맞구나’ 싶었다.”

    ▼ 이해가 안 된다. 사회생활을 그 정도 한 여성이 아무런 의식이 없었다는 게.

    “결혼해야 할 처지였다면 의식했을 거다. 그런데 처음 만날 때 남자로 경계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분이니까.”

    ▼ 처음엔 다 그렇다.

    “조금 지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상대로는 안 맞으니까.”

    그녀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런 얘기는 구차스럽지만, 우리 엄마의 ‘팬티끈 성교육’이 그거다. 내가 이미 그렇게 돼버린 다음에는 다른 남자와 다시 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안 했다. 양심의 가책으로.”

    ▼ 뭐 그렇게까지….

    “아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비록 결혼한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게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거다. 여자라면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다고 생각지 않나.”

    ▼ 그러니까 나름 정조를 지켰단 얘긴가.

    “아니,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한테 맞아죽는다. 하여간 지혜롭게 처신하지 못한 것 같다. 안일하게 생각했던 거다. 또 나를 보면 알겠지만 무슨 끼가 있어 남자를 되게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 그런데 신정아씨와 알고 지내던 기자들과 미술계 인사들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 모양이다. 남자들한테 애교도 잘 부리고….

    “보고도 모르겠나. 완전 선머슴이잖은가.”

    ▼ 좀 실망스럽긴 하다.

    “진짜 끼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여자다. 무슨 애교가 있나. 그렇다고 실망스럽다니, 여자한테.”

    두 사람의 사랑을 두고 말이 많다. 주변의 반응을 보면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대체로 나쁘게는 얘기하지 않는 것 같다. 상반된 의견도 많다. 사랑이 아닌데 사랑으로 착각했다거나 뒤늦게 사랑이 아닌 줄 알고 후회한 것이라는 사랑학 개론에서부터 학력을 속인 여자이기 때문에 사랑도 진짜일 리가 없다는 귀납법적인 추론까지.

    ▼ 신정아씨가 결국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고 후회한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더라.

    “솔직히 혼란스럽다.”

    ▼ 한쪽에서는 그렇게 까발린 걸 보면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는 지적도 있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상대를) 보호해줬어야 한다는 얘기다.

    “아니다. 최소한 만나는 시간만큼은 사랑했다고 믿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슬프다. 슬퍼서 그냥 덮어두는 게 좋겠다. 이제는 정말 끝나지 않았나.”

    가슴 설레는 사랑

    ▼ 후회하나.

    “모르겠다. 살아가면서 가슴 설레는 사랑은 그리 많지 않다. 처음 만났을 때가 서른한 살이었다. 주변에 얼마나 근사한 조건의 멋진 남자가 많았겠나. 그런데 지금 생각해봐도 그토록 가슴 설레게 했던 사랑은 지금까지 없었다. 다만 그런 사건을 겪고 지금 와 생각하면 남녀 간의 진정한 사랑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후회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 빠져들 때는 사랑이라 여겼는데 세월 지나 돌이켜보면 사랑이 아니었다는 얘기를 많이들 하지 않나.

    “그런 건 아니다. 내가 혼란스럽다고 말한 건 사람마다 자기 기준에서 사랑을 말하기 때문이다. 사랑엔 객관성이라는 게 없다. 나는 책에서 사랑 이상의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 남자에 대한 설렘이 전부가 아니라 더 큰 의미의 사랑 이야기를.”

    ▼ 당신이 생각하는 사랑은 뭔가.

    “지금은 모르겠다. 내가 이 사랑에 대해 너무나 처참하게 욕먹고 창피하고 수치스러워서. 엄마나 오빠들을 찾아가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고. 여자로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지난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어른들이 말하는 바른 의미의 사랑, 그게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바른 의미의 사랑이 뭔가.

    “두 사람의 사랑을 위해 다른 누군가가 상처 받는 일은 없는 사랑 말이다.”

    ▼ 사랑하면 결혼해야 하나. 사랑의 완성은 결혼인가.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다. 결혼은 가정의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니 사랑의 결실과는 다르다고 본다.”

    ▼ 변양균씨와의 연애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까발린 건 예의를 지키지 않은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까발렸다고 보지 않으면 좋겠다. 더러운 불륜이 아니라 우리가 그 기간에 서로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했었다는 걸 숨김없이 털어놓은 거다. 도덕적으로는 나쁜 행위인지 몰라도 서로의 감정은 진실했다는 것을.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더는 이 문제로 상대방이나 내가 질문 받는 일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에서.”

    “언젠가는 정리하겠다고…”

    ‘거짓말쟁이’ 신정아의 진실
    ▼ 자신의 정당성이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삶이 홀가분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들, 구체적으로는 양쪽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게 옳은 일일까.

    “그것 자체만 놓고 보면 상처가 되겠지만, 깊게 생각하면 도움이 될 거다. 소문 속의 더럽고 치사한 변양균과 신정아로 계속 살아가는 것보다 깨끗이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고 새롭게 살아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책을 통해 이런 계기를 안 만들었으면 두고두고 우리 관계에 대해 물어보지 않겠나. 한 가지 웃기는 건, 자기네가 읽고 싶지 않은 건 다 거짓말이라 하면서 이런 내용은 믿는다. 적나라하니까.”

    ▼ 남자들끼리 하는 얘기가 있다. 불륜이든 뭐든 그렇게 사랑해놓고 나중에 다 까발리면 어떤 남자가 겁나서 연애하겠나.

    “까발렸다는 표현이 문제다. 사랑을 얘기했을 뿐이다.”

    그녀는 책에 “늘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썼다. 불륜의 사랑이 갖는 슬픈 한계다.

    ▼ 사랑하면 같이 살고 싶어지지 않나.

    “같이 살면 안 되는 관계였지 않나.”

    ▼ 변씨가 이혼하고 넘어왔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 어떤 식으로 관계를 끌고 가려 했나.

    “구체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그냥 언젠가는….”

    ▼ 언젠가는 정리한다?

    “그 정도만 생각했다.”

    ▼ 기한도 없이?

    “오래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니까. 가정을 버릴 분도 아니고.”

    ▼ 그 부분은 서로 인정하고 시작한 게 아닌가.

    “서로 인정한 건 아니고 내가 그렇게 생각한 거다.”

    그녀는 “철이 없었다” “지혜롭지 못했다”는 말을 되뇌었다.

    ▼ 금지된 사랑을 즐긴 건 아닌가. 아슬아슬하고 더 열정적인.

    “모르겠다. 금지되지 않은 사랑을 못해봐서.”

    ▼ 누가 가정 있는 남자와 연애한다 하면 도시락 싸들고 말리겠다?

    “남의 일에 끼고 싶진 않다. 다만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를 해줄 순 있겠다.”

    ‘거짓말쟁이’ 신정아의 진실
    신정아씨는 책에 이렇게 썼다.

    ‘남자가 잘하면 능력 덕분이고 여자가 잘하면 분명히 뒤에 배경이 있다고 여긴다. 내가 젊은 여자였기에 사람들은 능력보다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고, 그들 입맛에 그 무엇이란 반드시 ‘남자’여야 했다. 용케도 나는 거기에 딱 걸려버렸다.’

    이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남자가 얼마나 될까. 그것과 신씨의 ‘학력위조’는 별개 문제지만.

    ‘거짓말쟁이’ 신정아의 진실
    ▼ 그런 여성 많을 거다.

    “우리도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 갑과 을 관계에서 여성이 늘 을이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난다는 것….”

    ▼ 박성민이라는 정치 컨설턴트가 최근 ‘쿨하게 사과하라’는 책을 냈다. 박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신정아씨의 책에 대해 ‘잘못된 사과의 본보기’라고 말했더라.

    “가장 실망스러운 평가가 책의 문장을 놓고 사과냐 아니냐 하면서 잘잘못을 따지는 거다. 그런데 사실 이게 무슨 평가서도 보고서도 아니잖은가. 우리가 소설이나 전기를 읽으면 그 자체로 읽고 재미있다 없다 평가하지, 이게 우리한테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냐 아니냐, 이렇게 평가하진 않잖은가. 물론 내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부분이 있다. 그 다음, 사람들에게 잘못 알려져 나로선 최소한의 주장을 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 때문에 가짜 신정아의 이미지가 진짜인 양 사람들 머릿속에 박혀 있으니까.”

    정 총리의 거짓말

    그녀는 자신의 책이 ‘폭로’가 아니라고 했다. 폭로라면 정말 사람들이 기절할 내용을 다 집어넣었을 것이라며.

    ▼ 책 내용보다 더 심하다는 건가?

    “더 심한 정도가 아닐 것 같다. 책 내용은 굉장히 느슨한 거다. 전혀 폭로가 아니다.”

    신씨의 책은 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녀는 오래전부터 일기를 써왔는데, 사건과 관련해서는 (박사학위 취득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2007년 7월16일 뉴욕에 도착한 날부터 썼다고 한다.

    ▼ 책을 냄으로써 마음이 치유되는 효과가 있었나?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붙잡아 준 게 오로지 글이었으니, 치유였다. 책을 내고나서 응어리진 가슴도 치유됐다. 어떤 비판이 쏟아져도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홀가분하다. 더는 뒤를 돌아보거나 연연하지 않을 정도로.”

    ▼ 건국대 하지현 교수는 신정아씨가 책을 쓴 데 대해 ‘치유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신과 전문의로 유명한 분인데. 그러면서 덧붙이길, 치유 외에 복수와 자기합리화 목적도 있다는 거다. 왜 나만 당하느냐, 나 혼자 덤터기를 썼다는 억울함. 또 책 내용 때문에 불편해질 사람이 많을 텐데, 그렇게 까발림으로써 서로 공평해진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왜 나만 당하느냐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왜 나를 이렇게 미워할까 하는 생각은 했다. 복수도 아니다. 복수를 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 복수를 생각했다면 재판도 어떻게든 끝까지 했을 거고 예일대를 상대로 소송도 했을 거다. 합리화도 필요 없다. 나라는 사람은 이미 더 내려갈 수도 없는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합리화라는 게 불가능하다.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 얘기할 뿐이지. 정 총리(정운찬 전 총리) 얘기를 쓴 것은 그분이 2007년 7월 사건이 터진 후 ‘내가 거짓말 하겠냐, 신정아가 거짓말 하겠냐’ 하면서 나를 거짓말쟁이로 몰았고 그것이 재판에서 나한테 굉장히 불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 정의가 실현된다는 생각을 했나?

    “정의는 무슨. 그런 데는 관심도 없다. 나에 대한 얘기를 제대로 하려면 책밖에 없더라. 가까운 분들한테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구차스럽고. 많은 독자가 내 마음을 알아줘서 고맙지만 사실 이 책은 가까운 사람들, 나를 믿었던 사람들을 위해 쓴 거다. 그 사람들이 이 사건이 터지고 얼마나 놀라고 혼란스러웠겠나. 그런 분들에게 내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쓴 거다.”

    ▼ 일부 언론은 책을 사 보는 독자들의 정신상태도 문제 삼더라.

    “나를 비난하는 건 좋은데 좋은 마음으로 책을 사서 읽어보는 사람들까지 문제 삼는 건 너무한 것 아닌가.”

    ▼ 겉으로는 신정아씨를 비난하면서도 속으론 훔쳐보고 싶은 욕망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누구 한 사람 욕할 때 혼자 다른 얘기하면 왕따 당하지 않나.”

    “영등포구치소만 안 가면 된다”

    신정아씨는 언론과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지난 10년 동안 세상에 예술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데 언론의 덕을 보았고 그렇게 덕을 본 언론을 통해 내 38년 인생을 잃어버렸다’고. 그녀가 주로 상대한 기자들은 문화부 미술담당이었지만 논설위원도 여럿 만났다. 그들과 미술관에서 전시 같이 보고 식사도 하고 술도 같이 마셨다. “언론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많지 않으냐”는 질문에 “솔직히 언론을 잘 몰랐던 것 같다”고 뜻밖의 대답을 한다.

    “특종 때문에 결국 원수가 되지 않았나. 그러니까 내가 언론을 이해하지 못했던 거다. 기자의 직업의식이나 언론의 진정성을. 지금은 이해한다. 사실을 검증해서 제대로 알리는 게 언론의 본질인데, 실제로는 어떻게든 한 사람이라도 더 읽게 하려고 뭔가 빵 터질 만한 것을 찾지 않는가. 그런 걸 이해하고 나니 되게 허무하다.”

    ▼ 상당히 너그러워졌다.

    “1년6개월의 감옥소 생활이 그렇게 만들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고통의 시간들을 거치면서 최선을 다해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않으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은 무슨 생각으로 사느냐 하면, ‘아이, 아무리 잘못돼도 영등포구치소만 안 가면 된다’는 거다. 뭐 재기(再起)니 이런 건 전혀 생각지 않는다. 이미 죽었다고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다. 그러니 세상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거다. 겪지 말았어야 할 고생을 통해 진짜 많이 배웠다.”

    그녀는 초고에 있지만 책에 담지 않은 내용이 많다고 했다. “정말 가슴 아팠던 얘기는 도리어 쓸 수 없었다”며. 빠진 내용 중에는 일부 정치인과 중견 언론인들에 대한 얘기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그녀의 책에는 많은 유명인사의 실명이 거론돼 있다. 언론은 명예훼손에 해당된다며 금방이라도 줄소송이 벌어질 것처럼 보도했지만 아직껏 누구도 그녀를 고소한 사람은 없다. 이에 대해 그녀는 “변호사가 8개월간 법률적인 검토를 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나는 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은 감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실명을 거론한 것은 내게는 사실을 알리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지금 실명을 썼는데도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나? 만약 이니셜로 처리했다면 다 거짓말이라고 했을 거다. 정신병자 혼자 쓴 게 되는 거다. 실명을 거론하면서 그 사람과의 관계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사실일 수밖에 없는 거다.”

    ▼ 실명이 언급된 인사들 중 출판사나 변호인을 통해 항의해온 사람도 없나?

    “전혀 없다.”

    조선일보 기자

    ‘거짓말쟁이’ 신정아의 진실

    2009년 9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존 버닝햄(오른쪽)의 40주년 기념 전시회. 왼쪽은 부인.

    실명이 거론된 인사 중 가장 곤욕을 치른 사람은 정운찬 전 총리다. 정 전 총리는 언론의 취재공세에 신정아씨를 만난 건 사실이지만 그녀의 주장과 달리 서울대 교수직과 미술관장직을 제의한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또한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과 ‘특별한 행동’을 보였다는 주장에 대해선 “서울대 총장으로서 학교와 나의 명예를 훼손할 일은 하지 않았다”고 점잖게 해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자가 강간을 당해도 그럴 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 전 총리가) 거짓말만 안 했어도 그런 얘기를 (책에) 안 넣을 거다. 게다가 하도 제가 남자만 꼬셔대는 사람으로 인식돼 있어 안 쓸 수가 없었다. 당사자들한테 고통을 준다고 얘기들 하는데 저로서는 정말 ‘으악’ 했던 상황을 최소한으로 정리해 쓴 거다. 그 사람들 명예만 중요하고 시집도 안 간 내 인격이 날아가는 건 아무렇지도 않은가. 그러니까 나는 무조건 죽어야 한다는….”

    그녀는 책에서 검찰이 정 전 총리와 자신의 통화기록을 무시한 채 ‘서울대 교수직을 제안한 적 없다’는 정 전 총리의 진술서만 증거로 채택했다고 주장했다.

    ▼ 정 전 총리와 얼마나 통화했나.

    “2005년 7월부터 2007년 6월 말까지 통화기록 조회하면 다 나온다. 내가 안 받은 전화까지 포함하면 100통쯤 될 거다.”

    유명세로 치면 정 전 총리에 못 미치지만 내용 면에서는 훨씬 더 망신살 뻗친 사람이 조선일보 기자 출신의 정치권 인사 C씨다. 비록 C라는 익명으로 거론했지만 그가 어떤 기사를 썼는지 언급돼 있어 누군지 짐작할 수 있다.

    ▼ C기자의 술집 성추행 사건은 목격자가 있는 걸로 묘사돼 있다.

    “나와 C기자말고 세 사람이 더 있었다.”

    ▼ 그런데 택시 안에서의 성추행은 두 사람만이 아는 일 아닌가?

    “당시 꽤 시끄러운 사건이었다. 나랑 가까운 중견 여기자가 중재해서 사과도 받았다.”

    ▼ 술 먹으면 개 되는 남자 많다.

    “아니다. 그 정도로 술이 취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전부터도 그랬다. 그 후에도 그랬고.”

    ▼ 그 후에도?

    “사과를 한 후에도.”

    ▼ 참 난감했겠다.

    “머리끄덩이 잡고 싸울 수도 없고…. 가능한 한 안 부딪치고 피하는 게 최고지.”

    ▼ 조선일보 기자가 아닌 일반인이었다면 다른 조치를 취했을까.

    “그때는 사회생활 한 지 2년이 채 안 됐을 때다. 그런 걸 생각 못했다.”

    미국 캔자스대 유학에서 돌아온 그녀가 금호미술관에 취직한 건 1997년 12월이고, 그 사건은 1999년 4월에 발생했다.

    ▼ 그 후로는 조선일보에 금호미술관 관련 기사가 안 나갔나.

    “그 후에도 그 사람이 찾아와 몇 차례 기사를 썼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안 돼 바뀌었다.”

    “내게는 보통 외할머니”

    거짓말 논란의 결정판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친분이다. 노 전 대통령을 만났을 뿐 아니라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 때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코멘트’를 해줬고 노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 DVD도 구입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양정철씨는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처럼 주장하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고 반박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할 수 없나.

    “책에 쓴 것 자체가 후회스럽다. 정말 존경하고 근사한 분이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도 하면 안 되지 않은가. 내 이미지가 워낙 더러우니.”

    그녀의 자기 비하 발언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정색을 했다.

    “진짜다. 정말 아쉬웠던 게 좋은 분들 얘기를 많이 못 쓴 거다. 내가 언급하는 것 자체가 욕이 되니까. 노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렇게까지 거짓말이니 진실이니 따질 줄 알았다면 안 쓸 건데 그랬다.”

    책에 따르면 그녀가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밝힌 것은 이른바 배후설 때문이다.

    ▼ 대통령을 만났다는 일시와 장소가 없지 않나.

    “그런 언급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으로 재판받는 것도 아니고. 일일이 증거를 대야 하나.”

    ▼ 한 국가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에 대한 얘기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했다면 불필요한 시비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어쨌든 노 대통령에 대해선 더 얘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

    ▼ 설마 대통령과의 관계를 거짓으로 말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 게 상식이다.

    “나는 지금 비상식적인 사람이지 않은가. 정신과 의사들까지 나서서 정신병자 취급하는 판인데 내게 상식을 얘기하면 안 되지.”

    ▼ 노 전 대통령과 한 번 만난 건가.

    “아니다.”

    ▼ 배석자가 있었나.

    “노코멘트.”

    책에서 신씨는 당시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이 언론사 기자를 통해 자신에게 접근했는데, 그것이 노 대통령과 관련된 것처럼 묘사했다. 2003년 10월 남산 서울클럽에서 처음 단둘이 저녁식사 하는 자리에서 변씨가 자신을 ‘보살펴야 할 처지’임을 실토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자 신씨는 싱글싱글 웃기만 했다. 당시 변씨에게 그 의미를 더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 노 전 대통령을 연결해줬다는 외할머니와는 요즘 연락하지 않는가.

    “노코멘트. 남의 외할머니에 대해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

    ▼ 보통 외할머니가 아니지 않은가.

    “내게는 보통 외할머니다.”

    가족과의 단절

    ▼ 어머니와는 연락하나.

    “못한다. 나 때문에 돌아가시기 일보직전인데.”

    ▼ 절에 계신다고 들었다.

    “기자들이 하도 찾아와서 다른 데로 피신했다.”

    그녀는 2009년 4월 출소 후 아직까지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고 재차 묻자 쓸쓸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우리 집에선 용납되지 않는다”라고.

    ▼ 죄송해서 말인가.

    “내가 오빠나 엄마라도 나를 용서 못할 것 같다. 특히 꽃뱀 부분은.”

    ▼ 그래도 가족은 믿어주지 않았나.

    “당연히 가족은 나의 진실을 믿는다.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를 알기에. 하지만 어쨌든 부끄러운 딸이자 부끄러운 여동생이 되지 않았나. 동네 창피한 일이지.”

    ▼ 신정아씨가 안 찾아가는 건가.

    “나도 안 찾아가고 가족도 나를 안 찾는다. 기자들이 더는 우리 집을 안 찾으면 좋겠다.”

    ▼ ‘여자는 무조건 첫 빤스를 잘 벗어야 한다’고 말한 어머니가 누구보다도 가슴 아프겠다.

    “그것 때문에 못 찾아가는 거다. 그건 진짜 내가 잘못한 거니까.”

    그녀가 작심한 듯 내뱉었다.

    “많은 분이 책에 그 부분을 쓴 걸 비판한다. 당시 나랑 안 잔 남자가 없었다. 학교 이사장과 자고 심지어 스님과도 잤다고 했으니까. 나는 남자와 자서 출세한 여자였다. 내가 가장 못 견디는 게 거짓말과 꽃뱀 부분이다. 나는 보수적으로 자라났다. 그래서 꽃뱀이 아니었다는 걸 얘기하기 위해선 우리 두 사람의 얘기를 최소한이라도 사실대로 써야 했다. 그리고 단순한 불륜이었다면 그토록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 속의 나쁜 이미지를 벗고 진짜 신정아의 모습을 찾아야 했다. 사람들은 왜 까발리느냐고 욕하지만 솔직히 가장 궁금해한 게 그 부분이지 않은가.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일을 내 입으로 말하기를 바라지 않았나. 니 입으로 직접 말하라고. 그래서 정말 창피하고 수치스럽고 엄마한테 맞아죽을지 몰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 얘기한 거다. 이건 내가 잘못한 일이라고.”

    ▼ 사람들은 이중적인 심리를 갖고 있다.

    “정 총장 관련 부분만 해도 그렇다. 처음엔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다가 나중엔 사실이라도 니가 왜 그런 걸 쓰냐고 비난한다.”

    ▼ 책을 쓰고 나서 진정 자유를 얻은 게 맞나.

    “내일 죽는다고 해도 아쉬울 게 없을 만큼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소수지만 독자들이 보낸 메일이 있잖은가. 그걸로 충분하다. 그분들이 진짜 신정아를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다. 더 바라면 욕심이다.”

    “봉사활동 하고 싶다”

    ▼ 지금까지의 삶을 지우고 새로 시작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학교에 가서 진짜 열심히 공부하겠다. 미대가 아니라 아버지가 원했던 법대에 가서. 4년간 소송에 시달리다보니 참 불합리한 재판을 여러 차례 봤다. 피해자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법을 공부하고 싶다.”

    ▼ 대리출석 안 시키고 논문 대필도 안 하고.

    “그렇다. 진짜 열심히 할 것 같다.”

    그녀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문화를 제대로 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법과 진실

    신정아씨를 둘러싼 소송은 크게 세 가지다. 형사소송 하나, 민사소송 둘이다. 먼저 형사소송을 살펴보자. 2007년 10월 검찰은 신씨를 학력위조와 성곡미술관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1심과 2심은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대법원이 이 중 일부 기소내용에 대한 심리가 미흡했다고 파기환송하는 바람에 신씨 재판은 다시 1심으로 돌아갔다. 2009년 4월10일 법원은 형기를 꽉 채운 신씨를 보석으로 석방했다. 그리고 4월23일 최종 선고가 나왔다.

    유죄가 인정된 것은 예일대 박사 학력위조 및 행사, 성곡미술관 공금(2억2000여만원) 횡령 두 가지였다. 김석원 전 쌍용회장 특별사면 청탁 명목으로 20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와 변양균씨를 이용해 10여 개 기업에서 8억여 원의 광고선전비 혹은 전시협찬금을 받은 혐의(제3자 뇌물수수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이른바 권력형 비리에 대해선 전부 무죄가 선고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변양균씨는 사찰 특별교부세 배정에 압력을 넣은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선고받았다. 언론보도와 달리 신씨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씨가 동국대 교수로 임용되는 과정에 변씨가 동국대 총장에게 거액의 지원을 약속했다는 혐의도 인정되지 않았다. 결국 부적절한 연애 혹은 성 로비의 결과물로 언론에 대서특필됐던 범죄혐의들은 하나도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신씨에 대한 비난여론이 정당성을 잃는 건 아니다. 사건의 핵심이 학력위조이고 법원이 유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씨는 미움 받을 짓을 골라 하고 있다. 깨끗이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싹싹 빌면 동정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감히’ 항변을 계속하고 있으니. 그것도 권력자인 유부남을 ‘꼬여’ 뭇 남성과 여성의 도덕심 혹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안긴 주제에.

    사건 직후 자신이 학위를 속인 게 아니라는, 즉 브로커에게 속아 가짜 학위를 진짜 학위로 믿었을 뿐이라고 ‘억울해했던’ 그녀는 법적 심판이 내려진 후에도 여전히 ‘결백’을 호소하고 있다. 그녀의 결백 주장과 검찰 공소장, 법원 판결문 사이의 거리는 아득하기만 하다. 대리출석, 논문대필의 잘못은 인정하기에 엄밀한 의미에서는 결백도 아니지만. 잘못은 했지만 적어도 거짓말은 안 했다는 걸 믿어달라는 하소연이다.

    ‘거짓말쟁이’ 신정아의 진실

    (왼쪽) 구치소에서 쓴 일기장 표지. (오른쪽) 자전에세이 ‘4001’의 원재료에 해당하는 일기.

    석연치 않은 예일대의 ‘실수’

    신씨에 따르면 예일대 박사학위는 린다 트레이시라는 예일대 시간강사가 만들어줬다. 트레이시를 그녀에게 소개한 사람은 캔자스대에서 학점 이수를 도와줬던 제임스 로리스다(검찰 수사결과 신씨가 캔자스대에 재학한 것은 사실로 밝혀졌다). 자신이 리포트를 작성하면 트레이시가 손을 봐서 제출했는데 박사논문도 그런 식으로 ‘협업’해서 작성했다는 것이다. 논문자격시험 통과 후 예일대 교수들 앞에서 논문 디펜스까지 치른 다음 학위가 수여됐기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게 신씨 주장이다.

    ‘거짓말쟁이’ 신정아의 진실

    1996년 신정아씨의 졸업전시회를 알린 캔자스대 학교신문.

    사건 직후 예일대 측은 신씨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신씨가 지인들에게 돌린 박사논문은 1981년에 나온 버지니아대 박사논문을 베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검찰과 법원은 이를 근거로 그녀가 학력을 위조했다고 판단했다. 그녀의 죄명은 사문서 위조 및 행사다. 구체적으로는 동국대 교수로 임용되고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임명되는 과정에 학위기와 학위증명서를 위조해 제출한 죄다. 신씨가 억울해하는 게 바로 이 점이다. 자신이 위조한 게 아니라 트레이시를 통해 예일대에서 받은 문서라는 것이다.

    비록 법적 심판은 끝났지만 그녀의 항변을 정신 나간 소리로만 치부할 수 없는 건 예일대의 석연찮은 태도 때문이다. 동국대가 신씨를 교수로 채용한 것은 2005년 9월. 당시 신씨는 동국대에 박사학위기와 학위증명서를 제출했다. 동국대는 이를 예일대 측에 보내 신씨의 박사학위 취득사실을 조회했고, 팩스로 회신을 받았다. 그런데 2007년 7월 사건이 터진 후 예일대는 신씨의 학위는 가짜이고 동국대에 그녀의 학위취득을 인정하는 팩스를 보낸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나섰다. 이에 동국대는 예일대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었다.

    검찰은 이 팩스를 당시 뉴욕에 머물렀던 신씨가 위조해 보낸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예일대-동국대 소송 재판과정에 팩스는 실제로 예일대가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사정은 이렇다. 2005년 동국대는 신씨로부터 받은 학위 사본을 우편으로 예일대에 보내 사실조회를 부탁했다. 2007년 ‘신정아 사건’이 터지자 예일대는 우편물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재판 증거조사 과정에 대학원 부원장 사무실에서 동국대에서 보낸 우편물이 발견됐다. 예일대는 다시 말을 바꿔 동국대에 문제의 팩스를 보낸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면서 행정착오였다고 해명했다. 서류를 면밀히 검토하지 못한 채 잘못된 회신을 보냈다는 것이다.

    “증거법상 무죄”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나는 동국대에 직접 확인해봤다. 동국대 관계자는 “재판이 진행 중이라 어떠한 의견도 언론에 발표하지 않겠다는 게 학교 방침”이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의견’이 아닌 ‘사실’에 관한 질문엔 굳이 답변을 피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소송은 동국대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예일대에서 재판부에 합의(중재)를 신청해 예일대가 내세운 보험사와 손해배상금액을 놓고 협의 중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 팩스를 신정아씨가 위조해 보낸 것은 아니라는 게 확인됐다”며 “학위수여 여부는 재판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일대의 잘못이 인정되면 동국대는 물론 신씨의 명예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더라도 신씨가 무죄가 되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정황증거일 뿐이다. 법원에서 인정된 범죄사실은 동국대와 광주비엔날레 재단에 학위기와 학위증명서를 위조해 제출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짚어볼 점은 있다. 공소장과 판결문엔 그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문서를 위조했는지 설명돼 있지 않다. 위조의 근거는 딱 하나, 학위가 가짜라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학위가 없는데도 박사학위 증명서를 제출했으니 당사자가 위조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지 않으냐는 추론이다. 언뜻 논리적인 것 같지만 중간 단계를 건너뛴 논리비약으로 볼 여지도 있다. 이에 대해 신씨의 변호인은 “신씨가 위조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이는 증거법상 무죄”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신씨도 판결을 뒤집을 증거가 없다는 것. 법정에 나와 ‘진실’을 말해주면 좋을 트레이시는 사건 직후 뉴욕에서 한 번 만난 이후 찾을 길이 없다고 한다. 예일대는 비록 미국 최고의 명문대답지 않은 괴이한 행동을 보이긴 했지만 신씨에게 진짜든 가짜든 학위를 수여한 적이 없다고 이미 밝혔다. 미국 법정에서 예일대가 ‘일부 교수들이 브로커와 짜고 학위장사를 했다’고 실토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아마도 신씨의 부질없는 희망일 것이다. 동국대에 따르면 재판결과는 5월 말쯤 나올 예정이다.

    신씨는 “나는 위조범이 아니다. 정말 미치겠다”고 호소했다. 내가 ‘팩스 사건’의 진실에 관심을 나타내자 “믿어줘서 고맙다”며 몇 번이나 감사의 표현을 내쏟았다.

    ▼ 캔자스대 졸업도 그런 식으로 무효가 된 건가.

    “대리출석 때문에 그렇게 됐다.”

    그녀에 따르면 실기수업은 자신이 직접 듣고 교양과목은 제임스에게 맡겼는데, 나중에 사건이 터진 후 확인해보니 교양과목 점수가 전혀 안 나와 졸업 자격이 안 됐다는 것이다. 그녀의 공식 학력은 캔자스대 3학년 중퇴다.

    ‘거짓말쟁이’ 신정아의 진실

    캔자스대 재학 시절.

    ▼ 한마디로 도덕관념이 희박했던 거다.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말고 철딱서니가 없었던 걸로 좀 봐주면 안 될까.”

    ▼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가.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한테 돌 맞을 거다. 그냥 매사 심각하게 생각하고 사는 인간이 아니니까….”

    ▼ 나중에 문제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은 안 했나.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런 방법으로 학위를 받았겠나. 너무 부끄럽지만 당시엔 잘못이라는 의식이 없었다.”

    ▼ 돈 많이 들었겠다.

    “많이 썼다. 등록금과 별개로 많은 돈이 들었으니까.”

    사진작가의 뒤늦은 ‘고백’

    3월23일 서울고등법원은 성곡미술문화재단이 신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신씨가 1억2975만원을 미술관에 배상할 것을 결정했다. 강제조정인데다 1심에서 같은 액수의 판결이 나온 터라 양측은 법원 결정을 받아들였다.

    배상 결정은 형사재판에서 신씨의 유죄가 확정된 데 따른 것이다. 성곡미술관 공금 2억2000여만원을 횡령한 죄다. 공금 횡령이란 비자금을 만들어 사적으로 유용한 것을 말한다. 신씨도 자신이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은 시인한다. 하지만 유용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한다. 자신은 종범일 뿐인데 검찰의 ‘표적수사’ 탓에 주범으로 몰린 것이 억울하다고 하소연한다. 당시 미술관 관장인 박문순씨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고 조성한 비자금은 다 박씨에게 전달했다는 게 그녀의 항변이다. 반면 박씨는 법정에서 자신은 비자금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부인했다.

    신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관계회사 직원 4명이 민사소송 때 법정에 제출한 진술서다. 나는 이들의 진술서를 구해 읽어보았다. 이들 주장의 공통점은 이렇다. ▲성곡미술관 비자금 조성은 관행적으로 공개적으로 이뤄졌다. ▲허위세금계산서 발행으로 조성된 비자금을 신정아씨가 관장에게 갖다 주는 걸 여러 차례 봤다. ▲신정아씨가 해외출장 등으로 없을 때는 경리직원과 관장이 직접 챙겼다.

    신정아씨 얘기다.

    “내가 종범이라는 건 인정한다. 내가 관장에게 갖다줬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그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그게 화가 나는 거다.”

    ▼ 억울하다면서 왜 조정에 응했나.

    “형사소송에서 나한테 책임이 돌아왔기 때문에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이것도 사실은 승소다. 재판부가 내 배상책임을 60%만 인정했기 때문이다.”

    3년 넘게 끌었던 이른바 ‘누드 소송’은 법원의 조정결정으로 마무리됐다. 지난 1월 서울고등법원은 신씨의 ‘누드사진’을 실은 문화일보에 대해 명예를 훼손한 책임을 물어 8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조정결정을 내렸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정정보도와 함께 1억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신씨는 문화일보에 실린 사진은 가짜라고 주장해왔다. 자신의 얼굴과 다른 사람의 몸을 합성한 사진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화일보는 명예훼손은 인정하지만 사진은 진짜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신씨가 책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자 문화일보는 1심 판결문을 언급하며 사진이 진본이라고 반박했다. 법정에 제출됐던 문서감정 전문가와 성형외과 전문의, 사진 전문가의 감정 의견서도 소개했다.

    법적인 면에서는 일단 신씨가 불리하다. 1심 판결문엔 “합성사진이라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라고 명시돼 있다. 모호한 표현이긴 하지만 문화일보가 ‘진본’ 주장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사진 감정에 참여했던 전문가들도 단정적으로 말한 건 아니지만 진짜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신정아를 그대로 촬영한 출력물로 사료된다” “유출된 사진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진본이 아니라고 의심할 이유가 전혀 없다” 따위의 간접화법으로.

    ‘거짓말쟁이’ 신정아의 진실

    신정아씨는 변양균씨와의 사랑에 대해 “철딱서니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신씨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건 이 사진을 찍었던 황규태씨의 증언 덕분이다. 황씨는 최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신정아씨) 책 내용이 전부 맞다”고 밝혀 사진이 합성임을 인정했다. 그는 사진합성 전문가다. 사실 그의 의견은 이미 법정에 제출된 바 있다. 그는 신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문화일보에 악용된 신정아씨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은 오래전에 전시를 위해 합성작업 해왔던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편지 내용 중 일부다.

    ‘그 사진 도난 유출경위는 신정아씨도 잘 인지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정이야 어떻든 나의 작업원고 보관 허술로 이런 일이 생기고 신정아씨에게 큰 상처와 부끄러움을 준 것 사과드립니다. 그동안 합성사진으로 많은 전시를 해왔지만 다들 웃고 재미있어 했던 기억의 그 안일함에서 이번 일을 계기로 벗어날까 합니다.’

    신씨는 이 편지를 법원에 제출했으나 재판부는 2008년 미술전문 격주간지 ‘아트레이드’에 실렸던 황씨 인터뷰 내용과 다르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슴 크기가 다르다

    신씨는 자신의 알몸사진과 문화일보 누드사진을 나란히 놓고 신체비례를 비교한 사진을 법정에 증거로 제출했다. 사진 속 신씨는 비키니 수영복 차림이다.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엔 분명히 서로 다른 신체인데 전문가는 같다고 하니 참 모를 일이다. 뭣보다도 무릎 뼈와 턱선이 다르고 하체 길이 비율도 다르다. 가슴 크기도 차이가 난다. 날씬한 신씨 몸매와 달리 ‘문화일보 여성’은 퉁퉁하고 각선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녀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봐도 알 수 있잖은가. 예를 들어 살이 빠지면 가슴이 작아질 순 있지만 작은 가슴이 커질 순 없잖은가.”

    ▼ 여자 가슴 크기는 잘 안 변하는 것 아닌가.

    “살이 쪘다 빠지면 가슴이 좀 줄거나 처질 수 있다.”

    사진으로 보면 신체비례상 신씨의 가슴이 더 크다.

    ▼ 문화일보에 대한 감정이 어떤가.

    “입에 담고 싶지도 않다. 내 입이 더러워지는 것 같아서. 그대로 써달라.”

    ▼ 신체비교 사진을 책에 실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맘이야 하고 싶지만 그렇게까지 어떻게 하겠나. 나보고 ‘미친 X’이라고 욕할 거다. 사실 내 몸이 아닌 건 다 안다. 가까운 사람들은.”

    ▼ 우리는 모른다.

    “모든 사람에게 내 몸을 보여줘야 할 일은 없다. 그리고 이건 대한민국 남자들에 대한 모독이다. 저런 몸으로 성 로비를 했다면. 기사 내용과도 안 맞는 거다.”

    나도 웃고 그녀도 웃었다.

    남자, 그리고 사랑

    ‘설령 우리가 사랑한 것이 죽을죄를 진 것이라 해도 그것은 오로지 우리 두 사람 몫일 뿐이다.’(신정아 책 ‘4001’ 본문 중에서)

    처음엔 말투도 딱딱하고 긴장한 기색이 있더니 인터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경쾌하고 쿨(cool)한 모습을 내비친다. 내가 “솔직하게 얘기하길 바란다”고 짐짓 운을 떼자 장난스럽게 되받는다. “안 할 수도 있다. 내가 지금까지 한 얘기를 어떻게 믿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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