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말로만 반성하는 민주당 호남 텃밭 날릴 수도”

한상진 민주통합당 대선평가위원장

  • 구자홍 기자│jhkoo@donga.com

    입력2013-02-21 17: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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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대선 과오 고백하고 용서 구해야
    • 총선 패배 분석 보고서 은폐 논란, 사실규명할 것
    • 安이 단일후보였다면 외연 넓히기 더 좋았다
    • 安 책임론은 오히려 동정 여론 유발
    “말로만 반성하는 민주당 호남 텃밭 날릴 수도”
    “민주당이 말로만 반성하고 실제로는 반성하는 모습을 안 보여요. 이러다 호남 텃밭에서도 주저앉을 수 있어요.”

    한상진 민주통합당 대선평가위원장은 2월 11일 ‘신동아’ 기자와 만나 “민주당이 통렬한 자기반성 없이는 핵심 지지 기반마저 잃을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해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의 국정자문단에서 활동했지만, 문희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요청으로 민주당 대선평가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문 위원장이 1월 18일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철저하고 냉정한 대선 평가를 바탕으로 한 민주당의 혁신과 새 정치 실현’ 의지를 밝혔지만 한 위원장의 눈에는 민주당이 진정으로 반성하는 것 같지 않은 모양이다.

    비상대책위가 굳게 다짐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민주당엔 ‘냉정한 대선 평가’ 의지는 시들해지고 대신 ‘뜨거운 전대(全大)’ 바람이 불고 있다. ‘전당대회 룰’을 둘러싼 당내 이견이 노출되고, 차기 전대에 출마하려는 당내 인사들의 출마 시사 발언이 벌써부터 나온다. 한 위원장의 속이 타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신동아’는 설 연휴 끝자락에 한 위원장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만났다. 1시간으로 예정된 인터뷰는 2시간 30분간 이어졌다.

    마음은 벌써 차기 全大에…

    ▼ 대선 평가는 언제까지 마칠 계획입니까.



    “평가위 출범 때는 3월 말로 예정했는데, 당의 분위기로 봐서는 앞당겨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차기 전당대회(전대)가 3월 말 또는 4월 초에 개최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내 관심이 벌써 차기 전대로 쏠리는 것 같습니다.

    “걱정입니다. 말로는 반성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 대선 패배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가린 뒤 그에 걸맞은 조치를 취한 뒤라야 민주당이 새 출발할 수 있습니다. 일신(一新)하지 않고 과거 당의 체질 그대로 당권 경쟁에 몰두하면 지지 기반을 크게 잃을 게 분명합니다. 텃밭이라는 호남에서도 (지지율이) 주저앉을 수 있어요.”

    ▼ 민주당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 뭐라고 봅니까.

    “정당을 아우를 리더십이 없어요. 당의 이익보다 계파의 이익을 좇는 모습만 보이는 게 큰 문제죠. 마지막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삿대질하며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화해의 정신으로 대선 결과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과오를 고백하고, 물러날 사람 물러나면 치유가 됩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민주당은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서부터 절벽에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 대선 평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1월 21일 출범 이후 지금껏 평가 기준과 틀을 확정했어요. 대선 국면에 당 싱크탱크(민주정책연구원)의 역할과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물의를 일으켜 뜨거운 감자가 된 모바일 투표 문제, 그리고 민생과 세대, 지역에 대한 정책적 영향 등 몇 가지 과제에 대해서는 이미 평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대선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에 앞서 치러진 지난해 4월 총선 결과부터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기본적으로 대선 평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총선에서 패한 뒤 그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대선까지 실수를 되풀이한 이유도 따져볼 것입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도 ‘(민주정책연구원에서 만든) 총선 평가 보고서를 보니 대선 평가 보고서를 보는 듯했다’고 말하더군요. 총선 패배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서 책임을 규명한 양질의 보고서가 사장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민주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9대 총선 이후 38쪽 분량의 ‘4·11 총선 평가와 과제’ 보고서를 작성해 당시 문성근 대표대행에게 보고했다. 보고서는 총선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을 ‘민주통합당 자신’이라고 지적했다. 낙동강 벨트 선거 결과에 대한 섣부른 낙관과 오판에 따른 전략과 행동이 국민에게 오만한 모습으로 비쳤고, 새누리당 지지 세력 결집의 빌미가 됐다는 게 보고서의 주요 내용이다.

    문 대행은 이 같은 보고서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며 ‘부족한 점을 보완한 뒤 공개하자’고 했다. 그러나 5일 뒤 문성근 대행체제가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바뀌면서 보고서는 ‘유실’됐다. ‘유실됐다’는 것은 문 대행의 비서실장을 지낸 최민희 의원이 민주당 워크숍에서 한 해명이고, 당내 일각에서는 ‘은폐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유실’이냐, ‘은폐’냐

    ▼ 2월 1~2일 열린 워크숍에서 ‘총선 평가’ 문건 은폐 논란이 있었지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진실규명을 합니까.

    “사실에 기초해 조사를 벌일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문성근 전 대행에게 질의서를 보낼 겁니다.

    문 대행이 이의 제기를 했다면 누구에게 보완하도록 했는지가 나와야 하는데 그게 분명치 않아요. 지도 체제가 바뀌면 차기 지도부에 보고서를 인계했어야 하는데 박지원-이해찬 체제로 지도부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전혀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총선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대선에 임했다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 꼴이 됐습니다. 총선 보고서 은폐 논란이 사소한 문제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건 정당의 체질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논란입니다.”

    보고서 유실 논란 얘기는 민주당의 운영 실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민주정책연구원의 운영 현황을 들여다본 한 위원장은 ‘난맥상이 극에 달했다’고 혀를 찼다.

    “민주정책연구원은 형식상 독립기구입니다. 1년에 45억 원의 국고를 지원받아요. 그런데 실상은 독립성, 자율성과 거리가 멀어요. 연구원 인력 대부분이 다른 일을 하고, 예산도 전용된 사례가 많습니다. 당의 싱크탱크가 이렇게 운영된 것은 중앙당이 모든 것을 통제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중앙당 운영의 난맥상이 연구원 인력과 예산 운용에도 그대로 투영된 셈입니다.”

    한상진 위원장은 “민주당이 큰 병에 걸렸다”고 걱정했다. 다시 대선 평가로 화제를 돌렸다.

    “대선 평가는 개개인의 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그래서 당 소속 인사들의 집합체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 등 당 지도급 인사들 의견도 묻고, 광역의원, 의원 보좌진 의견도 수렴할 생각이에요. 집합체 의견은 대선 평가의 중요 척도가 될 것입니다. 선대위 활동에 대한 문서도 살펴보고, 관련자 증언도 청취해 선거 캠페인과 조직 운영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세밀히 분석할 계획입니다.”

    대선평가위원회는 출범 이후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전체회의를 열어 평가를 진행해왔다. 설 연휴 뒤인 2월 셋째 주부터는 선대위 3개 캠프(민주, 희망, 미래)에 참여한 실무 책임자를 직접 불러 청문 절차도 진행한다.

    그러나 대선평가위원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할 실무진은 위원회가 출범한 지 20여 일이 지나서야 겨우 구성을 마쳤다. 서둘러 대선평가위를 출범시킨 것과 대조된다. ‘마지못해 대선 평가를 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이다.

    ▼ 개인적으로 민주당의 대선 패인이 어디에 있다고 봅니까.

    “대선 때 당이 총력 체제로 운영되지 못한 점이 가장 커요. 민주당은 대선에서 승리한 경험도 있고 전국 조직도 갖춘, 잠재력이 큰 정당입니다. 그런데 대선에선 잠재 역량의 70%, 아니 50%도 발휘하지 못했어요. 어떤 이유로 내부 시스템이 풀가동되지 못했는지 규명돼야 합니다. 당 전체가 야권후보 단일화라는 도그마에 너무 깊게 매몰돼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후보단일화가 엉망으로 끝나면서 선거구도도 어그러졌어요. 그렇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따져볼 것입니다.

    또한 한국 사회의 변화를 민주당이 정책적인 면에서 충분히 따라잡지 못한 점도 있어요. 정당의 지식두뇌 기능이 제대로 발휘됐다면 생활 밀착형 공약으로 유권자의 표심을 사로잡았을 겁니다. 예컨대 경제민주화나 복지 프로그램이 원래는 민주당이 선점한 정책 아닙니까. 그런데 박근혜 후보가 두 공약을 가져다가 유권자 구미에 맞는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구경꾼처럼 지켜봐야만 했죠. 대선 과정의 여러 의제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평가할 것입니다.”

    ‘親文 이너서클’이 문제?

    ▼ 총선과 대선 이후 당 지도부는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는데요.

    “그거야 정치적으로 물러난 것이죠. ‘직(職)’에서 물러났을 뿐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얘기하지 않았잖아요.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당에 해를 끼쳤다면 어떤 잘못과 과오를 범했는지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밝혀야죠. 그래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냥 직에서 물러나면 그만이라는 식 아니었습니까. 대선 과정에 당의 단합이 이뤄지지 못했다면 누군가 책임지는 사람이 나와야 마땅합니다.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선대위를 꾸려 선거를 치렀으니 그 과정을 찬찬히 따져보면 책임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지 않겠어요? 당시 선대위 본부장을 지낸 사람조차 충분한 권한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 말은 (선대위) 내부에 이너서클이 있었다는 얘기 아닙니까. 대선 과정에 당의 많은 인사가 소외감을 넘어 무력감, 심지어 모멸감까지 느꼈다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당을 위해 불행한 일이죠. 선거에 지고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는 민주당이 국민의 눈에 오만하게 비치지 않겠어요?”

    ▼ 친노(친노무현) 이너서클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친노에 대해 당내 인사들은 경계와 구분이 모호하다고 말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의원 배지를 단 사람은 모두 친노 아니냐고. 어떤 이는 ‘친노가 아니라 친문(친문재인)’이라고도 합니다. 문재인 전 후보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낼 때 문 실장을 중심으로 함께 일한 사람들을 가리켜 그렇게 부릅니다.”

    “말로만 반성하는 민주당 호남 텃밭 날릴 수도”

    한상진 민주당 대선평가위원장이 2월 1일 충남 보령에서 열린 대선평가토론회에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 선대위에 참여했던 친문 9인방은 대선 과정에 2선 후퇴를 선언했습니다.

    “선언은 했지만 활동까지 중지한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 있어요. 문재인 후보가 온화하고 덕이 있고, 조리 있게 얘기를 잘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또 문 후보였기 때문에 (대선에서) 선전했다고 하는 얘기도 일리 있습니다. 그렇지만 문 후보는 대선 때 당권까지 인수받아 전권을 행사한 분입니다. 그런 점에서 후보에게 책임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요. 문 후보가 알았든 몰랐든 선대위 조직과 활동, 선거 전략은 모두 후보가 책임지고 관장한 것 아닙니까. (대선 때) 당이 제 기능을 못했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하겠습니까. 당을 위해 문 후보가 스스로 냉정히 대선과정을 돌아보고 해악과 과오가 있었다면 이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당이 살아나는 길입니다. 진실과 화해의 남아공 모델도 참고할 수 있겠지요. 서로 ‘네 탓’이라고 삿대질하며 싸운다면 민주당은 반성을 모르는 구태 정당으로 낙인찍히고 맙니다.”

    ▼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수준을 넘어 문 의원이 의원직 사퇴라는 용단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당내 시각도 있더군요.

    “대선 평가를 수행하는 제가 언급하기엔 적절하지 않습니다.”

    “책임소재 분명히 가리겠다”

    총선에서 패하고, 대선까지 연거푸 졌지만 민주당에서는 어느 한 사람도 용기 있게 ‘누구 책임이 크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대신 ‘어느 누가 선거 패배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는 공동책임론 앞에 모두가 말문을 닫고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했다. 그 사이 민주당을 바라보는 시선은 점차 싸늘해지고 있다. 오죽하면 당내에서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사람’을 찾지 못해 안철수 전 후보 국정자문단에 참여했던 한상진 위원장을 대선평가위원장에 앉혔을까.

    한 위원장도 ‘누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지금은 종합적으로 대선 평가를 진행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누구라고 꼭 집어 얘기하기 어렵다”고 즉답을 피했다. 다만 “대선 평가가 마무리되면 책임소재가 분명하게 가려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 만약 안철수 전 후보로 야권단일화가 이뤄졌다면 대선 결과가 달라졌을까요.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단일후보가) 안 전 후보였다면 ‘박정희 대 노무현’이란 프레임에 갇히지는 않았을 겁니다. ‘과거 대 미래’ 선거구도가 만들어졌을 수 있지요. 안 전 후보는 잠재력이 무척 큰 사람입니다. 정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체계적이고 날카로운 시각을 갖고 있어요. 무당파와 중도파가 많은 중원의 지지를 받았던 안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나섰다면 외연을 넓히기가 상대적으로 쉬웠을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가운데에서 양옆으로 뻗어가는 것과 어느 한쪽 편에서 중원으로 세를 넓히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쉽겠습니까.”

    ▼ 후보단일화는 왜 아름답게 마무리되지 못했습니까.

    “민주당이 ‘단일후보를 반드시 쟁취하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나 싶어요. 후보를 못 내면 당이 존립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 상대(안 전 후보)를 힘을 합쳐야 할 파트너나 동반자로 보지 않고 경쟁자나 싸울 상대로만 보고 밀어붙인 면이 있죠. 후보단일화 과정에 대한 평가도 대선 평가의 중요 부분입니다.”

    ▼ 민주당과 안 전 후보 양측 생각이 많이 다를 텐데요.

    “서로 할 말이 많은 주제죠. 그래서 양측이 함께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

    “안철수의 책임? 이해할 수 없다”

    ▼ 지난 대선 과정에 한 위원장은 안철수 후보의 국정자문단에 참여했습니다. 그 때문에 객관적인 민주당 대선 평가 결과를 내놓더라도 공격받을 공산이 커 보입니다.

    “학자적 균형감을 갖고 사안의 앞뒤 맥락과 경중(輕重)을 가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안철수 편든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혹시 있을지 모르겠어요. 중요한 것은, 자기중심적인 평가로는 객관적 시각을 지닌 국민에게 결코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 위원장은 대선평가위원장을 맡아달라는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요청을 수락한 뒤 미국에 있는 안 전 후보와 통화한 내용을 전했다.

    “안 전 후보가 ‘교수님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평가하셔도 저와 함께 일했다는 이유로 교수님의 평가 결과를 훼손하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다’고 저를 걱정하더군요. 그러면서 ‘저와의 관계를 잊고 객관적이고 엄정하게 대선을 평가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 민주당 일각에는 ‘안철수 공동 책임론’을 제기하는 인사가 많습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도 그런 취지로 언급한 바 있고요.

    “후보직을 사퇴한 사람에게 어떻게 공동 책임 얘기를 꺼내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공동 책임에 앞서 단일화 협상이 왜 제대로 되지 못했는지부터 살펴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 또 단일화 협상책임자들이 (단일화 과정에) 어떤 결정을 내렸고, 단일화를 아름답게 매듭짓지 못해 안 후보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협상 과정에 과오는 없었는지, 단견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혀 그 책임을 지우는 게 먼저입니다. 그런 노력은 전혀 안 하면서 공동책임 얘기부터 꺼내는 것은 민주당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것 아닌가요? 안 후보에게 책임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비교하자면 문 후보나 민주당보다는 책임이 적어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 후보를 사퇴한 사람인데….”

    답답한 심정이 일순간 폭발한 것일까. ‘안철수 공동책임론’ 얘기가 나오자 한 위원장의 말이 빨라졌다.

    ▼ 국정자문단에 참여한 뒤 안 후보에게 어떤 조언을 했습니까.

    “처음 자문단 꾸릴 때 만난 것 외에는 얘기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안 후보의 출마도 늦었고, 자문단 위촉도 너무 늦게 이뤄져서 실제로는 일할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미숙했던 안철수 진심캠프

    ▼ 진심캠프에 대해 ‘아마추어’란 비판이 많았습니다.

    “그런 점이 있었죠. 좋은 생각으로 모인 사람들이지만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했어요. 후보는 후보대로 일정 소화하느라 바빴고, 캠프는 캠프대로 바빴죠. 정책팀과 자문단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손발을 맞추지 못했어요. 캠프 구성과 운영에 미숙한 점이 많았다고 봅니다. 안 후보가 국민적 인기를 유지한 것에 비해 캠프 실체는 많이 허약했죠.”

    한 위원장은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 후보나 캠프가 만든 것이 아니라 국민이 만들어내고 끌고 왔다”며 “안 후보는 ‘안철수 현상’이라는 호랑이 등에 잠시 올라탔다가 스스로 내려온 것”이라고 했다.

    ▼ 단일화 협상 결렬 이후 안 후보가 후보직에서 사퇴했습니다. 자문단과 전혀 상의하지 않았나요.

    “혼자 고독하게 사퇴 결단을 내렸죠.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안 후보가 한국 사회에 던진 새 정치라는 화두는 호소력이 있었지만, 캠프가 후보를 잘 떠받쳐 안철수 현상을 확산시키는 데 도움을 줬는지는 미지수입니다.”

    ▼ 대선과 함께 ‘안철수 현상’도 사라진 것 아닌가요.

    “과거보다 국민 여론이 냉정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안철수 현상은 지금도 살아 있어요. 대선 이후 민주당의 행태에 국민이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어요. 박근혜 당선인과 새누리당, 그리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불통’ 행태에 실망한 국민이 다시 안 후보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에서 안 전 후보에게 대선 패배 책임을 돌리려는 언행을 계속하면 할수록 안 전 후보에 대한 사회적 동정 여론이 크게 일어날 겁니다.”

    ▼ 안 전 후보에게 여전히 애정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 전 후보의 과오는 없다고 보는 겁니까.

    “때에 맞게, 과단성 있게 행동하지 못한 면이 있지요. 조금 느렸죠. 출마 선언도 그렇고. 더 많은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정치인으로서 자기 색깔을 분명히 밝혀야 했는데, 그렇게 못한 면도 있고.”

    인터뷰 말미에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었다. 한 위원장은 “박근혜 당선인이 국가주의 리더십과 민생정치를 잘 결합해내면 한국적 보수정치 노선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수위 운영 방식이나 인사 난맥상, 소통 부재 등 (박 당선인이) 지금까지 보여준 몇 가지 부정적인 면을 보면 원활한 국정 운영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가 나올 만도 합니다. 그렇지만 박 당선인은 역대 어느 보수 성향 대통령보다 한국 정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어요.

    박정희 시대엔 강력한 국가주의 노선을 추구했습니다. 그런데 양극화가 심화해 국민적 이해와 요구가 다양해진 지금은 국가주의만으로는 국정을 원활히 끌고 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다른 쪽 날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민생정치입니다. 민생정치가 강력한 리더십과 결합하면 새로운 보수정치 노선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보수는 냉전 논리의 연장선에 있었어요. 냉전논리를 불식하고 법치를 강조하면서 특권과 차별을 제거하면 보수도 한국 사회에서 좋은 의미로 새로운 입지를 다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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