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호

인터뷰

유주현 대한건설협회장 “일거리·적정공사비 해결 안 되면 거리로 나설 수도”

  •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18-03-05 15: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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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4~5년간 1500개 건설사 퇴출…앞으로 더 많아질까 걱정

    • “공공 공사 중소건설사 10년간 마이너스, 안전사고 원인”

    • 중소업체 대표라 불안하다? “임기 1년 동안 불식했다”

    • 4대강 건설사 ‘2000억 원 기금’ 약속 안 지키면 매년 국감대상

    [김성남 기자]

    [김성남 기자]

    올해 건설 경기 전망은 무척 암울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 국내 건설 수주액이 133조 원으로 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예산이 19조 원으로 전년 대비 14% 감소한 데다 부동산 규제 강화로 인한 주택 시장 위축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해외 건설 시장 진출에도 적신호가 켜지면서 ‘삼각파고(三角波高)’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국내 1만2000여 개 건설사의 수장인 유주현 대한건설협회장으로서는 고민이 이만저만 아닐 터. 지난해 3월 2일 협회장에 취임해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위기 극복을 위한 복안이 있는지 궁금했다. 강남 집값 고공행진으로 정부의 부동산 규제정책 실효성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던 2월 1일,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건설회관에서 유 회장을 만났다. 역시나 얼굴빛이 그리 밝지 않았다. 

    “물량이 줄면 당연히 경쟁이 심해지고, 그러면 건설업체들이 생존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매년 200~300개 업체가 면허를 반납하거나 도산합니다. 그 업체에서 일하던 분들이 나와서 다시 면허를 내고 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전체 업체 수는 줄지 않아요. 그래서 외부에서 볼 때는 변동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변화가 상당히 심합니다. 최근 4~5년 사이에 1500여 개 업체가 스스로 그만두던지 퇴출됐으니까요. 앞으로 더 많아질 것 같아 걱정입니다.”

    “공사비도 제대로 안 주면서…”

    문제는 이런 상황이 올해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향후 5년간 SOC 예산을 연평균 7.5%씩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볼 때 부동산 규제를 완화할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 그렇다고 협회 차원에서 마련할 수 있는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유 회장의 목소리가 무겁게 깔렸다. 

    “점잖은 의사들도 거리로 나와서 시위하는데 우리도 시위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 일거리 문제나 공공 공사 적정공사비 보장 문제 등 여러 현안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이제 방법을 달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아직 그런 방법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올해 정부와 국회에 건의해서 잘 안 되면 검토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 정도로 업계 분위기가 심각합니다.” 



    ‘공공 공사 적정공사비 보장’ 문제는 유 회장이 취임 당시 임기 내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천명한 숙원사업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협회가 지난 3년간 공공 공사 실행률을 조사한 결과 공사건수의 37.7%가 적자 시공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공 공사만 하는 중소 건설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지난 10년간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공사 현장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도 결국은 이 같은 적자 시공으로 인한 경영난과 무관치 않다.

    “정부가 공공 공사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평가할 때 사회적 기여나 일자리 창출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아요. 그런데 공사비도 제대로 안 주면서 어떻게 그런 걸 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남아야 사회적 기여도 하고, 일자리도 만들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아닌 말로 도둑질해서 하라는 이야기밖에 더 되겠어요.” 

    좋은 해법이 있을까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국회, 정부 등 관계 요로에 지속적으로 건의해왔는데, 다행히 국토교통부가 건설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 적정공사비 보장 문제를 포함해줬어요. 이제 정부에서도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방법이 문제인데 법제화를 제안해볼까 검토 중입니다. 그러면 일본이나 미국처럼 공사 설계금액의 90% 이상 확보를 기대할 수 있거든요. 일본도 과거에 최저가 낙찰 방식으로 업체를 선정하면서 품질과 안전 문제, 근로자 임금 문제, 장비 비용 문제 등 그 폐해가 컸어요. 그래서 아베 정부 들어서면서 품질 안전관리 기준을 정하고 공사비를 일정 기준 이하로 낮춰서 발주하지 못하도록 법제화했죠. 우리나라도 그런 방향으로 개선해나가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民資로 하라”

    올해 신년사에서 건설산업 지속성장 기반 조성을 위해 민간투자사업이 활성화되도록 제도 보완을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는데요. 어떤 제도 보완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합니까? 

    “우선 민간투자사업 대상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방경찰청사의 경우 전국적으로 노후화가 심각한 데다 경찰공무원 수가 최근 4~5년 사이 1만3000명 정도 늘어나면서 근무 공간조차 턱없이 부족한 상태거든요. 그런데 지방경찰청사는 민간투자사업 대상에서 제외돼 한정된 정부 예산만으로는 단기간에 업무환경을 개선하기 어려운 실정이죠. 그래서 협회는 지방경찰청사를 민자투자사업 대상에 포함하기 위해 정부에 건의도 하고 법령 개정도 추진 중입니다. 또 서울 서초동 일대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공사처럼 정부 재정으로 쉽지 않은 SOC사업도 민자투자 방식으로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 정부는 민자투자사업 방식에 부정적인 것 같은데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아마도 초기 민간투자사업에 적용하면서 부작용이 많았던 최소운영수입보장(MRG) 방식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인 것 같은데요. 그 방식은 이미 2007년에 폐지됐거든요. 이런 사실도 모르는 분이 많아요. 민간투자사업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 개선하고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국내 건설사의 해외건설 수주실적도 최근 몇 년간 지지부진한 상태인데요.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는 근본 원인은 뭘까요? 

    “2014년 660억 달러 규모에 이르던 해외건설 수주액이 저유가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290억 달러 정도에 그쳤고 올해 역시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최근 대부분의 해외공사가 투자개발사업(public-private partnership, 약칭 PPP) 방식으로 바뀌었어요. 중동이나 아시아, 남미도 그렇고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미국에서 단순도급 사업은 이미 다 철수한 상태입니다. 미국이 얼마 전에 향후 10년간 1조7000억 달러를 인프라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는데 대부분 PPP 방식으로 참여하라고 할 거예요. 

    지난해 5월 미국 워싱턴에 갔을 때도 비슷한 요구를 많이 들었거든요. 중국 등 주요 경쟁국은 국가 차원의 정책지원에 힘입어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단순도급 위주로 특정 지역에만 편중돼 있으니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우리나라 건설기술력이 세계 5위권이라고 하지만 변화된 세계시장에 자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업은 대형 건설사 3~4개밖에 안 될 겁니다.”

    4차 산업 중심은 ‘건설’

    우리 정부 차원의 해외진출 지원은 없나요? 

    “코리아해외인프라펀드(KOIF) 조성, 해외건설공사 보증지원 강화 등 나름대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규모도 작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에는 다소 미흡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행히 정부에서 해외 투자개발 금융지원을 확대하고, 해외 인프라와 도시개발 분야 투자개발사업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 설립을 추진 중입니다. 아마 올해 상반기에 출범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우리 협회도 참여하기 위해 국토부 등과 지속적으로 협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건설업계의 세부 대응 방안을 세울 계획이라고 밝힌 적 있는데, 현재 어느 정도 진행 중입니까? 

    “국토부가 지난해 보스턴컨설팅그룹을 통해 진행한 ‘4차 산업혁명 대비 건설산업 및 인프라 경쟁력 진단’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올해 상반기에 ‘건설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협회는 그걸 참고해서 건설업계에서 실행 가능한 대응 방안을 수립하려고 합니다. 사실 융·복합 기술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그렇지 건설업계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해오던 겁니다. 융·복합이라는 게 뭡니까. 건설이나 기계에 기술을 입히는 것 아닌가요. 사물인터넷이나 스마트시티가 다 그런 거죠. 95%가 건설이고 나머지가 5% 정도 될 겁니다. 4차 산업혁명은 건설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어요.” 

    4차산업혁명위원회(이하 4차위)에 건설기술 분야 전문가는 없는 것 같던데요. 

    “정말 잘못됐다고 봅니다. 저도 (4차위) 명단을 보고 ‘이게 뭔가’ 싶더라고요. 저희 협회에는 건설산업연구원도 있고, 건설기술연구원도 있는데 정부로부터 참여 요청을 받은 적이 없어요. 많이 안타깝고 아쉽죠. 4차 산업혁명에서 건설이 차지하는 부분이 큰 만큼 4차위에 참여해서 함께 논의할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할 생각입니다.”

    “세금 많이 내는 사람이 대통령 되나?”

    유주현 회장은 “지난 1년간 중소업체 대표가 협회를 제대로 이끌 수 있겠느냐는 안팎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김성남 기자]

    유주현 회장은 “지난 1년간 중소업체 대표가 협회를 제대로 이끌 수 있겠느냐는 안팎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김성남 기자]

    대한건설협회장은 국내 17개 건설 관련 단체가 참여한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회장도 겸한다. 그만큼 중요하고 책임이 막중한 자리다. 그때문에 지난해 취임 당시 유 회장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았다. 시공능력평가(도급순위) 600위권에 불과한 중소업체(신한건설, 경기도 안양시 소재) 대표가 협회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었던 것. 그동안 어려움은 없었을까? 

    “처음에 우려가 많았죠. 작은 업체 대표가 협회장을 맡아서 건설업계 전체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데 지난 1년간 업계의 불편사항 개선을 정부와 국회 쪽에 건의하면서 중소업체 대표라서 불편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대형업체부터 중소형업체까지 다 함께 있는 협회를 대표해서 이야기하는데 어떤 업체의 대표냐에 따라 들어주고 안 들어주는 건 아니거든요. 만약 중소업체 대표라 협회장이 될 수 없다면 대통령도 세금 많이 내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건데, 그건 아니잖아요. 다만 대형업체들 사이에서 중소업체 대표니까 중소업체 문제만 신경 쓰는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어요. 그걸 해소하기 위해 ‘대기업정책위원회’를 만들고, 그 안에 다시 ‘정책제도소위원회’와 ‘해외동반진출소위원회’ 등 2개의 소위원회를 구성해 그동안 활발하게 소통해왔습니다. 덕분에 취임 초기의 우려와 걱정은 거의 불식됐다고 생각해요.” 

    대형업체와 중소업체 간 상생과 협력을 위한 기반 마련도 매우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는데요. 문제점이 뭔가요? 

    “1990년대 초부터 대형업체와 중소업체가 공동 도급을 시작해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정착이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공사비가 워낙 저가로 낙찰되다 보니까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요. 문제는 그 손실분을 중소업체들도 같이 부담해야 한다는 거죠.” 

    그건 정책이나 제도를 보완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대형업체들이 공사를 진행하면서 공정관리에 중소업체를 참여시키지 않아요. 중소업체 대부분은 공사 원가가 어떻게 되는지, 공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혀 모른 채 현장만 돌아다니죠. 그런데 공사 끝나고 나서 ‘손실 입었으니까 얼마 부담하라’면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정말 손실이 발생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잖아요. 공동도급인데도 공정관리에 참여시키지도 않고. 현장에서 대형업체와 중소업체 간 갈등이 많아요. 대형업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겠지만, 그걸 어떻게 하면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유 회장의 고민거리는 또 있다. 4대강사업 담합에 따른 행정제재 처분을 받은 48개 건설사가 2015년 8월 사회 환원 차원에서 약속한 2000억 원 규모의 건설공익재단 설립 문제다. 협회가 ‘건설산업사회공헌재단’이라는 공익재단을 만들기는 했지만 실제로 모금된 기금은 47억 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해당 건설사 CEO들이 국회에 불려가 질타를 당했지만, 아직까지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협회가 CEO 국감 나오게 작업? “그건 정말 오해”

    “당초 건설업계가 약속한 모금액인 2000억 원을 모금하지 못한 점은 건설업계 수장으로서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최순실 등 국정농단 세력 때문에 재단출연이 특별감면에 대한 ‘대가성’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고, 4대강사업 담합에 따른 6000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까지 이어져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지 않으면 매년 국감 대상으로 지목될 것 같아 걱정이에요. 작년 국정감사장에 CEO들 불려나온 것 때문에 협회가 오해받은 적도 있어요. 건설사들 돈 내게 하려고 협회가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는 거죠. 그런 건 전혀 아닌데… 정말 곤혹스러웠어요.” 

    협회 차원에서 마련한 대안은 없나요? 

    “은행 정기예금 금리 1.5%를 적용하면 2000억 원의 이자가 한 30억 원쯤 돼요. 건설공제조합이 매년 건설사에 배당하는 배당금을 그 이자만큼 재단에 출연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죠. 건설사들과 아직 협의된 내용은 아닙니다만, 그 정도 규모면 어느 정도 사회공헌사업을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국회나 국토부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아요. 당초 약속대로 지키라는 거죠. 어떻게 해법을 찾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특별한 좌우명 없이 ‘열심히 살자’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는 유 회장. ‘난중일기’를 읽은 후 이순신 장군 같은 리더를 꿈꾼다는 그가 암울한 건설 경기 전망 속에서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협회의 숙원사업과 고민거리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그게 곧 리더십이자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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