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호

11년차 ‘동물권 변호사’ 박주연이 사는 법

[20대 리포트] 동물이 물건 아니려면 결국 법과 제도 바꿔야

  • 김소현 고려대 미디어학부 4학년

    k2mss5@naver.com

    입력2024-01-0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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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고 산양 1, 산양 2, 산양 3…

    • ‘개 전기 도살 사건’ 변호하다

    • “수의사 법적·윤리적 의무 낮아”

    원고 명단. 산양 1, 산양 2, 산양 3…. 2018년, 산양들이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설악산에 오색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막기 위해서였다. 활동 반경이 좁고 서식지에 예민한 산양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였다. 그러나 산양들은 법정에 출석할 수 없었다. 대신 원고석에는 박주연(38) 변호사가 앉았다. 그는 산양들의 변호인이었다. 박 변호사가 재판장을 향해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생존을 위협받는 동물의 입장을 이제 재판부에서 논의할 때가 됐습니다. 진지하게 고민해 주십시오.”

    2011년 어느 날, 사법연수생 신분이던 박 변호사는 사진 한 장을 접했다. 사람들이 새끼 돼지의 네 발을 있는 힘껏 잡아당기는 모습이 사진에 담겨 있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은 박 변호사는 그날 밤 혼자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현재 11년차 ‘동물권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이혼 전문 변호사, 상속 전문 변호사는 들어봤어도 동물권 변호사는 낯설다. 동물권 변호사는 동물 학대 사건 고발은 물론 동물보호법에 생소한 수사기관을 지원하고 국회의원과 협업해 법률안을 작성한다. 동물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는 일이다. 박 변호사는 그간 진행된 동물 관련 소송 중 손에 꼽을 만큼 치열한 사건으로 ‘개 전기 도살 사건’을 언급했다.

    박주연 변호사가 책 ‘동물보호법 강의’를 보고 있다. [김소현]

    박주연 변호사가 책 ‘동물보호법 강의’를 보고 있다. [김소현]

    어떤 판결의 의미

    전기 도살은 ‘잔인한’ 방법인가 아닌가. 박 변호사가 약 40쪽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하며 참여한 재판의 쟁점이다. 피고인 농장주는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를 개의 입에 대어 수십 마리를 감전시켜 도살했다.



    1심과 2심은 동물보호법상 금지하고 있는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분노한 박 변호사는 동료 변호사들과 함께 동물보호법과 축산물 위생관리법을 잘게 분석해 법리를 만들어냈다. 전기로 닭과 오리의 고통을 최소화해 기절시켜야 하는 ‘전살법’이 개에 똑같이 적용될 수 없으며, ‘잔인한 방법’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고, 식용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는 것 자체에도 법적 근거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법정 공방은 치열했다. “이미 죽은 개의 고통을 어떻게 측정하느냐” “어떻게 고통을 안 받았을 수가 있겠느냐”고 주장하는 양측의 말투와 눈빛 모두 날카로웠다. 긴 재판 끝에 결국 대법원은 2018년 9월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박 변호사는 “피해 동물의 고통 정도와 지속 시간이 잔인성 판단의 기준이 됐다는 점에서 이 판결의 의미가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의 목소리는 법정 밖에서도 울렸다. 10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개 식용 금지법 제정 촉구 집회에서 박 변호사는 공동 선언문을 낭독했다. 그는 이날 “우리 단체와 국민들은 할 만큼 했다. 이제 오로지 정부와 국회에 맡겨야 할 시간”이라고 했다. 같은 장소에 있던 동물권 행동 ‘카라’ 정책변화팀 윤성모 활동가는 “법적 사각지대에서 개들은 잔인하게 죽는다”며 “과연 개고기를 먹는 것을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녀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던 한희(46) 씨는 “동물 학대가 자행되는 상황에서 계속 식용화하는 것이 문제다. 아이들에게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어떤 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왔다”고 했다.

    동물 의료사고 소송도 박 변호사의 업무 중 하나다. 반려견 뽀삐(가명)는 6세 되던 해인 2022년에 동물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 달 동안 특정 동물병원을 오가며 치료 중이던 뽀삐는 어느 날 응급으로 입원했다. 그러나 병원 측은 숨을 쉬기 힘들어하는 뽀삐에게 필요한 산소 치료를 하지 않았다. 뽀삐가 답답해한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세 시간 동안 방치된 뽀삐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박 변호사는 “수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엄중한 일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법적·윤리적 의무는 낮은 편”이라며 “사고가 나면 과실을 밝히는 게 어려워 보호자 입장에서 법적으로 싸우기 힘들 수 있다”고 밝혔다.

    우재홍 한양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에 따르면 동물을 적절히 치료하기 위해서는 수의사, 간호사, 보호자의 역할 공히 중요하다. 간병인이 없는 동물병원에서는 수의사와 간호사가 간병인 역할까지 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이 보살피는 동물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보호자는 동물을 대신해 아픈 부위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정확한 진단과 수술은 보호자가 동의할 때만 가능하다. 우 원장은 “사람이 동의하지 않으면 동물권은 쉽게 말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과도한 입양 절차 규정의 이면

    2023년 10월 29일 열린 개식용금지법 제정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김소현]

    2023년 10월 29일 열린 개식용금지법 제정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김소현]

    박 변호사는 2017년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People for Non-human Rights)을 공동 설립했다. PNR에서는 최근 실상이 드러나 큰 충격을 준 화성 강아지 번식장과 같이 무분별하게 동물을 생산하는 영업장을 고발한다. 동물권 단체와 협업해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하고 번식업자들의 위법 행위를 찾아낸다. 더 나아가 이를 입법 활동으로 연결한다. 현재는 동물 매매 행위를 강아지 공장과 같은 생산 차원부터 규제하는 이른바 ‘루시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한 통로가 두 가지라는 점에 주목한다. 펫 숍에 가서 구입하거나, 동물보호센터에서 입양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입양을 권장하는 분위기다. 다만 절차가 점점 까다로워지는 기류다. 반려인 교육 이수도 필요하다. ‘내 돈 주고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이렇게까지 입양해야 하지’ 하고 생각할 소지가 있다. 박 변호사는 “두 방법은 양립할 수 없으므로 펫 숍을 통해 매매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앞서 강조한 대로 동물을 입양하는 과정이 간단치만은 않다. 10월 23일 ‘반려마루 화성’에서는 번식장에서 구조된 강아지들이 새로운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들어오면 두 발을 딛고 일어나 자갈만 한 두 손으로 유리문을 마구 긁는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금방이라도 눈물방울이 떨어질 듯한 동그란 두 눈으로 뚫어져라 바라본다. 넓은 견사 안에 약 30마리는 돼 보이는 강아지들이 각자의 방에 들어가 있다. 문을 열고 손을 내밀면 자그마한 얼굴을 손바닥 안으로 폭 집어넣는다.

    이 강아지들을 반려마루에서 입양하려면 먼저 전용 온라인 플랫폼에서 입양을 신청해야 한다. 접수되면 전화로 상담을 진행한 뒤, 반려견과 만나 함께 놀고 산책하는 모습을 훈련사가 관찰한다. 이후 질문을 통해 보호자의 성격을 파악하고 강아지의 성향과 비교한 뒤, 직원 회의를 통해 확정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웹사이트 ‘동물 사랑 배움터’에서 온라인으로 동영상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반려마루에서 훈련 업무를 담당하는 배상준 주무관은 “과도한 입양 절차 규정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며 “좀 더 열려 있는 법적 태도가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물론 과거보다는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 항공사는 동물을 원래 서식지로 돌려보낸다는 내용의 광고를 제작했고, 전북 정읍시는 동물 학대 논란이 있던 소싸움을 지자체 중 처음으로 폐지했다. 동물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와 영화가 나오고, 동물영화제와 반려동물 축제 등의 이벤트도 개최되고 있다.

    그럼에도 결국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게 박 변호사의 견해다. 그의 말이다. “동물은 물건이 아닙니다. 생명이 있기에 존엄성이 있고, 존엄성이 있기에 존중받는 게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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