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신당, 텃밭서 힘 못 써
광주·전라에서 이준석 신당에도 열세
2016년 국민의당 돌풍 키워드
호남 출신자와 호남 거주자의 차이
빅텐트 이루면 DJP 유사 정파연합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1월 7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무명열사 묘역에서 무릎을 꿇고 참배하고 있다. [광주=박영철 동아일보 기자]
[신동아 대담] 이낙연-이준석 한국 정치를 말하다
4·10 총선은 8년 만에 다자 구도로 치러진다. 내용은 다르다. 2016년엔 야당은 분당(分黨), 여당은 분열(分裂)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중진이 대거 이탈해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새누리당에선 공천 파동이 발발했으나 당이 쪼개지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1·2·3당인 민주당과 국민의힘, 정의당 공히 분당 수순이다. 1·2당에서는 전직 당대표(이낙연·이준석)가 탈당했다. 3당에서는 비례대표 1번(류호정)과 당대표 후보를 지낸 정치인(조성주)이 나왔다. 각 당 주류가 비주류의 이탈을 방관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로 인해 제3지대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이 중에서도 이낙연 전 국무총리(새로운미래 인재위원장)의 경력은 화려하다. 5선 국회의원과 전남지사, 총리, 민주당 당대표를 지냈다. 제3지대 정치인 중 지난 대선에 출마한 유일한 인사다. 한데 이 전 총리가 주도하는 새로운미래에 힘이 붙지 않는 양상이다. 탈당 이후에도 지지율이 우상향 궤적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아직 호남 민심을 얻지 못한 탓이다. 그렇다 보니 파괴력이 제한적이다. 그 이야기를 해보자. 신년을 맞아 우후죽순처럼 발표된 여론조사 중, 새로운미래에 관한 설문이 포함된 조사만 추렸다. 단, 조사가 이뤄질 시점에는 새로운미래라는 명칭이 공개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주로 이낙연 신당으로 조사가 진행됐다는 점을 밝힌다. 응답률이 두 자릿수인 조사 결과만 활용했다.
‘소리 없는 다수’ 아닌 ‘소리 없는 소수’
MBC가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9~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이다(응답률 10.4%). 조사자 중 신당 투표 의향을 밝힌 337명을 상대로 지지 정당을 물었을 때 이준석 중심의 개혁신당 33%, 이낙연 중심 신당 14%, 용혜인 중심의 개혁연합신당 12% 순으로 나타났다. 광주·전라에서 이낙연 신당은 10%를 얻는 데 그쳐 이준석 신당(31%)은 물론 용혜인 신당(16%)에도 뒤졌다. 광주·전라 조사 사례자 수가 45명으로 적긴 하지만, 이 전 총리로서는 체면이 서지 않는 결과다.조선일보·TV조선이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30~3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8명을 조사한 내용(응답률 13.9%)을 보자. 이준석 신당과 이낙연 신당을 포함해 지지하는 정당을 묻자 국민의힘 28%, 민주당 25%, 이준석 신당 7%, 이낙연 신당 4% 순이었다. 광주·전라에선 민주당 43%, 이준석 신당 6%, 이낙연 신당 6%, 국민의힘 3%다. 호남에서도 이낙연을 대안으로 인정하지 않는 기류가 강하다. 이러면 지지자도 움츠러든다. 6%의 일원이라 생각하면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소리 없는 다수’가 아닌 ‘소리 없는 소수’가 되기 십상이다.
다음은 SBS가 입소스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9~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조사한 결과(응답률 10.8%)다. 신당 출범 시 투표 정당을 묻는 질문에 이낙연 신당은 8%를 얻었다. 민주당 33%, 국민의힘 27%, 이준석 신당 12%에 이은 4위다. 이 조사에서는 이낙연 신당이 광주·전라에서 18%로 2위였다. 다만 47%를 얻은 민주당과 격차가 컸다. ‘이낙연 신당 찬반’을 묻는 추가 질문에는 광주·전라에서 27%가 ‘탈당 배경에 공감해 찬성한다’를 택했다. 63%는 ‘명분이 부족해 반대한다’고 답했다.
숫자를 복기하면 흥미로운 포인트가 보인다. 호남에서 민주당이 수위이긴 하나 지지세가 공고하지는 않다. 지지율이 50%를 넘지 못한다. 단지 소선거구제여서 의석을 석권할 뿐이다. 호남에도 대안에 대한 갈망은 있다. 호남 유권자는 그 주체가 보수여당이 되길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남는 선택지 중 하나는 이낙연 신당이다. 따라서 호남에서 나오는 성적표는 ‘민주당이 강해서’라기보다는 ‘이낙연 신당이 약해서’ 나온 결과다. 호남 유권자로서는 굳이 ‘찍어줄’ 비교우위가 없다고 보는 셈이다.
‘호남 야당’의 토양은 8년 전 발견된 바다. 2016년 4월 치러진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호남 24석 중 23석을 포함해 총 38석을 얻었다. 민주당은 텃밭에서 참패했다. 8년 전 이맘 때 실시된 조사를 보자. 아직 당명이 없던 시점이라 안철수 신당으로 불렸다. 2016년 1월 5~7일 한국갤럽 조사(응답률 23%)에서 안철수 신당 지지율은 21%였다. 새누리당(35%)과 민주당(19%) 사이에 있다. 광주·전라에선 안철수 신당 41%, 민주당 19%, 새누리당 10%였다(이하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당發 ‘녹색 돌풍’
‘전라디언의 굴레’를 쓴 조귀동 정치경제 칼럼니스트는 “호남에도 수도권 정당이 돼가는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있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2016년에는 민주당이 친문 정당으로 재편돼 형성된 (호남의) 반감이 있었다. 또 호남의 현역의원이 모두 (민주당에서) 나갔다. 수도권 선거에서도 지역 조직의 영향력은 작용하지만 고공전을 통해 (조직력의 격차를) 메울 수 있다. 반면 지역 선거에서는 조직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이 전 총리와 함께 탈당한 현역의원이 없다. 게다가 호남도 소지역주의로 나뉘어 있다. 전남지사를 했다고 해서 광주와 전북에서도 ‘우리 지역 대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2016년 국민의당 모델도 더욱 면밀히 검토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양당에 대한 환멸’이라 갈음해 버리면 중요한 걸 놓치고 만다. 당시 국민의당발(發) ‘녹색 돌풍’은 구조적 요인에 기인했다.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2016년 발표한 논문 ‘‘제3정당’에 대한 호남 유권자들의 선호와 투표결정’(아세아연구, 제59권 제4호)은 그런 의미에서 유의미한 시사점을 준다.
지 교수는 한국정치학회의 20대 총선 후 여론조사를 활용해 거주지 및 출신지별로 응답자들이 친근감을 느끼는 정당과 선호하는 정당을 확인했다. 이에 따르면 호남 거주자들이 가장 친근감을 느끼는 정당은 국민의당(26.4%), 민주당(26.2%), 새누리당(3.8%) 순이었다. 선호하는 정당은 국민의당(56.4%), 민주당(56.0%), 정의당(41.4%)으로 나타났다. 국민의당과 민주당 간 격차가 희미하다.
그런데 호남 출신자, 즉 고향이 호남이지만 지금은 호남에 살지 않는 유권자들은 기류가 다르다. 이들이 가장 친근감을 느끼는 정당은 민주당(29.1%), 국민의당(17.0%), 새누리당(8.7%)이었다. 가장 선호하는 정당은 민주당(55.7%), 국민의당(50.7%), 새누리당(39.4%) 순이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 간 격차가 크지 않지만 호남 거주자들의 선호도와는 결이 다르다.
이는 투표에도 반영됐다. 호남 거주자들은 지역구에서 국민의당 53.7%, 민주당 37.4%의 투표 양태를 보였다. 비례대표에서는 국민의당 50.9%, 민주당 35.0%로 나타났다. 투표에서 국민의당 쏠림 현상이 일어났다. 반면 호남 출신자들은 지역구에서 민주당 49.3%, 국민의당 30.6%를 택했다. 비례대표는 민주당 44.1%, 국민의당 32.8%였다. 지병근 교수는 호남 거주자들의 결정을 민주당에 대한 ‘항의 투표’라고 규정하며 이렇게 설명한다.
“문재인에 대한 거부감과 지역경제 발전 이슈를 해결할 수 있는 국민의당의 능력에 대한 기대가 국민의당에 대한 선호와 투표 가능성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 안철수와 국민의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는 과거 김대중과 같은 호남 출신 정치인들에 대한 애정에 바탕을 두고 형성되었던 유권자들의 강한 일체감과 일방적인 ‘지역주의적 투표’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중략) 따라서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는 내재적(intrinsic)이기보다 외재적(extrinsic)이며…”
따라서 질문은 이렇게 구성돼야 한다. ‘왜 호남 출신자에 비해 호남 거주자들은 지역경제 발전 이슈에 민감할까.’ 답은 간단하다. 지방이 저발전 상태이기 때문이다. 고향만 지방이되 현재는 서울 강남에 사는 엘리트와 여전히 지방에 사는 사람 사이에는 원적지(原籍地)를 제외하곤 공통점이 없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밥벌이 문제’다. 이에 더해 민주당 주류에 대한 반감이 얹혔다. 덕분에 민심의 저류(底流)에서 국민의당을 ‘도구’ 삼아 민주당을 혼내주겠다는 정서가 확산했다. 호남 다선 의원들이 ‘중진 인물론’을 내세워도 먹혀들 만한 환경이 조성됐다.
바꿔 말하면 ‘녹색 돌풍’ 원인은 어느 한 가지로 귀속되지 않는다. 호사가들이 말하듯 ‘대선주자 안철수’에 대한 기대감에만 기대고 있지 않다. 이는 여러 요인 중 하나일 순 있어도 핵심은 아니다. 저발전에 대한 누적된 불만, 이를 해결하지 못한 지역 패권 정당에 대한 항의가 특정한 계기를 만나 폭발했다. 정치와 경제의 겹눈으로 이해해야 할 사건이다. 우리가 흔히 ‘지방 쇠퇴’ 내지 ‘소멸’이라 하는 현상은 선거에 이런 식으로 틈입한다.
8년이 지났으나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20일 호남지방통계청이 발표한 지역경제 동향에 따르면 2023년 1~3분기 광주와 전·남북 순유출 인구는 1만2334명이다. 주로 20·30대가 직장과 교육을 위해 수도권으로 옮겼다고 호남지방통계청은 밝혔다. 이는 -52.9%로 집계된 건설 수주, –18.5%로 나타난 수출 실적과 무관치 않다. 이를 알리는 지역언론(‘무등일보’ 2023년 11월 20일자)은 기사 제목을 “지역 떠나는 ‘탈호남’ 현상 더욱 짙어져”라고 달았다.
대주주에서 2대 혹은 3대 주주로
왼쪽부터 김종민, 박원석, 양향자 한국의희망 대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조응천, 이낙연 새로운미래 인재위원장, 이원욱, 금태섭 새로운선택 공동대표, 정태근, 최운열 전 의원, 최성 전 고양시장. [뉴스1]
조귀동 정치경제 칼럼니스트는 “제3당이 양당 구도를 흔들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면 세력이 커질 수 있다. 그러면 (양당에서) 추가 이탈하는 사람들을 끌어올 수 있다”면서 “(제3세력이 빅텐트를 이루면) DJP(김대중·김종필) 연대와 유사한 정파연합이 만들어질 것이고, 그 안에서 (이 위원장이) 호남계 몫으로 지분을 요구하는 방법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1월 14일 열린 ‘미래대연합’ 창당준비위원회 출범식에서 “텐트를 크게 쳐달라. 추우면 어떤가. 기꺼이 함께 밥 먹고 함께 자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텐트보다 멋있는, 비도 바람도 막을 수 있는 큰 집을 지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앞서 1월 9일 진행된 ‘신동아’ 대담을 통해서도 접점을 모색한 바 있다. 2000년 정계에 입문한 이 위원장으로서는 24년 만에 본진(本陣)을 바꾸는 일생일대 승부수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정치학) 교수는 “이 위원장의 경우 (제3지대에) 여러 파트너가 있지만 개혁신당과의 연대나 합당이 없으면 잠재력이 드러날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면서 “그러려면 ‘엄근진(엄격·근엄·진지)’으로 대표되는 이 위원장의 정적인 캐릭터도 보다 역동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한 정당이 독점하는 호남에도 경쟁 체제가 도입돼야 지역발전이 가능하다는 걸 알면 민심도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동아 2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