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정당’, ‘방탄 정당’ 변질”
박근혜와 이인제·손학규 차이점
DJ 마크맨·盧 대변인·文 국무총리
정치 인생 자체가 민주당 역사
연합신당 15% 지지율 유지 관건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탈당 및 신당 창당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 [박형기 동아일보 기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칼을 꺼내 들었다. 평생을 몸담았던 민주당을 떠났다. 혁신·쇄신 기대를 접고 루비콘강을 건넜다. 이어 ‘이낙연 신당’ 창당도 공식화했다. 나아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의 총선 연대도 시사했다. ‘엄근진(엄격·근엄·진지)’의 대명사인 이낙연 전 대표의 파격 선택에 여야 정치권의 해석이 분분하다. 관건은 총선 파괴력이다. 전망은 엇갈린다. 최대 30%에 이르는 중도층을 고려할 때 ‘태풍의 눈’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낙관이 있다. 반면 ‘뜬금없는’ 탈당과 신당 창당에 재기불능에 내몰릴 것이라는 비관도 있다. 이 전 대표의 탈당 및 신당 창당의 막전막후를 집중 해부했다.
NY의 마이웨이 선언
이 전 대표는 지난해 6월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정중동 모드를 이어왔다. 다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재명 대표 측에 변화와 혁신을 촉구했다. 시간이 흘러도 성과물은 없었다. 같은 해 12월 30일 이 대표와 최종 담판에 나섰다. 대표직 사퇴와 통합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을 요구했다. 이 대표는 “당은 기존 시스템이 있다. 당원과 국민의 의사가 있어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단합이다. 당 안에서 함께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형편없는 폭주에도 민주당이 국민으로부터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결별과 마이웨이를 공식 선언했다.민주당 안팎의 우려는 상당하다. 이 전 대표의 탈당이 단기필마에 그치지 않고 분당에 버금가는 대규모 탈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화하면 한때 민주당 안팎의 200석 대승론과 국민의힘 안팎의 100석 미만 참패론이 뒤집힐 수도 있다.
오랜 정치경험으로 이를 모르지 않을 이 전 대표는 왜 탈당을 결단했을까. 정치적 중대 고비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유력 정치인의 운명은 엇갈린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시절 탈당 없이 당내 헤게모니를 장악한 뒤 2012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반면 이인제·손학규 전 의원은 각각 1997년 대선과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탈당했다가 정치적 자산을 갉아먹었다.
2021년 10월 10일 서울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서울 합동연설회 및 3차 슈퍼위크에 참석한 이재명 경선 후보(오른쪽)와 이낙연 경선 후보. [사진공동취재단]
이 전 대표는 이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 전 대표는 “사법문제가 없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2선 후퇴를 여러 번 했다”며 “민주당이 선거를 잘 치르기 위해 양보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연일 양측의 신경전이 거세지는 가운데 대장동 의혹의 최초 제보자가 이 전 대표의 최측근인 남평오 전 국무총리실 민정실장이라는 점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파문이 확산했다. 당 원로인 김부겸·정세균 전 총리가 중재에 나섰지만 효과는 없었다.
[+영상] 대장동 최초 고발자 남평오의 견해
지난해 12월 30일 최종 담판도 허무하게 끝났다. 이날을 기점으로 양측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이 전 대표는 이 대표의 대표직 사퇴와 통합 비대위 전환을 촉구했다. 이 대표는 거부하고 이 전 대표의 탈당을 만류했다. 양측이 결별을 공식화한 명분 쌓기 용도의 만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 전 대표는 외길 수순이다. 민주당 탈당에 이어 신당 창당을 모색 중이다. 총선 국면에서는 제3지대 빅텐트론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이낙연 신당이 제3지대 빅텐트를 시도하겠지만 성공 가능성은 담보할 수 없다. 과거 김종필 전 총재와 제20대 총선 당시 안철수 의원의 파괴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다만 신당 파괴력은 제한적이라도 수도권 박빙 지역에서 민주당 표를 가져갈 경우 이재명 대표에게는 부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혐오형 무당층은 투표장에 가지 않는다. 신당은 무당층보다는 지지 정당이 있지만 지지 여부가 유동적인 중도층을 바라봐야 한다”면서도 “다만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신당이 비집고 들어가기는 힘들다”고 예상했다.
남은 자리는 대통령뿐이지만…
이 전 대표의 정치적 스펙은 현존 정치인 누구보다 화려하다. 5선 중진에 전남지사, 국무총리, 집권 여당 대표 등등. 장관을 제외하면 모든 자리를 누렸다. 의원 시절도 화려했다. 명대변인으로도 이름을 날렸고 민주당 텃밭 호남에서 4선을 지냈다. 제21대 총선 당시 서울 종로에서 보수의 ‘차기 대어’로 꼽히던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대표를 눌렀다. 전남지사로서의 행정경험은 물론 실세 국무총리에 이어 180석 집권여당의 수장도 역임했다. 유일하게 남은 자리는 대통령뿐이다. 총선에서 유의미한 성적표를 거둬야 차기 도전을 기대할 수 있다.묘한 것은 이 전 대표의 정치인생 자체가 민주당의 역사라는 점이다. 역대 대통령인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깊다. 김 전 대통령과는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시절 동교동을 출입하면서 마크맨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 전 대표의 능력을 높이 산 김 전 대통령의 발탁에 제16대 총선을 거쳐 여의도에 입성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 대선 당시 후단협(후보 단일화 협의회) 파동의 고비 때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 보라”는 유명한 논평으로 노 전 대통령을 지켰다. 대선 이후 당선인 대변인을 맡았고 국회 탄핵 표결에서는 반대표를 던졌다.
문재인 정부 시절은 그야말로 정치인생의 정점이었다. 대독·의전 총리가 아니라 실세 총리로 약 2년 7개월 동안 일하면서 ‘1987년 체제’ 이후 최장수 총리를 역임했다. 특히 국회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유머와 촌철살인을 겸비한 총리의 등장에 대중은 ‘사이다 이낙연’이라고 환호했다. 문 전 대통령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무총리 시절 이 전 대표의 업무능력을 극찬했다. 이 때문에 대권 가도에서 ‘이낙연 대세론’이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졌다.
물론 뼈아픈 실수도 있었다. 2021년 초 국민통합을 명분으로 내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건의’였다. 최대 자충수였다. 이후 정치적 반등을 못하고 20대 대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실패했다. 애초 이재명 경기지사와의 양강 구도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이재명 대세론’이었다. 이 전 대표로서는 본인의 텃밭이자 지역기반인 호남에서조차 압도적인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 전 대표는 탈당 및 신당 창당을 앞두고 민주당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나중에 발언을 바로 잡고 사과하기는 했지만 “민주당 국회의원 167명 중 68명인 44%가 전과자다. 민주당은 도덕성과 다양성을 잃어버렸다. 지금은 심각한 병적 상태”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와 관련 “현재 민주당이 ‘민주’라는 이름을 쓰는 당의 모습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이재명 체제 하의 민주당은 민주적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 당원독재 구도인 만큼 ‘정치인’ 이낙연의 길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탈당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이낙연 전 대표의 정치적 화양연화는 끝났다. 남은 자리가 대통령인데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탈당 명분이 없다. 민주당 내부에서 투쟁하고 변화와 혁신을 만들어야 한다. 민주당이 망가졌다면 차기 전대에 출마해서 당권을 잡아서 바꾸는 게 맞다”고 했다.
독자생존 승부수 vs 총선필패 책임론
이 전 대표의 결단에 대한 당 안팎의 반응은 비판 일색이다. 제22대 총선에서 윤석열 정부를 심판해야 하는데 야권분열은 해당행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준석 신당 출범으로 여권이 분열된 가운데 민주당이 뭉치면 총선 승리는 필연인데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으로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지난해 12월 중순을 전후로 민주당 내에서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에 대한 쓴소리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명분 없는 창당은 헛된 정치적 욕망 때문이다.”(친명계 원외조직 더민주전국혁신회의) △“분열은 필패다. 윤석열 정부의 무능·폭정을 막기 위해 민주당에서 함께 해 달라.”(민주당 초선의원 호소문) △“십리도 못 가 발병 날 그 길은 가지 말라.”(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전형적인 사쿠라 노선이고 굉장히 나쁜 구태정치다.”(김민석 의원)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윤건영 의원)
새해 들어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도 나섰다. 문 전 대통령은 1월 6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 “다시 마주한 위기 앞에서 우리는 또다시 민주주의, 민생경제, 평화의 가치 아래 단합하고 통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전 대표의 탈당을 에둘러 비판했다는 해석이 나왔지만 신당 창당에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았다. 이후 당내 비판은 더욱 거셌다. △“탈당 이유가 이재명 대표가 싫다는 것 외에 뭐가 있나.”(정성호 의원) “사람·세력·지지기반이 없다. 제일 중요한 게 명분이 없다.”(우상호 의원) △“옳은 결정이 아니다. 너무나 실망감이 컸다.”(고민정 의원)
이제 관심은 이 전 대표의 탈당에 대한 민주당 인사들의 동참 여부다. 신당 합류를 선언한 인사는 이석현 국회부의장과 최성 전 고양시장 등이다. 이재명 대표 체제를 비판해온 비명계 4인방인 ‘원칙과싱식’의 행보도 관심사다. 당 잔류를 선언한 윤영찬 의원을 제외한 이원욱·김종민·조응천 의원이 탈당을 선언했다. 이들은 “윤석열 정권 반대 민심 60%지만 민주당을 향한 민심은 그 절반밖에 안 된다”며 “윤석열 정권의 독선과 무능을 심판해야 하지만 지금 이재명 체제로는 심판하지 못 한다”고 비판했다. 제3지대 신당과의 연대 가능성도 폭넓게 열어뒀다.
동반탈당에 대해서는 설왕설래가 적잖다. 본격적인 공천 국면에서 친명계 주도로 비명계 공천학살이 이뤄질 경우 무더기 동반 탈당과 이낙연 신당 합류 전망이 나온다. 실제 일부 비명계 현역 의원 지역구에서는 친명계 비례대표나 원외 자객들의 도전이 거센 상황이다.
여론조사상 신당 지지율도 나쁘지 않다. 중도층이나 부동층의 신당 지지 의사가 뚜렷하다. 유의미한 지지율이 유지된다면 신당은 더욱 세를 불릴 수 있다. YTN이 1월 7~8일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 ±3%포인트, 무선 100%)에 따르면, ‘총선 지지 정당 후보’는 민주당 25%, 국민의힘 24%, 이준석 신당 11%, 이낙연 신당 7%로 각각 나타났다. 신당 지지율을 단순 합산하면 20%에 육박한다(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특히 지지율 15%는 매우 유의미한 기준이다. 총선에서 득표율 15% 이상을 얻으면 선거비용이 100% 보전된다. 참신한 인재들의 신당행을 유인할 수 있는 요인이다.
이준석 손잡고 제3지대 빅텐트 승부수
1995년 3월 30일 열린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창당대회에서 김종필 총재(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청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이듬해 열린 제15대 총선에서 자민련은 50석을 획득하며 제3당 돌풍을 일으켰다. [동아DB]
당적은 다르지만 두 사람은 상대를 호평해왔다. 이 전 대표는 “현직 대통령과 맞서서 할 말을 다 한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 위원장도 “이낙연 전 총리가 사람들이 가진 고정관념을 깰 정도의 파격을 할 수 있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화답한 바 있다. 이낙연 신당과 이준석 신당의 연대 가능성도 피어오르고 있는 셈이다.
이 전 대표는 일생일대의 승부수를 던졌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2016년 국민의당 분당 시기에도 오롯이 당을 지켰지만 이번에는 정반대다. 많은 이들의 창당 만류에도 요지부동이다. 역대 총선을 돌이켜보면 제3당의 성공 가능성은 희박하다. △1992년 제14대 총선 당시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주도한 통일한국당 △1996년 제15대 총선 당시 김종필 전 총재가 주도한 자유민주연합 △2016년 제20대 총선 당시 안철수 전 대표가 주도했던 국민의당이 대표적이다. 모두 유력 차기주자와 확실한 지역기반이 존재할 때 가능했다.
차기 주자로서 이 전 대표의 경쟁력은 엇갈린다. ‘희미하지만 불씨는 살아있다’ ‘아니다, 다시 볼 필요도 없는 꺼진 불이다.’ 대체로 부정론이 우세하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이와 관련 “(이낙연 전 대표가) 이준석 전 대표와 빅텐트를 해도 대통령 후보가 될까. 아니다”며 “이준석 전 대표는 JP가 될 수 있지만 이낙연 전 대표는 DJ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전 대표 역시 탈당 이후 험난한 상황을 모르지 않는다. 본인의 승부수가 통하려면 오는 4월 22대 총선에서 최소한 원내교섭단체 이상의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 물론 이 전 대표의 희망대로 원내 1당이 된다면 금상첨화다. 그 경우라면 민주당 차기구도는 뿌리째 흔들리고 여권 역시 반(反)이재명 단일전략만을 고수하기 힘들다. 가능한 시나리오일까. 현 여야 정치지형을 보면 자력으로는 어렵다. 오히려 제3지대 정당 간 정책·후보자 연대를 통한 빅텐트 성공 여부가 최대 변수로 떠오른다.
20대 대선 이후 정치지형과 민심은 “윤석열 대통령도 낙제점이고 이재명 대표 역시 대안이 아니다”로 요약된다. 이낙연 신당은 이준석 신당과 손잡고 제22대 총선에서 거대 양당의 지배구도에 균열을 낼 수 있을까.
전문가 평가는 엇갈린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이낙연 신당이 10석을 얻으면 성공으로 봐야 한다. 원내교섭단체 기준인 20석 이상이면 대성공이다. 5석 미만이면 실패”라면서 “총선 캐스팅보트인 중도층은 판단을 유보 중이다. 이재명 피습이나 ‘김건희 특검’보다는 오히려 먹고사니즘에 더 민감하다. 이낙연 신당이 여야 거대 정당과 달리 중도층의 구미에 맞는 슬로건과 정책을 제시한다면 파괴력이 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반윤(反尹)·반명(反明)의 연합구도는 명분이 없지만 이재명 피습사건은 엄청난 변곡점이다. 양극단의 혐오·분노정치가 테러로 이어진 만큼 제3지대 정파가 양극단의 정치를 완충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커질 수 있다”며 “이낙연 신당 홀로는 가능성이 없다. 지역기반이 아닌 세대기반의 이준석 신당에 연대할 경우 적잖은 시너지 효과와 더불어 새로운 정치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