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 확전 바라는 듯
‘작은 이란’ ‘이란의 추종자’ 헤즈볼라
이란-이스라엘 대리전… 테헤란에 부담 커
확전 시 미국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어
사우디·UAE, 헤즈볼라 영향력 약화 원해
2022년 8월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쪽 외곽 지역에서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 지지자들이 모여 휴대전화 불빛을 일제히 비추며 헤즈볼라 설립 4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AP뉴시스]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기습 공격으로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했을 때부터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또 국경 지대에서는 로켓포를 쏘며 이스라엘군과 충돌해 왔다. 이스라엘 당국은 지난해 10월부터 레바논 국경과 가까운 지역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대피시키고 있다.
충돌은 계속됐지만 헤즈볼라가 대대적으로 공격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는 분석이 많았다. 헤즈볼라의 전면전 선언도 없었다. 이스라엘 역시 가자지구 전쟁에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1월 2일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스라엘군이 무인기(드론)를 이용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여러 지역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을 통해 하마스 지휘부 서열 3위인 살레흐 알 아루리를 살해했다. 가자지구 전쟁 발발 뒤 이스라엘이 하마스 핵심 고위 관계자를 가자지구 밖에서 제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1월 2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한 건물에서 대규모 폭발이 발생해 건물 일부가 내려앉은 가운데 시민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은 베이루트 일대에 대대적 무인기 공격을 가했고, 베이루트 외곽에 머물던 하마스 고위 간부 살레흐 알 아루리 또한 숨졌다. [AP뉴시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 얼마나 깊은 악연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마스와 비슷하면서도 달라
아랍권에서 ‘이스라엘 파괴’를 기치로 무장 활동을 펼쳐온 무장정파는 다양하다. 그 중 양대 산맥이 하마스와 헤즈볼라다. 두 무장정파는 이스라엘에 대한 투쟁을 펼치는 중 협력해 왔다. 둘 다 중동의 군사 강국이며 반이스라엘을 강조하는 이란의 군사·재정 지원을 받아왔다. 이름에서도 강경함과 이슬람 근본주의가 느껴진다. 아랍어로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 운동’, 헤즈볼라는 ‘신의 정당’이란 뜻이다.두 무장정파 사이에는 차이점도 적잖다. 일단 활동 무대가 다르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중 가자지구를, 헤즈볼라는 레바논, 좀 더 구체적으로는 베이루트 남부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도 격차가 있다. 헤즈볼라는 레바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정치세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반면 하마스의 영향력은 가자지구에 사실상 국한돼 있다. 요르단강 서안을 기반으로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이끄는 정파는 온건 성향인 파타(Fatah)다.
무엇보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사이에는 종파 차이가 있다. 하마스의 경우 구성원 다수가 이슬람 수니파다. 반면 헤즈볼라는 시아파다. 시아파는 이란이 종주국이다. 또 이란은 1982년 헤즈볼라가 설립될 때부터 파격적인 지원을 했다. 어떤 면에선 이란이 헤즈볼라 설립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하마스보다 헤즈볼라가 이란과 더 가까우며 이는 헤즈볼라의 군사적 역량이 하마스에 비해 월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일광 고려대 중동이슬람센터 정치경제연구실장(한국이스라엘학회장)은 “헤즈볼라는 레바논과 이슬람권에서 ‘작은 이란’ ‘이란의 추종자’로 불린다. 이란이 가장 공들여 키운 무장정파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에 따르면 현재 헤즈볼라의 정규군 수는 2만~2만5000명이다. 수만 명이 예비군 형태로 동원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만~20만여 기의 로켓포와 미사일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 일부는 이란이 직접 제작한 미사일로 정밀 유도 기능 등을 갖춘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에는 드론 전력도 크게 보강됐다는 게 정설이다. 역시 대부분 이란으로부터 제공받았다. 이란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 중인 러시아에 지속적으로 제공할 정도로 드론 제작 및 운용 역량이 우수하다.
2006년 이스라엘과 34일간 전쟁
헤즈볼라가 유명세를 떨친 사건은 2006년 7월 터진 이스라엘과 34일 간 벌인 전쟁이다. 당시 전쟁은 헤즈볼라가 국경지대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을 납치하면서 벌어졌다. 당연히 이스라엘은 강경히 대응했다. ‘헤즈볼라 궤멸’을 외치며 대대적 군사작전을 펼쳤다.헤즈볼라는 만만치 않았다. 이란으로부터 지원받은 로켓포를 대거 이스라엘로 발사하고, 집요한 게릴라전을 펼쳐 이스라엘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당시 이스라엘에선 160여 명이 사망했다. 2000년대 들어 무장정파와 충돌하거나 테러로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은 인명이 희생된 게 2006년 헤즈볼라와의 전쟁이다.
명분 면에서도 이스라엘은 사실상 패배했다. 궤멸을 외쳤지만 여전히 헤즈볼라는 건재하다. 당시에도 헤즈볼라가 치명적 타격을 받았다는 평가는 없었다. 또 레바논에선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1000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상당수가 민간인이었다. 반면 이스라엘 희생자는 다수가 군인이었다.
국제사회에선 “이스라엘이 무고한 민간인까지 피해를 주는 공격을 무리하게 감행한다”는 비판 여론이 강하게 형성됐다. 반면 이슬람권에선 “헤즈볼라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이 군사 목표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성과도 좋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중요한 건, 지난 10여 년간 헤즈볼라의 군사적 역량이 더욱 강화됐다는 분석이 많다는 점이다. 헤즈볼라는 수니파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테러 조직 이슬람국가(IS)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국가를 선포하고 맹위를 떨치던 2014~2017년 중 IS와의 지상전에 대거 참여했다.
수니파 극단주의가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정예 부대인 ‘쿠드스군’이 투입됐다. 이들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IS와 지상전을 펼쳤다. 쿠스드군을 지원하려고 헤즈볼라도 적극 전투에 참여했다.
혁명수비대는 그냥 군대가 아니다.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통하는 권력 집단이며 국가 최고지도자(이란은 대통령보다 시아파 종교 지도자인 국가 최고지도자의 영향력이 더 큼)의 직속 조직이다. 쿠드스군은 이런 혁명수비대 안에서도 최고 엘리트 부대로 해외 작전과 특수전 등을 수행한다. 쿠드스는 아랍어로 예루살렘이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스라엘이 점령한 예루살렘을 탈환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해외 작전을 담당하는 정예부대 이름을 쿠드스군으로 지은 것.
성일광 실장은 “이란 혁명수비대와의 전투 참여는 말 그대로 헤즈볼라의 전투 역량이 크게 향상된 시기였다”며 “2006년 이스라엘과의 전쟁 때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보는 게 적절하며 당연히 전면전이 벌어지면 이스라엘도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 전쟁에서 중동 전쟁으로
이란과의 특수성과 긴밀함 때문에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전면전에 돌입한다면 이는 사실상 이란과 이스라엘의 대리전이나 다름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말 그대로 가자지구 전쟁이 중동 전쟁으로 확전되는 양상인 것.그동안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공격에 대해 배후에는 이란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또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쟁 중에도 시리아의 이란 군 관련 시설을 공격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머물던 이란 혁명수비대 라지 무사비 준장을 미사일 공격으로 살해했다.
이란은 가자지구 전쟁 초기에는 이스라엘을 비판할 뿐 배후 여부에 대해선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중동 외교가에선 “이번 사태(하마스의 지난해 10월 공격)에 직접 이란이 개입하지 않았어도 그동안 하마스에 다양한 지원을 했기 때문에 큰 범주에선 개입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난해 말 이스라엘 현지 영문 매체인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 대변인 라메잔 샤리프 준장은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은 가셈 솔레이마니 암살에 대한 보복 중 하나”라고 말했다. 솔레이마니는 1998년 3월부터 2020년 1월 3일 사망할 때까지 쿠드스군 사령관을 지낸 인물이다. 이란의 이라크·시리아·레바논 내 군사활동, 나아가 현지 시아파 무장정파를 이용해 외교 및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이른바 ‘시아벨트 전략’의 기획자로 여겨졌다. 헤즈볼라와의 교류협력도 솔레이마니의 업무였던 것.
2016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군부 지도자 회의에 참석한 가셈 솔레이마니 당시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AP뉴시스]
그는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했는데 당시 이스라엘 모사드가 미국 측에 다양한 정보를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이란과 이스라엘 관계를 감안할 때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 충돌’은 언제든지 큰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확전 이란에 부담 커
현재 상황에서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전면전을 시작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스라엘의 우방국인 미국의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미국은 헤즈볼라에 원한이 있다. 1983년 헤즈볼라가 베이루트의 미 해병대 사령부 건물을 공격했다. 이 공격으로 미군 241명이 사망했다. 중동 주둔 미군이 단일 공격으로 가장 많이 희생된 사건 중 하나다. 이 사건은 이란 이슬람 혁명 세력이 이란에 거주 중이던 미 외교관과 국민 52명을 444일(1979년 11월~1981년 1월)간 억류한 ‘이란 인질 사태’와 더불어 미국의 이란에 대한 깊은 불신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3년 10월 23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미군 해병대사령부 건물을 공격해 241명이 숨졌다. 미 해병대원이 테러로 부서진 건물 잔해에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CNN 홈페이지 캡처]
이란 전문가인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이란으로서는 이스라엘에 타격을 입히길 원하겠지만 무리를 해가며 이스라엘과 전쟁을 감행할 이유도 없다. 이란 입장에선 헤즈볼라의 과도한 도발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셈법은 복잡하다. 정치적 위기 상황에 처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자신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헤즈볼라와의 충돌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 전쟁 전 부정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구속을 피하기 위해 사법부의 권한을 크게 줄이는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이런 논란 속에서 하마스의 대규모 공격이 있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일단은 사퇴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 ‘전시 내각 체제’를 이끌고 있다. 물론 여전히 적잖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과 텔아비브에서 ‘네타냐후 반대’ ‘네타냐후 퇴진’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인다. 다만 정치권에서 조직적인 네타냐후 총리 퇴진 움직임은 아직 없다.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 전쟁 발발 뒤 매우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는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하마스 궤멸 전까지 전쟁은 안 끝난다” 식의 발언을 자주 한다. 작금의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주이란, 주이라크 대사를 지낸 송웅엽 조선대 객원교수는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매우 궁지에 몰려 있기 때문에 안보 위기로 인한 긴장 상태가 길어지는 게 정치생명 연장에 도움이 된다”며 “헤즈볼라를 자극해 확전을 유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걸프 지역 왕정 산유국들이 이스라엘의 헤즈볼라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은연중 반길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하마스도 그렇지만 헤즈볼라 역시 왕정 산유국들이 경계하는 정치세력이다. 왕정에 비판적이고,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특히 헤즈볼라는 시아파이며 이란과 밀접하다. 사우디와 UAE 등의 시각으로는 하마스보다 훨씬 더 위험한 대상이다.
한 중동 외교 소식통은 “왕정 산유국들의 일반적 민심은 여전히 헤즈볼라나 하마스보다 이스라엘에 더 부정적이겠지만, 정부나 왕실은 오히려 이스라엘이 무장정파들의 힘을 빼주는 것을 더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매력적인 나라, 레바논
레바논은 특이한 나라다. 기독교(주로 마론파), 수니파, 시아파가 묘한 긴장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나라다. 대통령은 기독교, 총리는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에서 선출되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정치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런 독특한 정치구조와 종교 갈등으로 오랜 내전을 겪기도 했다.레바논 사람 중에는 “레바논이 발전하고, 안정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냥 전쟁만 안 해도 다행”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이도 많다. 레바논에서 강성 시아파 성향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헤즈볼라에 대해 좋은 점수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많은 레바논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히 ‘헤즈볼라도 싫지만, 이스라엘은 더 싫다’에 가깝다.
2018년 10월 레바논을 방문할 때 미들이스트항공(레바논 국적기)의 공항 담당 직원은 “한국인은 비자 없이 레바논에 갈수 있느냐”고 물었다. 또 “이스라엘을 방문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베이루트 국제공항에 도착해 입국 심사를 받을 때도 담당 공무원은 “이스라엘을 방문했거나, 방문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부정적으로 여겨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레바논은 이스라엘을 방문한 사람에 대해서는 입국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레바논의 독특하면서도 혼란스러운 정치구조 때문에 헤즈볼라를 레바논을 대표하는 세력 혹은 단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이스라엘과의 전투, 나아가 전쟁은 레바논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레바논은 중동과 유럽이 섞여 있는 독특하면서도 수준 높은 문화유산과 전통이 풍부한 나라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매력적인 나라’라고 생각한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갈등이 고조되는 지금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