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12월 26일~1월 15일 尹 언급 0회
“총선 행보보다 대선 행보에 가깝다”
先 지지층 결집, 後 중도 확장 전략
尹 임기 3년 남았다 vs 韓 대선 3년 남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윤석열 대통령. [동아DB]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24년 새해 들어 2주 넘게 전국을 돌며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 민주열사가 잠들어 있는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핵심 지지층이라고 할 전국 시도당원을 잇달아 만났다. 틈틈이 천태종과 조계종 등 불교의 지도자를 예방했고, 다선 중진 의원과 오찬을 함께 했다.
인사성 밝은 한 위원장이 ‘새해 인사’를 겸해 핵심 당원을 찾아다니며 “새롭게 당을 이끌게 됐다”고 얼굴 알리기에 나선 것이다. 이 같은 한 위원장의 전국 순회 행보를 두고 ‘총선 행보’라기보다 ‘차기 대선 행보’에 가깝다는 당 안팎의 평가가 많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정치에 처음 입문한 한동훈 위원장이 전국을 돌며 자기를 알리는 모습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 교수는 “지금까지 한 위원장이 보여준 모습은 중도 지지층 결집과 무관하기 때문에 무시해도 될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위원장이 만난 사람은 엄밀히 말해 일반 국민이라기보다 자기 진영, 국민의힘 당원에 한정돼 있다”며 “열성 당원과 셀카 많이 찍는다고 총선 때 당락을 좌우할 중도층 표심을 끌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도 “한동훈 위원장은 핵심 지지층 결집에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지지층 결집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실망해 국민의힘과 거리를 두고 있는 중도 지지층의 지지를 회복하는 게 필요한데, 한 위원장이 아직 거기까지는 나아가지 못해 찻잔 속 태풍에 머문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역동적 전국 순회 vs 차분한 민생 토론회
한동훈 위원장은 정치권 데뷔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공식 대면한 것은 1월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인사회가 유일하다. 과거 당대표들이 대통령에게 주례회동을 요구하거나 ‘대통령과 자주 장시간 통화한다’며 친분을 과시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더욱이 한 위원장은 비대위원장 취임 이후 행한 공개 발언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월 16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국민의힘 홈페이지에 공개한 한 위원장의 발언을 확인한 결과 2023년 12월 26일 비대위원장 취임 이후 1월 15일까지 38개 공개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인사말이나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언급한 적이 없다는 것. 더욱이 다섯 차례 주재한 비대위 공개 발언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한 위원장은 국민의힘 사무처 당직자 시무식에서 ‘윤석열 정부 성공’ 대신 ‘우리는 동료시민이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깊은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한 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 언급을 꺼리는 것으로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엄 소장은 “‘한동훈 대 이재명’ ‘검사 대 피의자’ ‘미래 대 과거’로 총선을 치르려는 한 위원장의 총선 전략이 ‘윤석열’ 언급 기피로 나타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동훈 위원장의 역동적 행보에 비해 윤석열 대통령 국정 운영은 차분하고 진중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위원장의 전국 순회 광폭 행보가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는 사이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계와 과학기술인, 정보방송통신인, 문화예술인 등 각계 인사들과 신년 인사회를 열고, △활력 있는 민생경제 △국민이 바라는 주택 △민생을 살찌우는 반도체산업 등 세 번에 걸쳐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를 개최했다. 한 위원장의 거침없는 전국 순회 행보를 윤 대통령이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엄경영 소장은 “‘윤석열 아바타 한동훈’이 아니라 ‘차기 주자 한동훈 서포터스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한 위원장과 윤 대통령의 활동 모습은 대조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국정을 책임지는 윤석열 대통령과 집권여당을 이끄는 한동훈 위원장은 정치적 시차가 다른 공동운명체”라며 “윤 대통령에게는 국정 운영을 책임질 시간이 3년 더 남은 반면, 한 위원장에게는 국정 위임을 받기 위한 차기 대선까지 3년이나 남아 있어 차별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치인 한동훈의 미래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은 서로의 처지에 따라 ‘체감하는 시간’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윤석열-한동훈, 한동훈-윤석열 두 사람은 22대 총선 결과에 정치적 운명이 걸린 공동운명체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총선 승리는 윤 대통령에게는 야당의 거센 공세 걱정에서 벗어나 임기 후반 3년을 원만하게 지내게 되는 필요 최소 조건이라는 점에서다.여권 내부 권력 지형만 놓고 보면 현재 권력인 윤 대통령 중심에서 총선 이후, 더욱이 한 위원장이 총선을 승리로 이끈다면 미래 권력으로 부상한 한 위원장에게 권력의 균형추가 급격히 쏠릴 가능성이 높다. 즉 윤 대통령은 ‘밖에서 이기고 안에서 지는’ 결과를 받아들게 될 공산이 큰 상황이다.
윤 대통령이 권력의 절반, 아니 거의 상당 부분을 잃을 수도 있는 이 같은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의 충격이 그만큼 컸다고 할 수 있다. 총선 패배는 곧 레임덕이 아니라, 야당 인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데드 덕’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아껴두고 싶었던 미래 권력을 급하게 꺼내 쓸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엄경영 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전임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5공 청문회를 실시하고, 백담사에 유배 보낸 것이 사실은 권력 유지를 위한 합의된 차별화 아니었느냐”며 “지금 한동훈 위원장과 윤석열 대통령이 역할분담을 한 것도 위기에 처한 여권을 구해야 한다는 공감대 속에 합의된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그렇다면 개인 인지도가 수직 상승하는 한동훈 위원장은 4월 총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 현재까지 그가 보여준 광폭 행보만으로는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평가가 많다. 이현우 교수는 “등 돌린 중도층 민심을 돌려 세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부각해 독립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 재의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1차 관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종훈 평론가도 “한동훈 위원장이 ‘윤석열 아바타’냐 아니냐는 쌍특검에 대한 태도, 공천 결과, 정책적 차별성 등으로 판가름 날 수밖에 없다”며 “지금까지 한 위원장이 보여준 모습은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로 중도층 표심을 끌어들일 만한 수준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권 출신 한 인사는 “본격적인 총선 공천을 앞두고 불공정 시비가 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4년 동안 지역을 누비며 당원을 모집해 총선을 준비한 사람에게 경선 기회조차 주지 않으려 한다면 거센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동훈 위원장이 어떻게 잡음 없이 공천을 실시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역할과 위상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동훈 비대위 체제가 성공하지 못하면, 윤석열 정부는 곧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한동훈 체제를 용인한 윤석열 대통령도, 민감한 시기에 비대위원장을 수락한 한 위원장도 모두 위험한 도박에 뛰어든 셈이다. 여러 우려에도 한 위원장이 국민의힘 총선 승리를 일군다면 자타가 공인하는 유력 차기 주자로 급부상한다. 총선 승리가 지지율에 날개를 달아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다. 윤석열 정부 하반기 국정 운영, 그리고 정치인 한동훈의 미래를 좌우할 22대 총선이 바짝 다가왔다.
[+영상] 심규진 스페인 IE대 교수가 본 한동훈
신동아 2월호 표지.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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