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김대중(DJ)의 ‘정치 생물론’은 정치평론가 사이에서 DJ가 남긴 정치 아포리즘의 대명사로 꼽힌다. 그래서 그러한 현실 상황론은 변화무쌍한 한국 현대 정치를 설명하는 데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2000년 총선시민연대가 지난 1월24일 ‘15대 국회의원 공천반대 명단’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97년 5월 처음 등장한 이래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어찌 보면 만난(萬難)을 뚫고 유지해온 이른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공조 구도가 이처럼 빨리 그리고 쉽사리 파탄의 길로 들어서리라고 예측하는 정치평론가는 거의 없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난 1월24일 오전 10시 총선시민연대가 공천반대 인사 명단을 발표한 서울의 프레스센터 19층에는 무려 200~300명의 기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거기에 혹시 명단에 포함될지 몰라 불안해한 정치인들이 한시라도 빨리 명단을 파악하기 위해 보낸 보좌진 수십명이 몰려 열기를 더했다. 그런데 이날 총선시민연대가 15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발표한 공천반대 인사 1차 명단 67명 가운데는 불과 얼마 전에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난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발표 현장에 나온 자민련 당직자들과 의원 보좌진은 즉시 당으로 전화를 걸었다. 자민련은 경악했다. 정치권에서는 JP가 명단에 들지 않으리라고 100% 장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설마 하는 분위기였다. 5·16 쿠데타의 원죄와 그 공과(功過)를 떠나 40년 동안 온갖 영욕과 풍상을 겪어왔고 지금은 공동여당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8선 의원 JP가 시민단체의 공천 반대자 명단에 들리라고는 이른바 정치 9단으로 입신의 경지에 오른 JP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8선의 지역구(충남 부여)까지 김학원 의원에게 물려준 그가 아니었던가. 어쩌면 정치권 전체가 시민단체한테 허를 찔린 셈이었다.
총선시민연대가 적시한 JP에 대한 공천 반대 사유는 여섯 가지였다.
① 5·16 군사쿠데타를 주도하여 민주적으로 선출된 제2공화국을 붕괴
② 중앙정보부를 창설하여 공작정치의 시대를 열고 스스로 초대 중앙정보부장에 취임
③ 공화당 창당을 위한 4대 의혹사건(새나라자동차 사건, 워커힐 사건, 증권파동 사건, 파친코 사건) 주역
④ 65년 한일협정 과정에서 완전한 과거청산 문제를 포기
⑤ 80년 당시 부정축재 혐의로 계엄사령부에 연행, 조사받는 과정에 부정축재가 드러난 점
⑥ 6·27 지방자치단체선거에서 핫바지론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한 점
이 모두가 어쩌면 JP를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업보(業報)였다. 그러나 지역감정 조장 대목을 제외하고는 하나 하나가 한국 현대 정치사를 뒤흔든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역사적 평가가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총선시민연대는 공천반대자 67명 가운데 JP와 정몽준 의원(울산 동·무소속) 두 사람의 공천반대 사유 밑에다 ‘당구장 표시’를 해 토를 달았다.
“※현재 자민련의 명예총재로서 사실상 공천권을 행사하고 있으므로 공천반대 대상자라기보다는 명예로운 은퇴를 권고함”
정몽준 의원의 경우에는 4년간 법안 발의 1건, 결석률 82.5% 등 두 가지 공천반대 사유를 적시하고 그 밑에다 역시 당구장 표시(※)를 붙여 “월드컵 준비로 인해 의원직을 충실히 수행할 수 없다면 총선에 출마하지 말고 월드컵 준비에 충실할 것을 권고”했다.
사유는 다르지만 두 사람에게는 공천반대라기보다는 ‘불출마 권고’라는 나름대로 고심한 꼬리표를 남긴 것이다. 실제로 총선시민연대에서도 JP를 명단에 포함하는 문제를 두고 총재는 아니지만 실질적인 공천권을 가진 JP와 다른 당의 김대중·이회창 총재와의 형평성, 이른바 세풍(稅風) 사건에 연루된 이회창 총재와의 형평성 등을 들어 논란이 없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라가 이렇게 어지러워서야”
정계 은퇴를 권고받은 JP가 보인 반응은 의외로 무덤덤한 것이었다. 자민련 당사에서 공천반대자 명단에 포함된 사실을 보고받은 JP의 첫 반응은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였다.
“나라가 이렇게 어지러워서 되겠는가. 하기는 이보다 더한 일도 겪었는데…”
그러나 자민련은 경악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명예총재인 JP를 비롯해 부총재 5명,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등 지도부 대다수가 명단에 들어가 ‘줄초상’이 난 자민련은 충격과 분노로 들끓었다. 특히 ‘명예총재’에게 ‘명예로운 은퇴’를 거론한 것에 대해 이양희 대변인은 “JP까지 난도질이냐, 이게 무슨 공동정권이냐…”(이양희 대변인)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당직자들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민주당 이인제 선대위원장은 빼놓은 채 JP만 포함된 것에 대해서도 “김대중 대통령의 정계개편 구도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김현욱 사무총장은 이날 JP와 이한동 총재권한대행이 참석한 긴급 간부회의의 결과를 담은 성명서에서 “시민단체의 명단 발표는 민주 법치국가의 법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위험천만한 혁명적 작태”라고 공격했다. “민중 선동적 행태” “인민재판식 여론몰이” 같은 거친 표현이 마구 튀어나왔다. 김총장은 “시민단체의 불법행위에 대한 검찰의 즉각 수사를 요구하며 이 요구가 지연되면 특검제를 도입하겠다”고 맞대결을 선언했다.
한편 이날 간부회의에서는 향후 대응책과 당의 진로를 놓고서도 토론을 벌였는데 일부 참석자들은 장외투쟁까지 요구했다. 특히 “이제 청와대의 의도가 분명해졌으니 공동정권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고 한다. 철수의 방법과 수순만 남았다는 얘기였다.
‘공조’하지 않고 미온적 반응을 보이는 한나라당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3당의 의석수 기준으로는 공천반대자 명단에 자민련 의원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되었지만 의원 절대수로는 한나라당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공천반대자 명단(67명)을 3당의 의석수 기준으로 보면 ▲한나라당 30명(총 133명의 22.6%) ▲민주당 16명(총 105명의 15.2%) ▲자민련 16명(총 53명의 30.2%) 등이다.
‘명예로운 은퇴’를 권고받은 JP는 이날 저녁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JP는 이날 강남의 한 호텔 음식점에서 백강회(百江會) 회원 20여명과 저녁식사를 함께하면서 평소에는 멀리하던 술을 많이 마셨다. JP의 평소 주량은 맥주 한 잔 정도. 어떠한 자리건 대체로 이 선을 넘기지 않는다. 기분 좋을 때는 가끔 와인을 즐기기도 하지만 결코 한 잔을 넘기지 않으려 한다. 금주를 시작한 후 새로 들인 JP식 음주 습관이다.
금주 선언했던 JP의 통음
JP가 금주를 하게 된 계기는 95년 가을. 당시 김영삼(YS) 대통령한테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제발로 걸어나간(혹은 쫓겨난) 뒤에 지방자치단체선거에서 보란 듯이 재기했던 그 무렵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JP는 오는 술 그냥 보내는 법이 없는 애주가였다. 그러나 우연찮은 기회에 폭탄주가 오가는 질펀한 술자리가 만들어졌고 그 일로 JP는 상당 기간 외부와 접촉을 끊은 채 청구동 자택과 자민련 당사만을 오가는 칩거 생활을 해야 했다. 그로서는 난생 처음 겪는 술로 인한 후유증이었고 그 때문에 JP가 “중풍에 걸려 입이 돌아갔다”느니 하는 뜬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그때부터 금주를 실천해 오고 있던 터였다.
백강회는 JP의 고향인 충남 부여 출신 재경(在京) 인사들의 모임이다. 다른 의례적인 모임과 달리 어릴 적 불알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인 만큼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고 한다. 허물없는 고향 친지들이 권하는 술인 만큼 사양하지 않았을 법도 했다. 그러나 이날 JP의 통음은 아무래도 이날 오전에 있었던 ‘기가 막힌 일’과 무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JP는 이날 참석자들에게도 “이런 일(시민단체의 정계은퇴 요구)이 있을 수 있냐”면서 “기가 막힌 일”이라고 강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는 한편으로 “나는 이보다 더한 일도 겪었다. 강력히 대처하겠다”라고 현 상황에 대한 정면돌파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JP는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전범으로 몰린 일본 육군대장의 일화를 예로 들고, 5·16과 한일회담 추진 당시의 상황 등을 회고하면서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현재의 상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는 후문이다.
탄압받는 JP 이미지를 겨냥한 자팽?
명예총재의 이런 의지가 밤 사이에 전달된 것일까? 자민련 당사에서는 95년 JP가 YS한테서 겪은 토사구팽(兎死狗烹)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토끼 사냥을 끝낸 DJ가 사냥개(JP)를 삶아 먹으려 한다는 것이다. 당직자들은 한 발 더 나갔다. YS는 자력으로 대통령이 될 기반(영남권)이라도 있었지만 DJ로서는 JP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오늘의 공동정권을 누가 만들어 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느냐고 분노했다. 이날 이한동 권한대행이 주재한 간부회의에서는 1월27일로 예정된 DJP 회동을 거부키로 결정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현욱 사무총장은 전날부터 뜸을 들였던 ‘집권세력의 음모설’을 정식으로 제기하며 사실상의 ‘공동정권 철수’를 선언했다. 김총장은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김성재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민주당의 이재정 정책위의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배후세력으로 지목했다. 두 사람이 여권에 들어오기 전에 재야·시민운동 활동을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김총장은 “모든 상황을 종합할 때 시민단체의 이름으로 벌이는 이와 같은 선동행위가 배후세력에 의해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조종되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총장이 밝힌 ‘모든 상황’이란 사실 결과론이었다. 김수석이 배후라는 근거는 그가 최근 일간지 인터뷰에서 했다는 “총선을 계기로 시민사회의 역할이 커질 것이며 낙선운동뿐 아니라 이런 사람을 당선시키자는 운동도 나올 것”이라는 표현이었다. 김수석의 전망과 예고대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정황 근거였다. 또 이의장이 배후라는 근거는 총선연대의 작업이 이루어진 성공회 소속 수녀원은 외부인사에게 공개되거나 출입이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는 ‘종교계의 관행’이었다. 총선시민연대 유권자 100인 위원회가 공천 반대 인사에 대한 최종 선정 작업을 한 장소가 성공회 소속 수녀원인 만큼 성공회 신부 출신인 이의장이 ‘편의 제공’한 것이라는 논리였다.
한나라당은 공식적으로 청와대 배후조종설을 내놓지는 않았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공동여당의 틈새를 한껏 벌릴 수 있는 이런 호재를 놓칠 한나라당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형근 기획위원장이 나섰다. 정의원은 “김대중 정권이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제1당, 한나라당 제2당, TK(대구·경북)당 제3당, 자민련 제4당으로 만들려는 구도를 갖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이 구도에 따라 ‘자민련 죽이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며 “95년에는 YS가 최형우 의원을 통해 JP를 팽(烹)했다면, 지금 DJ는 시민단체를 통해 JP를 죽이고 있는 것”이라는 친절한 비교분석까지 했다.
어쨌든 이때까지만 해도 공동여당의 관계가 겉으로는 파열음이 커지고 있지만 안으로는 봉합의 여지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민주당 일각에서는 탄압받는 JP의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일종의 자팽(自烹) 전술이라는 분석마저 나왔다. 또 국민회의의 내각제 강령이 민주당의 강령으로 승계되지 않을 때부터 이미 시작된 자민련 ‘몽니’의 연속선상에서 해석되었다. 저러다 말겠지.